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이 등교하는 길,

외삼촌 병원을 나서면 ㄷ읍을 가로지르는 큰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5 분 쯤 걷다 외돌아

병목안 마을로 들어서는 작은길, 여기엔 차 두 대가 겨우 스칠 정도로 좁다. 포장도 안되어

차라도 한 대 지나가면 온통 흙먼지가 풀썩거리고  분가루처럼 뽀얗게 내려 앉는다.해서 하경은 다시  옆 길 농로 쪽으로 길을 바꾼다.

왼 쪽으로는 콩밭이나 배추밭이 널려있고 바른 쪽엔 작은 농수로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그 너머엔 좁다란 두렁을 낀 드넓은 논들이 있어 하경은 이 곳에 들어서면 우선 콧구멍을 넓히고 입을 벌려 심호흡을 한다. 푸른 논을 휩쓸고 온 푸른 바람, 풀냄새가 가득하다. 그러나 지금은 가을 하고도 끝자락 . 벌판은 이미 밭걷이가 끝나  텅비어 썰렁하다, 길가 남은 풀마저도 하얀 서리로 잔뜩 시들어 있다. 그런데 오늘 하경은  그 풍경들이 눈에도   맘에도  깊이 들어오지 않는다.그녀는 젖은 풀로 인해 축축한 운동화의 발끝을 보며 묵묵히 걷는다.새들도 아직 서두르는 기척없이 사방이  고요하다. 하경은어젯 밤 늦도록 읽은 에밀리 브론테의 < 워더링 하이츠-폭풍의 언덕 > 소설의 충격적인 여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랑은 당연히 달콤하고 아름답고 설레고, 어린 소녀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로망이다. 그러나 히스클립과 케서린의 야릇한 관계, 사랑이란 감정으로 벌이는 집착과  질투,그래서 벌어지는 광적인 히스클립의 악행.그래서 그가 사랑하는 케서린을 짓밟고 괴롭히고  또 스스로도 자멸해 나가는 스토리에   하경은 적쟎이 놀란다.

심지어 죽어 장사지낸 케서린의 무덤을 파혜쳐 시체를  꺼내  포옹하는 히스크립의 깊은 슬픔, 어두운 열정.  케서린의 영혼마져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모습은  하경도 연민으로 가슴 저며 한숨지으며 그를 미워할 수 없는 묘한 감동을 느낀다. 배신감과 질투, 복수심으로 갈등하던 그들이 비로소 죽음의 저 너머에서   행복하게 손을 잡고 히스꽃 가득한 워더링 하이츠 초원을 거닐고 있을까., 열정으로 인하여 스스로 산화되는 사랑,  캐서린과 히스클립이 싦과 죽음을 넘나들며며, 끝내는 영혼으로 화합하는 그들의 사랑에 징글징글하면서도 그 끈끈하게 빠져드는  늪 같은 사랑이 이렇게 마음에 긴 여운으로 남다니 .


하경은 생각에 골돌한 채 학교에 당도했다.

짝꿍 영희,  한 쪽 눈을 안대로 가렸다. 다른 한 눈 마져 퉁퉁 부어 한 2 미리 정도 밖에 열려있지 않다. “ 영희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 늘 명랑하고 솔직한 영희, 오늘은 아무말 없이 얼굴을 책상 위에 박는다. 그리고 또 쿨적인다. 하경은 가만히 영희의 등을 토닥여 준다.


좀 잘 통한다 생각한대로 영희와 반장 김혁제는 사귀고 있었다. 혁제는 영희를 보호하고 영희는 그를 오빠처럼 의지하고, 가끔 만나 어른들처럼 데이트도 하고,- 이 말을 영희한테 직접 듣고 하경은 못마땅하여 눈꼬리가 찢어지도록 영희를 흘겨 봤다. -

그런데 어제, 혁제가 늦도록 붙잡고 집에 보내지를 않았다는거다. 여관업을 하는 영희네는 그 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혁제도 그런 의도를 갖고 있다는 데에 짐작이 가자 영희는 너무 화가 나고 혐오스러워 강력하게 반항했다.

어느 뒷골목 으슥하고 허름한 여관까지 끌려간 영희. 방 안으로  떠밀리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  와락 뛰쳐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곧  그 조그만 공간에 호떡집에 불 난듯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사방에서 질타하고 투덜대는 소란 속에 영희는 밖으로 줄행랑을 쳤단다. 도망쳐 한숨 돌리려는 순간에 곧바로 따라온 혁제가 “ 계집애 건방지고 재수없어 “ 하며 한 방 쳤다는 것이다. 한 방 맞은 것이 하필 눈두덩을 맞아 밤탱이처럼 부어터져 안대를 했단다. 그리고 아픈 것 보다 혁제의 무식하고 불량한 태도가 너무 실망스럽고 분해서 밤새 울었다고,

“ 야 그 자식 깡패라는 것 너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 새삼 무슨 실망?” 하경의 눈이 더욱 째지고 하얗게 흘긴다. “ 하경아, 그 오빠, 나한테 너무 잘 해줘서 그런 사실을 깜빡했어. 나한테만은 천사 같았어” “ 천사 ? 미안하지만 나 웃을께, 우하하하 “ 그러나 영희는 하경의 빈정댐을 고까워하지도 않고 또 눈물을 글썽인다.  “ 난 아버지나 오빠같은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없쟎아 ,  혁제 오빠가 내 든든한 빽이었어. 내게 다정했고 내가 해달라는 건 모두 군말없이 해 주고, 그래서 내가 철없이 너무 의지했었나 봐.” 이제 하경은 더 이상 웃지 않는다. 좀 전에 웃었던게 미안스럽다.  “ 영희야, 네 말 들으니 이해할 만 해. 그래, 그럴 수 있어. 근데 네가 어젯 밤 용감하게 박차고 뛰어나온 건 정말  잘했어. 근데. 왜 맞기만 했니? 너도 한 대 치지” 하경이 다시 도전적으로 눈을 치뜬다.  “ 왜 내가 맞기만 했겠니? 쪼인트 한 대 깟다.쎄게 쳤는지 오빠가 주저앉는 동안에 냅다 뛰어 집에 왔다.” “ 잘 했어 영희야, 영희는 용감해.”


