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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팬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작품
2012년 이래로 [스노우맨], [레오파드], [레드브레스트]같은 요 네스뵈(Jo Nesbo)의 걸작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한국 독자들의 책장 한켠을 차지 한지 불과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이제 요 네스뵈가 현존하는 스칸디나비아 크라임 소설의 대표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칸디나비아 느와르의 대표'...그동안 공개된 일급 작품들을 고려할 때 그에 걸맞는 합당한 자리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책을 펼쳐든 독자들은 일독 한 후, 자신들도 모르게 깨닫고 만다.
자신들이 읽고 싶던 책은 원래 이런 책이었다고...
(이런 상황은 미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Knopf 출판사는 (2011년기준) [스노우맨]의 경우 하드커버 1쇄를 6만부, [레오파드]는 6만 5천부, 그 다음 작품인 [팬텀]은 7만 5천부로 꾸준히 늘리면서, 요 네스뵈에 대한 판돈을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다. 번역된 외국어 소설에 대한 거부감으로 잘 알려진 미국에서 조차 그의 작품은 굉장한 호응을 얻고 있다. 이제 요 네스뵈는 '스티그 라르손'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획득했다. 요 네스뵈의 책은 그가 오스트레일라 여행 후 [박쥐]를 쓴 이래로, (2012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4천만부 이상이 팔려 나갔다.)
그리고 평균 600페이지 이상을 넘어가는 그의 두툼한 책들이 끔찍하리만치 짧다는 느낌을 받았던 사람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책에 머리를 쳐박고 몇 시간을 몇 분처럼 흘려보내는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던 시간.
'주의!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갑니다.'
이 말은 요 네스뵈를 읽는 독자라면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는 주의사항일 것이다.
안달이 난 독자들은 한 마음으로 요 네스뵈의 다른 책이 국내에 나오기만을 학수고대 했다.
그 기대와 염원에 대한 화답으로 마침내, 2014년 작가의 방한에 맞춰 기념비적인 데뷔작[박쥐]와 스릴러적 재능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걸작 [네메시스]가 공개되었다.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고, 기다렸던 작품이 두 권이나 출간되다니..어쩐지 인생이 한 뼘쯤은 행복해진 기분이었다. 작가와의 만남을 기뻐해야할 지, 그의 새로운 책과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해야 할지, 독자들은 그야 말로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 이미 단단했던 독자층이 좀 더 결집되는 것은 물론이고, 소구 계층의 확대와 발굴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게 되었다.
요 네스뵈의 에이전트인 Niclas Salomonsson은 자신의 중간이름(middle name)을 작품의 주인공인 해리 홀레(Harry Hole)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에릭(Erik)에서 해리(Harry)로 바꿨다는데,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이름에도 미들네임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사람을 나는 여럿 알고 있다. 간명하게 말하면 해리 홀레라는 주인공이 주는 매력에 저항하기란 어렵다는 이야기.
압도적인 도입부와 오슬로 그리고 소르겐프리
이 작품은 세 가지 큰 사건의 강줄기가 지나가면서 퇴적시켜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삼각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세가지는 오슬로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은행 강도 사건, 해리 홀레의 전 여자친구 '안나 베트센'와 연관된 사건, 전 편[레드브레스트]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해리 홀레의 동료 '엘렌'과 관련된 사건이다. (이렇게 이 정도로 두루뭉수리하게 이야기 하는 이유는, 아직 이 작품과 전작 [레드브레스트]를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스포일러를 극도로 자제하기 위함이다. 스포일러. 이제는 예의없음을 벗어난 하나의 범죄행위. 그런데 이런 스릴러의 속성상, 약간의 스포일러 없이 줄거리를 쓸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가위 바위 보를 하지 않고는 묵찌빠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딜레마. 민감한 독자들은 'OO의 죽음'이라는 줄거리조차 읽고 싶은 기분을 망칠 수 있다.시시콜콜한 세부사항을 알려주는 리뷰어들을 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나는 그런 장면을 목도할 때마다, 공항의 마약 탐지견처럼 상상속의 스포일러 탐지견이 스포일러를 작렬한 그 글 앞에서 미친듯이 흥분하여 컹컹 짓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
다만 작품의 초반부에 노르데아 은행 안에서 복면 은행강도와 은행원 '스티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은 -극도로 스포일러에 예민한 독자들에겐 미세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꽤나 압도적인 오프닝 장면이었다는 점은 밝히고 싶다. 요 네스뵈에 따르면, 이 장면이 [네메시스]라는 작품의 나머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열쇠가 되는 부분이며, 이 초반 10 페이지를 위해서 (작가생활을 통틀어 처음으로) 꽤 오랜시간을 정성들여 계획을 짜고 품을 들였다고 한다.
