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 서울 문학산책
유진숙 지음 / 파라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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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번 째 서평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서울 문학산책




문학, 삶 속에서 숨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고 했다. 그런 마음과 생각을 기꺼이 수용하며 으레 당연히 그러하리라 믿고 생각하는 이들은 어쩌면 인생을 관조하는 법을 타인보다 조금 일찍 배워 익힌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물 살 그 언저리에 나는 늘 투덜거렸다. 귀에는 언제나 작은 이어폰을 끼고 다녔는데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내 종교관은 사뭇 극과 극을 달렸는가 싶다. 줏대 없음에 드러나는 종교관이 가져다주던 잡다한 종교관련 음악편력은 뒤죽박죽 그 자체였다. 장엄하기 그지없는 바로크 시대의 천주교 미사곡에서부터 시작해서 개신교 찬송가와 불교의 법구경독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낮이고 밤이고 길거리에서나 버스 지하철에서나 청춘이라는 시절을 견뎌내기 버거웠던 나는 늘 터질 것 같은 무언가에 대한 부담감으로 항상 불만과 투덜거림을 거닐고 다녔던가보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라기 보다는 언제나 가슴 한편이 아리고 쓰라렸다고 해야 더 솔직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삶의 모습이 때로는 아린 것에서 다시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환생 비슷하게 재창조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무심함 속에서 여러 날과 여러 해가 바뀌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재창조와 따뜻함이 가져다주는 이미지는 설렘과 부드러움이다. 여기 모나지 않는 둥그스름한 이미지의 책 한권이 있다. 나는 실눈을 뜨고 코를 벌름거리며 책장을 펼친다. 그것은 어쩌면 우스운 행동이었을지 모르지만 분명 저자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색깔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유진숙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리고 다정다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바지런하다. 그녀가 풀어내는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정겨운 이야기는 교편을 잡았던 그녀의 전직 이력과 여러 면에서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으며 딴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곤 한다. 이번 서울 문학산책을 소제목으로 한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는 기실 문학을 앞서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그 내용과 성격이 좀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문학보다야 문화가 걸맞지 않은가. 문학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문화 속에 들어가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구태여 이런 딴지를 거는 것은 책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까닭이 나올 법 하다.

책은 성북동과 정동, 그리고 청계천과 인사동을 둘러보고 대학로를 거쳐 북촌과 궁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유도까지 소개하고 있다. 소제목에서 알 수 있겠지만 각각의 내용에서는 물론 문학적 풍미를 짬짬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무엇이 주가 되는 것이며 무엇이 덤이 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책은 문학을 명분으로 하고 있으되, 이토록 삶의 향기 그윽한 장르인 문학을 각 장에서 소개되는 명소, 문인을 포함한 명인, 역사적 스토리 소개에 약간의 미적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생각인가.




각설하고 책 속으로 성큼 들어가보자. 책은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와 소설 그리고 그 빛나는 문학적 가치를 창조해낸 시인과 소설가를 저자의 시선이 머무는 장소와 더불어 한 곳으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백석과 법정 한용운의 이야기로 문을 연 성북동 이야기는 앞으로 펼쳐지게 될 이 책의 특색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문학과 문학 속에 담겨져 있는 시대적 사상적 배경 그리고 그 문학을 잉태해 품었을 근 현대 서울 곳곳의 풍광과도 연계되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정동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김소월의 초혼을 소개하기도 한다. 대중가수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 속에서도 문학성을 찾아내는가 하면 역사의 뒤안길에서 멀어지고 잊혀진 사실들과 기록들은, 저자 유진숙 그녀의 부지런함과 꼼꼼함의 결과물이 되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이것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때 큰 의미를 두었던 모 시인의 시 구절 앞에서 무언가 이룬 것은 없으되 무언지 모를 초심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시간이 흘렀다. 비오는 날 비를 맞으며 길을 헤매는 어린 소년을 보는 시인의 서글프지만 그 따뜻했던 시선의 온기가 아직까지도 유효한 듯 하다. 어쩌면 그것이 시의 힘인 동시에 시인의 힘이요. 인간본성에 기인한 문학의 힘이 아닐까.

그러나 청계천과 동숭동 더더군더나 궁궐에 대한 이야기나 양화진 선유도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문학과 문인 또는 문학적 풍미를 논하기보다 시대와 역사를 돌아보는 순례자의 모습과 더 닮아 있어 보이기도 했다.




