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철주의 미인도,이주은의 바쿠스가 벌이는
그림과 삶의 향연 >
( 서 )
중학교 들어가 첫 미술시간,미술선생님이 특이했다.
" 이 세상에서 영원한 건 없어, 뭐든지 변한다. 변화무쌍하게
그리는 거다."
변화무쌍한 사물에 대한 인식은 한참이나 후에
이해가 됐다.
또 하나, 미술전시회에 많이 가 보라는 것이다. 학기말, 모아둔
미술전 팜프랫을 제출하면 추가점수를 주었다.
우린 신문에 나는 전시회 소식을 공유하며 열심히 쫒아 다녔다.
처음엔 팜프렛 얻으러, 그러다가 차츰 그림을 보는 쪽으로 비중이
기울었다.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보는 거창한 대가들의 작품은 무한한 상상력과 신비감을 주었다.그리고 그 감상과 사유는 철저히 자유였다.
그 연장 선상에서 화집을 구해 때때로 들여다 보는 취미도 생겼다. 국내, S시 안에서만 제한된
그림감상은 시공을 초월한 드넓은 세상으로 확대되었고 ,그렇지만 역시, 나 혼자만의 상상이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림세상의 전문가와의 공감이라니, 정말 재미 100 배가 되었다.
< '그리다'는 움직씨이고 '그립다'는 그림씨입니다.'묘사하다'와 '갈망하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이지요. 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갈망하면 그리움이 됩니다.아닌게 아니라 그림과 그리움은 밑말이 같아서 한 뿌리로 해석하는 분이 있더군요.'종이에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하는 멋부린 말도 귀에 들리고요 --손철주 >
그림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감출 맛있게 초입에 써 놓았다. 나도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낮 익고 반가운 공감이다.
내용도 동서양의 그림을 폭 넓게 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그림도 다수 보여준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507/pimg_7232241561415893.jpg)
서생과 처녀 작자 미상
( 본 )
가깝고도 먼 그리움
무릎까지 내려온 외가닥 윤기나는 머리채가 탐스러운 아가씨가 기둥에 몸을 숨기고 숨소리 죽이며 서생의 거동을 훔쳐 봅니다. 서생이 그리워 밤마다 드나들었건만 그는 아예 돌아앉은 돌부처입니다.
생시에 보고 꿈에 보고 거듭 보고 봐도 여전히 그리운 상사병은 사람한테서 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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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레니 <술 마시는 바쿠스>
5} 유혹과 금기에 관대한 신,바쿠스
오호,와인 통 옆에 턱하니 기대앉은 투실투실한 술의 신 바쿠스가 한 편으로는 와인을 마시고,다른 한 편으로는 오줌을 싸고 있군요.
그 어느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제 맘대로 살고픈 이 어린아이야 말로 본능대로 사는 신이고 본능을 이해해 주는 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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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포의풍류도>
얼음같은 마음의 자화상
선비의 망중한입니다.문인 집 안의 인테리어가 보이는 그림이죠. 선비가 비파를 뜯는데
들을 사람, 볼사람 없으니 버선을 벗어던진 맨발 차림이 홀가분하지요. 이런 선비의 심사를
써놓았습니다.
< 종이로 창을 내고 흙으로 벽을 발라 한평생 베옷 입어도 그 속에서 노래하고 읊조리리라.>
단원 글씨 오른 쪽에 호리병 모양의 도장을 찍었는데 "빙심"이라 새겨져 있습니다.'한 조각 얼음같은 마음 옥병에 들어 있다네' 싯구에서 따온 말로 세상이 어떻든 누가 뭐라든 단단하고 맑은
심지는 변치 않는다는 뜻이랍니다.
전문가들은 이 인물화가 초상화 기법을 빌리지 않은 단원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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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레옹 제롬 작 학생에게 <벨레데레 토르소를 모여주는 미켈란제로>
취향은 가르칠 수 없는 것
르네상스의 조각가 미켈란제로가 줄무늬 옷을 입은 어린 제자 앞에서 조각에 대한 무언가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어요. 아마도 부분과 부분 사이의비율, 운동감, 질긴 근육과 부드러운 살갗을 표현할 때의 차이점 등을 말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거장이라고 해도 전수해 주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미술가란 '자기만의 좋은 취향'으로 작품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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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심 작 <성하직리>
가난한 자의 행복
' 자족이 행복이다' 가난하건 부유하건 행볻은 귀천을 따지지 않습니다.
이 가족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걸까요,
" 성하직리 " 여름 날의 짚신 삼기란 제목입니다.
시골 집 바자울에 박꽃이 피고 박이 여뭅니다. 삿자리를 깔고 강골 아들이 짚신을 삼고
노인은 아들이 하는 일을 미덥게 지켜 보는데 등에 매달린 손자의 재롱에 응석을 너그럽게
받아주는 삼대 부자의 흐믓한 정경입니다.
불고 쓴듯한 가난 속에서도 육친에 대한 신뢰가 깃든 그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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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빈존스 작 <마리아 잠바코 >
확실한 열정, 그러나 두려운 마음
헤어질 비장한 결심을 한 채 연인의 모습을 흡입하듯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마리아 잠바코의 모습입니다.잠바코는 영국인들이 가장 신비롭게 생각하는 그리스 혈통을 가진 매력적인 여인이에요.
옆에는 사랑의 신 큐피드가 떠나려 등을 돌리고 있고 그림 오른편에는 슬픔을 뜻하는 파란 수선화가 그려져 있군요.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꽃, 흰색 꽃 박하는 보통 '크레타 섬의 박하'라 불리며 지중해의 열정을 상징한답니다.
열정이라는 꽃말은 그녀에 대한 작가 에드워드 빈존스 자신의 마음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지요
빈존스는 성실한 가장으로서 열정을 따라가며 아내를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 결 )
많은 사연과 그림이 있지만 특히 인상깊은 몇 편을 골라 보았다.
작가 두 분의 전문가적 광범위한 식견과 풍부한 감성, 그리고 생동하듯 참신하고 발랄한
문장까지 두루 만족스럽다.
잠 안 오는 밤 빗소리 들으며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또 새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