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소설집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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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달 출판사에서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작가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별그램을 통해 알게 됐다. 나의 고마운 인별그램... 그리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열흘 전 쯤에,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주문장을 날렸다. 나는 새로운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은,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은 언제나 염통에 텐션을 불어 넣으니까. 책은 그렇게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이번에는 미국 동부 지역의, 이른바 힐빌리들이 사는 곳이 배경이다. 작가 브리스 디제이가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이라고 했던가. 작가는 기이한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것 참. 어쩌면 그의 요절은 자신을 전설로 만드는데 일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론가들이 어떻게 해서 달랑 생전에 6편의 단편소설을 그리고 사후에 6편 해서 모두 12편의 소설들을 남기고 지구별을 떠난 작가를 사상 최고의 작가로 꼽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 이유를 알려면 그의 작품을 만나 보는 수밖에.

 

나의 미쿡인 친구 브랜던이는 내가 인별그램에 이 책을 읽고 있다는 피드를 올렸더니, 한국어 번역에서 고 동네 다이얼렉트를 어떻게 다뤘는지 궁금해 했다. 그런데 나는 영어 원서를 만나 보지 못했으니 그리고 웨스트버지니아 특유의 다이얼렉트를 알 수 없으니 오롯하게 역자의 지도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과연 그런 디테일들을 잡아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러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아쉽다고나 할까.

 

어제 열흘 걸려서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기억들을 되살려 보려니, 아련하기만 하다. 아내가 죽고 아들마저 고향을 떠난 뒤, 눈 치우는 일을 하며 사는 어느 힐빌리는 아르덴 대공세 때 프랑스에 떨궈진 공수부대원이었다고 한다. , 후방에 있던 82공수나 101공수 모두 트럭에 실려 생비트와 바스토뉴로 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밀덕답게, 책에서 작가가 다루는 서사보다 그런 디테일이 더 눈길이 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월남 스키 부대 같은 이야기인가.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었다가 바디백에 담겨 고향으로 돌아온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 기억을 소환한다. 매사추세츠의 어느 거리에서 만난 노숙자 아저씨는 무려 MIT 출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같이 갔던 고등학교 친구가 바로 눈앞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는 걸 보고는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고.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의 친구는 해군으로 안전하게 후방에서 근무할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1970년대 많은 미국 청년들이 캐나다로 도망갔었다고 했었나. 다른 소설에서 징병기피를 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읽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갑자기 너무 궁금해졌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힐빌리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카고나 뉴욕 같은 대도시로 가야 했나 보다. 우리에게 서울이 그런 공간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위탁 가정 양부모의 학대로부터 도망갔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와야 했던 갑갑한 삶의 서사를 읽을 때면 왜 이리 답답하던지. 무모한 치킨 게임인가를 하다가 불구가 된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괴롭기만 하다. 그런 저런 이유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부평초 같은 삶의 짧은 서사가 처량하게 다가온다.

 

수렵한 다람쥐 고기가 상에 빠지면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에, 주인공이 아무 소리 안하고 엄동설한에 소총을 들고 나가 다람쥐들과 여우에게 총질하는 장면은 왠지 짠하다. 거의 눈이 먼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양할 수 없어, 형님에게 부탁해 보지만 자신의 가족 부양하기에도 벅찬 형은 냉정하게 거절한다. 농사로 연로하신 부모님을 부양하기란 아무래도 무리다. 자신은 다람쥐의 부실한 부위로 배를 채우고, 아버지에게 기름진 부위를 양보하는 장면도 역시나 짠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고통 그리고 가난에서 오는 피폐함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브리스 디제이는 힐빌리가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을 그런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에 사는 삶의 단상들을 있는 그대로 스케치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족쇄는 대처에 나가 성공하고 싶은 피 끓는 젊음들의 발목을 잡는다. 고향에 남는다고 해서 무언가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광산 노동자로, 혹은 트럭 운전사로 살면서 수렵 고기로 허기를 달래는 그런 삶 가운데 어떤 희망이 있을지 나는 궁금했다.

 

그런 무기력하고 잔잔해 보이는 삶 가운데 힐빌리들은 다소 폭력적인 유희를 추구한다. 피 비린내 풍기는 닭싸움이나 내기 판돈을 걸고 벌어지는 싸움판이 그랬다. 자신을 물 먹인 배신자를 찾아가 응징하겠다는 말이 실현될 줄 누가 알았을까. 동행한 여자 친구는 텍사스에서 일자리를 찾았다고 집에 전화한다. 뉴욕에 나가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고향에 뿌린 공연 티켓에 홀린 이들도 있다고 했던가.

 


단 하나의 소설집만을 남기고 별이 된 어느 힐빌리 작가의 글을 읽는 내낸 마음이 쓸쓸했다. 한 이틀이면 다 읽을 줄 알았던 책은, 다 읽는데 열흘이 걸렸다. 내가 무언가 놓치는 게 있을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은 몇 번이나 거듭해서 읽었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서 밑줄 긋기와 그 부분을 읽을 때의 단상들을 메모해 두었어야 하는데... 그래서 이런 책은 곁에 두고 재독해야 하나 보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또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려나.

