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따라 명수씨는 많이 피곤했다. 길고 긴 하루 Long day !.


M & A (mergers and acquisttions  인수합병 )의 기업 하이에나들 뒷치닥거리나 하는 자신의 업무에 완전 토할 것 같은 자괴감을 느낀 오늘이었다.  다른 분야로 옮겨 버릴까?  벌써 몇 번이나 갈등했던 화두, 그러나 오늘도 명쾌한 답이 나올 리 만무다. 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돈이 얼마나인데. M&A에서의 큰 돈의 흐름은여느 다른 분야 업무와는 쨉이 안 된다


그런데 이 기업사냥군들의 술수는 너무 냉혹하고  비열하다. 지지부진 경영이 어려운 유서깊은 기업을 헐값에 사들인다. 그리고 재정비한답시고 오랜 세월 일해온  고임금 기능직과 임원들을 차례차례 해고한다.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생산라인을 자동기계화 시스팀으로 바꾸고, 단순부품들은 해외 값싼 인력으로 돌리는  일도 허다하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해고된 사람들의 절망이나 비애,생산품의 질적 저하,나아가  미국의 경제를 침체시키고 ,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이 놈들-- 을 위해 그 더러운 똥구멍이나 닦아주는 자신의 처지가 몹시 환멸이다. 민주주의 시장 자유 경쟁의 모순.

오늘 그런 와중에 해고된 고참 임 원과의 면담은 명수씨의 변호사로서 자부심과 양식이

별볼일 없이 초라하기만 했다.

그는 36 년 간 James Inc  가구 회사에서 일하던 고참 디자이너이고 제작자이다.미국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제임스 가구 회사도 3 대 업주로 경영이 바뀐 뒤로 곤두박질치듯

운영난이 심각해 졌다. 문을 닫고 간판을 내리느니 보다 헐값에라도 팔아 돈을 챙기려는

허약하고 약삭빠른 삼세대 사업주에 의해 침을 흘리며 눈독 들이던 명수씨 소속 인수합병 회사가 삼켜 버렸다. James Inc는 특히 백 년 의 긴 전통 속에 미국인들에 널리 알려진 명품 가구 회사였다. 인수 후 판촉에 온갖 방법을 써서 외형 주가를 단단히 올린 뒤 몇 배의 가격 으로 되팔아 먹는 다는 M$A의  야심을 명수씨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그리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태국에 부품 공장을 짓고 있는 것도 명수씨는 알고 있다.

James Inc 회사의 고참 간부이고 가구 제조 최고의 경력자인 그는

마지막 페이롤  체크를 받고 싸인을 한 후  씁쓸하게 말한다.

“ 나는 똑똑히 기억해요. 창업주였던 미스터 제임스가 자기의 첫 손자 윌리엄이 네 살이 되자

공장에 데려와 무등을 태우고 두루 보이며 ‘ 이건 너의 것이니 영원히 지키고 번영시키라’ 자랑스럽게 말했죠. 근데 미스터 윌리엄이 맡은지 십 년이 채 안되어 조부의 회사를 말아 먹는군요 “





그러나 명수씨 ,오늘 그녀를 단 둘이서 만난다.  카니를 생각하며  기분을 바꿔 봐.

과연  그들은 약속한대로 약속한 시간,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감미로운 멜로디가 오월의 훈풍처럼  가볍게 스치는 레스토랑 , 조용 하고 우아하게 담소하며 식사하는 사람들, 그들 속에서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카니 박을 보며

명수씨는  깜짝 놀란다. 나, 헐리웃 여배우 만나는 것 아닌가.

카니는 완전 다른 사람 모습으로 다가왔다.반백의 머리를 이마 위로 살짝 세워 마치 여왕의 왕관처럼 품위 있고 , 가슴골이 깊게 패인 감색  드레스, 깊고 그윽한  눈으로 정성들여 매만진  스모키 화장, 그리고 그 지옥불을 품은 듯  붉은 입술, 위엄과 열정이 이렇게 어울려 여전사의 두목, 전설시대 여왕, 그러면서 동시에 주술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마녀의 유혹, ‘ 도대체 넌 누구냐.’

“ 와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저쪽 바bar로 갈까요? 거기도 가벼운 식사쯤은  할 수 있고 , 난 식사보다 술 한 잔이 더 땡기는군요”


넓은 레스토랑에서 카니는 익 숙하게 한 쪽으로 칸을 막은 조용한 바 쪽으로 인도한다.

명수씨는 카니의 뒤를 따라 의식없는 점비처럼 뒤 따르고. 자리를 잡고 앉은 후에도 멍하니 그 녀를 바라 본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지? 분간이 안 가는 어리둥절한 표정.

“ 나, 낯 익지 않나요?” 자리를 잡고 난 후에도 멍한 그를 보며 카니 , 장난치듯 생글거리며 묻는다.

