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따라 명수씨는 많이 피곤했다. 길고 긴 하루 Long day !.


M & A (mergers and acquisttions  인수합병 )의 기업 하이에나들 뒷치닥거리나 하는 자신의 업무에 완전 토할 것 같은 자괴감을 느낀 오늘이었다.  다른 분야로 옮겨 버릴까?  벌써 몇 번이나 갈등했던 화두, 그러나 오늘도 명쾌한 답이 나올 리 만무다. 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돈이 얼마나인데. M&A에서의 큰 돈의 흐름은여느 다른 분야 업무와는 쨉이 안 된다


그런데 이 기업사냥군들의 술수는 너무 냉혹하고  비열하다. 지지부진 경영이 어려운 유서깊은 기업을 헐값에 사들인다. 그리고 재정비한답시고 오랜 세월 일해온  고임금 기능직과 임원들을 차례차례 해고한다.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생산라인을 자동기계화 시스팀으로 바꾸고, 단순부품들은 해외 값싼 인력으로 돌리는  일도 허다하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해고된 사람들의 절망이나 비애,생산품의 질적 저하,나아가  미국의 경제를 침체시키고 ,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이 놈들-- 을 위해 그 더러운 똥구멍이나 닦아주는 자신의 처지가 몹시 환멸이다. 민주주의 시장 자유 경쟁의 모순.

오늘 그런 와중에 해고된 고참 임 원과의 면담은 명수씨의 변호사로서 자부심과 양식이

별볼일 없이 초라하기만 했다.

그는 36 년 간 James Inc  가구 회사에서 일하던 고참 디자이너이고 제작자이다.미국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제임스 가구 회사도 3 대 업주로 경영이 바뀐 뒤로 곤두박질치듯

운영난이 심각해 졌다. 문을 닫고 간판을 내리느니 보다 헐값에라도 팔아 돈을 챙기려는

허약하고 약삭빠른 삼세대 사업주에 의해 침을 흘리며 눈독 들이던 명수씨 소속 인수합병 회사가 삼켜 버렸다. James Inc는 특히 백 년 의 긴 전통 속에 미국인들에 널리 알려진 명품 가구 회사였다. 인수 후 판촉에 온갖 방법을 써서 외형 주가를 단단히 올린 뒤 몇 배의 가격 으로 되팔아 먹는 다는 M$A의  야심을 명수씨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그리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태국에 부품 공장을 짓고 있는 것도 명수씨는 알고 있다.

James Inc 회사의 고참 간부이고 가구 제조 최고의 경력자인 그는

마지막 페이롤  체크를 받고 싸인을 한 후  씁쓸하게 말한다.

“ 나는 똑똑히 기억해요. 창업주였던 미스터 제임스가 자기의 첫 손자 윌리엄이 네 살이 되자

공장에 데려와 무등을 태우고 두루 보이며 ‘ 이건 너의 것이니 영원히 지키고 번영시키라’ 자랑스럽게 말했죠. 근데 미스터 윌리엄이 맡은지 십 년이 채 안되어 조부의 회사를 말아 먹는군요 “





그러나 명수씨 ,오늘 그녀를 단 둘이서 만난다.  카니를 생각하며  기분을 바꿔 봐.

과연  그들은 약속한대로 약속한 시간,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감미로운 멜로디가 오월의 훈풍처럼  가볍게 스치는 레스토랑 , 조용 하고 우아하게 담소하며 식사하는 사람들, 그들 속에서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카니 박을 보며

명수씨는  깜짝 놀란다. 나, 헐리웃 여배우 만나는 것 아닌가.

카니는 완전 다른 사람 모습으로 다가왔다.반백의 머리를 이마 위로 살짝 세워 마치 여왕의 왕관처럼 품위 있고 , 가슴골이 깊게 패인 감색  드레스, 깊고 그윽한  눈으로 정성들여 매만진  스모키 화장, 그리고 그 지옥불을 품은 듯  붉은 입술, 위엄과 열정이 이렇게 어울려 여전사의 두목, 전설시대 여왕, 그러면서 동시에 주술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마녀의 유혹, ‘ 도대체 넌 누구냐.’

“ 와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저쪽 바bar로 갈까요? 거기도 가벼운 식사쯤은  할 수 있고 , 난 식사보다 술 한 잔이 더 땡기는군요”


넓은 레스토랑에서 카니는 익 숙하게 한 쪽으로 칸을 막은 조용한 바 쪽으로 인도한다.

명수씨는 카니의 뒤를 따라 의식없는 점비처럼 뒤 따르고. 자리를 잡고 앉은 후에도 멍하니 그 녀를 바라 본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지? 분간이 안 가는 어리둥절한 표정.

“ 나, 낯 익지 않나요?” 자리를 잡고 난 후에도 멍한 그를 보며 카니 , 장난치듯 생글거리며 묻는다.

“ 아니요, 카니, 당신은  특히 오늘,  전혀 낯설어요 당신은 누구지요?”