오랜 공을 들여 쓴 덕분일까, 이 부분의 문장들은 마치 숫돌로 막 갈아서 잘드는 칼날 같다. 신선한 쇠냄새가 날 정도. 독자는 노르데아 은행에서 복면강도의 총구 앞에 선 '스티네'가 느꼈을 감정과 맞닥뜨리게 된다. 25초안에 돈을 꺼내 담는 것을 끝내지 않은면, 스티네의 생명이 위험하다. 짹깍, 짹깍..스티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좋은 칼 하나라든가 예쁜 그릇 같은 것이 살림에 관심많은 여자를 기쁘게 하듯, 이런 잘 만들어진 장면 하나만 있어도 우리 같은 스릴러 독자들은 기쁘다. 작가는 은행강도 씬을 위해 작품을 쓰기 전 은행강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 사실성을 높였다.
오슬로. 작품의 주된 배경이다. 작가는 자신에게 익숙한 지리적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야기를 구축해나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친밀한 지역이지만, 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건물과 거리 사진을 찍으며, 몇번이고 작품의 배경이 된 주변을 돌며 정확성을 더했다고 한다. '쇠르세달스바이엔 가에 있는 경찰서가 제일 가까워. 통행료 징수소 지나면 바로 나오는데 은행에서 고작 800미터 거리지. 그런데도 경보기가 작동한 순간부터 은행에 도착할 때까지 3분 넘게 걸렸어.(p.41)" 라고 요 네스뵈가 묘사했다면, 실제로도 그런 것이다. 나는 책의 앞에 프린트 되어 있는 오슬로 중심부 지도를 살펴보며, 자전거를 타고 소르겐프리 가와 인두스트리 가를 돌며 꼼꼼하게 메모를 하는 작가를 상상했다.
"소르겐프리는 크리스토프 왕의 소유였던 궁전 이름이라네. 아이티의 왕이었는데 프랑스 군의 포로로 잡혔을 때 자살했지. 소르겐프리 성은 상 수시 성이라고도 블렸는데, 둘 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다는 뜻이야. 그러니 소르겐프리 가는 만사 태평한 거리라는 뜻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크리스토프 왕은 신에게 복수한답시고 하늘에 대포를 쐈잖나. 작가인 올라 바우에르가 이 거리에 대해 했던 말도 들어봤지? '소르겐프리가로 이사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p.129)"
[네메시스]의 원제가 [소르겐프리]임을 상기할 때, 이 구절을 읽은 나는 요 네스뵈가 어쩌면 이 대목을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문장 속에 이 소설의 요체라 할 수 있는 핵심 어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곳에 모여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만사 태평'이라는 말은 상당히 반어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요 네스뵈는 자신의 전담 영문 번역가인 돈 바틀렛의 번역이 훌륭하지만, 언어란 복잡한 것이기에 노르웨이어에서 영어로 번역되면서 사라지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이 작품에서 심어놓은 '유머'라며 아쉬워한 적이 있는데, 혹시 이런 제목도 익살적으로 들리도록 의도 된 것은 아닐지.
이것과 관련하여 작가가 이 책의 제목을 [소르겐프리]로 짓는 바람에 발생한 에피소드는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비슷하지만, 영국에서 번역되는 책들은 문화를 고려하여 영미권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대체로 새로운 제목을 갖게 된다. 빈티지(Vintage) UK 출판사의 편집장인 Briony Everroad는 Jo Nesbo의 "네메시스" (원작의 제목은 [Sorgenfri (근심없이, 슬픔없이라는 뜻)])를 가장 힘들었던 제목짓기 작품으로 꼽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르겐프리 거리(Sorgenfri).."근심 없이(Without a Care)"가 도무지 영어권 책 제목다운 느낌이 살지 않아서 "Easy Street (편안한 거리)"라고 좀 더 부르더운 제목으로 바꿔 보았지만, 스릴러 제목으로는 전혀 무섭지 않다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네메시스] 출간 당시는 영국의 독자들에게 요 네스뵈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던 시절이라, 독자들에게 '범죄의 냄새가 풍기는 메세지'를 줘야만 했기에 이 책은 몇 개월 동안 [하우스 오브 페인(House of Pain)]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우스 오브 페인'은 이 작품 속에서 강도수사과에 배정된 방으로 감시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연구, 편집, 복사하는 곳이다 )
최종적인 제목으로 채택된 [네메시스]는 작품과 꽤 잘어울렸다고. 요 네스뵈의 전담 번역가인 돈 바틀릿(Don Bartlet)과 편집장이 오랫동안 머리를 긁적이면서 고민한 보람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제목이 주는 이미지가 전혀 무섭지 않고, Walking in the Air란 곡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과 동명 타이틀인 [스노우맨] 역시 선택하는데 애를 먹었다는 후문.
