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에게 있어 주의할 점 중 하나가, 비유나 직유를 쓸 때 똑같은 표현을 남발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저의 경우 글 쓸 때 똑같은 표현을 카드 돌려막듯이 여러차례 울궈먹은 적이 상당히 많아서, 이런 말을 하기엔 좀 부끄럽습니다만..저는 뭐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라는 변명을 하고 싶네요.ㅎㅎ

 

좋은 말도 여러번 들으면 감흥이 떨어지는 인간의 심리상,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같은 표현을 남발하면 곤란하겠지요.

 

무엇보다 자주 사용하다보면 참신성이 휘발되고, 진부한 표현(cliche)이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백옥같은 피부'나 '앵두같은 입술'도 처음에는 엄청나게 세련되고 독특한 표현이었겠지요.ㅋ

 

다음은 일급 작가들이 실수로 (아니면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쓴 표현들을 제가 매의 눈으로 찝어낸 것들입니다.ㅎㅎ

 

먼저 미치오 슈스케는 "외국의 동전에라도 새겨질 듯한 옆얼굴"이란 표현을 좋아하는 듯 보입니다.

 

코끝에 그 사람의 향기가 와 닿았다. 상처 없이 매끈한 감귤류에서 희미하게 퍼져 나올 듯한 향기. 그런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 향기는 어느 외국의 동전에라도 새겨질듯한 그 사람의 옆얼굴에 잘 어울렸다.

-미치오 슈스케, [구체의 뱀] p.71 (북홀릭), 김은모 역

나이는 30대 후반일까. 오똑한 콧대가 외국 동전에 새겨진 여자의 옆얼굴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p.179)

-미치오 슈스케,[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북폴리오), 김은모 역

 

슈스케가 이 표현을 좋아하는 것을 안 이후에는,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혹시 이번 책에도 그 표현이 나왔을까?..하고 찾게 됩니다.ㅎㅎ

이번 국내 출간 된 [광매화]에는 이 표현은 없었습니다.

대신 미치오 슈스케 스타일의 섬세한 표현으로로 연상의 여자를 기가막히게 묘사해 냈습니다. 아래를 읽어보시죠. 어떻습니까?

슈스케의 전매특허와 같은 아름다운 문장들입니다. 슈스케가 만들어 내는 풍경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면서 읽으면 어쩔 수 없이 빠져들게 됩니다.

 

연한 오렌지색 매니큐어를 칠한 발톱이 보였다. 왼쪽 새끼발가락 옆에는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깎아 만든 듯 단정한 그녀의 모습과 선명한 상처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그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조릿대 잎사귀에 베였어."

투명하리만치 하얀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

그녀는 이따끔 어린아이처럼 한 손으로 너도밤나무 가지를 훑었다. 그녀의 하얀 종아리가 마치 두 마리의 유순한 초식동물 같아 보였다. 언뜻언뜻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한참 동안 숨죽이고 바라보았다.

........

나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눈이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고 마치 그 부분만 다른 생물처럼 보였다.

-미치오 슈스케, [광매화] (씨엘북스), 한성례 역

 

다음은 우타노 쇼고! 이 책을 쓰실 때 낚시에 갔다가 손맛을 제대로 느끼셨는지, "낚여 올라온 물고기처럼"이란 표현을 같은 책에 두 번 쓰셨습니다. 여담인데, 이 책의 표지는 정말 미치도록 러블리합니다. 책의 주인공들이 갤러시 3에서 옵티머스 G로 걸어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저렇게 사진을 찍어 보았네요. 개인적으로 이 책의 후반부에 감탄,또 감탄했었습니다.

 

남자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일어서려 하지 않았다. 낚여 올라온 물고기처럼 푸들 푸들 경련했다.(p.39)

남자는 심하게 구토하며 낚여 올라온 물고기처럼 경련하다 곧 움직임을 멈췄다.(p.68)

-우타노 쇼고, [밀실 살인게임] (한스미디어), 김은모 역

 

 

(개인적으로) 2012년 출간된 최고로 재밌는 소설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개의 힘]!