‘박학다식’ 이것은 긍정의 힘이다. 문학성만을 본다면 그 깊이감에서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겠지만, 사실 책의 취지가 어디 문학과 문학성만을 위한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발동한다. 독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보는가에 따라 그 성격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비교적 상세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소개하고 있는 부분은 유진숙만의 노고이며 개성으로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 현대 문인들을 출신학교별로 분류 소개하는 것도 수고로운 일이었을 법하다. 그 노고에 나를 비롯한 독자는 어쩌면 근 현대 시인과 작가들을 새롭게 다시 알아가는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존에 이미 출간되어 있는 책과의 차별성에 있어서는 아쉬움 면이 적지 않아 보인다. 성북동과 광화문 덕수궁, 또는 청계천 및 궁궐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은 부분들이 알려진 내용들이다. 소개하고 있는 문학작품 역시 마찬가지여서 청변풍견,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 장소와 문학작품을 연계하며 소개하는 것 역시 기존에 출간된 책들과 다르지 않다. 딴은 어느 면에서 생각한다면 이번 책이 일반화와 대중화에 대한 기대치를 생각하면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부드럽게 편집된 인문학 안내 책자 같기도 하고, 쉽게 씌어진 작은 교과서 같은 이미지를 받기도 한다.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과 각각의 배경을 오버랩과정을 통해 소개하는 저자의 노력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저자에게 갖는 일종의 선입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느 면에서 교과서 비슷한 책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가지 카프 문학에 대한 각주 하나가 아쉬웠다면 이는 분명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설야와 임화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옴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미 독자가 카프문학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다분히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의 시각에서 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쪽에서 한설야의 입지가 굳건하지 못했고 반면에 임화의 위상이 높았다는 이야기, 그들의 월북 후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어쩐지 이 책에서는 가십거리로 보이는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인용을 표기하는 편집에 있어서도 문장 안에 글자 색만을 바꿔 인용하는 등 다소 눈으로 읽기 불편했던 점도 있었던 것 같다. 고리타분한 인식이긴 하지만 인용에 있어서는 직접 인용으로 따로 편집하는 게 제일 좋아보인다.




눈을 밝으며 밤길을 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행적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되리니.




동숭동 편에서 서산대사의 야설로 소개된 시조다. 몇가지 기억하고 싶은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 심중에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인 듯해서 여기 허접한 서평에 기록으로 남긴다.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책임과 도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 같은 문구가 아닌가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책 속에서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었던 귀천의 안주인의 소식을 접하고 난후 그 얼굴이 생각이 난다. 요란한 색이 있는 머리장식 따위도 하나 없이 화장기조차 눈에 띄지 않는 얼굴. 수수한 단발머리의 언제나 수줍은듯 엷은 웃음으로 문 앞에 서 있곤 했던 그녀를 생각하면서 문득 나 역시 곁다리를 걸친 채 동시대를 살아가며 문학적 향수에 젖어드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보낸 시간들. 서른여섯 해, 상록수의 저자 심훈이 살다간 꼭 그만큼의 시간이다. 그가 감옥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를 보면서 어쭙지않게도 나는 내가 쓰는 서평이라도 잘 쓰고 싶어진다는 허망한 욕심 하나를 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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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자라는 성경 이야기 - 개정판
쟌 갓프레이 지음, 파올라 베르톨리니 그루디나 그림, 임금선 옮김 / 해와비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서른여섯 번째 서평

지혜가 자라는 성경이야기




쉽게 풀어쓴 성경동화




아이와 함께 읽고 싶은 욕심에 선정했던 책이다. 자연스럽게 책의 크기나 일러스트를 보면서 아들이 자기 책이라며 가져가 줄행랑을 친다. 이제 막 한글을 깨치고 한자 한자 글을 읽는 재미를 만끽하는 아들과, 글씨도 모르면서 거꾸로 책을 펼쳐드는 딸아이와 함께 보면 좋을 법한 책이다.

제목처럼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성경의 그것과 동일하다. 다만 독자층을 성인이 아닌 유아와 아동을 대상으로 포커스를 맞춘 까닭에 문장과 분위기가 딱딱하거나 무겁지 않으며 아이들 수준에 맞게 편집하고 쉽게 풀어쓴 노력이 돋보인다.