노르웨이의 오슬로... 말하자면, 서구 독자들이 좋아하는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랜드를 일컫는 말)' 본토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이 지역이 밤이 며칠간 지속될 수 있고,시체를 숨길 수 있는 고독한 장소가 많다는 이유로 살인하기에 완벽한 장소라는 편견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회색빛 우울함이 도시 전체에 착색되어 있고 뼈의 심지까지 파고 드는 추위...이런 요소는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스릴러에서 장소 자체가 또 다른 등장 인물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요 네스뵈는 초기 오슬로 3부작 ([레드브레스트]-[네메시스]-[데블즈스타])와 [스노우맨]등이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 초기작품 [박쥐]와 [바퀴벌레]의 경우 시드니와 방콕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작가는 오슬로를 작품에 전혀 이용하지 않았었다. 일부러 자신의 도시 오슬로와 거리 두기를 한 느낌까지 있다. 오슬로가 작품의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네메시스]였고, 그 정점은 그 다음 작품인 [데블즈스타]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오슬로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오슬로는 유럽의 외곽같은 느낌의 도시지만, 마약과 관련된 범죄가 많이 일어나며, 그것이 범죄 소설에는 꽤 잘 들어맞는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오슬로라는 도시의 생생한 디테일이 작품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데블즈스타]는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네메시스]에는 노르웨이 뿐 아니라, 브라질도 배경으로 짧게 등장하는데, 이 곳도 작가의 경험에 기인한다. 17살이 되고 나서야, 해외 여행을 하게 된 네스뵈가 떠올린 가장 좋았던 해외 여행은 바로 젊은 시절 갔었던 브라질 여행이었다고. (지금은 흔한) 여행가이드책도 없이, 오로지 지도에 의지하여 다녀왔다고 한다.
(요 네스뵈는 내부의 적에 대한 영감을 '내안의 살인마'로 부터 얻었다)
본격 스릴러에 다가선 작품- 탄탄한 플롯과 뜻밖의 진실
잘 알려지다시피, 오슬로 3부작은 경찰 내부의 적(敵)과 '엘렌'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것이 큰 줄기를 이루는데, 최종적인 해결은 다음 권인 [데블즈 스타]에서 이루어질 듯 싶다. 경찰 내부에 괴물이나 정신병적인 악당이 등장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네스뵈는 '내부의 적은 외부의 분명한 적보다 더 무섭다. 나는 짐 톰슨과 그의 작품 [내 안의 살인마(Killer inside me)]의 팬이다. '내 안의 살인마'는 다소 싸구려 느낌이 나는 제목이지만, 뭔가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내게 자신 뒤에 숨은 내 안의 살인마'라는 개념이 두려웠다. 나는 사회 안에 다른 사회를 갖고 있는 밀폐된 환경에 대해 쓰는 것도 좋아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 3편 격인 [레드브레스트]는 봉인해 버리고 싶었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노르웨이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들춘 작품이었다. 그 과정에서 과거 시점과 현재 시점을 오가며 작품이 전개되는 큰 얼개의 작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읽어도 흥미롭고, 스릴러적인 측면으로 읽어도 좋은 작품.
그러나 그 후속작 격인 [네메시스]는,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오롯이 '진짜 범죄 스릴러'에 초점을 맞춰서 쓴 작품이라는 점이라 전작과는 확실한 변별성이 있다. 좀더 좁은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지만, 사건은 복잡하고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작가가 1년간이나 공을 들여 플롯을 짰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후반부 장악 능력이 대단하고, 몇 번의 반전이 있지만, 이야기는 결코 부자연스럽게 뒤틀리지 않는다. 이 두툼한 책이 서스펜스, 속도, 텐션, 흥미를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 하면서 페이지마다 흥분을 선사하는 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확실히 스릴러라는 단어가 지닌 엄밀한 의미에 가닿은 작품이 아닐까.