이 책의 작가 돈 윈슬로는 "셜록 홈즈가 아니더라도"라는 표현을 사랑하는군요. (개인적으로는) 한 번만 사용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ㅋㅋ [개의 힘] 2권에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사진은 손으로 개의 모습을 만들어 본 것입니다.^^ 돈 윈슬로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파괴자들(savages)].. 보고 싶네요..

 

 

셜록 홈즈가 아니라도 그들이 리틀 피치의 손목을 잘라 출혈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p.305)

굳이 셜록 홈즈가 아니더라도 그곳까지 자동차가 오토바이를 따라왔으리라는 사실은 추측 할 수 있을 터였다. (p.529)

 

-돈 윈슬로, [개의 힘] (황금가지), 김경숙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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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1-1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음에 드는 비유가 있으면 머리에 콕 박아두는 편이라 뒤에 비슷한 문구나 비유가 있으면 어 또 썼구나 바로 알아채는 편이예요. 하긴 같은 비유가 한 책에 있으면 뭔가 어색하기도 하죠. 확실히 독특하고 유일적인 비유는 더욱.

에세르 2013-01-12 08:43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은 저와 비슷한 성향이시군요.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작가만큼이나 비유나 표현에 민감하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할듯 싶습니다. 특히 책으로 나올 때는 더 그렇죠.ㅋ
 

 

 

 

 

어쩔 수 없는 끌림.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 오는 책들이 있습니다.

 

해야할 일이 많기에 한 번 잡으면 뒷감당이 안되서 두렵지만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책을 부여 잡고 읽고 있게 됩니다.

 

 

[658, 우연히(Think of a Number)]로 국내 독자를 사로 잡았던 존 버든이 [악녀를 위한 밤]으로

 돌아왔습니다.

 

책 커버가 아주 유혹적이고, 전작이 너무 재밌어서 책을 보는 순간 마음이 흔들립니다.

 

 

어쩔수 없이 미끼를 향해 접근하는 한마리의 물고기가 되고 맙니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책을 향해 돌진하게 되고 마는군요.

 

 

보통 두꺼운 책들을 벽돌 두께에 비교하곤 하는데, 이 사진은 말 그대로 벽돌과의 비교입니다.

 

(단순하게 비교하는 제가 '단순' 그 자체 아닙니까?ㅋㅋ)

 

643페이지의 두께를 자랑합니다.

 

두껍고 재미있는 책들을 사랑하시는 벽돌두께 책 애호가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매력적인 주인공 '데이브 거니'가 등장하는 두 권의 소설..

 

두 권 다 끔찍한 살인게임을 다루고 있어

 

섬뜩한 두려움을 선사하지만, 그럼에도 유혹적입니다.

 

  이 사진은 특히 두 마리의 금붕어가 놀란 듯이 낚시 바늘을 쳐다보고 있어 맘에 듭니다.^^

 

 

존 버든의 [악녀를 위한 밤]의 원제는 Shut Your Eyes Tight (눈을 꼭 감아라)입니다.

그래서 그 제목에 맞춰 제 마음대로 찍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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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읽은 할런 코벤의 책이었는데, 굉장한 책이라 생각한다. 나는 미스터리나 스릴러의 빅 팬은 아니지만, 내가 이 책을 읽기 위해 앉았을때, 이 작품은 "페이지 터너"에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춘 종류의 책이었다. ★★★★★

 

 

 

 

내려놓을 수 없는 타입의 책 ('couldn't put down kind of book')이었기에 이 책이 맘에 들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었기에 계속해서 읽고 싶었다. ★★★★

 

 

 

이 책을 차에서 듣기 위해 오디오 북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교통 체증 속에서 나 자신이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집에 서둘러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책은 그 정도로 좋았다. ★★★★★

 

 

 

할런 코벤은 스토리텔러의 거장이다. 경고: 만약 당신에게 긴급을 요하는 일이 있다면, 이 책을 시작하지 마시오. 당신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다. ★★★★★

 

 

 


