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 인류의 탄생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1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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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유발 노아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을 알면서고 굳이 그의 책을 읽어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베스트셀러를 외면하는 나의 독서 습성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이번에 그의 책이 그래픽 노블로 나왔다고 하니 보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더라.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전을 읽는 것이지만 나의 게으름이 그걸 허용하지 않더라. 대신, 그래픽 노블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난주에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다. 인류의 출현을 추적하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탐구 방식은 기존의 학자들과는 그 결을 달리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원전보다는 자신의 조카 조이도 이해할 만한 내용으로 책을 다시 쓴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원래 아이디어가 좋다고 하더라도, 독자나 청자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한 생각들이라면 그 존재에 대해 묻게 되니 말이다. 일단 이 점에서 나같이 무지한 독자에게 아주 딱 들어맞는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현재 지구상에 가장 강력한 종은 바로 인간, 호모 사피엔스다. 그런데 이 호모 사피엔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등장한 것은 아니고 무신론자 유대인 학자에 의하면 기존에 있던 6종 정도의 호모 종들이 경쟁을 하며 현세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호모 에렉투스와 현세 인류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네안데르탈인 등은 들어 보았지만, 나머지는 좀 생소했다. 어쨌든 이름도 낯선 나머지 네 개의 종들은 5만 년 정도 전에 모두 멸종되었고, 호모 사피엔스와 혼종 교배(?)된 네안데르탈인의 DNA2% 가량 우리들의 몸속에 흐르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월등한 신체적 능력을 가졌고, 심지어 두뇌의 용량도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런 우월한 종이 전멸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찍혀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이단적인 주장을 일삼는 역사학자는 단순하게 역사적 증거들만으로 고대의 역사를 재구성할 게 아니라, 물리학 화학 그리고 생물학까지 총동원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설파하다. 아울러 과학적인 입증방식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취사선택할 것을 주문한다. 현재처럼 너튜브를 위시로 한 동영상이나 CNN의 사실에 가까운 보도 같은 게 아니라면, 몇 만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료들은 너무나 희귀하고 또 전체적으로 적용시키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역사학자로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는 그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그런 어느 실낱같은 단서들을 매개로 이단적인 주장을 개진하는 게 요즘 같이 페이크 뉴스가 난무하고 확증편향주의가 넘실거리는 세상에는 오히려 더 팔리는 그런 생각들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동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에 걸쳐 살던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대륙의 동물들을 제압하고, 생존에 적합하지 않는 곳까지 널리 퍼지게 된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협력이라고 저자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내가 받아들인 바에 의하면,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협력은 다른 동물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이었다. 사피엔스들은 협력과 사유를 기반으로 해서 지구별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사방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다른 동물들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던가. 다만, 여자들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어쨌든 사피엔스들은 이런 상호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해서 살기 어려운 조건들도 극복하게 되었고, 매머드나 검치호랑이 같은 대형동물들도 사냥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사피엔스들은 호주 대륙에도 진출하게 되었고, 얼어붙어 있던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도 건너갔다. 문제는 이런 사피엔스들의 세계 진출이 다른 대륙에서 평화롭게 살던 다른 종들에게는 그야말로 대재앙의 시작이었다는 점이다. 사피엔스들이 활발하게 살고 있는 현재에도 지구별에서는 숱하게 많은 동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멸종되어가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번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예전처럼 사피엔스들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 이동의 제한이 되면서 자연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편리를 위해 개발과 발전은 필요하지만, 때로는 적당한 불편이 지구별에 사는 동물들과의 공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이 책을 보면서 절실하게 들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과거에 사피엔스들이 오늘날의 사피엔스들보다 더 적게 노동하고, 건강하게 살았다는 점이다. 물론 영유아 시절의 위험한 고비들을 잘만 넘기면 평균 수명이나 삶의 질에서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니 정말 놀랄 노자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사피엔스들은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 긴 노동을 하면서도, 유희를 즐길 시간들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집에 와서도 청소나 빨래 등등 가사는 더 늘었다고 저자는 슬쩍 우리가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피엔스만이 해낼 수 있었던 허구, 그러니까 신화의 창조가 존재하고 있더라는 점이 그래픽 노블 볼륨 원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나는 열혈책쟁이로 누구보다 픽션, 허구의 세계에 열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대판 주술사인 법인(회사)과 변호사가 빚어내는 허구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실체가 없는 회사에 인격을 부인해서 법인(corporation)을 만들고 그 픽션의 주인공인 법인이 생산해 내는 물질의 노예가 된 오늘날의 사피엔스의 모습에 되돌아보게 된다.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은 뒤죽박죽이지만, 어쨌든 <사피엔스>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이단적 고찰과 주장이 가진 참신성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정도의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마냥 칭찬일색의 호평에 필적한 비판도 필수적인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앞으로 더 나올 예정이라는 나머지 볼륨 세 권에 대해서도 기대해 본다. 나는 무엇보다 이 책의 방점을 쉽고 재밌다에 찍고 싶다, 아 참,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그래픽 노블 작업에서 사피엔스 특유의 협력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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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io99 2021-04-25 17: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이지만 원작 자체가 벽돌책이어서 쉽지 않았을 텐데, 완독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04-26 09:14   좋아요 0 | URL
원작은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투덥더라구요.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1-04-25 19: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나머지 책들도 그래픽 노블화 하는 건가요? 지금 서가에 꽂혀 있는데, 오늘 레샥매냐님 따라 <사피엔스> 그래픽 노블이나 끝까지 읽을까 싶네요.