특히 [네메시스]의 플롯 사이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레드 헤링들이 독자로 하여금 소설 말미에 충격적 진실의 문이 열어젖혀질 때, 오소소 소름을 돋게 만든다. 레드 헤링 (Red Herring).... 붉은 색을 띠는 훈제 청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독특하고 강한 비린내를 풍기기 때문에 사냥개의 후각을 혼돈시키기 위해 탈출한 죄수들이 자기 몸에 레드헤링을 비볐다고 한다. 지금은 " 진짜 사실로 부터 사람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혼란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추리/스릴러 소설을 다룬 영미권 리뷰를 읽다보면 이 "레드 헤링"이란 단어가 남국 휴양지의 하와이언 셔츠처럼 흔히 등장한다. 이러한 장르 소설에는 작가가 독자를 뒤통수를 치기위해, 거짓 강조나 묘사적인 속임수를 통해 진짜 범인인 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인물이 반드시 등장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레드 헤링으로 사용해서) 범인이라고 추정했던 인물이, 작품 중간에 갑자기 살해당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를 비롯해서, 이 책을 읽은 후 많은 독자들이 레드 헤링(훈제 청어)를 굽는 냄새에 이끌려 미치듯이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냥개 떼중 한마리가 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여우 사냥에 속절없이 실패한 것은 물론이다. 모든 냄새를 뒤덮어 버리는 연막탄 같은 훈제청어를 기막히게 사용한 요 네스뵈의 필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바로 이 작품이다. 필요에 의해서 이 책을 재독했을 때, 작가가 곳곳에 배치해 놓은 실마리들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네메시스-복수의 여신 :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복수심 그리고 보복 전쟁
BC 600년, 로마인들은 직접 갚아주는 복수 체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지. 그래서 개인적인 차원이었던 복수를 공적인 업무로 바꿔 버렸어. 바로 이 여인이 근대 입헌국의 상징이 된 거야. 맹목적 정의. 차가운 복수. 우리의 문명은 그녀의 손에 달려 있지. 아름다운 여인 아닌가?(p.591)
네메시스-복수의 여신..이란 제목처럼, [네메시스] 곳곳에 복수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편재되어 있다.(일부 옮겼지만, 치명적인 스포일러는 없으니 안심하시라)
복수 이야기는 고대 비극을 포함해서, 많은 문학 작품에서 차고 넘칠 정도로 단골 메뉴였는데,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공감했고 열광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독자들이 '복수' 라는 테마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복수'가 모든 문화권의 보통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짓말이나 절도 정도는 용서할 수 있지만, 딸을 강간하거나,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당신은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누구든 응징하고 보복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협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복수 능력'을 부단히 정교하게 다듬어 왔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 인간은 앙심을 품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복수와 응징. 그거야말로 학창 시절에 얻어맞고 다니던 땅꼬마가 훗날 억만장자가 되는 원동력이지. 사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은행강도의 원동력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를 봐. 우리 경찰이야말로 차갑고 이성적인 응징으로 위장한 이 사회의 불타오르는 복수 아니겠어? " (p.257)
복수. 원시적이라고? 천만에. 복수는 사고하는 인간의 반사작용이야. 행동과 일관성의 복잡한 혼합물로, 지금까지 인간 외의 다른 종은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복수의 실행은 그 자체로 너무 효과적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가장 복수심이 넘치는 사람만이 살아남았지. 복수 아니면 죽음. 서부 영화 제목 같지? 하지만 입헌국을 만드는 것은 보복의 논리라는 걸 명심하라고. 눈에는 눈, 죄를 지은 자는 지옥에서 불타거나 최소한 교수대에 매달린다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지. 복수는 기본적으로 문명의 기초야, 해리.
(p.456)
요 네스뵈는 "인간만이 복수를 하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아나?( Did you know that humans are the only living creatures to practise revenge? )"(p.131)라는 말을 하며, 복수가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전형적인 특성임을 상기 시켜준다.
인류의 조상이 복수를 적응의 일환으로 선택한 이유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첫째, 인류의 조상에게 공격을 가했던 개체들로 부터 두번째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복수가 잠재적 가해자로 부터 애초에 그 의지를 꺽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복수가 인류 조상의 사회 집단에 '협력하지 않는' 구성원들을 벌하고 협력을 강요하는 힘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처벌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복수는 우리를 정화시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를, 인간의 영혼은 비극이 주는 연민과 공포로 정화된다고 했어."(p.258)
"자네는 이미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텐데. 그냥 정의가 최대한 수월하게 실현되도록 내버려 두지그러나." "복수는 안됩니다. 그게 우리 약속이었죠." (p.336)
이렇게 인류가 헤쳐나가야 했던 난관을 '복수심'으로 인해 해결했지만, 복수심은 인간 파괴성의 핵심이자 악행의 근원이기도 하다. 당장 신문만 펼쳐보아도 수 없이 많은 범죄의 동기가 '복수'라는 점을 쉽게 파악 하게 된다. 여기에서 역설과 모순이 존재한다. 어쩌면 요 네스뵈가 [네메시스]라는 작품을 쓰게 된 이유도 복수의 이런 속살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작가는 '전쟁의 동기로서 복수심의 역할' 쪽으로 관점의 확장을 도모한다.