이 책 [숲]을 막 다 읽었다. 솔직히 나는 주말 내내 책을 내려놓기가 힘들었다. 고백컨데, 나는 코벤의 쓰는 스타일을 좋아하고, 미스터리 스릴러를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정말이지 내 읽었던 그의 책중에서 최고였다. ★★★★★

 

코벤은 점점 더 나아진다. ★★★★★

 

-GOODREADS 독자들의 반응-

 

 

 

 

 

[숲]은 어두운 비밀과 눈을 떼지 못하게하는 서스펜스로 가득차 있다. 코프랜드(Copeland)는 좋은 캐릭터다. 코벤의 베스트 캐릭터 중 하나고, 그의 처지가 독자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 David J. Montgomery,- Mystery Ink)

 

 

할런 코벤은 확실히 스릴러 쓰는 방법을 아는 작가다. 여러 플롯의 가닥들이 매력적인 결말로 발전되기 위해 서로 직조(織造)되어진다. 특히 소설의 도입부는 독자들의 주의를 사로잡고, 좀더 확인하고 싶게 만들 것이다. (Ushnav Shroff- BooK Review)

 

 

 

 

반전의 달인 '할런 코벤'의 작품들. (왼쪽부터 국내 출간 순서대로 놓은 '비채'의 라인업, 맨 오른쪽의 [위험한 계약]은 '노블마인'에서 출간된 것)

 

 

 

 

 

만약 [숲]이 당신이 경험한 첫 번째 코벤 소설이라면 책장을 덮는 순간 어느새 그의 나머지 작품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는 '코벤 매직'이다. -최필원 -'옮긴이의 말'중에서

 

 

개인적으로 2012년 최고의 스릴러 다섯권 중 한 권으로 뽑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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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왕팬들에게는 몹시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비틀즈는 저에게 의미있는 밴드입니다. 말랑말랑한 음악이 가득 담긴 비틀즈의  두장짜리 LP([White Album])가 분명히 제게 있었던 것 같은데, 친구에게 빌려주었는지 찾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스티븐 킹의 아들 조힐(Joe Hill)이 쓴 [뿔]에는 작가의 비틀즈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아래 글에 언급된 는 사람들이 떼로 모여있는 LP. 싱글은 [뿔] 앞에 있는 CD.    )

 

 

"나는 비틀즈를 아주 좋아합니다. 비틀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이며, 내가 선호하는 노래의 대부분을 썼습니다. 그들은 예술에 대한 내 많은 생각들을 형성해주었지요. (I love The Beatles. They're my favorite band, they wrote most of my favorite songs, they shaped a lot of my ideas about art.)"
2010년 5월 10일에 조힐이 자신의 트윗에 남긴 글입니다.

 

"음악에 그렇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봐." 리는 침착하게 말했다.  "시디는 비싸지 않나?"

이그는 당황했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니. 그건 마치 행복에 관심이 없다는 것과 같다.

(중략)

 

"넌 누구 듣는데?"

"잘 모르겠어. 이것저것. 최근엔 비틀스에게 홀딱 빠졌어."

'최근'이란 지난 7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너도 비틀즈 좋아해?"

"잘 몰라서. 무슨 음악인데?"

세상에 비틀스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충격에 이그는 휘청거렸따.

"글쎄, 비틀스 같은 음악이지 뭐.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

"아, 그 사람들."

리는 대답했지만 말하는 모양으로 봐서 창피한 나머지 아는 척할 뿐이라는 인상이 풍겼다. 그렇지만 그렇게 애써 아는 척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그는 아무 말하지 않고 시디꽂이로 가서 비틀스 컬렉션을 훑었다. 먼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생각하고 꺼냈다.  하지만 정말 리의 마음에 들지, 관악기와 아코디언 연주가 정신없다고 할지,여러 스타일이 미친 듯 뒤섞여서 록 즉흥연주가 영국 술집의 합창으로 바뀌었다가 멜로우 재즈로 바뀌는 식의 전개에흥미를 잃어버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소화하기에 조금 더 쉬운 것. 명확하고 귀에 쏙 쏙 들어오는 선율이나 로큰롤이라고 딱 들으면 알 수 있는 그런 음악들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White Album]. 다만 [White Album] 으로 비틀스에 입문한다는 건 20분 지난 영화를 보러 들어가는 거나 비슷했다. 액션은 있지만 인물이 누군지, 왜 그 인물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정말로, 비틀스는 이야기가 있었다. 비틀스를 듣는 건 마치 책을 읽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Please Please Me]로 시작해야 한다. (p.128) 