“ 아니요, 카니, 당신은  특히 오늘,  전혀 낯설어요 당신은 누구지요?”

까드득  웃으며 카니 손짓으로 웨이터를 부른다.

카니가 주문한  커스모폴리탄, 명수씨를 위한 더리  마티니 칵테일과

풀리쳐와 나쵸, 그리고 로디스 후라이 등의 안주깜이 차려진다.


이윽고 현실을 깨닫는  명수씨, 긴장하며

“ 자, 이제 본론을 얘기할까요? 내게 할 얘기가 무엇이지요? “

직업 본능의 침착과 냉정 , 또 객관적 자세를 지키려 애 쓰며 말한다.

이미 커스모폴리탄 칵테일을 한 모금 털어 넣어  볼이 발그레해진 카니, 먼 눈으로 미지의 어느 때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묻는다.

“ < 오목이 >를 아시냐구요? “

오목이? 가 누구야, 갑자기 , 나 모르는데.

점심도 거른 빈 위 속,마티니  한 잔에 짜르르 풀어지는 명수씨,

마법처럼 다가오는 기억의 어두운 터널 저 편, 흑백영화 같은  영상. 그 당시 .


명수씨네는 어느 소읍 , 그래도 번화하다는 중앙로에 살았다. 아버지가 고급 장교였으므 로 아버지 임지 따라 새로 이사 온 곳이었다. 소년 명수는 이사에 이골이 났고

이리저리 빈번한 전학으로 인해   뿌리 내리지 못하는 부평초처럼 학교에 안착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소년 명수는 그 때

고 딩  깡패였다. 학교에는 안 가고 읍내를 빈둥거리며 쏘다니고 쫄갱이 중학생에게 삥쳐서 담배도 사고 중국집 자장면도 사 먹고 공원가서 낮잠이나 자다,하교 시간 맞추어 집에 들어가면 하루가 땡처리되던 그  때 그 나날. 똥은 똥대로 모인다고 그렇고 그런 애들이 명수 씨 근처에 모이게 되었고 그들과 어울려 떠돌던  무심했던 어느 날 ,

아이 들의 흰소리와 잡담이 귀에 꽂쳤다. < 오목이  > 그 애는 말하자면 동네에서 누구나 건드리고 간다고 소문이 난  가난하고 외로운 어린 여자애 였다.

“ 그 기집애네는 낮에 아무도 없어서 아무나 드나든데 “




명수도 마침  가까이에 살아서 흉하게 떠도는 소문은 들었다.

오목이 아버지는 목수였고 술주정꾼이었다. 일당 몇 푼 받으면 그걸 몽땅 술로 바꿔 먹고 곤드레가 되어 집으로 와서는 힘없는 마누라를 오뉴월 개 패듯 팼다. 딸 오목이를 꼭 껴 안고 모진 매를 맞으며  가난한 살림을 지탱해 가던 오목이 엄마는 결국 골병이 들어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린 딸 오목이를 못내 걱정하며 눈도 못 감았다고 했다.

엄마 떠난 후 오목이가 그 엄청난 시련, 가난과 아버지의 매질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여덟 살 때 부터 그 작은 손으로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집 안을 치웠다. 엄마의 운명따라.

저녁마다 술 취한 아버지에게서 무참하게 맞았다.  싫컷 패고 난 후, 때로는 길거리로 쫒겨나  엄동설한에 개집에서 개를 의지해 자기도 일쑤였다. 새벽이 오면 술에 취해 잠들었던 오목이 아버지가 부시시 일어나 일하러 나간 뒤에야 집안 으로 들어온  오목이는 다시 어지러운 방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밥과 국을 끓이고,학교 근처에도 못 가보며 무지랭이로 짐승같이 자라서 열 몇 살 쯤 되었다.

천치같은 계집애. 또래들의 소문을 들은 뒤로는  오목이가 매 맞으며 내지르는  애처러운 비명에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지만 .가엾다는 생각보다 멸시하고 짓밟고 싶은 혐오스러움으로 오히려 화가 나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재촉하던 불쾌한 기억.


“ 근데 오목이라니? 왜 오목이 얘기가, “

명수씨가 불현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 는다.

‘ 오목이가 명수 오빠를 참 좋아했어요 . 오빠가 거리로 지나는 모습을 늘 훔쳐 봤지요”

명수씨의  머리 속이 아득해 진다.

한 번 오목이네 집에서 난투극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오목이가 서로 제 것이라고 건들지 말라고 소유를 주장하다 벌어진 두 깡패 소년의 싸움,

사춘기 소년 명수,그 꼴들이  하도 역겨워서 그 두 놈들을 늑신하게 두들겨 패 주었다.

무리들이 흩어진 뒤, 조용해진 앞마당에 오목이가 나왔다.