"수십만 명의 피난민 아이들이 아프간의 모진 겨울을 견뎌 낼 수 없을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국 병사가 하나가 살해당했다. 유가족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들은 복수를 원했다.(p".196)"
바로 이 대목.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그 테러를 자행한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지원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에 보복하기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이어서 2003년 3월 20일에 알 카에다 테러조직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이들을 돕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하여 사담 후세인을 정권에서 축출하였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자국 군인을 투입하기 전에 융단 폭격을 통해 적지를 초토화하는 공격 방식을 보였다. 이런 무차별 공격에 의해서 죽은 민간인의 숫자가 -아이러니 하게도- 테러에 의해 죽음을 당한 희생자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응징을 위한 미국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이 도덕적으로 과연 합당한가하는 의문을 작가는 넌지시 전하고 있는 것이다.
[네메시스]는 이런 당대성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품이기에, 불가피하게 이런 암울한 시대적 밑그림을 거느리고 있다.
"미국 같은 나라, 그러니까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어떤 가치를 상징하는 나라는 자국 내에서 당한 공격에 대해 복수해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을 공격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대표하는 가치를 공격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니까요. 보복을 원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만이 민주주의와 같은 연약한 시스템을 보호하는 길입니다. " 한쪽이 주장했다. "만약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가치 그 자체가 희생된다면요?"(p.158)
정의는 물과 같아서 언제나 제 갈 길을 찾아 흘러간다고. 그들은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 가끔 위안이 되는 거짓말이었다. (p.443)
작가는 인간 개개인의 본성에 내재하는 복수라는 개념을 보복 전쟁으로 확대 시킨다. 그리고 '복수'가 국가간 발생하는 전쟁의 '원인'은 아니지만, 전쟁의 당위성(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보복' 개념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을 책 밖의 독자에게 던진다.
정의로운 전쟁이란 가능할까. 전쟁 당사국중 어느 편에 서냐에 따라 윤리적인 판단이 뒤바뀔수 있는데, 정당한 전쟁 명분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는 '정의'와 '복수'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까지 독자의 마음 속에 심어준다. 정의로서의 복수, 복수의 일종으로서의 정의..복수는 본능적인것이고, 정의는 이성적인것. 복수는 개인적인 것. 정의는 비개인적인 것. 복수는 순환이지만, 정의는 매듭짓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둘은 얼마간 서로 착종되어 있어 쉬 분리하기 어렵다.
작가는 '복수'라는 개념을 '자살'이라는 개념으로 횡단시키기도 한다. '복수'와 '자살'의 유비관계를 드러내는 구절.
네메시스의 여신이야. 전쟁이 끝난 후에 베르톨 그리머가 가장 좋아했던 모티브였지. 복수의 여신. 그러고 보니 복수도 자살의 흔한 동기라네. 자신의 삶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은 누군가의 탓이고, 그러니 자살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죄책감을 주려는 거지. 베르톨 그리머도 자살했다네. 아내를 죽인 후에 말이야. 아내가 바람을 피웠거든. 복수,복수, 복수 인간만이 복수를 하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아나? (p.131)
작품의 핵심이 관통하는 이 대목을 읽고, 처음 떠올렸던 것은 알베르 카뮈의 말이었다.
자살자는 형이상학적 면에서 괴로움을 당했기 때문에 자살한다.어떤 의미에서 그는 복수 하는 것이다. 그것은 <쉽사리 지지 않겠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요 네스뵈가 쓴 위 대목과 카뮈의 이 말은 손을 맞잡고 있을 정도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와 밀착되어 있는 언명이라고 본다. 이 구절은 이 작품과 관련해서 곰곰이 생각해 봄 직하다. 마침 [네메시스]에도 알베르 카뮈가 인용된다. "알베르 카뮈는 자살이야말로 철학에서 유일하게 진지한 문제라고 했네."(p.126)
요 네스뵈에게 있어서 '복수'는 오랜시간 동안 곱씹었던 테마인듯 싶다. 이 주제는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데, 가장 최신작인 [아들 (The Son)(2014)]에서는 그 어떤 책보다 명백하게 다루고 있어 '복수'를 테마로 한 네스뵈 소설의 정점으로 읽힌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네메시스와는 차별화하기 위해, 사도신경(the Creed)의 개념을 포함시켰다고. 복수의 아들이 재림하는 것. (사도신경의 '그리로부터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올 것이다'..라는 부분이 핵심 키워드인 듯.)