그 날 혁제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어젯 밤 과음을 했는지, 아님 영희 보기 쪽 팔렸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안 보니 안심이다. 하경은 이상하게 영희의 보호자라도 된 것 처럼 치떨리고 어떻게 해결할 건가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 이 자식을 어떻게 엿 먹이지?


외시촌 큰 언니는 직장 때문에 서울에 가 있어 언니의 빈 방을 뒤져 본다.. 플리츠 스커트에 화려한 꽃무늬 실크 불라우스를 골라 입고 머리를  스트레이트로 풀어 내린다. 그리고 입술에 연한 색 루즈도 발라 본다.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며 등신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본다.갸름한 얼굴에 찰랑찰랑 긴 머리, 호리호리한 몸매, 성숙하고 세련되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


그리고 그가 항상 죽치고 있다는 K당구장을 찾아 간다. 정말 낯선 곳이다. 우선 담배냄새가 지독하고 흘금흘금 쳐다보는 낯선 눈길들, 그걸 감당하기 벅차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카운터 언니에게 김혁제를 찾는다고 말한다.  < 김혁제 >를 되뇌이는 눈이 어느 지점을 바라본다. 그 곳에 그가 있다. 불길하게 창백하고  하얀 얼굴, 찢어진 사나운 눈, 매부리의 코, 어깨는 딱 바라지고 다리는 땅딸막하다.  영희가 좋다는 사람, 아, 난 이해 못해, 하필 저런 놈을--

“ 여긴 웬 일이냐?”  벌써 혁제가 눈 앞에 와 있다. 혁제는 기분 나쁘게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하경의 아래 위를 훑어 본다.  “ 오빠 어디 가서 얘기 좀 할까?” 하경은 이미 후회하고 있다. 이 골치 아픈 와중에 내가 왜 드리대고 있느냐 이거다. 그러나 이왕 엎질어진 물, 앞으로 가.


하경에게 다방은 처음이다. 혁제가 앞장 서 들어 온 다방, 그는 익숙하게 턱으로 레지를 불러 차주문을 시킨다. “ 넌 뭘로 할래?” “ 응, 응 아무거나 “ 혁제는 피식 웃으며 “ 카피 둘 “ 한다. 다방 안은 낮으막한 라이트 팝이 흐르고 조용하다. 커피가 날라오고 혁제는  다리를 벌리고 등을 기대  여유부리며 앉는다. 하경도 일단 다리를 꼬아 본다. 짧막한 치마가 더욱 올라가 무릎 위 넓적 다리가 살짜기 들어난다. 하경은  손수건을 꺼내  드러난 다리 위에 살그머니 얹는다. 혁제가 또 씨익 웃는다. 하경은 품위를 지키려는 자신의 노력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순간 속이 확 뒤집힌다.

“ 난 영희의 친구얘요. 내겐 영희가 소중해요 그래서 얘기 좀 하려구요”  갑자기 튀어나온 영희라는 이름에 혁제는 뜨악한 표정이다.  “ 영희를 사랑하는 거얘요? 아니면 소유하고 싶은 거얘요?” 당돌한 질문이 혁제에겐 대답하기 너무 곤란한듯 하다. 해서 화부터 낸다. “ 야. 너 ㅈ만한 계집애가 뭘 알고 싶은데” “ 영희는 이제 겨우 15 살이야, 네가 책임질 수 있어? 영희를 유린한다면 넌 짐승이야, 그러나 기특하게도 사랑을 한다면 이래선 안 돼지. “ 하경 , 별로 맘에 외워 둔 말도 없건만 이렇게 말이 술술 나올 줄이야. 그리고 두려운 존재 혁제에게 설교조의 반말 까지.

아니나 다를까, 눈 앞이 번쩍하며 뺨을 한 대 맞는다. 눈 앞에 잔뜩 인상을 쓴  혁제 얼굴만 가득하다. “ 영희는 너를 다만 보호자나 오빠처럼 믿었단다. 그런 영희를 넌 짓밟고 싶냐? 영희의 앞 날을 네가 책임져 줄래? “ 이왕 시작한 거 하경은 나오는대로 씹어 뱉는다.빨갛게 부풀어 오르는 뺨을 한 손으로 감싸안으며 하경은 분노에 찬 눈으로 혁제를 쏘아 본다.  다방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다방 안 여왕벌 같은 마담과  레지 아가씨가  당황하며 다가온다. “ 잘 들어 둬라, 히스크립처럼 이기적이고 심술궂고 집착하면 네 인생이 다쳐!” 혁제는 하경의 손을 잡아 끌고 밖으로 나온다.

“ 나 창피해서, 이런 ㅈ만한 계집애들이 나를 우습게 보네, 너 나한테 뒤져 볼래?” 혁제는 주먹을 불끈쥐어 높이 쳐든다. 바깥의 싸늘한 바람이 하경의 얼굴에서 흥분과 열기를 거둔다

그녀는 마음의 평정을 찾아  부드럽고 침착하게 말한다.