 

 

 

웃으면서도 이그는 풀이 죽었다. 비틀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빴다. (p.146)

(At the same time he was laughing, Ig was distressed. Not liking the Beatles was almost as bad as not knowing about them at all.”)

 

 

 

 

 

(조힐은 저술 작업을 할 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한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습성이 있는데,[뿔]을 작업할 당시에는 밴드 KISS의 음악인 "Heven's on Fire"를 8천번 정도 들었다고 합니다. 예상 외로 비틀즈의 음악은 아니었네요.ㅋ 관심 있는 분은 [뿔]의 전반적인 정서가 이 노래에 기대고 있으니 한 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뿔]이란 작품은 매우 매력적인데, 그 중에서도 저는 비틀즈에 관련된 윗 부분이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비틀즈에 대한 조힐의 애정이 듬뿍 담긴 저 재치있는 문장들은, 비틀즈의 팬들이라면 정말 공감하실 듯 싶습니다. 이빨이 떨릴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처럼, 저는 이 문장들이 좋았습니다. 아주 매혹적입니다. 몇번을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비틀즈를 좋아하는 조 힐이 자신의 작품 [뿔]에 이런 글을 쓴 걸 보니, 주인공 '이그(Ig)'는 혹시 작가의 분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 힐이 유명한 작가 아버지를 두었듯이 이그 역시 유명 인사인 아버지를 두었고, 조 힐의 집안이 작가 집안이듯이 이그의 집안은 음악가 집안이란 점을 생각해 보면 작가와 주인공이 자연스레 겹쳐집니다. 그런데 한 인터뷰에서 조 힐은 "'당신이 아는 것을 써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을 그들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언제나 피하려고 노력한다. [뿔]의 주인공인 이그는 나와 일부 비슷한 점이 있지만 매우 다르다"고  잘라 말합니다.  조 힐은 이그만큼 종교적이지 못하다고 하네요.

 

 

스티븐 킹의 아들로 태어나서 산다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인생일 것입니다. 조 힐이 한살이 되기 전에 스티븐 킹은 그의 첫 성공작 '캐리(Carrie)'의 판권을 팔게 되서 가족들의 재정적인 걱정은 종지부를 찍게 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작가적 야심이 있는 사람에게 아버지가 스티븐 킹이라는 것은 거대한 산을 등에 짊어지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내가 만일 죠셉 킹(스티븐 킹의 아들임을 알 수 있는 이름)으로 글을 썼다면, 장르 소설은 쓰지 않았을 것 같네요. 그러나 내가 만약  조힐이란 이름으로 글을 쓴다면, 원하는 무엇이든 쓸 수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한 일입니다. 10년간 글을 쓰면서 유명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12세에 지역 신문에 자신의 글이 실렸고 그 글에 대한 비평 맨 끝에 "조셉 킹은 베스트셀링 소설가 스티븐 킹의 아들이다."라는 글을 읽고, 작가는 깨닫게 됩니다.자신의 글이 온전히 자신의 글에 의해서 평가받기 힘들겠다라는 것을. 그것이 조셉 킹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조 힐이라는 필명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 킹이 자녀들에게 묻습니다.

"얘들아, 아빠한테 잠자기 전에 이야기(bedtime story) 듣고 싶니?"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싫어요!!!!!"

