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 서울 문학산책
유진숙 지음 / 파라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서른일곱 번 째 서평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서울 문학산책




문학, 삶 속에서 숨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고 했다. 그런 마음과 생각을 기꺼이 수용하며 으레 당연히 그러하리라 믿고 생각하는 이들은 어쩌면 인생을 관조하는 법을 타인보다 조금 일찍 배워 익힌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물 살 그 언저리에 나는 늘 투덜거렸다. 귀에는 언제나 작은 이어폰을 끼고 다녔는데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내 종교관은 사뭇 극과 극을 달렸는가 싶다. 줏대 없음에 드러나는 종교관이 가져다주던 잡다한 종교관련 음악편력은 뒤죽박죽 그 자체였다. 장엄하기 그지없는 바로크 시대의 천주교 미사곡에서부터 시작해서 개신교 찬송가와 불교의 법구경독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낮이고 밤이고 길거리에서나 버스 지하철에서나 청춘이라는 시절을 견뎌내기 버거웠던 나는 늘 터질 것 같은 무언가에 대한 부담감으로 항상 불만과 투덜거림을 거닐고 다녔던가보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라기 보다는 언제나 가슴 한편이 아리고 쓰라렸다고 해야 더 솔직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삶의 모습이 때로는 아린 것에서 다시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환생 비슷하게 재창조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무심함 속에서 여러 날과 여러 해가 바뀌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재창조와 따뜻함이 가져다주는 이미지는 설렘과 부드러움이다. 여기 모나지 않는 둥그스름한 이미지의 책 한권이 있다. 나는 실눈을 뜨고 코를 벌름거리며 책장을 펼친다. 그것은 어쩌면 우스운 행동이었을지 모르지만 분명 저자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색깔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유진숙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리고 다정다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바지런하다. 그녀가 풀어내는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정겨운 이야기는 교편을 잡았던 그녀의 전직 이력과 여러 면에서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으며 딴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곤 한다. 이번 서울 문학산책을 소제목으로 한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는 기실 문학을 앞서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그 내용과 성격이 좀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문학보다야 문화가 걸맞지 않은가. 문학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문화 속에 들어가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구태여 이런 딴지를 거는 것은 책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까닭이 나올 법 하다.

책은 성북동과 정동, 그리고 청계천과 인사동을 둘러보고 대학로를 거쳐 북촌과 궁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유도까지 소개하고 있다. 소제목에서 알 수 있겠지만 각각의 내용에서는 물론 문학적 풍미를 짬짬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무엇이 주가 되는 것이며 무엇이 덤이 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책은 문학을 명분으로 하고 있으되, 이토록 삶의 향기 그윽한 장르인 문학을 각 장에서 소개되는 명소, 문인을 포함한 명인, 역사적 스토리 소개에 약간의 미적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생각인가.




각설하고 책 속으로 성큼 들어가보자. 책은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와 소설 그리고 그 빛나는 문학적 가치를 창조해낸 시인과 소설가를 저자의 시선이 머무는 장소와 더불어 한 곳으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백석과 법정 한용운의 이야기로 문을 연 성북동 이야기는 앞으로 펼쳐지게 될 이 책의 특색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문학과 문학 속에 담겨져 있는 시대적 사상적 배경 그리고 그 문학을 잉태해 품었을 근 현대 서울 곳곳의 풍광과도 연계되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정동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김소월의 초혼을 소개하기도 한다. 대중가수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 속에서도 문학성을 찾아내는가 하면 역사의 뒤안길에서 멀어지고 잊혀진 사실들과 기록들은, 저자 유진숙 그녀의 부지런함과 꼼꼼함의 결과물이 되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이것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때 큰 의미를 두었던 모 시인의 시 구절 앞에서 무언가 이룬 것은 없으되 무언지 모를 초심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시간이 흘렀다. 비오는 날 비를 맞으며 길을 헤매는 어린 소년을 보는 시인의 서글프지만 그 따뜻했던 시선의 온기가 아직까지도 유효한 듯 하다. 어쩌면 그것이 시의 힘인 동시에 시인의 힘이요. 인간본성에 기인한 문학의 힘이 아닐까.

그러나 청계천과 동숭동 더더군더나 궁궐에 대한 이야기나 양화진 선유도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문학과 문인 또는 문학적 풍미를 논하기보다 시대와 역사를 돌아보는 순례자의 모습과 더 닮아 있어 보이기도 했다.




‘박학다식’ 이것은 긍정의 힘이다. 문학성만을 본다면 그 깊이감에서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겠지만, 사실 책의 취지가 어디 문학과 문학성만을 위한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발동한다. 독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보는가에 따라 그 성격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비교적 상세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소개하고 있는 부분은 유진숙만의 노고이며 개성으로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 현대 문인들을 출신학교별로 분류 소개하는 것도 수고로운 일이었을 법하다. 그 노고에 나를 비롯한 독자는 어쩌면 근 현대 시인과 작가들을 새롭게 다시 알아가는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존에 이미 출간되어 있는 책과의 차별성에 있어서는 아쉬움 면이 적지 않아 보인다. 성북동과 광화문 덕수궁, 또는 청계천 및 궁궐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은 부분들이 알려진 내용들이다. 소개하고 있는 문학작품 역시 마찬가지여서 청변풍견,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 장소와 문학작품을 연계하며 소개하는 것 역시 기존에 출간된 책들과 다르지 않다. 딴은 어느 면에서 생각한다면 이번 책이 일반화와 대중화에 대한 기대치를 생각하면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부드럽게 편집된 인문학 안내 책자 같기도 하고, 쉽게 씌어진 작은 교과서 같은 이미지를 받기도 한다.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과 각각의 배경을 오버랩과정을 통해 소개하는 저자의 노력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저자에게 갖는 일종의 선입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느 면에서 교과서 비슷한 책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가지 카프 문학에 대한 각주 하나가 아쉬웠다면 이는 분명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설야와 임화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옴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미 독자가 카프문학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다분히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의 시각에서 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쪽에서 한설야의 입지가 굳건하지 못했고 반면에 임화의 위상이 높았다는 이야기, 그들의 월북 후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어쩐지 이 책에서는 가십거리로 보이는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인용을 표기하는 편집에 있어서도 문장 안에 글자 색만을 바꿔 인용하는 등 다소 눈으로 읽기 불편했던 점도 있었던 것 같다. 고리타분한 인식이긴 하지만 인용에 있어서는 직접 인용으로 따로 편집하는 게 제일 좋아보인다.




눈을 밝으며 밤길을 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행적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되리니.




동숭동 편에서 서산대사의 야설로 소개된 시조다. 몇가지 기억하고 싶은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 심중에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인 듯해서 여기 허접한 서평에 기록으로 남긴다.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책임과 도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 같은 문구가 아닌가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책 속에서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었던 귀천의 안주인의 소식을 접하고 난후 그 얼굴이 생각이 난다. 요란한 색이 있는 머리장식 따위도 하나 없이 화장기조차 눈에 띄지 않는 얼굴. 수수한 단발머리의 언제나 수줍은듯 엷은 웃음으로 문 앞에 서 있곤 했던 그녀를 생각하면서 문득 나 역시 곁다리를 걸친 채 동시대를 살아가며 문학적 향수에 젖어드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보낸 시간들. 서른여섯 해, 상록수의 저자 심훈이 살다간 꼭 그만큼의 시간이다. 그가 감옥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를 보면서 어쭙지않게도 나는 내가 쓰는 서평이라도 잘 쓰고 싶어진다는 허망한 욕심 하나를 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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