창백하고 비쩍 말라 수수깡처럼 껑충한 그애 , 새까만 머리가 치렁치렁 얼굴을 덮어 표정을 알 수 없던 그 애가 늘랍게도  살며시 명수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잡아 끈다. “ 어 어 “ 하며 끌려 들어간 방에서 오목이는 뜻 밖에도 치마를 걷어 올린다.

기가 막히지만 말갛게 드러난 오목이의 앙상한 다리와 아직 미숙하게 보이는  다리 사이 그 곳  , 오목이가 바라보던  반짝이는 눈에 가득한  재촉, 기다림.

사춘기 소년 명수는 불현듯 들끓는 욕망과 알수 없는 분노와 멸시로 그 위에 엎어지고 만다. ‘ ‘계집애가  뭣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다리를 벌리니, 동네 양아치들이 꼬이지. 멸시하면 할수록 더욱 드센 힘으로 그녀 속으로 깊이깊이 드리밀며 몸부림치다  끝내는 화통을 힘껒 뿜어낸다.


“ 알아요 ? 그게 오목이식  사랑의 표현이었어요. 고마운 마음에 보답할게 그 것 밖에 방법을 몰랐던 거지요.   오목이에게는 당연히 은밀한 사랑과 감사의 표시였고 그리고 그 순간이 무지하게 행복했답니다.”


“ 근데 오목이가 어쨋다는 거얘요? 그 여자의 마음 까지도 당신이 안다구요?”


“ 오목이가 떠돌이 잡놈들의 노리개가 되어 엄청 몹쓸 짓을 당하며 산다는 동네 소문을 들은 오목이 아버지는 종내 그 동네를 떠나 버렸지요, 그게 최후의 아비다운 양심이었을까요?”

카니는 평소  그녀답지 않게 깊은   감성에 젖어 있다. 술 기운만이 아닌 자신의 감정에 깊이 취한 듯.


명수씨 그 옛날 오목이 얘기는 썩 유쾌하지 않다.  소년 명수의 부모도 공부는 안 하고 늘상 땡땡질에 깡패들과 어울려 쌈질이나 하고 떠도는 아들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자책으로

서울로 이사했다. 명수도 지방 소읍에서의 치졸 방만했던 기억을 씻어내고,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 준비에 열중하며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정리했다.


“ 오늘 나 만나려는 용건이 이거였소? “

“ 아니, 아니요. “ 카니는 고개를 살레살레 젓는다.그리고 명수씨를 똑바로 바라보며

“ 부탁이 있어요. “ 눈이 이글이글 타고 있다. 욕망일까, 분노일까. 아니면 전에 말했듯이 죽이고 싶도록  미움일까. 왜? 나하고 저 여자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명수씨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나 승낙을 강요하는 저 무서운 눈빛.

“ 일단 말해 봐요, “ 명수씨는  부드럽게 묻는다.

“ 다음 주 토요일, 당신 생일 파티가 근사하게 열린다지요? 사장님이 나도 초대해 주셨어요”

“ 그럼 오면 될 것 아니요?”

“ 나와 춤 출 기회를 주세요, 당신 아내 앞에서 멋지게 춤추고 싶어요 “

“----?” 미쳐 영문을 몰라 황당해 하는 명수씨에게 카니, 하 하 하 방자하게 웃는다.

이상하게도 명수씨, 노엽지 않다. 잘난 사내는 이런 대시도 능란하게 받아쳐야지.

“ 염려 말아요, 나의 사장님, 이은주씨에게도 허락을 받아 놨지요  하 하 하 “

“ 좋아요, 나도 기대가 되네요.”

“ 그럼 됐어요, 내 용건은 이것 이었어요  전 이제 일어 날게요, 내일도  일을 해야 하니까요.

오늘 밤 기분 좋은 밤,좋은 꿈 꾸세요.” 카니는 일어난다.

“ 아니, 카니 잠깐 물어 볼 말이 있어요. < 오목이 >가 어떻다는 말이요?그여자의 친척이요?”


그러나 카니는 상관 없다는 듯 손을 흔들며 ,이제까지 더불로 마신 커스모폴리탄 에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모델 같은 우아한 걸음으로 푸론트로 향해 간다. 살짝 위로 당겨져 도드라진  그녀의 엉덩이가 리듬 타듯 살랑대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며  , 유난히 길고 피곤한 오늘,

아직 시장기도 미쳐 채우지 못한 명수씨는 온몸에 취기가 확 퍼진다.

카니 그녀가 도무지 내게 어떤 존재인지  분간이 안 되는 어리둥절함 속에서 그냥 풍덩 빠져 버리는  기분으로 술집을 나온다.