“ 오빠, 영희의 인생도 귀중한거야. 우선 그것을 존중해 줄 때, 오빠도 인간 대접을 받는거야.”

혁제는 하경을 역겨운 표정으로 째여보다 그녀를 밀어 제치고  뒤돌아 터덜터덜 가 버린다.

거리에 하경 혼자만 남았을 때, 비로소 그녀는 정신을 차린다. 내가 뭔 짓을 한거지? 내 오지랖, 내가 감당이나 될까. 얻어맞아 화끈대는  뺨을 다시 손으로 살짝 감싼다.맞은건 억울하지 않다. 아마 내 말펀치가 그를 더욱 아프게 깟을테니.


연말이 다가오는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요란하고 각종 상점에는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과 선물용 상품, 그리고 반짝이로 치장한 예쁜 카드들이 눈과 귀를 유혹한다. 기말고사도 끝났겠다, 짝패들은 다시 읍내 번화가로 나와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각자 누군가를 머릿 속에 그리며 팬시 상품울 만자작거리고 또는 문방구에 들어가 여러가지로 반짝이는 카드를 고르기도 한다. 대개는 가벼운 학생들의 주머니를 감안한 조악하고 값싼 물건들이지만 어린 소녀들의 부푼 가슴을 들썩이게 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한참을 쏘다닌 짝패들은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픈데, 시장통 안 만두집의 유혹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출입구 앞 거리에 커다란 찜가마솥을 놓고 언제나 김을 폴폴 풍기며 만두나 찐방을 푸짐하게 만들어 수북하게 쌓아 놓은 그 집을 참새가 방아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듯이  우르르 들어간다.

꼬질꼬질한 테이블이 몇 개 놓인 가게안에선 시큼한 빙초산식초 냄새가 배어 있다. “ 아줌마 빵하구 만두 10 인분 주세요.” 식욕 왕성한 정옥순이 거의 두 배를 주문한다.” 난 일인분만 먹고 일인분 값만 낼꺼야. 소심쟁이 순애, 미리 못 박는다. “ 걱정 마 모자라는 몫은 내가 내 주마” 역시 통 큰 이광순 여유 부린다. 찐빵과 만두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들은 간장에 식초를 타서 와리바시로 콕콕 찍어먹거나, 단무지를 아삭아삭 씹어대며 느려터진 아줌마의 넓은 등짝에 눈총을 쏘아댄다.

“ 우리 이번 크리스마스 올라이트하자. “ 점순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꺼낸다. “ 올라이트가 뭐야?” 서울 촌놈 하경은 어리둥절 한다. “ 남자 여자 아이들 모여 밤새도록 노는거다. “ 뭘 하고 놀지?  어디에서 ? 아직 알고 싶은게 많은 하경을 앞지르며,  순애가 김을 뺀다.” 난 교회 학생회서 밤샘하기로 했어. 새벽에는 새벽송도 나가야 되고.” 이어 영희가 시큰둥하게 말한다. “ 난 싫다 , 우린 아직 어리쟎니? 좀 더 자란 후에 근사하게 놀자” 부정적 반응에  분위기는 급속도로 식어가고 날라온 만두, 빵들만 우걱우걱 먹는다.


모두 뿔뿔이 헤어지고 영희와 둘이서만 집으로 향하는 길, 하경이 영희의 눈치를 보며 슬쩍 묻는다.

“ 혁제 오빠랑 크리스마스  약속 있는거야”  영희는 쓸쓸하게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리고

“ 혁제 오빠, 다음 주 화요일에 군 입대한대.” 힘없이 말한다. 하경이 화다닥 놀라며 “ 그럼 너넨 이젠 끝난거네 ,  잘 됐네.” 과장되게 톤을 높여 말하며 신중하게 영희를 본다.

“ 몰르지, 지는 군대가서 좀 더 쓸모있는 인간이 되가지고 올테니 나더러 얌전히 기다리랜다.”

하며 영희는 피시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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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에 모인 학급 아이들은 키가 좀 더 자라고 햇볕에 그을려 검으스럼한 건강한 모습들이다. 반갑기 이를데 없어 서로 그 동안의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 이번 학기에 새 선생님이 오신다더라” 소식통 영희의 말이다. “ 무슨 과목?”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 미술과 음악을 담당한대.”  “ 미술과 음악을 한 사람이 한다구? “

“ 서울대 미대 아직 학생인데 일주일에 하루, 강사로 수업해 준다나 봐” 꽤 자세한 정보다. “ 넌 어떻게 그리도 잘 안다니?” 하경이 묻자 영희는 생글거리며 말한다. “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지난 주말 우리 집서 회식했잖니? 심부름 하면서 줏어 들었지.”

우리 반 특히 여자아이들은 서울대학교에, 미술 전공인, 그리고 아직 재학 중이라는 핸섬한 젊은 선생을 상상하며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과연 그는 우리 반 반장 김혁제와 비슷해 보일 만큼  젊다못해 어려 보였다. 짙은 눈섭에 두툼한 입술,약간 그을린 피부가 야성스럽다. 흠이라면 키가 평균치를 넘을까 말까 , 바지 입은 다리가 짧막해 보인다는 것이다. 숱 많고 뻣뻣한 머리털이 밤송이처럼 곤두서 있어 빗자루 선생이란 별명이 금새 붙었다.

그에게는 사회생활 첫 번 째 직업이어서 그런지  교재연구를 꼼꼼이 하여 알차고 열성적인 수업이다 . 해서   졸거나 한눈 파는 학생이 없고 평판이 좋다. 구닥다리에 후줄근한 대다수 선생님에 비하여 신선하고 생기 넘치고 또 교과서에 없는 새로운 노래도 가르쳐 주었다.

