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독서처방 - 매혹적인 독서가 마녀의 아주 특별한 冊 처방전
김이경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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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세 번째 서평.

마녀의 독서처방-김이경 지음




책-삶을 투영하다.




태풍의 위력을 보았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분노에 휩싸인 알 수 없는 자연의 정령들이 온통 내집 창문에 매달려서 미처 풀지 못했기에 정리하지 못했던 매듭을 급작스럽게 마구 헝클어 놓고 가는 듯했다. 상황에 맞지 않았지만 문득 그 노래가 생각이 났던 것도 같다. 무지개를 넘어서라고 했던 'somewhere over the rainbow' 그리고 우리의 씩씩하고 총명하기까지 했던 어여쁜 친구 도로시를 낯선 세계로 이끌었던 그 소용돌이치던 바람이 저 바람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또 왜였을까.

새벽내 강풍과 비바람에 아파트 뒤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세 그루의 나무가 애달프게도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아버렸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자연의 위대함을 운운하기에 앞서 드넓은 자연이 주는 광대한 에너지와 그 변화무쌍함에서 오는 다양한 모습 곁에 선 우리는 너무나 작아 보인다. 신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 태어나고, 모든 지식의 총체라고 불리던 인간이었으되 여리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너무 비약조로 가는 분위기인가. 하지만 인간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명약이 있으니 그것은 자칭 마녀라 부르는 김이경의 이야기처럼 책을 읽는 행위 바로 그것이 아닐까싶다.

개인적으로 책은 사람과 증상에 따라 아주 다양한 약 효과를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것이 플라시보 효과일지언정 말이다. 따지고 보면 플라시보 역시 효과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결과물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볼 때, 약제임에는 분명하고 또 누군가는 알면서도 모른 척 플라시보 효과에 매달리지 않던가 말이다.

책을 통해 위로받고, 책을 통해 치유 받으며, 책을 통해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면,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 보이는 우리들, 거대한 삶의 협곡에서 길을 헤매는 순수함과 아둔함을 함께 양 어깨에 이고 살아가는 내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참된 명약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고 부담감으로 무장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처음부터 힘들게 무거운 가방을 들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지독하게 홀로 강해지고 싶었던 한 사람이 마녀라는 이름을 달고 내 옆구리를  찔러댄다. 아니 진짜 마녀모습의 탈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각설하고 마녀 김이경이 풀어내는 책 이야기에 동참해보자. 준비물은 따로 필요치 않으며 다만 필요하다면 말끔하게 비워둔 가슴과 잡념을 지워 맑게 생각할 수 있는 머리의 어느 한 곳 정도라고 한다면 우스운 이야기일까.




김이경의 ‘마녀의 독서처방’ 안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잠자는 일 빼고 책만 읽었나 싶을 정도로 독서량이 상당했다.

책 겉표지에는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을 위해’라는 글이 박혀있다. 외롭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쓸쓸한 당신을 위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저자 김이경의 이야기는, 어느 한 순간 내지는 하나의 상황과 절묘하게 들어맞는 내용의 책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녀가 소개하는 책의 분야를 살펴봐도 단순하게 문학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과학과 정치 경제,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설렘, 사랑, 치유, 희망, 위로, 이별 이라는 주제를 정한다. 그리고 그 안에 하루를 살아가는, 수많은 빛으로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더불어 그 한곁에 늘 책 한권이 얌전하게 놓여 있다.




때로는 저자의 이야기에 한눈이 팔려 책 이야기는 슬며시 건성으로 읽어갈 때도 있었나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기에 실린 이야기가 하나같이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책의 내용과 주제 면에서 일치한다는 점일 것이다.

‘못생겨도 나는 좋아’ 라는 소제목으로 소개되는 일화와 다니얼 맥닐의 책 (얼굴) 내용을 들여다보면, 스스로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 안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어떤 의미심장한 결론을 얻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서 정체성을 찾기”때문이라 했던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체성과 얼굴의 묘한 관계를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뒷담화가 하고 싶을 때’라는 이야기를 풀어내던 장에서도 독자는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생각 하나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서 소개되고 있는 책은 조선 정조대 인물인 이덕무의 (키큰 소나무에게 길을 묻다)인데 기실 책 내용보다는 저자의 조언과 설명이 더 돋보이는 부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직 사실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 그리하여 남을 견딜 수 없는 곳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것, 그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새깁니다”

                                                  

“가슴에 원망이 쌓일수록 말을 멈추고 책을 펼치랍니다. 고칠 수 없는 남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고쳐야 하는 제 허물에 마음을 쓰라고 합니다. 그것만이 부끄러움을 더는 길이라고요. 더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제는 입을 닫아야겠습니다”

                                                    

                                                     -마녀의 독서처방 p150-




나이 이순이 넘어보이는 듯한 한 여인이 공원에서 울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 ‘울고 있는 사람에게’라는 이야기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위로 편에 실린 이 이야기는 (하늘가 바다끝)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중국작가들이 쓴 수필이라고 했다.

하반신불수라는 삶의 고비 앞에서 좌절하는 한 사람이 있었고, 또 다른 한사람 그의 어머니가 소개된다. 세상에 단 한사람 자기 혼자 힘들어했던 이 수필의 작가 스티에성 뒤에는 늘 그 그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아파해왔던 어머니가 있었다는 내용을 소개하는 김이경의 마지막 결론은 아련한 울림을 건내주고 있었다.




“우는 게 힘들어 삶을 저버리는 것보다야 엉엉 울면서라도 끝까지 살아내는 게 기특한 일일 테니까요.”

                

                                                     -마녀의 독서처방 p282-







전체적으로 건조하지 않은 분위기로 쓰여졌으며, 따뜻하고 정감어린 시선의 전형적인 에세이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정리하자면 책과 더불어 읽는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깊이 있는 상념과 그 해결을 열어주는 책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찬 ‘마녀의 독서처방’은 책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 이들에게, 또는 어떤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할지 망설이는 누군가의 손에 쥐어주면 좋을 법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하루하루의 고단하고 서글픈 그러나 진실된 삶의 모습이 담겨져 있음을, 숨은 그림을 찾아내듯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따끈하게 갓 나온 파전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주고받으면 좋을 법한 우리네 삶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책. 이것이 내가 이 책에 주고 싶은 최대한의 찬사가 아닐까싶다.




책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도 했지만, 생각하는 만큼 보이는 것도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는 듯하다. 똑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독자의 수용정도에 따라 반응은 다르다.

어찌보면 좀 가벼워 보일법한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깊이의 이면을 찾는 일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 아닐까.

각각의 이야기들이 주제와 그 주제에 맞게 소개되는 책과의 연계성에서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엿보이는 듯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감정의 변화와 그 순리를 설명하는 듯한 (설렘, 사랑, 치유, 희망, 위로, 이별) 의 6가지의 주제는, 어제와 오늘 또는 앞으로 다가설 미지의 시간 앞에서 한번쯤 고즈넉이 생각의 끈을 붙잡게 될만한 동기로 작용해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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