책은 성경의 내용 중에서 어느정도 일반화 또는 대중화 되어 있기에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친근하게 느낄만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구약의 시작인 ‘창세기’의 천지창조부터 신약의 예수탄생의 기원과 성경에서 가장 마지막 장에 자리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순서까지도 차분하게 빌려오고 있다. 물론 성경의 모든 내용을 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번 책을 통해 성경의 시작과 기독교가 갖는 종교관의 개념을 접하며 하나의 문화적 콘텍트로서 종교를 알아가는 그 첫 걸음을 순조롭게 내딛게 되는 일에 일임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딴은 다소 글(문장)의 양이 많아 영, 유아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은 듯하다. 부모가 먼저 읽어보고 요약해서 이야기해주는 형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하나의 내용이 끝날 때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아기의 기도”라는 편집을 실어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거나, 내용을 다시한번 요약, 강조하는 친절함을 제공하는 것도 이 책이 갖는 색다른 장점일 수도 있다.

이제 이번 지혜가 자라는 성경 이야기를 접하면서 아쉬웠던 점들과 몇가지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보자. 무엇보다 많은 생각과 아쉬움으로 작용했던 것은 이 책이 갖는 대중화와 일반화가 갖는 ‘범주의 한계성’이라는 데 있었던 것 같다.

 

성경을 바탕으로 하는 동화책의 주요 타켓이 각각의 연령층을 제외하고 타 종교관을 지닌 또는 지니게 될 대상자들을 수용할 가능성을 과연 얼마나 확보 하고 있는가, 라는 의구심 같은 것이다. 나는 어려서 기독교 가정에 태어난 축복으로 모태신앙을 갖게 되었기에 주일학교를 거쳐 중고등부로 올라가면서, 기독교라는 종교단체의 조직체계와 그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에 낯설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는 어떨까.  불행하게도 내 아이들은 그런 환경적 조건에서 충족 받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다섯 살 아들이 내게 던졌던 그 수많은 질문들을 책은 완벽하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예수님이 누구지? 하늘나라는 뭐지? 요단강은 어디있어? 교회는 뭐하는 곳이지?’

물론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의 눈을 마주보면서 천천히 생각하노라면 모든 질문에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책이 지니는 목적과 기능적인 측면에서, 아이들이 던질 수 있는 의문과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생기더란 말이다.




책은 단도직입적인 시작을 한다. 종교관이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이들에게는 뭐가 무엇인지, 읽다보면 내용을 알게 되긴 하겠지만 사실 심도 있는 이해를 끌어내기란 역부족인 듯하다.




쉽게 가자. 그렇지만 천천히 가자.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이 되려면 보다 많은 질문이 쏟아질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상해야 한다. ‘사랑하는 ……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책을 선물한다’,라는 포맷을 두기에 앞서, 성경 속 주요인물과 배경지식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요구된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보내셨는지. 물론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어른들에게 일임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바로 그런 까닭에 이 한권의 책이 가져오는 다양한 영향력 중에 몇 가지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싶다. 이쯤되면 책은 단순히 어른들이 보는 성경을 아이들 수준에 맞게 재편집한 것밖에 그 이상의 것은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존에 나와 있는 종교관련 아동서적들이 이미 좋은 구성과 편집으로 완성도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편집과 구성이라고 해서 모두들 따라가기 식으로 해서도 좋은 것이 아니겠지만, 밋밋하게 옮겨 쓰기식 보다는 무언가 교육적이면서 재미를 유발할 수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편집이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가 불교에 비해 그 역사는 짧지만 대중화에 있어 빨리 자리잡았던 것은 다양한 선교방법과 그 속에 진정성의 발로가 한데 작용해서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또는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미래의 수많은 예비 성도들을 위해, 우리는 한번쯤 한걸음 뒤로 물러나 낯선 이방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시선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선교활동은 보다 친절하고 세부적이어야 된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해본다.