 

더 이상 브리스 디제이의 글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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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브리스 팬케이크 약력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는 미국 작가다. 그는 1952629일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의 찰스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26세의 나이에 자살했다. 생전에 그는 6편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대부분 <어틀랜틱>에 게재되었다. 사후인 1983년에 단편 소설집이 출간되었는데, 문학계의 대선배인 윌리엄 포크너, 제임스 조이스, 플래너리 오코너 그리고 새무얼 베킷에 견줄 정도였다. 현재 팬케이크의 소설집은 미국 단편 소설계에서 걸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브리스 디제이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유니언 카바이드의 직원이었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나중에 사서가 되었다. 책에 대한 브리스 디제이의 사랑은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 헬렌은 브리스라는 이름을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 다음날, <찰스턴 가제트> 스포츠란에서 골랐다고 한다. 브리스 디제이의 성인 Pancake은 독일어 Pfannkuchen(판쿠흔)을 미국식 줄임말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그는 카벨 카운티의 밀튼에서 성장했는데, 밀튼 고등학교를 나왔다. 웨슬리언 칼리지를 거쳐 1974년 웨스트 버지니아 헌팅턴의 마셜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에는 아버지가 알콜중독 합병증으로 돌아 가셨고, 3주 후에는 친한 친구 매튜 허드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으면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23살의 브리스 디제이는 다음 2년간, 포크 유니언과 스톤튼 군사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브리스 디제이는 나고 자란 밀튼에서 스톤튼까지 반나절 걸리는 운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곳의 학교 분위기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어느 글에서는 브리스 디제이가 12편의 단편 중 9편을 이곳에서 완성하거나 시작했다고 한다.

 

교단을 떠난 뒤에는 1976년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시작했다. 그의 은사 중에는 퓰리처상에 빛나는 제임스 엘런 맥퍼슨을 비롯해서 존 케이시와 피터 테일러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브리스 디제이는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77<어틀랜틱><삼엽충>을 발표했다. 이 때, 어틀랜틱의 편집자가 덱스터와 존을 헷갈려서 DJ로 잘못 기재했다고 한다. 브리스 디제이는 이 이니셜이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1979년 그가 죽던 해에 찍은 사진이다)


브리스 디제이는 샬러츠빌에서 197949일 밤에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세 편의 소설을 어틀랜틱에게 팔았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삼엽충>을 어틀랜틱에 팔고 받은 돈 750달러를 가난한 이들을 먹이라고 기부했다고 한다. 브리스 디제이의 죽음은 그의 머리 뒤편에 난 총격 자국으로 공식적으로 자살로 판단되었다.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믿고 있다. 커트 보네거트는 브리스 디제이를 자신이 읽은 최고의 작가이자 성실한 작가라고 극찬한 바 있다.


* 오탈자 : 135쪽 6째줄 - 프랑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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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26 11: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나는 새로운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아, 제발 쫌 두려워하삼! ㅋㅋㅋ 매냐 님 신간 너무 빨리 읽으심. ㅋㅋ 저도 이 책 사두고만 있어요. 아직 안 읽음....

레삭매냐 2021-05-26 13:31   좋아요 2 | URL
과연 힐빌리 헤밍웨이라는 별명
으로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애잔하고 뭐 그런 정서가 바닥에
깔려 있어서 진도 빼기가 쉽지 않았
습니다.

바람돌이 2021-05-26 1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잠자냥님 말에 동의함요.
이 작가는 이름도 정말 특이하네요. 어떻게 하면 성이 팬케이크가 될 수 있을까? ^^ 찾아보니 제가 좋아하는 커트 보니것이 극찬했다는데 관심책으로 보관함에 넣어둡니다. ^^

레삭매냐 2021-05-26 13:33   좋아요 3 | URL
커트 보네거트 작가가 최고의 작가라고
칭할 정도였다고 하니 더더욱 아쉽더라구요.

오래 살면서 더 좋은 작품들을 내줄
것이지...

새파랑 2021-05-26 13: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만 봐도 뭔가 쓸쓸한 느낌이 드네요. 게다가 단 하나의 소설집이라니~ 이런 책을 발굴하시는게 정말 대단하세요~~!!

레삭매냐 2021-05-26 13:36   좋아요 3 | URL
미국 독자들은 기이하게도 그렇게
요절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호하
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유일무이한 작품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coolcat329 2021-05-26 1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외모가 언뜻 D.H.로렌스를 생각나게 하네요. 아까운 작가가 여기 또 있네요. 12편의 이야기만을 남겨놓고 가다니...

레삭매냐 2021-05-26 14:33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그래도 책이 나온 지
38년 만에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