유발 하라리의 온갖 소소한 토크까지 다 뒤져보는 편인데, 최근 적어도 2021년 이분 표정이 굉장히 밝아지시고 뭔가 대화할 때 태도에서 경쾌함까지 느껴져서 독자로서 궁금해하는 중이랍니다^^ 이 책 읽어보면서 원작이랑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나는지 좀 찾아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04-26 09:16   좋아요 1 | URL
나머지 책이라기 보다는... 원작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사피엔스> 나머지 부분
을 그래픽 노블로 제작 중이라고 하네요.

아마 다른 책들도 곧 그래픽 노블로 만들
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작과의 비교, 역시 대단하십니다.

2021-04-26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4-25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저는 사피엔스를 읽어버려서 그래픽노블을 굳이 읽진 않을 거 같지만, 사피엔스 특유의 ‘협력‘의 진수는 느껴보고 싶네요!ㅎㅎ

레삭매냐 2021-04-26 09:18   좋아요 0 | URL
아 선빵으로 먼저 읽으셨군요 :>

전 책은 안 보고 그래픽 노블로 만나는
지라 헷, 약간의 치트키 느낌이랄까요.

유발 노아 하라리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글을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불어와 영어 번역을 맡고 또
책을 만드는데 필요한 종이와 출판 인쇄
등등이 모두 사피엔스 특유의 협업이
아니겠냐는 주장이더라구요. 아주 제대
로 콕 집어서 이해박게 해주더군요.

바람돌이 2021-04-26 0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비슷한 시기를 살았는데 체격도 더 컸고, 두뇌용량도 비슷했던 이 두 인종의 운명의 갈림에 대해 이 책에서는 말씀하신대로 공동체의 형성과 협업 여부로 이야기하더군요. 근데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란 책에서는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이유를 유물을 가지고 얘기해요. 빙하기의 추위에 네안데르탈인은 결국 쓰러졌지만, 사피엔스는 바늘을 만들어 쓸줄 알아 옷을 제대로 지어입고 빙하기의 추위를 견뎌냈다는 쪽으로 설명하더라구요. 사실 어느쪽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고, 둘 다 진실이 아닐 수도 두가지가 다 섞여 있을 수도 있는게 고고학의 영역이긴 하지만 솔직히 저는 <사피엔스>라는 책은 전체적으로 꽤 좋았지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대한 이 견해는 지나치게 현대인의 관점에서 생각한게 아닌가 싶었어요.
저도 그래픽 노블의 협력의 진수는 느껴보고 싶네요.
그리고 혹시 안 읽으셧다면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강력 추천하고 갑니다. 완전 재밌어요. ^^

레삭매냐 2021-04-26 09:25   좋아요 0 | URL
추천해 주신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
남았을까> 접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고학의 분야는 남은 자료들만으로
추정하기에는 빈 공간이 너무 많아 보입
니다. 그만큼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많
기도 하구요.

중세사 전문가인 유발 하라리가 그런
이유로 사피엔스라는 치열한 논쟁을 촉
발시킬 수 있는 그런 주제를 고르지 않
았나 싶기도 하네요.

역사를 현대의 관점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인데, 유발 하라리
는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물론 호모 사피엔스를 세계 동물 학살범으로
현대 법정에 세운 아이디어는 기발하긴 했지
만요.

얄라알라 2021-04-26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레샥매냐님 리뷰 덕분에, 꽂아만 두었던 그래픽 노블 <사피엔스> 새벽에 다 읽고 잤네요^^ 2,3,4부도 넘 기대되요

레삭매냐 2021-04-26 09:26   좋아요 1 | URL
바로 그겁니다.
모름지기 책은 빌리거나 사서 보는
게 아니라, 집에 쟁여둔 책을 보는
거죠 ㅋㅋㅋ

전 어제부터 정말 오래 전에 사둔
마누엘 푸익의 <천사의 음부>와
최근에 나온 앤터니 비버의 <아르덴
대공세 1944>를 읽기 시작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