각설하고 책 덕분에 나 역시 성경책을 다시 들춰보는 은혜를 경험했던 좋은 시간이었던 것만큼은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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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4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주석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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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다섯 번째 서평




끝나지 않은 이야기-한중록




역사란 아이러니하게도 당대보다는 후대에 의해 객관성을 유지하며 명확한 평가를 받는 듯하다. 시대적으로나 현실성에서 다소 멀어지고 흐려지는 감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대가 아닌 후대의 판단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조선조의 실록은 기록한 이의 사관과 더불어 당대의 정치적 흐름과 감추어진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어 보인다. 이를테면 왕의 자질도 문제겠지만 당대의 정치적 성향에 의해 과하게 의도된 채 부각되거나 혹은 삭제되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나고 다시 한 세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주관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비껴볼 줄 아는 여유가 생기는 것일까? 전대의 결과를 뒤집어엎을 만한 놀라운 반전의 결과물을 꺼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 조선의 정치판 이야기라는 생각을 갖는다. 이 또한 갈라진 당파들의 등락에 따른 결과물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조선의 분당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을까. 불행 가운데 다행스런 일은 딱딱한 한자어로 씌어진 오백년 조선왕조실록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이슈와 더불어 구중궁궐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범하지만 딴은 비범하지 않은 이들의 희노애락이 담긴 스토리를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대중매체나 학원가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소재가 되긴 했지만 이번 한중록의 배경이 되는 영조, 사도세자와 정조의 이야기가 거기에 들어가지 않을까. 사실 한중록을 알기 위해서는 선대의 이야기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번 책은 영조부터 시작하고 있으니 시대적 배경은 조금 뒤로 넘어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영조가 꿈꾸고 실현하고자 했던 당색을 타파하고 융합하기 위한 탕평이라는 개념의 시작은 선대 숙종 대의 다소 불안전한 정치적 흐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숙종이 됐든, 영조가 됐든 사도세자가 됐든 어쨌든 아버지와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 이야기이다. 사사로이 세간의 시선으로 봤을 때 조선의 역사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며 그 외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배경과 사건들의 배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있으니 바로 아비와 아들 사이에서 힘들게 저울지하며 애달프게 살아왔던 여인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처음 혜경궁의 한중록이 원본에 충실한 번역으로 새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제야 그 누구의 변명과 그 누구의 정치적 역사적 사관에 빗대지 않은 순수하고 명료한 그녀 혜경궁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런 까닭에 나는 혜경궁에게 변론의 기회를 서둘러 줘야 한다는 생각도 했었다. 시작은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혜경궁의 변론에 만족하는지, 어떤 생각을 머리속에 새로 짜넣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한중록은 혜경궁이 환갑을 넘기면서 각각의 해에 나름대로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쓰기 시작한 실재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한중록은 3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사도세자의 이야기, 혜경궁 자신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처가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는 바로 1부에서 기록하고 있는 사도세자의 이야기 즉 영조의 의해 사도세자가 뒤주 안에 갇혀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책은 지금껏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야담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도세자 이야기를 한층 격상시키는 데 역량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래전 먹물 들인 붓을 들고 한자한자 써내려갔던 혜경궁에 의해 그 노력은 이미 시작되었겠지만, 그 가치는 몇백년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짧은 소견으로 봤을 때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만 한정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한중록이라 알고 왔던 것에 수정을 가해야 할 것 같다.

혜경궁의 한중록이 갖는 가치와 의미는 이미 책 속에서 많이 거론된바 있다. 기존 실록에서 보지 못했던 이야기(한중록은 실록에서 보지 못했던 글, 또는 실록과 다른 견해를 보이는 글을 많이 싣고 있다)의 새로운 발견과, 서술자의 감정이 살아 있는 동시에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나름대로 중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특히나 이 글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고 가족과 손자에게 보이기 위한 용도로 쓰여진 책이기에 더 그 사적인 감정에 충실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녀를 조선조 역사에서 살다간 어느 왕가의 여인으로만 생각하기에 미련이 남는 까닭은 한 여인으로서, 아내의 자리에서 어미의 자리에서 또는 며느리의 자리에서 정치적 외압에 휘둘리며 살아온 그녀만의 풍파 많은 삶의 가치를 크게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성만이 갖는 섬세하고 꼼꼼한 시선의 흐름과 혜경궁 특유의 좋은 기억력(정조의 말을 빌자면 혜경궁은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잊지 않고 잘 기억해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으로 정치적사건을 직시하고 있다. 사건의 배경과 배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사의 고충을 덤덤하게 때로는 쓰라린 속을 쓸어내리듯 회한으로 가득찬 시선으로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선조 여류문학에서 허 난설헌이 늘 머릿속에서 떠돌았다고 할 때, 허씨와 혜경궁의 차이라면 보다 큰 정치적 배경과 시대적 흐름의 차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더불어 혜경궁에게는 넘지 못할 산맥으로 자리한 시아버지 영조의 존재가 있는 것도 큰 차이 중에 한 가지일 것이다.