"기독교의 윤리는 복수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독교인들이 숭배하는 하느님은 그들 모두를 대변해서 복수해주는 위대한 존재야.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지옥 불에 타게 되리라. 그거야말로 일반 범죄와는 비교도 안되는 완전한 복수 행위지.(p.593)라는 말이 [네메시스]의 후반 부에 등장한다. 하므로 이미 사도신경의 개념은 [네메시스]에 그 씨를 잉태하고 있다. "그는 무언가 자신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자신을 숨겨주는 것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주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리라. 주님의 복수, 네메시스가 된 주님.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저울을. 처벌과 정의. 혹은 처벌도 정의도 없거나. (p.172)"
[아들(The Son)]과 [네메시스(Nemesis)]는 배경과 장치는 달리하지만, -복수의 변주라는-같은 맥락으로 읽힐 듯 싶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작품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복수'라는 무거운 내용에 짓눌리지 않고, 이토록 멋지게 가공하여 풀어낸 작가의 역량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의미 없이 소비되는 장르소설과는 확실히 다른 격을 선사한다. 깊이가 재미 옆에 나란히 자리한다고 할까.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변방에 머물렀던 스칸디나비아 느와르가 어느새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오게 된 것은 순전히 이런 작가의 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관심 덕택일 것이다.
총평
독자들은 일시에 혼란에 빠졌다.
가장 재밌게 읽은 '요 네스뵈의 소설'에 대한 순위 매기기가 [네메시스]가 등장함으로써 재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소설을 1위에 올려야 할까. 실로 즐겁고도 어려운 고민이다. 개인적으로는, [네메시스]를 종독한 후, 이 작가에 대한 신뢰도가 더욱 높아졌다. 어떤 작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감을 탕진하는데, 요 네스뵈는 읽는 작품마다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새로움을 선사한다.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의 4권에 해당하는 본작은 본격적인 해리 홀레 시리즈 여정의 시작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이전 작품들과 차이점은 무엇보다 해리홀레가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요 네스뵈는 레드브레스트(The Redbreast)]를 쓰면서 해리홀레가 누구인지를 작가 자신도 비로소 알았다고 말 한 적이 있는데, 그 다음 작품인 [네메시스]에선 더욱 발전한 캐릭터로 살아있는 존재같은 인물의 생동감을 담아냈다고 느껴졌다. 작가의 분신으로서의 투영물이란 느낌도 좀 더 진해졌다.
작가는 복수라는 자체가 함의하는 파괴적인 에너지에 초점을 맞추어, 복수에 관한 다양한 담론을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평이한 소설 언어로 풀어냈다. 일전에 네스뵈는 '악의 본질'에 대하여 이전에는 쓰여지지 않았던 방식으로 사실적이고도 독특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야심을 드러낸 적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에서도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네스뵈의 작품은 그저 납작하고 평평한 구조를 가진, 뻔한 장르 문학의 전형이 아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구역질날 정도의 평균성을 갖고 있는 대동소이한 스릴러들이 있는가. 재미나 지루함을 느끼기에 어정쩡한 작품들..그 책들이 망각으로부터 구제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철면피한 구태의연함 때문일 것이다.
읽어본 독자들은 느끼겠지만, 네스뵈의 작품은 기존의 스릴러들과는 다른 질감이 무엇이 있다. 이 작품은 '장르 소설'에 대해 삐딱한 편견을 갖고, 문전박대하는 독자들에 대한 도전이자 자극이다. 이쯤되면 네스뵈의 작품은 순수문학/ 장르문학이라는 편협한 이분법 구도를 교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독 후 새삼 느낀 것은 십 여년전에 쓴 작품이나 비교적 최근에 쓴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안정적이어서 균질성을 보장한다.우연히 인터넷에서 2008년 노르웨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 20선이란 짧막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이 20선중 요 네스뵈의 책이 다섯 권이나 포함되어 있어서 놀랐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꾸준히 읽힌다는 것이 방증인 셈이다.
