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알라딘 헌책방 순례는 수년 전 종로에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헌책방을 전전하였다. 물론 내가 사는 산본에는 거의 매일 같이 들른 적도 있다는 건 비밀도 아닐 것이다.
오늘은 인천 계산점을 털었다. 시간이 없어 들르기 전에 정한 딱 4권의 책만 사리라고 결심하고 달려갔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에게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느긋하게 서가를 훑을 만한 그런 여유는 눈꼽만큼도 없다. 빨리 사서 총알 같이 튀어 나와야 한다. 오래 전 배다리 헌책방을 누비던 시절이 참으로 그립구나.
사진 속 비루는 이웃 설해목님의 여행 블로그를 보고 나서, 답사 다니던 시절 생각이 나서 냉큼 편의점에 뛰어가 한 깡통 사왔다. 예전에 하룻 저녁에 그리스식 하프 치킨을 안주 삼아, 식스팩 정도는 가비얍게 해치우던 시절 생각이 나는구나. 사실 식스 팩이라 쓰고 열두병 짜리 팩이었다고 고백하는 바이다. 뭐 그 땐 그랬지.

세계문학마다 편애하는 출판사가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을유문화사가 그렇다. 아니 그리고 보니 오늘 산 세 권의 책 모두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책이로구나. 일단 나는 하드커버다. 최근 문동에서 세문 하드커버를 없애서 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다. 그동안 문동세문은 항상 하드커버로만 사들였었는데, 나의 낙이 하나가 사라졌도다.
다행히 을유문화사에서는 고전적 스타일의 하드커버판을 계속해서 내주기 때문에 내 애정하지 않을 수가 없고나. 알프레트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민음사 그리고 시공사 버전도 있었지만 나는 을유문화사 버전을 기다렸고 마침내 사냥에 성공할 수가 있었다. 다만 이렇게 묵직한 책일 줄은 미처 몰랐네. 자그마치 711쪽이나 된다. 하지만 나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바로 도전에 나섰다. 왠지 모르게 하인리히 뵐의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 꼴랑 50쪽 정도 읽어서 전반적인 썰을 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느낌이다. 여튼 주인공 프란츠 비버코프란 녀석이 문제적 인간이긴 한 것 같다.
나는 열심히 비루를 흡수하고 있는 중이다. 아주 열심으로.

자자 다음은 아시아 제바르의 <프랑스어의 실종>이다. 뒤늦게 인스타에서 을유문화사 서평단 진행하는 걸 알고서는 어찌나 아쉬웠던지. 그런데 그 다음에 신청하는 족족 떨어지는 바람에 앞으로 을유문화사 서평단은 신청하지 않는 것으로. 내가 또 포기는 기가 막히게 빠르지 아니한가. 그냥 이렇게 헌책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사서 보거나 아니면 도서관에서 보는 것으로. 예전에는 책에 낙서 하나 없이 보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톰보우 4B 연필로 밑줄을 좍좍 긋고, 메모도 왕창한다. 지난 달 달궁모임에서 우리 두목 삽하나님은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구절마다 밑줄 긋고, 메모한 것을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다나 어쨌다나...
어쨌든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도서관에서 아시아 제바르의 다른 소설 <사랑, 판타지아>를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애석하게도 끝까지 못 다 읽었다는 것. 내가 또 프랑스 역사에서 아픈 상처라고 할 수 있는 베트남 전쟁과 알제리 전쟁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던가. 전자에 대해서는 그나마 다양한 자료가 있지만 후자는 정말 자료도 관련 서적도 빈약하다. 이번 참에 좀 해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알제리 전쟁>도 봐야 하는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도 구해서 초반을 조금 보았는데 어찌나 선동적이든지 이 영화를 보면 당장 거리로 뛰쳐 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마지막 주자는 바로 <티토 : 위대한 지도자의 초상>이다. 재스퍼 리들리라는 작가가 쓴 책이러고 하는데 절판된 책이다. 그러니 상태에 상관없이 바로 업어왔다. 당연히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티토를 알게 된 것은 한국일보-타임 라이프에서 나온 <2차 세계대전>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내가 전쟁사에 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다. 중학생 시절엔가 아버지를 따라서 청계천 책방거리에서 10권 짜리 셋트를 사온 것을 계기로 죽어라고 그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시리즈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과 십년 전만 하더라도 그 책들을 헌책방에서 권당 5,000원에 살 수 있었다. 지금은 시세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그 녀석이 보지도 않은 책들을 자랑하는 걸 보고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진 것이 있었다. 정말 그 녀석이 부러웠다.
암튼 그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지금은 없어진 나라 유고슬라비아의 국부로 추앙 받는 전설적인 빨치산 두목 티토에 대한 책이라고 하니 사지 않고 배길 재간이 있나 그래. 몇 달 전부터 노리고 있던 책인데 다행히 오늘까지 팔리지 않아 내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바로 이런 게 헌책 사냥의 즐거움이 아니었던가.
서문을 조금 읽어 보았는데 걸출한 공산주의자 티토의 족적을 호치민과 저우언라이의 그것에 비유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러시아 혁명을 비롯해서 대독일 빨치산 투쟁 그리고 비동맹 노선을 걸으면서 부르주아 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붉은 악마 스탈린의 소련에도 반대한 깡다구 넘치는 정치 지도자의 초상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적이면서도 동시에 위대한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한 처칠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흥미진진만 독서가 될 거라느 느낌이 빡 온다.
나의 5월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뱀다리1] 알라딘에서도 봉투값을 받기 시작했다. 100원 더 내고 봉투를 샀다.
[뱀다리2] 2만원 이상 사면 뽑기로 적립금 받는 행사에서 1,000원 당첨이 됐다. 나랑 뽑기랑은 정말 인연이 없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