 

(방송 진행자인 래리킹이 말한 스티븐 킹과 그의 자녀들에 대한 이런 농담이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조 힐에 따르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힐의 아버지, 스티븐 킹은 위대한 이야기꾼이었고, 아이들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19세기의 가정처럼 함께 책을 읽곤 했답니다. 함께 문학적 토론이나 이야기 짓기 게임을 나누었던 거죠. 가령 12살 나이의 조 힐이 "매우 더러운 빌딩에서 그들은 싸웠다."라고 쓰면,킹은 그게 무슨 의미냐, 그게 회반죽이 떨어져 나가서 벽돌 안쪽이 보이는 거니? 어떤 냄새가 나니? 내 머리속으로 그것을 볼 수 있도록 정보가 더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아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어떤 책을 읽어라라든가  무엇을 보거라,라고 결코 지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자유롭고, 창조적인 분위기가 오늘의 조힐로 만들어준 듯 싶습니다. 조힐은 불과 11살에 조지 로메로 감독의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를 10회이상 보았다고 하는데, 그의 호러소설에 대한 경도는  이미 이때 결정되었다고 해야할까요? )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조 힐은 아버지 스티븐 킹의 문학적 DNA를 물려받은 것은 분명합니다만, 이젠 아버지의 명성에 그를 엮는 것은 이 빼어난 작가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일부분만 공개했지만, -보다시피- 그의 묘사는 실로 솜씨있고 요령이 있습니다. 어떤 장면은 정말이지 깜짝 놀랄 정도로 빠져들게 합니다. 그리고 어떤 장면에서는 사정없이 독자의 신경다발을 그러쥐고 흔들어 대고요. 그러면서도 깊이있는 철학적 주제가 작품 속에 수맥처럼 뻗어 있습니다. 대단한 작품입니다!

해리포터 이후 차기작을 고심하던 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뿔]의 주인공으로 낙점되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원작)이 워낙 재밌기 때문에 영화로 어떻게 변했을지 확인해 볼 계획입니다.

 

 

 

 

 

 

직접 만져보시면 아시겠지만, 책이 무척 그립감이 좋습니다.

테니스 라켓이나, 탁구라켓이 아닌 책에대해 그립감을 논한 것은

제가 태어나서 이 책이 최초입니다. 이 느낌..직접 만져보시면 아실 겁니다.

잡자마자, 읽고 싶어지는 타입의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 [뿔(Horns)]입니다.

 

 

 

 

변기 앞에 흔들흔들 서서 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순간, 자는 동안 머리에 뿔 두 개가 자라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놀라서 움찔 했고 열두 시간 만에 두 번째로 다리에 오줌을 지렸다. ( 뿔, p.11)

 

 

 

 

 

두둥실~책의 기묘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맞춰서 공중부양하는 책을 찍어 보았습니다.

(혹시 궁금하실 분을 위해 알려드리면, 낚시 줄을 사용해서 찍었답니다~그리고 포토샵으로 살짝 지웠더니..이런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선사하는 군요.ㅎ)

 

 

 

뿔 달린 동물인 사슴이 이 책 [뿔]에 관심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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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1-0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전자의 작용이 확실히 적용된다는 걸 보여준 책이 아닐까 싶어요.

에세르 2013-01-07 22:13   좋아요 0 | URL
Like father,like son. 부전자전..
피는 속일수 없더라구요.
데뷔작인 [하트모양의 상자]보다 훨씬 진일보한 느낌을 받았어요.
 
조화의 꿀
렌조 미키히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6월
품절


(유괴라는 소재를 담고있는 소설이라 사진의 배경을 어린이용 탈것을 이용했다. )

아무리 양보하고, 또 양보해도 이 책은 재미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렌조 미키히코의 전작을 읽어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들끓는 관심으로 렌조 미키히코의 국내 출간작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다. 그 동안 그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분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올해 발견한 일본 작가 중에선 단연코 최고라고 칭하고 싶다. 발견이다. 호들갑을 떨며 말하자면, 진화학자가 잃어버린 진화의 고리에 대해 명백하게 답해줄 멋진 화석을 찾은 것 마냥 기뻤다.


([조화의 꿀]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국 렌조 미키히고의 [미녀],[회귀천 정사],[저녁싸리 정사]를 구입했다.)