(참고 삼아 이곳에 그 책이름을 부기하면, 2위 [스노우맨], 10위 [헤드헌터], 12위 [리디머], 14위 [레드브레스트], 18위 [네메시스]이다)
예술의 세계는 '질투라는 에너지로 이루어진 성운'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방광을 누르고, 동공은 크게 벌어진 채로, 상체를 책쪽으로 기울인 채로 몇시간이고 읽게 만드는 작품을 몇 년간 꾸준히 발표하는 요 네스뵈의 재능을 같은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작가들은 필경 시기하고 샘 낼 것이다.
'재밌다'라는 어휘는 견고하게 축조되어 있는 이 작품을 설명하기엔 너무 초라하고, 턱없이 힘이 없다. 이 작품의 재미를 설명하기 위해서 더 강력한 다른 형용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출판사 편집부는 안달이 난 독자들이 다음 권 출간을 서둘러 달라는 조바심 가득한 재촉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즐거운 불가항력이다.
독자들은 이제 [네메시스]의 다음 권 [데블즈 스타]를 읽을 희망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이번에 [네메시스]와 함께 출간된 해리 홀레 시리즈 1편인 [박쥐].
네스뵈가 창조해낸 형사 '해리 홀레'의 탄생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기에, 열성적인 네스뵈 팬이라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펼쳐질 해리홀레 시리즈를 즐기기 위해선 무조건 구매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신선하다. 독자에게 알랑대는 느낌이 없어서 좋다. 그리고 이미 이 때부터 네스뵈는 음악에 민감한 자신의 귀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첫 작품을 이렇게 잘 쓸 수 있다면, 역시 밴드의 리더보다, 주식중개인보다 작가가 되어야 마땅하다.
사족 1. [네메시스]에서 좋았던 점 (1)
짐 빔의 등장
예의 이 책에도 해리 홀레 형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짐 빔 위스키가 등장해서 반가웠다.
알콜은 해리 홀레에게 크립토나이트(슈퍼맨의 약점) 같은 존재.
데뷔작 [박쥐]에서 해리 홀레는 "자기만의 독을 발견하면 그것만 찾지 않나?(p.285)"라고 말한 후, 짐 빔을 선호하는데, [네메시스]의 여러 장면에서 짐 빔이 금빛 액체를 찰랑거린다.
이 작품에선 짐 빔을 도피처가 아닌, 벌 주기 위한 최종 수단이라고 의미부여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앞에 있던 콜라에 짐 빔을 보었고, 여자의 이름이 뭔지 신경쓰지 않았다. (p.37)
짐 빔을 마실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복통이 없는 대신 안개가 그를 감싸며 모든 감각을 둔화 시켰다.(p.103)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벌을 줘야만 죄책감이 해소되지. 자네가 절망에 빠졌을 때처럼 말일세, 해리. 자네의 경우, 술은 도피처가 아니라 스스로를 벌주기 위한 궁극적인 수단이야." (p.86)
사족 2. [네메시스]에서 좋았던 점 (2)
열쇠라는 소재
열쇠...신비나 수수께끼의 세계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그런 세계를 해명하는 수단을 상징한다.
"오는 길에 비브스 가의 도어록 가게에 들러서 내가 주문한 열쇠 좀 찾아다 줄래? (p.49)"
그러니까 열쇠는 총 세개인 셈이지. 하나는 어제 이 아파트에서 나왔고, 하나는 전기공이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세 번째 열쇠는 어디 있지? (p.130)
열쇠란 열고 닫는 힘을 지닌 상징적인 물체다. 고대로부터 열쇠는 지식과 미스터리,시작과 호기심을 표상하는 물건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번 작품의 해결이 열쇠와 긴밀한 관계가 있어서 좋았다. 특히 국내 번역판의 표지에 열쇠가 등장한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폴란드 판본의 [네메시스]는 피묻은 열쇠 그림을 표지로 [세번째 열쇠(Trzeci Klucz-The Third key)]라는 제목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사족 3. [네메시스]에서 좋았던 점 (3)
밴드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는 해리 홀레
사람들은 록 밴드 도어즈(Doors)가 프린트 된 티셔츠를 입으면서, 세상을 향해 나는 "도어즈(Doors)를 듣는 타입의 인간"이다라고 밝힌다. 이 때 음악이란 그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요 네스뵈는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네메시스]에서 해리 홀레 형사가 '요케 앤드 발렌티네르네'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거나 ( 그러고는 신기하다는 듯이 해리의 티셔츠를 바라보았다. 가슴팍에 그려진 '요케 앤드 발렌티네르네' 로고에서 시작된 땀자국이 이제는 셔츠 전체로 퍼져 있었다.p.76 ),'바이올런트 팜므'의 셔츠를 입고 있는 장면 (해리가 스웨터를 벗으며 말했다. 