까드득  웃으며 카니 손짓으로 웨이터를 부른다.

카니가 주문한  커스모폴리탄, 명수씨를 위한 더리  마티니 칵테일과

풀리쳐와 나쵸, 그리고 로디스 후라이 등의 안주깜이 차려진다.


이윽고 현실을 깨닫는  명수씨, 긴장하며

“ 자, 이제 본론을 얘기할까요? 내게 할 얘기가 무엇이지요? “

직업 본능의 침착과 냉정 , 또 객관적 자세를 지키려 애 쓰며 말한다.

이미 커스모폴리탄 칵테일을 한 모금 털어 넣어  볼이 발그레해진 카니, 먼 눈으로 미지의 어느 때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묻는다.

“ < 오목이 >를 아시냐구요? “

오목이? 가 누구야, 갑자기 , 나 모르는데.

점심도 거른 빈 위 속,마티니  한 잔에 짜르르 풀어지는 명수씨,

마법처럼 다가오는 기억의 어두운 터널 저 편, 흑백영화 같은  영상. 그 당시 .


명수씨네는 어느 소읍 , 그래도 번화하다는 중앙로에 살았다. 아버지가 고급 장교였으므 로 아버지 임지 따라 새로 이사 온 곳이었다. 소년 명수는 이사에 이골이 났고

이리저리 빈번한 전학으로 인해   뿌리 내리지 못하는 부평초처럼 학교에 안착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소년 명수는 그 때

고 딩  깡패였다. 학교에는 안 가고 읍내를 빈둥거리며 쏘다니고 쫄갱이 중학생에게 삥쳐서 담배도 사고 중국집 자장면도 사 먹고 공원가서 낮잠이나 자다,하교 시간 맞추어 집에 들어가면 하루가 땡처리되던 그  때 그 나날. 똥은 똥대로 모인다고 그렇고 그런 애들이 명수 씨 근처에 모이게 되었고 그들과 어울려 떠돌던  무심했던 어느 날 ,

아이 들의 흰소리와 잡담이 귀에 꽂쳤다. < 오목이  > 그 애는 말하자면 동네에서 누구나 건드리고 간다고 소문이 난  가난하고 외로운 어린 여자애 였다.

“ 그 기집애네는 낮에 아무도 없어서 아무나 드나든데 “




명수도 마침  가까이에 살아서 흉하게 떠도는 소문은 들었다.

오목이 아버지는 목수였고 술주정꾼이었다. 일당 몇 푼 받으면 그걸 몽땅 술로 바꿔 먹고 곤드레가 되어 집으로 와서는 힘없는 마누라를 오뉴월 개 패듯 팼다. 딸 오목이를 꼭 껴 안고 모진 매를 맞으며  가난한 살림을 지탱해 가던 오목이 엄마는 결국 골병이 들어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린 딸 오목이를 못내 걱정하며 눈도 못 감았다고 했다.

엄마 떠난 후 오목이가 그 엄청난 시련, 가난과 아버지의 매질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여덟 살 때 부터 그 작은 손으로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집 안을 치웠다. 엄마의 운명따라.

저녁마다 술 취한 아버지에게서 무참하게 맞았다.  싫컷 패고 난 후, 때로는 길거리로 쫒겨나  엄동설한에 개집에서 개를 의지해 자기도 일쑤였다. 새벽이 오면 술에 취해 잠들었던 오목이 아버지가 부시시 일어나 일하러 나간 뒤에야 집안 으로 들어온  오목이는 다시 어지러운 방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밥과 국을 끓이고,학교 근처에도 못 가보며 무지랭이로 짐승같이 자라서 열 몇 살 쯤 되었다.

천치같은 계집애. 또래들의 소문을 들은 뒤로는  오목이가 매 맞으며 내지르는  애처러운 비명에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지만 .가엾다는 생각보다 멸시하고 짓밟고 싶은 혐오스러움으로 오히려 화가 나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재촉하던 불쾌한 기억.


“ 근데 오목이라니? 왜 오목이 얘기가, “

명수씨가 불현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 는다.

‘ 오목이가 명수 오빠를 참 좋아했어요 . 오빠가 거리로 지나는 모습을 늘 훔쳐 봤지요”

명수씨의  머리 속이 아득해 진다.

한 번 오목이네 집에서 난투극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오목이가 서로 제 것이라고 건들지 말라고 소유를 주장하다 벌어진 두 깡패 소년의 싸움,

사춘기 소년 명수,그 꼴들이  하도 역겨워서 그 두 놈들을 늑신하게 두들겨 패 주었다.

무리들이 흩어진 뒤, 조용해진 앞마당에 오목이가 나왔다.

창백하고 비쩍 말라 수수깡처럼 껑충한 그애 , 새까만 머리가 치렁치렁 얼굴을 덮어 표정을 알 수 없던 그 애가 늘랍게도  살며시 명수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잡아 끈다. “ 어 어 “ 하며 끌려 들어간 방에서 오목이는 뜻 밖에도 치마를 걷어 올린다.