1.2.3부 각각의 글들이 쓰여진 시대가 조금씩 차이가 나고 집필 동기 역시 때에 따라 다르다보니 이 장에서 한 이야기가 다음 장에서 다시 거론되는 식으로 중복되는 내용이 없지 않다. 그것을 중복이라고 봐야할지 부연과 보충 설명이라고 해야 할지는 읽는 독자에게 맡길 문제겠지만 말이다.

한중록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크게 몇 가지로 정해져 있다. 그 사건들의 배경과 관련인물 그리고 어떤 종결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서술과 그 영향력을 기록한다. 1부에서는 이런 사건들이 모월 모일에 있었다, 2부에서는 좀 더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이고 3부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각각의 장마다 혜경궁이 중심을 잡고 있는 “집필배경”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사도세자에게 초점이 있는지, 자신과 처가에 있는지에 따라 뒤로 갈수록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논하자면 한중록이라는 책 한권을 다 읽고나면 이 책에서 거론되고 있는 역사적으로 의미를 두는 몇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예습하고 복습하고 마지막으로 요약정리하는 그야말로 열심히 공부한 뿌듯함을 맛볼 수도 있을 법하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이들이 공감한 부분이긴 하지만 ‘한중록 깊이 읽기’의 편집과 내용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특히나 ‘한중록 깊이 읽기’에 대한 정병설의 관점은 상당히 객관적이라는 점을 중요시 봤던 것 같다. 기존에 몇 역사서를 접했을 때 석연치 않게 받아들여야 했던 저자의 역사관과 기존에 나와 있던 것을 요약과 인용이라는 단순한 방법에 의해 재탄생해온 책과는 분명 차별성을 확보하고 있다. 매우 꼼꼼하며 분석적이고 치밀한 노력도 돋보였으며 그 과정에서도 한중록과 조선왕조 실록의 차이에서 객관적 입장과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보였기에 개인적으로 그 가치를 크게 두고 싶은 부분이었다. 이를 통해 사도세자의 죽음과는 별도로 조선조 왕가의 풍습과 정치적 흐름 등의 세세한 부분까지 독자에게 양질의 지식을 가져다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불어 베일에 가려진 정조라는 인물에 대해 갖게 되었던 의문도 함께 풀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정조에게 있어 아버지 사도세자는 어쩌면 답이없는 문제였는지 모른다. 정조는 집권 당시 아버지에 관한 일과 외가에 대한 일등을 해결하려 들지 않는 묘한 행동을 보인다. 정조의 아들 순조에게 그 일을 맡긴다는 말을 자주 기록에 남기고 있다. 자신의 재임기간동안 해결을 보지 않으면서 아들에게 넘기려고 하는 의도에 대해 그 심중에 무엇이 들었나, 의구심이 발동했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이에 대해서 ‘정병설의 한중록 깊이 읽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노론과 소론 그리고 자신을 지지 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들을 모두 아울러 결속시켜 이끌기 위한 정조만의 정치적인 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사방에서 들고나는 불만을 잠재우고 민심을 수습하듯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각각의 신하들을 이끌고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법하다. 차마 자신의 아버지에게 벌어졌던 뼈아픈 일에 대해 스스로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하고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던 인물 정조는 그의 정치적 행로와는 별도로 심성 여리고 아비를 그리워하는 한 인간이었음에 분명한 듯하다.




이번 혜경궁의 한중록을 계기로 해서 역사에 대한 인식이 보다 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참에 미루고 있었던 승정원 관련 책과, 고전관련 책에 다시 시선이 가기 시작한다.

