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앞두고 퇴근하여 꺼벅꺼벅 졸던 차에 108일 오후 8시에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노벨문학상 발표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사실 노벨문학상 즈음해서 수상 가능성이 있다는 작가의 책들을 미리 사제껴 두어야 하나 어쩌나 아주 살짝 고민도 했더랬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 정도는 읽어 주어야 한다는 허영심 때문이라고 해두자. 며칠 전에 작년에 발표된 페터 한트케의 <돈 후안>인가 하는 책을 펴들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내팽개쳐 버렸다. 노벨상 받은 작가의 책이라고 해서 모두 재밌는 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그것도 아니면 업무 때문에 피로해서 글발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나 할까.

 

엊그제이던가, 투자하는 마음으로 헌책방에 가서 절판되었다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를 사서 처음의 몇 페이지를 읽다 말았다. 독서광인 주인공 여자가 등장하는 흥미로운 그런 책이었는데...

 

어쨌든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10월초는 모든 국내출판사들이 각각 로또 한 장씩을 쥐고 자기네와 계약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를 고대해 마지않는 그런 시즌이란다. 밥 딜런 때도 그랬지만 그리고 더 오래 전에 무슨 스웨덴 작가가 상을 받았을 때처럼 이번에도 출판사들은 보기 좋게 물을 먹었다. 올해 수상자는 미국 출신의 시인 루이즈 글릭이라고 한다.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해 왔지만(물론 시는 읽지 않는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국내에 출간된 책도 하나 없더라. 그러니 공평하게 배부된 로또는 모두 꽝인 셈이다.

 

그동안 가장 흥행이 잘된 노벨문학상 작가는 오르한 파묵이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아마 가즈오 이시구로도 좀 재미를 보지 않았나 어쨌나. 나의 원픽이었던 페루의 MB라고 불리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샘도 생각보다 그렇게 노벨문학상 빨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노벨문학상의 여진이 모두 가시고 나니 요사샘은 계속해서 신간을 발표했지만 그의 신간들은 아예 출간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철저하게 시장에서 외면당했기 때문일까.

 

온라인 서점에서는 재빠르게 루이즈 글릭의 시가 수록된 책들을 랜선 매대에 올렸는데 참으로 초라하구나. 왠지 업자들이 허탈해 하는 그런 심정이 느껴진달까. 올해는 틀렸으니 다시 내년을 겨냥한 로또를 한 장씩 돌려 보자.

 

여담으로 예전에 앨리스 먼로가 노벨문학상 받았다는 소식 듣고서는 동네 중고서점에 달려가 저자의 책을 사들인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책을 여직도 읽지 않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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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09 0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랜선 매대에 올려진 그녀의 시가 과연 얼마나 살아남아 있을까요? 시는 자고로 한국인이 쓴 시가 최고인것 같은데 ㅎㅎㅎ

레삭매냐 2020-10-09 21:13   좋아요 0 | URL
소설은 몰라도 시는 정말 그 나라
언어가 아니면 다른 언어로 번역
되어 얼마나 시가 품은 감성이 전달
될 지...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페크pek0501 2020-10-09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맨 끝줄... 저와 비슷하십니다.

레삭매냐 2020-10-09 21:14   좋아요 0 | URL
해마다 반복되는 패턴이라고나
할까요.

우와 노벨상 받았단다, 책을 사
야지. 그리고는 안 읽게 되네요.

그나마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
의 책은 재미나 있어서 많이
읽었네요.

coolcat329 2020-10-09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발표 듣고 출판사 생각이 젤 먼저 났네요. ㅎㅎ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레삭매냐 2020-10-09 21:15   좋아요 0 | URL
노벨문학상 특수를 땡겨야 하는데
세상에 국내에 나온 책이 1도 없다니 -

가히 멘탈이 날아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발표 직후 혹은 한두달 안에 쇼부를
쳐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지 모르겠
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