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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향하는 물고기들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20년 4월
평점 :
바다로 향하는 물고기들
-세상으로 나와야하는 어느 용기와 당위성
시마모토 리오의 장편소설 바다로 향하는 물고기들이다. 표지가 예뻐서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싶다고 했던 누군가가 떠오른다. 작은 물병 안에 있는 소녀. 그리고 물병 안에 담긴 푸른 바다가 둥실 떠오르는 듯하다. 소녀는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듯한데, 소녀와 푸른 옥빛의 바다를 담은 물병 주변을 물고기 서너 마리가 원을 그리며 유영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 속에 또 다른 바다가 존재하는 듯하다. 그런데 병의 입구를 막고 있는 코르크 마개가 왜 그렇게 단단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물고기들은 바다를 동경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기억의 원천이자 고향이 바로 바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되는 건가. 물고기는 바다로 되돌아가기를 원하고, 사람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인간이 가장 원하고 보고 싶고 가보고 싶은 그 마지막은 어디일까?
책은 몇 년 전 tv에서 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상케한다. 하숙집이라는 설정이 무엇보다 정겹기도하고 예스럽게 다가온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하나의 정서일 뿐이다. 대학가에는 이미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고도 하던데 말이다. 자취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하숙의 개념도 아닌 새로운 개념으로 학생들끼리 모여 숙식을 해결하는 시스템도 있다는 걸 낯설어하며 들은 적이 있다.
어딜가나 사람들 속에 있어야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많은 사람이라도, 외로움에 익숙하다해도 결국 인간은 약해지기 쉬운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마와타 장 하숙집에 주인은 와타누키 치즈루라는 삼십대 초반의 여성이다. 그리고 이곳 마와타 장에는 어린 여고생을 연인으로 둔 야마오카 쓰바키(그는 이십대 여성이다)와, 훗카이도에서 도교에 대학으로 온 대학 신입생인 야마토 요스케, 야마토를 마음에 두고 있으나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또다른 순정파 여인 구지라이 고하루 그리고 집주인과 내연의 관계로 통하는 의문 투성이의 남자 마지마 세우가 함께 살아간다.
소설에 대한 첫인상은 어여쁘지만 친절하지 않다! 였다. 감각적이지만 단순하지 않다, 라고도 쓰고 싶어진다. 어떤 방향으로 읽어가는가에 따라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과 관계 속에서의 성장을 논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앞에서도 언급한바 소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주인공들의 비밀스럽고 은밀한 상처와 마주하게 되면서 소설은 한층 더 깊어져간다. 안으로 단단하게 여물어간다고 해야할까. 결국 인간은 상처 속에서 더 강해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는 설명조의 말을 끄적이고 있는 이 순간이지만, 이 모든 느낌과 감정들이 바다로 잠겨가는 또 다른 물병. 그리고 그 물병의 마개. 그 단단하게 조여들어 빈틈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코르크 마개와 무언가 이상하게 매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아련한 혹은 여전히 아린 상처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보통의 사랑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작가는 인물들에게 사랑을 배우고 깨달으며 다시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한다. 연극 동아리 선배인 에마와 도망치듯 떠났던 야마토의 여행은 익숙한 듯 보이는 성숙과 성장의 한 단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하면 구지라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 고야 선배의 모습도 이를테면 자신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성숙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말이다. 인물에 따라 사랑이란 것이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어느 정도의 보이지 않는 혹은 확연하게 드러나는 압력과 속박이 존재하는 어려운 이해관계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무엇이 건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건강한 사랑과 건강하지 않은 사랑의 개념에 대해 생각한다. 그 경계는 참 모호하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소설은 주인공들이 저마다의 인생에서 새로운 사랑, 새로운 관계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대고 싶은 사람과, 기댈 수 있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두 가지 요소가 충족되는 것이 더없이 좋은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더 나눠줄 것 같기는 하다. 이상과 현실의 문제인가보다. 그리고 역시나 선택의 문제인가도 싶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벽장 에피소드의 등장은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진다. 물론 그것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또 한가지 마지막 두 남녀의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 작가가 이들의 관계를 연인이 아닌 양자(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설정한 부분이 오묘하다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국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하나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그들에게 각자가 할 수 있을 만큼의 재능과 무한의 참을성과 인내심으로, 혹은 순수한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가치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틀을 깨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이끌어내고 있다고 봐야한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언제나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문을 열고 닫으며 살아가야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기 마련 아닌가. 그 문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동시에 타성에 젖은 낡은 틀일 지도 모르겠다. 늘 열기만 하고 열어둔 채 살아가다보면 닫는 일이 너무 힘들어질 때도 있겠지만,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어느 날엔가 도저히 열수 없을 것 같은 단단하게만 보이는 코르크 마개도 뻥! 하는 시원한 소리를 내며 솟구쳐오르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내가 열고 또 닫아야하는 문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살면서 배워가게 되는 부분인가 싶다.
느낌이 좋은 표현들을 기록해둔다.
-발치에 늘어진 그림자가 엷어진다. 달과 태양이 저무는 같은 하늘에 떠 있다. p75
-누가 이런 식으로 나를 긍정해주었던 적이 있었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느끼지 못하고 사라져갔던 시간들.
지금은 느끼지 못하는 척하기도 어려울 만큼, 야에코의 말이 투명한 바람처럼 불어간다.p76
-다르게 생긴 사람을 칭찬하는 게 싫으면 자기도 그렇게 달라지면 되지. 지금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으면 상대를 바꿔야 하고. p120
-해 저무는 골목길에 키 작은 내 그림자만 길게 늘어져 있었다. p137
-저물어가는 태양을 등진 집들의 기와지붕이 아궁이 속에서 훨훨 타오르는 것 같았다.p138
-인간은, 누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때 가장 화를 내는 존재다.p145
-머리 위에서만 비치는 불빛이 양 끝에서부터 야금야금 어둠에 삼켜질 것만 같아, 묘하게 불안했다. 자신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p177
-막 끝난 여름의 바람 같은 웃음에 괜스레 흔들리려는 마음을, 야마토는 무심결에 꽉 잡았다. p206
-에마 선배가 이길 수 있는 건, 이제 하라다 선배를 이기지 않아도 된다고 여길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때가 아니면 없을 거예요.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