책은 두껍지만, 읽지 않은 부분이 더운 날 빨대로 쭉 쭉 빨아 마시는 차가운 콜라처럼 빠르게 줄어든다. 한번 책을 펼치면 읽다가 중단하기 힘들어서 생활이 곤란할 정도다. 이런 속도감의 획득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작가의 대화문 솜씨가 상당히 뛰어난 것도 한 가지 까닭이라 하겠다. 대화는 결국 행동, 묘사, 등장인물의 성격,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기에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읽은 독자들은 공감하겠지만, 몇 페이지 씩 이어지는 긴 대화들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 작품이 드라마 화 된 데에는 작품이 재밌다는 점 외에도 이런 위화감 없는 유려한 대화들이 한 몫 했을 듯 싶다. 스티븐 킹의 표현을 빌자면, 분명 렌조 미키히코는 ‘대화를 잘 듣는 귀를 타고 난 것’처럼 보인다.


(꽃은 조화지만, 사진의 벌은 진짜 살아있는 벌이다...)


유괴는 일본 미스터리물로 누쿠이 도쿠로의 [유괴 증후군], 덴도 신의 [대유괴], 히가시노 게이고의 [게임의 이름은 유괴]를 읽었기에 낯설지 않은 소재였고, 그렇기에 대체로 내가 읽어 온 작품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닮은꼴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나의 선입견을 가볍게 돌파하며 따돌린다. 유괴 미스터리의 최고 걸작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렌조 미키히코는, 전통적인 유괴 사건 소설의 낡은 방식을 복사하지 않았다. 독자가 갖고 있는 유괴에 대한 관습적인 인상을 지우고, 정형을 벗어남으로써, 순도 높은 재미를 끝까지 지탱해낸다.

몸값을 요구하지 않는 유괴범이라..범인의 목적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해하기 힘든 범인 이로군. p95

이러한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예측불허가 첫 장부터 끝까지 에너지를 잃지 않고, 독자를 빠져들게 한다. 작품의 얼개는 크게 3개의 축으로 되어 있다.

케이타의 유괴를 둘러싼 사건/ 공범자의 시각에서 본 사건/ ‘나(야스미)’라는 새로운 화자.

각 이야기가 각기 다른 색채를 띠면서도 유기적으로 완벽하게 맞물려 있다. 작가는 영민하게도 긴 이야기라 독자의 집중력이 떨어질 때쯤 새로운 국면으로 장면을 전환하여 분위기를 일신한다. 이 작품은 흡입력을 높여 ‘재미’라는 소설의 본령에 충실하면서도, 외도와 이혼으로 인한 가족붕괴가 비일비재 하는 현대사회에서 참된 가족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든다. ‘재미’와 ‘작품성’의 밀월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랄까.



‘(이 꽃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진실 혹은 거짓?”(p.358))


벌 그리고 팜므파탈

우선 제목에 ‘꿀’이 들어가기에 자연스레 ‘벌’이 떠오른다. 북홀릭에서 만든 멋진 표지에도 벌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벌’은 단순한 곤충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렌조 미키히코는 작품의 곳곳에 공들여 벌의 이미지를 새겨 넣었다.
작품 속의 한 등장인물은 자신이 어쩔 도리 없이 꽃의 꿀에 끌려드는 한 마리 벌 같다고 느낀다.

꽃 모양을 찍어 넣은 순백의 카드를 제외한 모든 카드가 의미를 잃고 게임에 결말이 난 것이다. 벌레로 치자면 그는 자신을 어쩔 도리도 없이 꽃의 꿀에 끌려드는 한 마리의 벌 같다고 느꼈다.(p.329)

여왕벌 격인 여주인공은 침을 숨기고 있다. 남자 공범자들은 충성심 강한 일벌이 된다.