< 산 좋고 물 좋은 우리의 나라

 봄 여룸 가을 겨울 살기도 좋다

조상이 대대로 물리워 주신

이 논과 이 밭을 누구가 지을까

부지런 부지런 갈고 닦으면

해마다 가득히 거두어 보세

해마다 가득히 거두워 보세 >

빗자루 선생의 약간 허스키한 바리톤 목소리는 힘차고 매력있다.


아이들은 방학 동안 집 안에 갇혀 지낸 것에 보상이나 하듯 방과 후에는 떼를 지어 돌아 다녔다. 앞장 서는 건 이점순이었다. 점순이는 좁은 바닥 ㅇ 읍 내 학생들 일이라면 뭐든지 빠삭했다. 소문을 실어 나르기 보다는 걔 스스로가 소문의 중심이었고 항상 바람을 몰고 다니는 아이였다.믿거나 말거나 들리는 말로는 따라다니는 남학생들이 그렇게 많고 점순에게 간택 당하지 못해 그렇게 안달들이라는 것이다. 점순이는 비쩍 마른 몸매에 길고 가느다란 와리바시  다리다. 매력 포인트는  헷라이트처럼  큰 눈에 숱 많고 길다란 속눈섭이 낙타의 눈 같다 할까.. 그런데 그 예쁜 눈은 늘 텅빈듯 졸리운듯 힘이 없어 영양실조같고 당연히 성적도 중하위였다.그런 점순이가 학교 밖으로만 나가면 꿩처럼 날래고 고양이 눈처럼 광채가 났다. ‘ 말만 해, 원하는 대로 소개해 줄께, 잘 생긴 애? 공부 잘 하는 애? 잘 노는 애? ‘ 하며 중매장이를 자처했다.해서 이런저런 이유나 핑게를 대며 우리 짝패들은 읍내 극장이나 숲 속 공터, 또는 중국빵 집에 들어가 공갈빵을 땅땅 터트려 먹고 웃으며 잡담을 하며 그렇게 소일했다. 단골 메뉴는 선생들 골려 먹은 얘기, 그 중에도 빗자루 선생.

하루는 조숙한 영희가 빗자루 선생에게 물었다.

“ 선생님, 에로의 뜻이 뭐얘요? “ “ 음, 애로란--- ‘어렵고 힘든 ‘ 이런 뜻? “

“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에로 잡지, 에로 영화 에로 사진, 뭐 이런 말 많잖아요? 그게 힘 들다는 뜻인가요?”

영희는 아주 천진하고 진지한 얼굴로 빗자루를 말끄럼이 보며 되묻는다. “ 글쎄다 , 그건 그건,”  귓바퀴까지 새빨개져서 허둥허둥하는 빗자루를 얘기하며 짝패들은 허리를 잡고 웃는다.


하경이 집에 돌아와 방에서 수학 정석울 풀고 있는데 외삼촌이 전화가 왔다고 알려 주신다. 누굴까, 의아하며 전화를 받으니 뜻밖에도 빗자루 선생. 근처 제과점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는 얘기다. 하경은 무슨 급한 일일까 걱정하며 두말 없이 달려 간다. 빗자루 선생은 어깨에 금빛 열쇠 로고가 새겨진 서울대 교복을 입고 자못 심각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그는 다가온 종업원에게 일방적으로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주문한 아이스크림이 테이블 위에 날라왔는데도 그는 말이 없다. “ 선생님 무슨 일이 있어서 예까지 오셨나요? 어서 말씀 하세요.”

구슬프고 끈적끈적 늘어지는 < 타프 > 일명 과부들의 행진 멜로디가 그들의 사이를 가로지르고, 아이스크림은 하염없이 녹는다. “ 저 늦으면 혼나요, 일어날께요” 하경이 참다못해 일어서자 “ 잠간만 “ 하며 메모지를 꺼내 글을 쓴다. 쪽지를 받으며 하경은 “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치렀지만 해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당연히 하경 , 방에 들어서자 쪽지를 펼쳐 본다 < 처음부터 마음이 끌렸고 지금도 그립고 앞으로도 사랑한다, 하경,너의 미소가 예뻐. > 하경은 얼굴이 화끈하고 심장이 터질듯 세차게 고동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육친이 아닌 남자로 부터의 러브레터, 아니 쪽지라도 하경의 마음이 소스라쳐 두근거리는 것, 난생 처음 겪는 느낌이다.  하경이  늦도록 잠 못 이룬 밤이었다.


시월 초순이다. 늦더위도 이제 더 이상 심술을 단념하고 더없이 푸르고 상쾌한 날, 우리 짝패들은 산 위로 오른다. 낮으막한 산 정상에 우리들의 친숙한 자리 , 정말 신기하게도 널찍한 바위에 덧대어 등받이 까지, 영락없는 카우치와 같은 큰 바위가 있다. 옆으로는 풀더미로 덮혀 숨은 듯 고요히 머무는 옹달샘 하나, 낮에는 햇살을, 밤에는 별빛을, 품고 때로는 개구리가 헤엄치고 소금쟁이가 스치듯 물위를 건너지르는 작은 옹달샘. 하경과 친구들은 날씨 좋은 날은 그 곳에 올라 수업 시간 중 미쳐 못한 필기를 베끼기도 하고 숙제를 하기도 하고, 또 잡담도 한다. 그 날은 주위에 지천인 어린 밤나무에서 밤송이를 따 꼬챙이로 아기 손가락 같은  풋밤을 꺼내어 오드득 맛을 본다.   풋밤은 어금니 사이로 깨물면 먼저 향긋한 풋내에 연하디 연한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영글은 아람밤 보다 더  맛 있다. 밤 까기는 먹는 만큼 잔손질 노동력도 필요한지라 지치고 싫증앙다. 우리들은 손깍지를 머리 뒤로 받치고 베이비불루의 티없는 하늘을 본다.