스웨터 안에 입은 진회색 티셔츠는 원래 검정색이었는데, 빛바랜 글씨로 'Violent Femmes'라고 적혀있었다. p.25)에서 나는 요 네스뵈의 말이 떠올라 빙긋이 미소 짓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비채 측에서 두 권의 요 네스뵈 신작을 발간하면서 사은품으로 '요 네스뵈'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마련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티셔츠를 입는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나는 요네스뵈의 작품을 읽는 타입의 인간'임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공항에 작가를 마중 나갔던 일부 독자들은 이 티셔츠를 입고 기다렸다고 하는데, 이 광경을 지켜본 요 네스뵈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족 4. [네메시스]에서 좋았던 점 (4)
[손자병법]의 해석
개인적으론 요 네스뵈가 '라스콜 바제트'의 목소리를 빌어 이야기하는 [손자병법]에 관한 작가의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네메시스]가 마음에 들었던 수십가지 이유중 하나. 아래에 일부만 옮겼지만, 책을 읽으면서 전문을 살펴보면, 작가의 독특한 시각에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깊이있는 혜안이 한 순간에 완성된 것은 아닐 것이다.
'손자라는 이름을 들어봤나?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의 장수이자 지략가죠. 손자병법(The Art of War)을 썼고요." "..... 표면적으로는 손자병법이 전쟁터에서 전략을 세우는 법을 다루는 것 같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은 갈등에서 이기는 법을 말하고 있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소한의 대가로 원하는 것을 얻는 기술을 알려주지. 전쟁에서 이긴 사람이 꼭 승자는 아니라네. 많은 자들이 왕관을 썼지만 정작 자기 병사를 너무 많이 잃어서 오히려 표면상으로는 폐배한 적군의 명령에 따라 통치해야만 했지...(p.304)
"우 왕이 궁녀들에게 병법을 가르치기 위해 손자들 초대한 이야기를 해줬던가, 스피우니?...손자는 똑똑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우선 궁녀들에게 행진하는 법을 설명했지. 정확하면서도 교육적으로. 하지만 북소리가 울리자, 궁녀들은 행진하지 않았어. 그저 킥킥 거리며 웃었지. '병사들이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장군의 책임이다.'손자는 그렇게 말하고 한 번 더 설명했어. 하지만 두 번째로 행진하라고 명령했는데도 같은 일이 벌어졌어. 그러자 손자는 '명령을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이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병사의 책임이다'라고 말하더니, 자기 부하 두명에게 궁녀들 중에서 우두머리 둘을 끌어내라고 했지. 그러고는 겁에 질린 다른 궁녀들 앞에 두 여자를 일렬로 세우고 목을 베었어. 왕은 자신이 아끼던 궁녀 둘이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칠간 병상에 눕게 되었지. 마침내 건강이 회복되자 왕은 손자에게 자신의 군대를 맡겼다네. 이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인 거 같나, 스피우니?" (p.402)
사족 5. [네메시스]를 읽고 감정이 휘발되기 전에 바로 써두었던 메모
국내에 [스노우맨],[레오파드],[레드브레스트]로 쌓은 명성과 평판은 이 작품을 통해서 더욱 공고해 질 것이다.
책을 덮고나서 잠시 눈을 감고 요 네스뵈의 끝 간데 없이 펼쳐지는 상상력에 감탄하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야말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현기증 나는 작품.
도무지 다음 장면이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명품 스릴러란 무엇인가. 바로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가 떨릴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같은 만족감을 준다.
단순하고 판에 박힌 스릴러가 아닌 품격이 다른 질감의 스릴러를 추구하고 지향한다면, 기분좋게 이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을 쫓으면
될 듯 싶다. 새로운 자극에 목말라 있다면, 이 작품이 합당한 해답이 될 것이다.
작가가 구축한 소우주는 이미 이 작품에서도 흠잡을 곳이 없다.
문학은 침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명제를 환기시킨다.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 물음표가 되어 머리에 박힌다.
독자의 세계관과 사유의 폭과 깊이를 넓혀주는 데 도움을 주는 소설이다.
인간 본성인 복수와 맹목적인 정의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빼곡히 채워 넣었다.
진짜, 스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