초여름의 보드라운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바깥으로 나와 올려다 보는 진곤색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 어때? 카니 멋진 수수께끼 같은  여자 아니야?  난 준비가 돼 있다구’하며 허리를 펴는  명수씨,


은주씨는 텅 빈 큰 집에서 이제까지 모르던 걱정과 낮선 외로움으로 남편을 기다리며 잠 못 들고 있다. 이렇게 연락 없이늦은 일은  없었는데 웬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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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만나리 3


명수씨,생각할수록  카니박이 누군지, 날이 갈수록  매우 떫고 거북한  존재다. 자신은 무척 꺼리고 싫어지는데 비례하듯이 아내 는 더욱 카니박의 열광 팬 이 되어간다.카니박에 대한 아내의 신뢰는 더욱 공고해 진다.

“ 여보, 카니박은 내게 행운이얘요, 그이는 컴퓨터도 능난하고 사무적인 일처리도 완벽해요. 종업원 관리나 고객 관리, 또 심지어는 오토레이션( 바느질 )도  잘 해요. 도대체 그이가 못 하는게 뭐가 있죠?  난 가게 일을 그이에게 맞기고 요즘은  내 사무실에서 낮잠까지 자고 있어요. “  명수씨의 거부감과 불신, 걱정까지 간파한 아내 은주씨는 오히려 명수씨를 위로한다.

“ 믿어 봐요, 그이는 우리에게 뭔가 행운을 주려고 온 사람 같아요. 경계를 풀고 친절하게 대해 줘요.”  아내 은주에게는 입 안에 혀처럼 싹싹하게 구는 여자가 내게는 알 수 없는 적의를

보인다. 명수씨는 더욱 영문을 알 수 없는 카니박의 이중적 행태에  이제는 거의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로 그녀를 의식하며 더욱  경계하게 되었다.


그 날도 으례히 일삼아 K클리너를 들르게 되었다. 아내와 점심이라도 같이 할까 생각하며 .

들어서자 갑자기 요의가 급해졌다. 화장실에 들러 넘치기 직전 배 속  물을 버리고 후련한 기분으로 나오는데 그 컴컴한 입구 복도에 누군가 서 있다. 

 누군지 알아 볼 틈도 없이  갑자기 느닷없이 덮치는 포옹, 그리고 온 몸을 빨아들일듯 강렬한 키스, 그 깊은 키스의 아득한 몽환, 그대로 푹 빠져서 다른 행성으로 날라 가는 기분, 명수씨도 은연 중 혀를 굴려 그 미지의 입 속을 탐익했을까. 모르는 일이다. 뜨거운 피가 펄떡이는 심장을 겨우 억누르고  철 없는 아랫도리의 반란을 민망해 하며 ,상황 판단을 위해 정신을 추스리려는데,

“죽이고 싶도록 미워 , 죽여 버리겠어 , 기다려” 귓가에 뜨겁고 축축한 목소리를 남기며 뛰쳐나가는 실루엣,

그 모습은 틀림없이 카니박, 그 불길한 여인의 뒷모습이 아닌가.


명수씨는 아내 이은주와 결혼 후에는 다른 여인에게 엮인 일이 전혀 없었다. 공부하고 일하고 . 그리고 항상 옆을 지켜주는 배려심 깊은 따사로운  아내, 마음이 허전할 틈 없이 바쁘게 살아온 지금 까지의 삶,

느닷없이 나타난 이 알수 없는 여인의 뜨거운 관심과 접근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불편함과 의문,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그 의문 투성이  마법적인  유혹에 빨려들려는 충동, ‘ 응,  내가 좀  모든 여자들 눈을 끌 만한 매력이 있지’ 하며 명수씨는 자위하기도 한다. 아내는 자신을 젊은 날의 미남배우, 신영균을 능가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며 명수씨는 더욱 자주 가벼운  핑게를 대 가며  K클리너를 드나드는 자신을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

때로는  카니박이 머물러 일하는 곳에 시선을 박고 지켜보곤 한다.그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니는 전혀 무관심하게 손님을 받거나, 옷들을 점검하고 정리하며 종업원들을 관리한다.

가끔 프레서가 뜨거운 기계에 손이나 팔이 닿아 데었을 때도 침착하게 처치를 해 주고, 간단한 두통이나 소화장애가 생겼을 때에는  적절하게 손봐 주기도 해서 종업원들에게도 인기가  매우 좋다.

참으로 천연덕스러운 여자다.“


“여보, 오셨으면 사무실로 들르시지, 여기서 뭐하세요?”

하는 아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명수씨,

“ 아, 잠간 시간이 나서 당신과 점심이나 할까하고 들렀소 “

“ 잘 됐네요, 나도 지금 배가 고픈데, 아, 카니 자기도 점심 전이지요? 우리 남편이 점심 산대요”  은주씨는 소녀처럼 들떠서 반색을 한다.

‘ 내가 아내에게 점심 서비스가 너무 오랜만인가’ 내심 생각하지만 카니와 점심을 같이 한다는건 너무 오버다. 꺼림칙하다, 그러나 그것도 재미 있 겠 다.