“ 야 빗자루 선생 또라이 아냐? “ 영희가 느닷없이 입을 뗀다. “ 자꾸 우리 집에 찾아오고 나더러 만나자고 한다” “ 엄마는 선생님이라고 극진히 대하는데 나는 창피해 죽겠어”  하경은 피가 아래로 쑤욱 내려가는 듯 얼굴이 하얘진다.뚱하니 있던 점순이가 씹어 뱉듯이 “ 나쁜 자식”  소리친다. “ 어머, 너한테도?” “  철면피 낯가죽으로 한 반 여러 여자애들한테 문어발 축축한 촉수를 드리대다니 철면피, 문어발  .

“ 참 나쁜 놈! “영희와 점순 하경이 동시에 합창하듯 외친다.


오늘  금요일, 빗자루 선생의 수업 날이다. ‘ 어디 낯짝을 보자’ 하경은 입술을 깨문다.

하지만 그는 결근이고 수업은 자습으로 떼운다. 웬일이지? 묻는 하경에게 영희가 눈을 꿈적하며 “ 보고 싶으면 ㅇ 시립병원에 가 봐라.” “ 왜, 무슨 일이래?” 묻는 하경에게 “ 난도 모르지, 지난 밤 어두운 골목 길에서 깡패들에게 죽도록 얻어 맞았다더라. 아마 학교 이제 쫑일걸.”

그 따위 놈한테 내 첫 번 째 떨림으로 밤잠을 설치다니, 치떨리는

부끄러움과 모욕감으로 하경은 잠시 뇌 속 이성을 자랑하는 전두엽 영역이 혼돈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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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여름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돌아온 딸에게 온갖 좋고 맛있는 음식을  주며 건강 챙기려 즐거운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둘째 오빠는  다른 의견을  놓았다. “ 어머니하경에게는바닷가에서 밝은 햇볕과 신선한 공기가 아주 필요해요휴양삼아  일주일 제가 데리고 다녀 오려구요. “ y 이학년에 재학중인 오빠는 친구  명과 서해바다 무인도로 캠핑을 가기로 했다.  거기에   약골 누이를 데려가 단련시키고 싶은 것이다하경은 물론 대찬성에 엄마 아빠에게 졸라대었다. “ 오빠 쫒아가서  놀다 올께요 바다  번도  봤는데 엄마 얼마나 좋은 기회야 건강해져서 올께요아빠 허락해 주세요 “ 하경은 아버지에게 간청할 일이 있을  < 아빠 >라는 호칭이 얼마나 효과 만점인지 알고 있다.  역시나 아버지는 ‘ 으흠 으흠   하시다 ” 하경이 무리하지 않게  돌봐줘야 한다.”하며 오빠에게 듬뿍 용돈을 얹어 주셨다.

오빠의 일행은 이랬다오빠 포함 남자 5    모르겠는 여대생  2  그리고 하경 까지   8 명이다 충남 당진에서  예약해둔 배를 타고  무우도를 향해 갔다별로 멀지는 않은 거리이지만  배를 개인적으로 예약해야 하고 교통이 불편하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이다  절이 있어 소나무도 울창하고  샘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이다바다를 처음 보는 하경은 그대로 매혹되어 새 세상에  벅찬 가슴이다뒤로는 솔숲을  하얀 모래사장에  물결이 사르르 다가와  찰싹이는 해변가.

오후  도착한  젊은이들은 큼직한 대형 텐트와 여성용  텐트부터 세웠다 . 그리고 이어 민생고 해결을 부르짖으며 서둘러  저녁식사를  준비했다버너에 불을 피우고  코펠에 밥을 넉넉히 하고 다른 코펠에는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감자와 양파를 썰어 넣고 꽁치 통조림을 쏟아 부어 보글보글 끓여  가지 밑반찬과 함께 차린 밥상 , 시장했던 참에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밥맛이란---  ! 세상에 이렇게 꿀맛일 줄이야.

다음  아침, E  국문과 재학중이라는 수정 언니가 일찍  일어나 하경을 깨운다.” 우리  따러 가자.” 양재기와 작은  과도칼을 들고 해변으로 나오니아직 해는  속에 잠긴 수박  같이 발그스럼한 구름이 뭉게지는 하늘 아래 잿빛 바다는 조용히 출렁인다소금냄새해초냄새  옥시즘 가득한 신선한 바닷 바람하경은 깊은 숨을 들여 마시며 경이에 가득찬 눈으로 사면을 두리번거린다수정 언니를 따라 해변에서  떨어진 섬그늘 쪽으로  가니  곳은 바위들이 층층히 들어서고  바위 사이사이 맑은 바닷물이 고여있다그리고 바위에 지천으로 붙어있는  딱지들. “ 굴은 이렇게 따는거란다 “  수경언니는 익숙하게  칼로  입을 찾아 야무지게 들어 올린다껍질이 올려지며 움찔 들어나는 굴의 속살그걸  칼로 잽싸게 도려 낸다. “ 하나 먹어 봐라아주 싱싱하고  향긋하다. “ 언니는  알맹이를 하경의 입에 넣어준다생것을 먹어보지 않은 하경은 얼굴을 찡그리며 거부의 몸짓을 보였지만 벌써  안에는 굴이 씹히고 있다. “ 언니 신기해요비린  알았는데 과일 냄새가 나요. “ 하경은 평소 비린     등에 심한 거부감이 있어 먹지 않았는데 갓 딴 생굴은  짭조롬하면서 싱싱한 과일이나 채소의 미감이다뒤를 이어 다른 일행들 나오고 모두는 해가 활짝 올라오도록 열심히 굴을 따 양재기에 담았다.모두 모으니  많다.