조선의 역사는 기록하는 이들이 왕 곁에도 있고 일반 백성인 민심의 중심에도 있었는데, 현대의 역사는 그 사실성과 진실성을 누가 보고 누가 기록으로 남길까. 현대의 역사는 후대의 누가 어떤 자료를 가지고 올바로 평가내려 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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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봉 2013-06-1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부터 한 번 읽어 보아야지 하면서도 읽지 못하다가.민속박물관대학에서 정병설교수의 강의를 듣고 용기를 내어 책을 사서 읽기는 했는데 나도 한국 말은 꽤 안다고 여겼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무식이 절절히 느껴 졌습지다..이 희승박사의 국어 대사전을 찾으며 읽으려니 진도도 안 나가는것은 고사하고 사전에 안 나오는 단어도 많았으니 불과 200여년동안에 우리 말이 이렇게 변했나 놀랍기도 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나같은 무식한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한중록을 읽기위한 낱말 사전'같은 것이 따로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부려봅니다...
아무튼 끝까지 읽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한 잘못된 역사적 인식을 바꿔 볼까 합니다....

월천예진 2013-07-12 16:08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님의 글이 저를 반기네요...
감사합니다.
기나긴 장마... 잘 견뎌내시기를...^^
 
60분 고독의 기적 - 삶을 바꾸는 나 혼자 한 시간의 비밀
장순욱 지음 / 창과샘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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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네 번째 서평

60분 고독의 기적-장순옥 지음




고독 활용법- 고독에 대한 자기계발서




자기계발서는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이를테면 어떤 일을 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이나, 그 일을 시작하기 위한 자세와 마음가짐 따위를 논하고 있는 책등은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 듯하다. 그렇긴한데 이번 장순옥의 책에는 무언가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치가 작용했던가 보다. 그녀는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스산한 바람과 바스락거리는 잎들이 서로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정겨운 계절, 이 가을과도 잘 들어맞는 듯한 소재가 아닌가 말이다. 고독이라...

저자도 얼핏 그런 이야기를 비추긴 했지만 고독이란 상당히 양면성을 지닌다고 봐야 될것 같다. 좋은 점과 나쁜 점.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얀 고독과 점정색의 고독과 같은 것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극단으로 치우지지 않는다면야 고독이 지니는 양극단의 성향과 그 이미지는 결국 고독을 지고 가는 이들에게 있어 분명 일정부분의 성장을 가져다주는 ‘감정의 지순한 과정’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다양한 접근방법으로 고독을 해석하고 있다. 단계마다 각각의 주제를 잡아서 그 안에 세세한 제목을 달고 비교적 알기 쉽게 비유와 인용,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고독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어떤 방법으로 고독을 수용하며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자못 진지하게 서술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60분 고독의 기적’을 한마디로 정의내리자면 그것은 어쩌면 “실생활에서의 고독 활용법”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고독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우선 고독을 알아야 하고, 친구로 삼아야 할 것이 순서일 것이다. 저자는 고독을 가까이 하며 삶을 살아갔던 이들을 소개하면서 끊임없이 독자에게 보이지 않는 감각세포를 자극하는데 노력한다.




고독한 사람이 성공한다, 고독 어려운 선택을 해결하다. 문제에서 벗어나게 한다. 목표달성의 핵심, 휴식 같은 친구, 고통을 치료한다, 고독을 즐기는 달콤한 방법과 마지막에 실천까지 이 한권의 책으로 우리는 고독을 처음 대면하고, 친해지며, 끈끈한 유대감을 서로 다지면서 인생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단계까지 다다르는 원대한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한편으로 이 책을 접하면서 생각한 것은 삶에 대한 용기가 고독을 더 넓게 수용하고 발전시킨다는 점일 것이다. 혼자 있음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이 정확한 표현일 아닐까. 저자가 수없이 강조하고 있는 ‘혼자 있는 시간’이 바로 내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설 수 있는 시간인 동시에 고독이라고 명명되는 한 순간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럴 때 혹은 저런 순간조차도, 활용할 수 있다면 어느 한순간이라도 함부로 하지 않고 다 같이 고독과 더불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했던 저자의 말에 나는 고독하려면 부지런해야겠다고 나직이 중얼거린다.