레스토랑.jpg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아내와 함께 마주 앉은 카니는 목이 깊이 파여 가슴 골이 살짝 드러나는 푸른색 탑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고 있다. 더운 클리너 안에서 일을 한 탓인지 피부에 땀이 배어 윤기도는 가슴 볼륨이 괜찮고   드러난 다리가 근육질로 탄탄하다.

‘ 근처 헬스에서 몸관리를 부지런히 하는 모양이군’ 발 끝부터 위로 향하는 명수씨의 눈길을 그녀는 당돌하게 마주 바라보고 있다.

‘ 나한테 관심 있군요 ‘ 소리는 없지만 그녀의 희미한 핑크빛 입술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 카니씨, 맛 있는거 시켜요. 아주 드문 기회니까, “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것을 남편의 이름으로  말하는 천진한  아내의 말이 명수씨를 당황하게 한다.

“ 우리 남편이 카니씨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카니 덕분에 내가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겨 요즘엔 남편에 대한  내 사랑의 스킨쉽이 너무  찐해져서 행복하다나요. “

순간 찌르는듯한 카니의 시선이 명수씨에게 꽂친다.

‘ 이건 아닌데 ‘ 다만 아내가 웃자고 하는 말에 명수씨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잠간 아내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우자, 순간 어색한 침묵이 있었다.

“ 당신 “  동시에 나온 두 사람의 같은 말에 다시 놀라움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말이 끊어진다.

늘상 대화의 기술과 매너에 앞 선다고 자부하는 명수씨는 린다에게 선수를 양보한다.


“ 먼저 말해 보시요”

“ 사장님 부부는 정말 잘 어울리고  행복해 보이세요 “ 의외로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카니는 전의를 상실한 패자의 모습으로 풀이 죽었다.

“ 당신, 왜 내게 무례하게 구는거요? 나는 모욕감과 불쾌감을 느끼오. 내 아내의 종업원이 사장의 남편에게 이리 노골적으로 드리대는게 미친 짓 아니오?  법 이전에 당신의 자중을 권해요 다시는 내게 이상한 짓하지 마시요”

명수씨는 내친 김에 엄숙하고 건조하게 말한다. 그래야 더 이상 파파라치 안 되겠지.

말을 듣자 린다는 다시 고개를  든다.  명수씨의 위압적인 말은 싹 접어 놓고

“ 김변님, 저를 한 번만 만나 주세요,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사무적으로 또박또박 하는 말은 매우 진지하고  짙은 간절함이   있었다.


아내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 카니  우리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것 같아요. 오후 딜리버리 맞추려면 서둘러야 해요”

갑자기 바쁘게 서둘러 바람을 뿌리며 나가는 두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명수씨는 뭔가 끝맺음이 안 된 껄끄러움과 또 미지의 알 수 없는 어떤 가능성이 궁금해지는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 뒤숭숭하여 고개를 털며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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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클리닝 카운터.jpg





사실 이 크리닝 공장이 명수씨의 일가가 일어설 수 있었던 핵심 리더였다. 1980 년대

처음 미국에 이민 오던 때, 명수씨와 이은주씨는 유학생 신분이었고  그들은 약혼한 사이였다. 둘이 함께 공부하기에는 너무 빠듯한 형편이어서  은주씨가 공부를 포기했다. 남편 명수씨의 학업을 뒷받침해 주기 위해 은주는 드라이 클리너 가게에 취직하여 일을 시작 하였고 그 뒷바라지에 힘입어 명수씨는 로우스쿨을 마치고 변호사 시험을 치루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십여 년이 흐른 후,명수씨가 장하게 변호사가 되었지만 사실 은주씨가 더욱 장하게 사업에 성취해 있었다. 하나의 크리닝 공장에 여섯 개의 드랍샵, 엄청난 발전이었다. 제법 큰 수입 덕택으로 명수씨의 부모님을 모셔오고  친척들을 미국으로 초청하여 생활 기반을 다져주고 , 자신들의 큰 집을 짓고 동부 버지니아 청정 바닷가에 빌라를 소유하고, 승승장구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뛰놀지 않는 텀 비고 적막하기만 한  커다란 집, 명수씨 어머니는 그걸 끝내 한탄하며 5년 전 세상을 떠났다.그 비탄의그림자는 아직  은주의 가슴에 상흔처럼 남아 있다.


아내의 사무실이 있는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며 명수씨는 따거운 눈총에 몸이 오싹한다.

그 발원지는 처음 보는 낯선 여인, 키가 크고 광대뼈가 나와 거세 보이는 한 여인이 그의 뒤를 따라 오르고 있다.’ 누굴까’ 의아하며 아내의 사무실 문을 열 때 그녀도 함께 따라 들어 온다.