기가 막히지만 말갛게 드러난 오목이의 앙상한 다리와 아직 미숙하게 보이는  다리 사이 그 곳  , 오목이가 바라보던  반짝이는 눈에 가득한  재촉, 기다림.

사춘기 소년 명수는 불현듯 들끓는 욕망과 알수 없는 분노와 멸시로 그 위에 엎어지고 만다. ‘ ‘계집애가  뭣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다리를 벌리니, 동네 양아치들이 꼬이지. 멸시하면 할수록 더욱 드센 힘으로 그녀 속으로 깊이깊이 드리밀며 몸부림치다  끝내는 화통을 힘껒 뿜어낸다.


“ 알아요 ? 그게 오목이식  사랑의 표현이었어요. 고마운 마음에 보답할게 그 것 밖에 방법을 몰랐던 거지요.   오목이에게는 당연히 은밀한 사랑과 감사의 표시였고 그리고 그 순간이 무지하게 행복했답니다.”


“ 근데 오목이가 어쨋다는 거얘요? 그 여자의 마음 까지도 당신이 안다구요?”


“ 오목이가 떠돌이 잡놈들의 노리개가 되어 엄청 몹쓸 짓을 당하며 산다는 동네 소문을 들은 오목이 아버지는 종내 그 동네를 떠나 버렸지요, 그게 최후의 아비다운 양심이었을까요?”

카니는 평소  그녀답지 않게 깊은   감성에 젖어 있다. 술 기운만이 아닌 자신의 감정에 깊이 취한 듯.


명수씨 그 옛날 오목이 얘기는 썩 유쾌하지 않다.  소년 명수의 부모도 공부는 안 하고 늘상 땡땡질에 깡패들과 어울려 쌈질이나 하고 떠도는 아들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자책으로

서울로 이사했다. 명수도 지방 소읍에서의 치졸 방만했던 기억을 씻어내고,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 준비에 열중하며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정리했다.


“ 오늘 나 만나려는 용건이 이거였소? “

“ 아니, 아니요. “ 카니는 고개를 살레살레 젓는다.그리고 명수씨를 똑바로 바라보며

“ 부탁이 있어요. “ 눈이 이글이글 타고 있다. 욕망일까, 분노일까. 아니면 전에 말했듯이 죽이고 싶도록  미움일까. 왜? 나하고 저 여자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명수씨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나 승낙을 강요하는 저 무서운 눈빛.

“ 일단 말해 봐요, “ 명수씨는  부드럽게 묻는다.

“ 다음 주 토요일, 당신 생일 파티가 근사하게 열린다지요? 사장님이 나도 초대해 주셨어요”

“ 그럼 오면 될 것 아니요?”

“ 나와 춤 출 기회를 주세요, 당신 아내 앞에서 멋지게 춤추고 싶어요 “

“----?” 미쳐 영문을 몰라 황당해 하는 명수씨에게 카니, 하 하 하 방자하게 웃는다.

이상하게도 명수씨, 노엽지 않다. 잘난 사내는 이런 대시도 능란하게 받아쳐야지.

“ 염려 말아요, 나의 사장님, 이은주씨에게도 허락을 받아 놨지요  하 하 하 “

“ 좋아요, 나도 기대가 되네요.”

“ 그럼 됐어요, 내 용건은 이것 이었어요  전 이제 일어 날게요, 내일도  일을 해야 하니까요.

오늘 밤 기분 좋은 밤,좋은 꿈 꾸세요.” 카니는 일어난다.

“ 아니, 카니 잠깐 물어 볼 말이 있어요. < 오목이 >가 어떻다는 말이요?그여자의 친척이요?”


그러나 카니는 상관 없다는 듯 손을 흔들며 ,이제까지 더불로 마신 커스모폴리탄 에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모델 같은 우아한 걸음으로 푸론트로 향해 간다. 살짝 위로 당겨져 도드라진  그녀의 엉덩이가 리듬 타듯 살랑대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며  , 유난히 길고 피곤한 오늘,

아직 시장기도 미쳐 채우지 못한 명수씨는 온몸에 취기가 확 퍼진다.

카니 그녀가 도무지 내게 어떤 존재인지  분간이 안 되는 어리둥절함 속에서 그냥 풍덩 빠져 버리는  기분으로 술집을 나온다.

초여름의 보드라운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바깥으로 나와 올려다 보는 진곤색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 어때? 카니 멋진 수수께끼 같은  여자 아니야?  난 준비가 돼 있다구’하며 허리를 펴는  명수씨,


은주씨는 텅 빈 큰 집에서 이제까지 모르던 걱정과 낮선 외로움으로 남편을 기다리며 잠 못 들고 있다. 이렇게 연락 없이늦은 일은  없었는데 웬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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