 아침 식사는 각기 그릇에 밥을 담아 생굴 듬뿍고추장  숟깔참기름  방울 , 그리고 비벼 비벼 해서 열무김치와 먹으니 ‘  이것도 꿀맛이네

 

해가 높이 떠오르고 차츰 열기가 모래를 뜨겁게 달굴 친절한 수정 언니는 하경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겠다고 물로 이끈다모래사장에 찰싹이는 물은 별로 차지도 않고 그리고 깊지도 않고  스르르 밀려오는 파도  따라 움직이지 않고는 견딜  없는 들뜨는 마음이.물결이 밀려  때마다 함께 폴짝 폴짝 뛰어오르던 하경에게 수정언니는  손을 잡아 준다. “ 물에 몸을 맡기고 가볍게 몸을  위에 떠봐라.”  하경은 발바닥이 바닥에 닫지 않으면 불안해서 자지러지는데 수정언니는 하경을  깊은 곳까지 끌고 가서  위에 띄운다.

언니 무서워  놓지 마요.    언니 언니    나갈래,  언니 속에 박은 머리를  밖으로  놓을 수가 없어요.

 하경의 죽을  같은 비명 소리가  가라앉으며 손발을 허우적 대는 단계 까지 사흘이 걸렸다이제   드러낸 얼굴에 푸푸 물을 뿜어내며 허부적대는 개헤엄은 치게 되었다수정 언니는 아직 만족하지 않고 하경에게 물에 떠서 반듯하게 누워보라고 했다. “ 어떻게  위에 누울 수가 있어요언니  못해” 하지만 수정언니는 너무 익숙하게 찰랑이는 파도에 몸을 뉘어 한가롭게 하늘 뭉게구름을 즐긴다하경도   여유진 모습이  부러워져 코를 붙잡고 물위에 과감하게 누워본다.어이구, 그냥  속으로 가라앉는다. “ 몸에서 힘을 빼는거다그냥 물에 몸을 맡기는거야네가   없어  빼고  눕기만 .”  뭔가를 완전 믿으며 나를 뭔가에 그대로 맡긴다는 ,과연 되기나 할까? 처음 시작은 스스로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무척 힘들다그러나 자신의 의지를 빼고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기고 나니처음에는 물에 가라 앉던것이  ! 드디어 몸이 물위로 솟구친다. “ 하하물의 부력이 너를 받쳐주는 거야.” 오빠가 가까이 오며 기분 좋게  웃는다.” 오빠  드디어 수영 배웠어 자신 있어.” 하경은 뽐내며 오빠 앞에서 보란듯 손발을 허우적대며 개헤엄을  본다. “ 팔을 넓게 펼쳐 우아하게 물을 뒤로 제치고 발은 개구리처럼 힘차게 물을 걷어 차내는거야”  “ 하경이가 여간 열심히 하는게 아냐균형감각도 좋고” 수정언니도 하경을 칭찬한다, “ 정말 고마워요수정씨덕분에 하경이 수영 배웠어요    낼께요”  오빠는 유쾌하게 말한다.

오빠들은  별로 재미없다 줄을 모른.아니면 완벽하게 휴식을 즐기는지도 모른다수정 말고   언니그녀 이름은 미연이라 했던가. –

연인 따라   맞다둘이는 언제나 붙어 다니며 속살속살 세상 사물은 관심 끄고  둘이만 있는  행복해 보인다그리고 단짝이  수정언니와 하경은 바닷가를 헤집으며신기한 것들을 들쑤셔 보느라 흥미진진이다.

소라고동을 잡고 게를 잡고, 또 남의 빈집을 들러쓰고 겅중겅중 뛰다니는 집게를 보며 소리내어 웃는다.

허나 나머지 4 명의  남자들은  그런거  아랑곳 없이 느러져서 잠만 잔다.늦잠자고 낮잠자


 점심 먹고 또 오후 잠, 앞으로 부족할   번에 보충할 셈인지 자고 자고  잔다먹고 자고 조금 놀다  자고때로는 낚시를 한다 , 일주를 한다답사를 한다 하며 부스럭대지만 별 소득없이   잔다신통치 않은 솜씨로 기타 치거나  포타블 야외전축에 페티페이지나 비틀즈또는 드물게 클레식 음반을 올려 놓고 음악을 듣지만 대개 그건 잠을 청하기 위한 설정일 뿐이다.  하루  유일한 오락이며 취미는  해가 수평선으로 꼴딱 넘어가는 시간을 기다려 위티를    마시는거다따끈한 물- 식수는 무조건 끓여 먹었다-에 인스턴트 홍차 가루를 타서 잔에 3/2  따르고 위스키를3/1 따라서 마시는 고상한 칵테일 솜씨를 발휘하는건 역시 다재다능 수정 언니다물론 하경에게는  설탕 듬뿍 넣은 순수홍차    뿐이지만하루 공식 일정 그것으로 끝인데  오빠들은 뒤로 돌아앉아 조금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한다던지    세련되지도 않은 목소리로 서투른 키타반주에 맞춰 이태리 가곡을 흉내낸다 솔레미오 여자의 마음나포리 등. ‘아이구 저것도 낭만이라구 흥 흥,지들이 공부 말고 뭘 더 알겠어 꼴쌘님, 쪼다들 ! 어-쨋던  귀여운 자장가 정도로 들어 주지’ 감히  발칙한 하경,주변머리 없는 오빠들을 너그럽게 이해하자  한종일 수영과 놀이로 고단한 심신이 파도 소리에 스믈스믈 풀어진다