“ 카니 박이세요?” 은주가 남편 명수씨 보다 먼저 그 낯선 여인에게 반기며 인사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소개한다. “ 오늘 인터뷰하기로 한 카니 박 여사얘요, “  명수씨는 그 여인을 찬찬히 살핀다. 검은 색 정장 바지 차림에 약간 히끗한 머리칼이지만  관록있는 단발 헤어스타일, 그리고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직시하는 강한 눈빛,

‘ 좀 거세고 자기 주장이 강하겠구만’ 생각하며 그녀에게 자리를 권한다. 그리고

“ 웬만큼 영어는 하신다구요? “ 하고 묻는다. “ 네,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도 어느 정도 해서 카운터 일은 물론 종업원들 다루는데도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 나이가 꽤 되시는 것 같은데 일하기 힘들지 읺으시겠습니까? “

“ 내 나이 54세입니다만, 육신 건강하고 여러가지 일을 두루 했으므로 무슨 일이든지 자신있습니다. 뭐든지 맡겨만 주십시요.” 말씨는 상냥했고 태도는 비굴하지 않았다. 아내는 벌써 이 여인이 맘에 든 모양으로 남편 명수씨에게 눈짓을 한다.

‘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마세요’ 하고.

일하는 시간과 업무영역, 그리고 보수에 관한 문제는 아내의 몫이다. 명수씨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아내의 사무실을 나온다. 그러나 그 여자의 얼굴, 검으스름한 피부와 잔주름, 억세보이는 입매와 광대뼈 두드러진 뺨, 그리고 강한 눈빛으로 직시하는 예사롭지 않은 기세에 명수씨는 서늘하고 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 쉽지않은 세월을 거쳐온 여자.’






드라이크리닝 렉.jpg



카니와 함께 일하게 된 이후로 아내는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명랑해졌으며 무엇보다 말이 많아졌다. 전에는 둘이 마주 앉았어도 피곤으로 늘어져 별 할 말도  없어 적적했는데  이제는 일이 끝난 저녁 , 식사 시간이나 여유 시간마다 재재거리며 그 중에도 카니 박의 이야기를 거르지 않는다.

한종일 업무로 헤어졌다 만나는 시간, 좀 더 사적인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명수씨는 과장스런 몸짓으로  아내를 포옹하고 귀뿌리를 자극하며 속삭인다.

“한종일  당신 체온이 그리워서 꽁꽁 얼었어. 나를 좀  녹여 줘.” 하지만 아내 은주씨는 그럴 계재가 아니라는 듯 몸을 비틀어 내며,

“ 여보, 오늘 굉장한 얘기가 있어요. 당신도 들어 봐야 해요.”


런드리 샤쓰를 다려내는 파트에 유일하게 한국인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손발이 잘 맞아 시간당 다려내는 샤쓰의 수가 120 장이 너끈이 된다. 매우 능률적이고 재치도 있어 벌써 5 년 째 일하고 있는데 문제는 월요일마다 터지는 부부싸움이다. 남편이 워낙 겜부링을 좋아해서 토요일 주급을 타면  일요일 아틀란틱 시티로 달려가 카지노로 몸땅  날린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 미세쓰리는 이것이 너무 속상해서 남편에게 따지고 들려면, 이 경솔하고 무지한 인간 , 아내에게 욕질을 해대고  심지어 뺨을 때리고 발로 차기도 한다. 미세쓰리는 일을 하다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 그러면 일도 늦어지고 분위기도 고약해져 도무지 바쁜 시간에 지장이 많다. 이런 일을  번번히 당하고만 지냈는데 카니 박, 그걸 단번에 해결했다는 것이다.

“ 이봐요, 이종규씨 당신 불체자 ( 불법체류자 ) 맞지요? 브라질에서 방문으로 와 가지고 눌러사는 것 아니냐구요? 더 말해 볼까요? 당신, 한국 떠날 때, 엄청난 부도내고 도망 나왔지요? 당신 정신차리지 않고 이렇게 허랑 방탕 살면,  나 당신 신고할 거얘요. 아시겠어요?”

하니까 그냥 팍 죽더더란 것이다. 싹싹 빌고 하소연하고.

심지어 한국에서 많은 빚지고 갚을 길이 없어 밤도망을 쳤는데,

 도망가는 것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베란다에 빨래 널어 놓고 여행가방 하나씩 들고

돈 한 푼 없이  브라질로 떠나게  된 사정 까지 구구절절 얘기하더란 것이다.

“ 근데 여보, 카니는 너무 인정이 깊은 사람이얘요. 미스터 리에게 앞으로 마누라도 패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면 자기가 그들의 영주권 획득을 도와주겠다는군요. 그 방법도 상당히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은주씨는 남편 명수씨를 슬쩍 곁눈질하며

“ 우리가 그들의 스폰서 역할을 해 주면 어떨까요? 이씨부부를 우리 가게서 스폰서로 신분보장을 해 주면 그들이 영주권을 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더군요”  

명수씨도 물론 그런 규정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후일담들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영주권 없는 사람들을 원룸 아파트에 합숙시키고 일당도 박하게 주면서 하루 14 시간 씩 일을 시키고 심지어는 휴일날도 자기 집에 데려가 청소와 뜰일을 시키며 혹사시킨다는 말,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약점을 알기에 이 악물고 참으며 소정의 5 년을 기다린다는 말,

“ 난 법을 어기며 교활하게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도 싫지만,  약점을 쥐고 비인간적으로 사람을 부리는 것도 원치 않는 일이요”

명수씨는 뚝뚝하게 말하며 손을 씻으려 화장실로 간다.