심도 있는 주제와 성실하게 써내려간 내용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쯤에서 부정한 심상일랑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문득문득 삐딱선을 불러들이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계발서류의 책들이 갖는 한계를 살짝 엿보았거나, 인문학 서적과 자기계발서류의 책들이 갖는 차이점을 인정하는 방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주제를 위해 저자는 해야 할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나의 큰 제목과 소제목 안에 차례대로 순서를 배열시켜 놓았다. 일일이 읽다보면 문득 한 가지씩 따로따로 완전히 독립되는 챕터들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차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다양한 방법과 시선으로 접근하며 일목요연하게 정리조차 깔끔하게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가지 수에 비해 열매는 부족해 보인다는 인상을 개인적으로 받는 것까지 어찌할 수 있을까. 많은 것을 접목시켜 깊이감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통해 우리는 보다 쉬운 방법으로, 보다 짧은 시간 안에 고독이라는 것과 교감을 쌓아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자신의 의견에 구체적 예시를 들어 자신의 논리에 명료성과 타당성을 부각시키는 장점을 활용한 이번 책은 고독에 대한 자기계발서이긴 하다. 그러나 진정 고독과 나란히 한 길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이가 있다면 비단 이 책에서 끝나지 않고 한층 더 나아가는 진보의 단계를 생각하게 된다.




멀리 돌아가야 한다 하더라도 한걸음 한걸음 깊은 발자국을 새기며 고독의 한가운데 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 했던가. 오늘 나는 고독과 친해지는 방법을 배웠고, 내일은 일체의 무(無) 그 한 가운데 내가 먼저 들어가 고독을 기다릴 줄 아는 깊은 내면의 성찰을 생각과 생각 속에서 다시금 배우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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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독서처방 - 매혹적인 독서가 마녀의 아주 특별한 冊 처방전
김이경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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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세 번째 서평.

마녀의 독서처방-김이경 지음




책-삶을 투영하다.




태풍의 위력을 보았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분노에 휩싸인 알 수 없는 자연의 정령들이 온통 내집 창문에 매달려서 미처 풀지 못했기에 정리하지 못했던 매듭을 급작스럽게 마구 헝클어 놓고 가는 듯했다. 상황에 맞지 않았지만 문득 그 노래가 생각이 났던 것도 같다. 무지개를 넘어서라고 했던 'somewhere over the rainbow' 그리고 우리의 씩씩하고 총명하기까지 했던 어여쁜 친구 도로시를 낯선 세계로 이끌었던 그 소용돌이치던 바람이 저 바람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또 왜였을까.

새벽내 강풍과 비바람에 아파트 뒤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세 그루의 나무가 애달프게도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아버렸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자연의 위대함을 운운하기에 앞서 드넓은 자연이 주는 광대한 에너지와 그 변화무쌍함에서 오는 다양한 모습 곁에 선 우리는 너무나 작아 보인다. 신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 태어나고, 모든 지식의 총체라고 불리던 인간이었으되 여리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너무 비약조로 가는 분위기인가. 하지만 인간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명약이 있으니 그것은 자칭 마녀라 부르는 김이경의 이야기처럼 책을 읽는 행위 바로 그것이 아닐까싶다.

개인적으로 책은 사람과 증상에 따라 아주 다양한 약 효과를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것이 플라시보 효과일지언정 말이다. 따지고 보면 플라시보 역시 효과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결과물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볼 때, 약제임에는 분명하고 또 누군가는 알면서도 모른 척 플라시보 효과에 매달리지 않던가 말이다.

책을 통해 위로받고, 책을 통해 치유 받으며, 책을 통해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면,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 보이는 우리들, 거대한 삶의 협곡에서 길을 헤매는 순수함과 아둔함을 함께 양 어깨에 이고 살아가는 내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참된 명약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고 부담감으로 무장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처음부터 힘들게 무거운 가방을 들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지독하게 홀로 강해지고 싶었던 한 사람이 마녀라는 이름을 달고 내 옆구리를  찔러댄다. 아니 진짜 마녀모습의 탈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각설하고 마녀 김이경이 풀어내는 책 이야기에 동참해보자. 준비물은 따로 필요치 않으며 다만 필요하다면 말끔하게 비워둔 가슴과 잡념을 지워 맑게 생각할 수 있는 머리의 어느 한 곳 정도라고 한다면 우스운 이야기일까.




김이경의 ‘마녀의 독서처방’ 안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잠자는 일 빼고 책만 읽었나 싶을 정도로 독서량이 상당했다.