 여하튼 개성 강하지만 서로 인정하고  뭉치는  특이한 8 명의 조합체는 알차고 유쾌한 일주일 간의 바캉스를  지냈고, 모두 검게 탄 얼굴에 등짝에는 감자껍질이 술술 벗겨지는 멋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경의  2 여름방학은  없이 유익하고 인상 깊은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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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다음 주로 다가왔다.  4교시 물상시간선생님은 시험문제 정리해 주시느라 열강인데 학급 아이들은 거의가  꿈나라로 왔다갔다 하며 눈들이 풀렷다일이등을 다투는 이원호와 손영란그리고 언제나 정자세인 박정호는  빼고 하경의 책상으로 쪽지가 살짝 밀려 온다 ‘ 쟤들은 사람도 아냐로봇이다’ 영희가 장난스레 윙크한다정말 이렇게 싱그럽고 아름다운 초여름어떻게 공부에만  집중할  있단 말인가활짝 열린 창문으로 살몃살몃 불어드는 바람에는 수목과 야생화로 조합된 그윽한숲 냄새 마치 수면제 성분이 듬뿍 들어 있는듯 사정없이  속으로 끌어들이고거기에 심상한 뻐꾸기의 리듬 타는 노랫소리는 자장가마냥 아득한  속으로 또한 사정없이끌어들인다하경도 현실과   중간 쯤에서 선생님의 지루한 말씀보다는 바람과 뻐꾸기의 화답하는 소리후덥지근한 교실 안의 공기 속에서 나른한 충일감에 잠겨든다시간은 느릿느릿 한여름 땡볕에 엿가락처럼 늘어난.

드디어 끝종, 아이들은 소스라치듯 졸음에서 깨어나며 선생님도 서둘러 출석부 챙겨 나가신 교실 안,  다시 생기가 돈다. ‘ 점심시간  먹자’ ‘아주 노래를 불러라. ‘ ‘ 우리 나가서  먹자. ‘ 조오치,날씨되지기분되지 김밥 싸왔다는거 아냐’ 왁자지껄 , 끼리끼리 도시락 주머니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 우리 백자광산으로 가자거기 되게 시원하고 조용하고 좋잖아" " 그래 ,가자’ 

교사 후면 산골짜기로 들어서면  가느다란 산길이 있고 조금  들어가노라면 일제시대 때  백토를 파다 도자기를 굽던  동굴이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거긴 학생 출입금지구역이쟎아’ 평소 소심쟁이 순애가  마디   수가 없다. ‘ 까잇것 괜찮아 잠간 밥만 먹고 오는건데광순이가  소리치고 ‘ 거기  안에 샘물이 아주 시원하고 달다하며 옥순이가 하경에게 설명해 준다

 과연  곳은 우묵하게 그늘지고   샘에서 흐르는 맑고 차가운 실개천이 졸졸 흐르고 있다. ‘ 어머어쩜 이런 멋진데가 있니여기 산신령님 사시는  아닌가.’하경이 신기해서 중얼거리니 “ 신령님 우리 잠깐  먹으러 왔습니다허락해 주세요하고 영희가 동굴 속에 대고 장난스레 외쳤다그러자 마치동굴 속에서 대답하듯 웅웅대는 메아리가 울려 모두들 깔깔 웃어댄다 먹는 순간은 조용하다배도 고플 때였고 하나 밖에 없는  입은 우선 먹는 일에 분주했으니옥순이가 제일 먼저 도시락을 비우고  안으로 들어가 깨끗이 씻어낸  도시락에 맑은 물을 가득  왔다. " 아, 시원하고 맛있다."돌아가며  모금  마신  다시 얘기가 쏟아진다.

“ 얘들아너네들 김금지라고 알지? “  “ 우리 국민학교  반장 하던 ,” “ 걔가 어쨋는데?”너네들 모르는구나   4.19일어났잖어  걔가 학교에서 돌아오다 총을 맞았다는구나많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정신이상이 되서 정신병원으로 갔대 “ 아니그거 확실해진짜 그래읍내 ㅇ초등학교 졸업한 아이들이 질색하며 합창하듯 물어댄다. “ 그럼 , 우리 엄마가 금지네 동네 사는 친구가 있어 소문이  났대. “ 옥순이는 정색하며 대답하고 아이들은 숙연해진다.” 금지가 어떤 앤데?”하경의 묻는 말에 남미가 말한다. “ 금지는 이름처럼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맘씨도 아주 착했단다. “ " 그리고 4 학년 때부터 도맡아 반장을 했지. “ 공부 잘하니까 당연히 서울 유명한 ㅅ여중에 들어갔어.” ㅇ 초등 동창들이 돌아가며 설명한다.