미즈에의 눈동자가 날카로운 빛을 발산하는 하나의 점처럼 보였다. 여자의 몸속에 숨겨진 낚시 바늘에 걸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다. 그것은 여왕벌이 가지고 있는 호화로운 침이다. 이 여자는 남자 공범자 하나하나를 전부 일벌쯤으로 여기고 있다. (p.381)

앞선 예의 경우, 전통적인 유혹자(꿀)와 피 유혹자(벌)의 이미지다. 그리고 뒤의 것은, 여왕벌의 명령에 순응하고 순종하는 이미지를 표상한다. 이런 의미는 벌들의 생태가 군주적인 조직에 비유되기 때문이다. 유혹자와 명령자를 결합하면, 자연스럽게 느아르(Noir)의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중 하나인, 팜므파탈(Femme Fatale)을 떠올리게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엔 미즈에 (나중에 ‘란’이란 별칭으로 불린다)라는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여성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런 남자 주인공을 어둠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여주인공들의 예는 장르 소설에서 여성잡지 안의 화장품 광고만큼이나 흔하디 흔하지만,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은 팜무 파탈에 상투적인 이미지가 의식의 뒷전으로 밀려날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따라서 독자인 우리는 피유혹자의 위치에서 피유혹자의 갈등과 고뇌를 맛보며 작품 속에 빠져들게 된다.

문제는 그 여자가 남자를 포로로 만드는 보드랍고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슴과 허리 사이의 물결치는 듯 탄력 있는 곡선, 가느다란 발목으로 이어지는 쭉 빠진 두 다리의 라인. 몸뿐만이 아니다. 상대를 쳐다볼 때 눈동자에서 배어나는 검은 꿀처럼 농후한 물기. 때로는 마른 채. 때로는 젖은 채 침묵하고 있을 때도 음악과도 비슷한 신비한 말을 연주하는 입술. 그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그를 복종시키려 했다.(p.394)

한편, 벌은 붕괴된 가족과 모성에의 결핍감을 느끼는 유년의 주인공에겐 벌집이 따스한 분위기를 가진 단란한 가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결락감은 남자주인공이 유괴사건에 휘말리며 미즈에에게 빠져드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케이타와 마찬가지로 아직 어렸던 그는 벌집을 보려고 헛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시간이 되면 벌이 일제히 되돌아와서 그의 키만 한 커다란 벌집에 단란한 가족 같은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던 것이다. 벌집을 구경하는 것이 그 무렵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던 어머니는 병원을 퇴원해 친정에 가는 길에 몰래 헛간에 들렀다.(p.332)




[죄와 벌]과 [설국]의 오마쥬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이 책과 연관성이 깊다.)
작가가 말장난으로 벌과 꿀의 이미지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이식시키는 부분은 멋진 연출이었다.(일본어로 ‘벌(bee)’과 '벌(punishment)'은 동음이의어고, 죄는 ‘츠미’,꿀은 ‘미츠’라고 읽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죄와 벌]을 읽는 남자 공범자가 삽시간에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인 라스콜리니코프와 포개진다. 원관념을 말하기 위해 보조적인 자료들을 끌어들여 뒤섞고 잇대는 작가의 솜씨는 이것 말고도 여러 부분에서 숱하게 목도된다.

처음에 카와타, 정확하게는 카와타로 행세한 남자가 [죄와 벌]을 방에 남기고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하시바의 머릿 속에서는 얼굴이 닮을 리 없는데도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와 카와타가 겹치고 뒤섞여 하나의 남자가 되었다.(p.289)

[죄와 벌]외에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역시 이 작품에선 다른 문양으로 새겨진다. 작가는 위대한 고전이 품고 있는 무늬들을 변용하고 접합시켜 자신의 작품에서 새로운 자리매김을 가능하게 했다. (후반부의 쏟아지는 눈발과 터널 장면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는 [설국]의 첫 문장을 자연스레 상기시켰다.)


어두운 거울로 변한 차창에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소설 [설국]의 첫머리에 젊은 아가씨의 얼굴이 기차 창문에 환영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문득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그는 오른 쪽 뺨을 손으로 문질렀다. (p.429)




(벌, 꽃(조화), 꿀.. 이 세가지가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다.)

어째서 조화인가?