하루는 명수씨가 K크리너를 들르게 되었다. 들어서 보니, 작업장에 잠시 일이 멈추어지고 소동이 나 있었다. 말썽의 주인공은 역시 이씨, 히스패닉 여인과의 다툼이었다. 작업장의 화장실은 남여 공용 하나, 이씨는  소변을 본 후 번번이 물을 안 내리는게 화근이었다. 신체가 우람하고 성격이 직설적인 에리나, 화장실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며 ‘ 미스터 리를 부른다.

‘ 변기에 있는 노란 물, 당신 오줌, 그대로 있다. 치워라. ‘

아 미안 내 치울께, 조심하지 미안해’하고 사과하면 싑게 넘어갈  일을 이씨, 한국적 남상우월주의 전통의 정신으로 일단 일갈한다.

“ 그거 내거 아냐, “

‘ 요 거짓말장이’  엉덩이가 바위채만한 에리나의 심기를 거슬렸다.

“ 너 화장실 들어 갔던거 나 봤거든, 왜 거짓말하니?”

평소 미운 털이 박힌 이씨에게 다른 멕시칸 까지 떼로 몰려와서 왁왁거리자 궁지에 몰린 이씨, “ 아 18 ! 이게 뭐가 더럽냐고?”

하며 손을 변기 물에 넣어 한 웅큼 집어 쩝쩝 먹어 보인다. 어이가 없어진 관찰자들은 멍하니 보다가 서로 윙크하며 허리를 잡고 웃으며,

“ 절크jerk “하고 자신들의 자리로 흩어진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명수씨도 실소한다. 화장실 하나 더 늘려야 겠군 생각하며.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 발을 탁 건다.

방심한 명수씨 중심을 잃고 비척거린다. 다행히 바닥에 넘어져 뇌진탕 걸리는 일은 미연에 방지됐지만 어라! 그를 부축해 안고 있는 이는 카니 박.

“ 뭐야, 당신이 발 걸었어? “ 분노로 고함치는 그에게 돌아온 말은 단 한 마디,  “너두  절크jerk !!”

‘ 이 여자가 미쳤나? 나를 미쳐 몰라 본 걸까?’  노여움으로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카니는 이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둣, 태연하게 카운터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에게 가고 있다.


“ 하이! 미스터 빌, 오랜만에 보는군요. 당신 딸은 이미 대학으로 떠나서 집이 허전하겠군요?

“ 노우, 절대 아니얘요, 아내와 나는 호젓하게 제 2 의 신혼기를 즐기고 있지요”

“ 그럼 아마도  베이비 시스터라도 선물하려고요?  하 하 “

유난히도 나긋하고 유쾌한 그들 대화에 명수씨, 화내고 따지고 할 겨를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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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만나리. 1    2014/05/08 04:46추천 1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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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오월의 이른 아침.

명수씨는 커텐 사이로 들어오는 강한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깨어났다.

부시시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어 본다.새들의 요란한 지저귐 소리와 함께 초록빛 싱그러운 바람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 온다 .몽롱한 잠에서 활짝 깨어나며 가볍고 상쾌한 마음에 훨훨 날 것 같다. 산다는 것의 기쁨, 용기 힘이 솟구치며, 뭔가 행운이 다가오고 있다는 기분좋은 예감.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쟁반에 커피와 토스트를 담아 들여 온다. 갓 내린 커피의 향이 좋다.

“ 곧 내려갈려는데 뭐 여기까지 갖고 오시나,하 하!  여하튼 땡큐.”

“ 잘 잤어요? 날씨가 참 좋아요” 아내도 생긋이 웃으며 말한다.방금 샤워를 한 그녀의 맨 얼굴은 발그스럼한 홍조에 윤기나는 검은 머리가 젖은채로 치렁치렁 늘어져 있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여자, 그래서 인지 몸매도 흐트러짐 없이 유연하고 얼굴은 동그라며  뺨이 살짝 도드라져 앳돼보이는 모습이다. 그리고 아직도 남편 앞에 수줍은 낯가림이 늘 소녀같은  모습이지만 ,  이제 오십을 훌쩍 넘어가는 연륜 따라  사려깊고 침착한 눈매,  공손한 순종의 부드러움, 아내 너무 사랑스러운 그대.

명수씨는 문득 아내가 필요한 용건이 있을 때, 이런 대화의 시간을 만든다는 생각에 긴장한다.