 ‘ 그 학교는 경복궁  근처에 있어 아마도 그럴  있겠다’ 하경도   여중에서  사건을 겪었다.” 도대체 대통령이 뭔데 학생들이 데모 한다  총으로 학생들을 쏴서 죽게 만든다니평소 단세포 영희답지 않게 흥분하여 말한다. " 음, 김주열 학생 눈에 최루탄 맞아 죽어 바다에서 건진 사진 보았니? 그걸 보고 고등 학생들이 더욱 분개해서 사태가 커졌다는구나"" 4.19 데모가 뭔데" 남미가 촌닭스럽게 눈을 꿈적이며 묻는다. “  승만 대통령이 너무 오래 통치를 하고도   대통령직을 연장하려고 부정선거를 했쟎니역시 부반장 손영란이 조금 안다는듯 차근차근 얘기를  준다이어서 아이들은 3.15 부정 선거에서 듣고 보아온 추접스런 얘기들을 침을 튀기며 중구난방하는데  하경이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난 4.19 데모하는 거 직접 봤다 다니던 학교가 경무대 근처거던수업하는데 갑자기 담 밖에서 총소리가 탕탕 나며 흰 샤쓰에 검은 바지 입은 대학생들이 한 떼거리 담을 넘어 들어오는거야. 곧  비상종이 울려고 수업 중단한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갔단다금새 담임이 들어왔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거야아이들을 교실에서 꼼짝 못하게 하고 화장실도    조를 짜서 보내고 집에도  보내 주는거야.정말 우린 전쟁난  알고 얼마나 겁나고 무서웠는지 몰라 다행히 오빠가 근처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오빠가  데릴러 왔어. 오빠 따라 학교 밖에 나오니 밖은 완전 살벌하게 바뀌었더라.행인도 없고 트럭이나 버스에는 이마에 흰띠를 두른 청년들이 마구 뭐라 외치며 지나가고 ‘  아마 이승만 하야하라’ 하던가 군가 같은 것도 부르고 ,  뒤론 군대 차가쫒아가며 총을 쏘아대고   금지 같은 죄없는 행인이 다치기도 했을거야서울 신문사가 대낮에 불이 나서 활활 타오르고정말정말 무서웠어버스도 전차도 끊어졌으니 오빠는  손을  붙잡고 뒷길로 골목길로만 해서 용산 우리집 까지 걸어갔단다. " 아이들은 팔에 오소소 소름이 끼치고  공포스런 얼굴로 심각한 모습이.

갑자기 영희가  “ 아니 사람 냄새” 화들짝 놀라며  쪽을 본다연기가 뭉실뭉실 흐르며  뒤로 김혁제가 담배를 비스듬히 꼬나문채 슬슬 다가 온다.”  니들점심시간 끝나고 5교시 수업이야여태 뭐하고 있는거야” 날카로운 뱁새눈을 치뜨며 낮으막한 소리로 으르렁거린다. “ 아이 오빠 얘기가 길어졌어  번만 봐주세요.” 영희가 생글거리며 앞장 서고 다른 아이들도 오빠,오빠하며 애교스럽게 웃으니 혁제도 어쩔수 없다는  피식 웃으며 “ 어서들 뛰엇하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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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먼저 < 제 13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 > 부터 구입하여 읽는다. 역시 내 선택에 만족이다. 내 - 주관적- 눈높이에 맞는 작품들이 선정되었다는게 맘에 든다.나는 새 책을 사면, 특히 문학서적은 맛나는 음식을 천천히 아껴가며 먹듯 음미하며 야곰야곰 읽는다.지금, 그렇게 읽는 중이다.그런데 읽는 중에 미리 리뷰를 쓰는 이유는 하나의 단편소설이 내게 너무 벅찬 감동을 주어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의 설레임 때문이다. 

내 근래에 한국 작품을 읽으며 이렇게 벅찬 감동은 얼마만이냐. 


작가  조해진   < 빛의 호위 >

사실 제목은 평범하고 진부하기 까지 하다. 도입부도 애매하고 몽롱한 사유 부터이므로 조금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일인칭 화자가 직업상 인터뷰를 위해 한 젊은 사진작가 권은을 만나면서구체성은 드러난다. 수수께끼 같은 편린들의 짧은 말들.사진에 빠지게 된 계기, '태엽이 멈추면 멜로디도 끝나고 눈도 그치겠죠' 두 번 째 만남에서 헬게 한센의 다큐 < 사람, 사람들 >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쟁에 직접 파괴된 잔해들 보다 죽은 연인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젊은 여성의 젖은 눈동자같은 데서의 전쟁의 상흔을 얘기한다. 그리고  노먼과 그의 어머니, 알마 마이어에게서 깊은 공감을 느끼는 권은을 보지만 아직 그녀와의 연관성을 깨닫지 못한다.정말 감동 넘치는 알마 마이어의 이야기,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 가장 위대한 일이라며 권은은 너는 이미 한 사람을 살렸다고 말한다.그로 인해 그는 먼 어린 시절  지독히도 외롭고 가난했던한  소녀를 떠 올리게 되고 .그리고 그 녀로 인하여 새 세상으로  열리는 새로운 시각.

알마 마이어의 말 - 인용문 -

- 사람들이 노먼을 시대의 양심이니 유대인의 마지막 희망이니 하는 수식어로 포장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어요.그런 거창한 수식어 뒤에 숨어 있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정의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건,뭐랄까, 나에겐 천진한 기만같아 보였죠.알려 했다면 알았을 것들을 모른 척 해놓고 나중에야 자신은 몰랐으므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에요.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홀로코스트의 잔인함에 양심적으로 경악하던 그 수 많은 비유대인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어요. 화가 나진 않았어요.그 때나 지금이나 그저 무기력해졌을 뿐이에요.무기력한 환멸 같은거,그런 거였죠.


문장은 유려하고 기품이 있으며 구성도 훌륭하다. 나는 이 훌륭한 작품이 왜 최고 수상작에 선정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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