책 겉표지에는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을 위해’라는 글이 박혀있다. 외롭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쓸쓸한 당신을 위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저자 김이경의 이야기는, 어느 한 순간 내지는 하나의 상황과 절묘하게 들어맞는 내용의 책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녀가 소개하는 책의 분야를 살펴봐도 단순하게 문학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과학과 정치 경제,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설렘, 사랑, 치유, 희망, 위로, 이별 이라는 주제를 정한다. 그리고 그 안에 하루를 살아가는, 수많은 빛으로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더불어 그 한곁에 늘 책 한권이 얌전하게 놓여 있다.




때로는 저자의 이야기에 한눈이 팔려 책 이야기는 슬며시 건성으로 읽어갈 때도 있었나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기에 실린 이야기가 하나같이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책의 내용과 주제 면에서 일치한다는 점일 것이다.

‘못생겨도 나는 좋아’ 라는 소제목으로 소개되는 일화와 다니얼 맥닐의 책 (얼굴) 내용을 들여다보면, 스스로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 안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어떤 의미심장한 결론을 얻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서 정체성을 찾기”때문이라 했던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체성과 얼굴의 묘한 관계를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뒷담화가 하고 싶을 때’라는 이야기를 풀어내던 장에서도 독자는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생각 하나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서 소개되고 있는 책은 조선 정조대 인물인 이덕무의 (키큰 소나무에게 길을 묻다)인데 기실 책 내용보다는 저자의 조언과 설명이 더 돋보이는 부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직 사실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 그리하여 남을 견딜 수 없는 곳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것, 그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새깁니다”

                                                  

“가슴에 원망이 쌓일수록 말을 멈추고 책을 펼치랍니다. 고칠 수 없는 남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고쳐야 하는 제 허물에 마음을 쓰라고 합니다. 그것만이 부끄러움을 더는 길이라고요. 더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제는 입을 닫아야겠습니다”

                                                    

                                                     -마녀의 독서처방 p150-




나이 이순이 넘어보이는 듯한 한 여인이 공원에서 울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 ‘울고 있는 사람에게’라는 이야기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위로 편에 실린 이 이야기는 (하늘가 바다끝)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중국작가들이 쓴 수필이라고 했다.

하반신불수라는 삶의 고비 앞에서 좌절하는 한 사람이 있었고, 또 다른 한사람 그의 어머니가 소개된다. 세상에 단 한사람 자기 혼자 힘들어했던 이 수필의 작가 스티에성 뒤에는 늘 그 그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아파해왔던 어머니가 있었다는 내용을 소개하는 김이경의 마지막 결론은 아련한 울림을 건내주고 있었다.




“우는 게 힘들어 삶을 저버리는 것보다야 엉엉 울면서라도 끝까지 살아내는 게 기특한 일일 테니까요.”

                

                                                     -마녀의 독서처방 p282-







전체적으로 건조하지 않은 분위기로 쓰여졌으며, 따뜻하고 정감어린 시선의 전형적인 에세이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정리하자면 책과 더불어 읽는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깊이 있는 상념과 그 해결을 열어주는 책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찬 ‘마녀의 독서처방’은 책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 이들에게, 또는 어떤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할지 망설이는 누군가의 손에 쥐어주면 좋을 법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하루하루의 고단하고 서글픈 그러나 진실된 삶의 모습이 담겨져 있음을, 숨은 그림을 찾아내듯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따끈하게 갓 나온 파전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주고받으면 좋을 법한 우리네 삶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책. 이것이 내가 이 책에 주고 싶은 최대한의 찬사가 아닐까싶다.




책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도 했지만, 생각하는 만큼 보이는 것도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는 듯하다. 똑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독자의 수용정도에 따라 반응은 다르다.

어찌보면 좀 가벼워 보일법한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깊이의 이면을 찾는 일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 아닐까.

각각의 이야기들이 주제와 그 주제에 맞게 소개되는 책과의 연계성에서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엿보이는 듯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감정의 변화와 그 순리를 설명하는 듯한 (설렘, 사랑, 치유, 희망, 위로, 이별) 의 6가지의 주제는, 어제와 오늘 또는 앞으로 다가설 미지의 시간 앞에서 한번쯤 고즈넉이 생각의 끈을 붙잡게 될만한 동기로 작용해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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