꿀과 벌과 꽃..원심분리하기 힘든 이 세 가지가 이 작품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미 작가는 ‘꽃’을 주제로 한 살인사건을 테마로 ‘화장(花葬)시리즈’로 일가를 이룬 전력을 갖기도 해서 ‘또 꽃인가?’하고 되물을 독자도 있을 듯 싶다. 그런데 기존의 작품과 구별되는 특이한 점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꽃은 특이하게도 ‘조화(造花)’라는 점이다. 왜 하필이면 가짜 꽃인 조화인가? (정확히는 ‘생화에 특수 약품을 발라 2년, 3년이 지나도 마르지 않게 만든 호접란으로 작가는 상정했다. (p.358)) ‘조화’는 진짜와 쏙 빼닮은 ‘가짜’를 표징한다.


렌조 미키히코는 ‘진짜/ 가짜’라는 개념을 작품 곳곳에 새겨놓았는데, 그것들 각각을 한자리로 불러들인 상징이 바로 ‘조화’인 것이다. 빛과 그림자처럼 공존하는 이 책에는 진짜(진실)/가짜(거짓)의 도식이 편재해있다.

진짜/ 가짜 아버지

당신은 야마지 마사히코를 아이 아빠로 인정하지 않잖아. 그렇다면 아이에겐 새로운 아빠가 필요하겠지. 그래서 내가 지난 달부터 그 역할을 자진해서 맡은 거야. (p.100)

경부님이 알고 싶은 건 결혼이 아니라 출산에 관련된 일 아닌가요? 케이타의 아빠가 정말로 야마지인지...., 진짜 아빠가 따로 있지 않은지....”(p.101)

케이타의 진짜 아빠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뜻이야? (p.166)
진짜/ 가짜 어머니

‘어머니가 가짜 어머니에게 진 것처럼'. (p.372)

케이타, 저 엄마를 알아? 진짜 엄마라는 것도 알아? (P.384 )

진짜 공범자를 닮은 가짜

사라지는 남자역할은 진짜 당신이 맡을 수 밖에 없어요..가짜 당신은 홋카이도로 죽으러 가고..(p.404)

진짜 나와 가짜 나

‘진짜 나’는 내년에 모든 계획이 끝난 후 설국에서. (p391)
그때까지는 그 가게의 ‘가짜’로 참아요.(p.392)

이것 말고도 언급할 수 있는 예는 많지만, 이쯤에서 나는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침묵하는 편이 좋을 듯 싶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것 외에도 작품 전체의 하중을 떠 받치고 있는, 그래서 작가가 철저하게 은닉하고 있는 ‘조화’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 진실을 열어 젖히게 되면 독자는 충격과 짜릿함에 경악하게 된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독자는 자신의 예측이 공중 분해되어 산산조각이 나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작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꽂힌 곳에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가 잠복해 있다. 독자의 예상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그 전복된 진실에 대면하는 순간 아연해 질 수 밖에 없다. 어떤 일본 미스터리 블로그에서 이 작품을 최고의 반전 2위에 올려놓은 것을 보았는데,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도 나처럼 작품 말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책을 덮으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화(造花)라는 기분이 든다. 거대한 사기극에 휘말린 듯한 기분이랄까. 가짜 꽃이지만 농밀한 단내가 나서 독자를 유혹한다. 마치 여주인공 ‘란’처럼. 그 끈적끈적 들러붙는 달콤함은 거부하기 힘들다. 분명 독자는 꿀에 취해 책 주변을 잉잉거리며 맴돌았던 한 마리의 벌이 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일본 평론가 센가이 아키유키(千街晶之)에 따르면, 렌조 미키히코는 장편을 쓸 때 작은 반전을 집요하게 쌓고 또 쌓는 소설작법을 주로 추구한다고 하는데,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닌 듯 싶다. 밝혀지는 진실에 놀라고 또 놀라다 마지막에는 심정적으로 주저 앉게 된다.

(벌 한 마리가 범인 주위를 날아다니는 것 아닐까요?...범인의 몸에 숨겨진 꿀을 필사적으로 찾는 것 처럼.(조화의 꿀-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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