“ 오늘 아침 상의할 일은 무엇이요?”  아내는 짐짓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며 시간을 끈다.

“ 당신의 한갑 생일이 가깝잖아요? 이번엔 좀 큰 생일 파티를 하고 싶어요.”

“ 아, 한갑잔치라니 ! 그런 노인네 생일 파티는 내게 어울리지 않아” 명수씨는 오늘따라 고혹적인 아내의 얼굴에 깊은 눈빛을 보낸다.

“  난 차라리 당신과 호젓한 여행이 기대되는데.” 그러나 아내는 현실적이고 냉정하다.  “아니예요, 어머님 돌아가시고 우린 5 년 동안 근신하며 지냈어요, 이젠 좀 분위기 바꿔 사람들과의 친교도 생각해 봐요. “  아내의 생각이 무리도 아니다. 아내가 시어머니에게 얼마나 지극하였으며 또한 자손을 못 보여드린 자책으로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잘 알고 있다. 참을 만큼 참으며 숨 죽여 산 아내의 긴 세월, 그래, 아내도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가 필요해.

“ 그래요, 당신에게 일임할테니 알아서 해요. “ 명수씨는 흔쾌히 말하며 얘기를 맺으려 한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 할 말이 있는듯 망설인다.

“ 제가 가게에서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메니저를 한 사람 구하려고 해요. 오늘 한 사람을 인터뷰하기로 했는데 당신도 함께 봐 주지 않을래요?”  명수씨는 순간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 당신 일과 내 일은 서로 다르잖아’ 하는 그의 심중을 간파하는 그의 아내 이 은주는 덧붙여 말한다.

“ 알아요, 당신 마음, 그러나 당신은 사람을 많이 겪으니까, 아마도 적절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되서 부탁하는 거얘요.”  

결국 아내에게는 언제나  마음 약한 명수씨

“ 당신 사무실에 몇 시에 가면 돼겠소?’

이들의 타협이 이쯤해서 마감되며 각자, 자신의 하루 일상을 위해 준비한다.

명수씨는 짙은 청색 스트라이프 정장에 서류가방을 들고 BMW를 몰고 로우펌 사무실로 떠나고 아내 이은주씨는 자신의 오랜 사업처 K 클리너를 향하여 토요타 벤을 몰고 출발한다.

이내 그들의 커다란 저택은 새소리만 가득한 고즈녁한 분위기 속에  휩싸인다.


 

약속한 오전 11 시 명수씨는 바쁜 시간을 틈내어 아내가 운영하는 K 크리너에 도착했다.

카운터에서 손님의 옷을 받고 있던 아가씨의 눈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훽토리에는 보일러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고  여러 명의 히스패닉들이 남자의 자켓, 바지, 여자들의 드레스나 불라우스 스커트 등을 분류해 각자 자신의 프레스대 앞에서 칙칙푹푹 뜨거운 스팀을 뿜으며  부지런히  다려내고 있다

웽웽 커다란 클리닝 기계 세 개와 런드리 기계 또 드라이 기계가 돌아가는 앞 쪽에는 이 곳 까지 일곱 개의 세탁소에서 들어온 옷가지들이 산처럼 쌓여있고 그 앞에서 김씨 영감이 땀을 흘리며 짙은 색 옷과 얇은 실크 옷들을 분류하고 있다.

 

' 아 여긴 언제나 뜨거워 숨 막힌다 !'

' 이은주 대단한 여자야.'

올 때마다 한 번 씩 중얼거리는 말을 오늘도 자신도 모르게 또 중얼거리며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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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참이나 부족한 글을 써 가면서 저는 - 어이 없게도-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심지어는 이 시리즈를 처음 시작한 올해 1 월 부터 4 월 까지 헛산게 아니다 하며 자부하기도 합니다.
그 만큼 저는 가슴 속에 꼬물거리는 오래된 아기들을 출산 한 듯 , ( 또 엄청 어이 없지만 )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내 생명이 이어지는 동안 
아직도 많이 내 안에서 꼬물거리는 
야릇한 이야기를 끄집어 낼 것 입니다.

내 아이들은 모두 순하고 착하며 
또한 정직하고 의롭습니다.
그들에게 갈등이나 번민은 없습니다.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태초의 의로운 신마냥 
현실에 맞닥드릴 용기가 있고
또 역부족일 땐 안개처럼 산화할 각오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혜롭고 교묘한 수많은 작가들에게서
 비꼬인 갈등과 짜깁기와 인륜 막장의 혼동에
충분히 시달리고 통탄하고 분개하여
피곤해 있습니다.

저는 샘물같이 차갑고 맑고,달콤하며 , 풍부한 미네랄로 가득한
생명수 같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지켜보신 소수의 분들,
 
부족한 역량이지만 
성원과 격려로 
제 여린 마음에
용기를 주신 분들께 
진정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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