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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평점 :
스노우맨을 읽다
많은 사람들이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The Snowman)]은 겨울이 가기 전에 국내에 출간 되어야한다며 재촉했었고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런데 ,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겨울철에 나오면 더 괜찮겠지만 (운좋게도 2월 말경에 나왔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을 듯 싶다. 왜냐하면 이런 일급 작품은 계절을 타지 않기때문이다. 책이 선풍기나, 어그부츠 같은 계절 상품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이 작품은 노르웨이에서도 '여름'이라 할 수 있는 2007년 6월에 공개되었고,(출판사는 꼭 Snowman이란 제목을 붙여야 하냐며 불평아닌 불평을 했다는 후문이다.) 얼마되지 않아 노르웨이에서 가장 빠르게 팔리는 책으로 판명되었다.
또 혹자는 매력적인 홀레 형사가 등장하는 이 "해리 홀레(Harry Hole) 시리즈"가 순서대로 나오지 않은 점에 대해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했지만, 이 작품 (이것은 홀레시리즈의 일곱번째 작품)을 그냥 스탠드얼론으로 생각하고 읽어도 별 무리가 없을 듯 싶을정도로 독립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시리즈의 이전 내용을 몰라도 큰 지장없이 읽힌다.
네스뵈의 홀레 시리즈가 영어 번역될 때 시리즈의 첫번째부터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첫번째[배트 맨(The Bat man)]과 두번째 [바퀴벌레(The Cockroaches)]가 각각 호주와 태국의 해리 홀레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노르웨이가 아닌 이국에서 활약하는 노르웨이 형사를 그리고 있어 작가 스스로도 외국에 첫번째 소개작으로는 부자연스럽다고 판단했던 거다. 노르웨이 작가로서 노르웨이의 이야기로 매력을 뿜어내고 싶었던 것이랄까. 아무리 좋게 보아도 노르웨이인의 시각으로 호주를 바라보는 이야기가 1번타자가 되는 것이 영 께름칙했을 듯 하다. 게다가 시리즈의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작품에 첫번째, 두번째에 대한 충분한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작가 스스로가 스포일러가 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시는 분들이 분명 계시겠지만) 다섯번째 작품 [악마의 별]부터 출간하는 조건으로 판권을 팔게된다. [악마의 별 (The Devil's Star)]이 네스뵈의 영국 공습을 위한 첫번째로 선택된 이유는 작품자체의 질이 높았기도 했지만, 세번째 작품인 [개똥지빠귀(The Redbreast)]의 내용이 다소 무거운 감이 있어 처음으로 해리 홀레를 시작하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국내도 해리 홀레 시리즈의 순서대로 나오지 않고, 일곱번째인 [스노우맨]부터 출간되었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러한 이유들이 그 중 하나 일 수 있겠다. ) 그러나 홀레시리즈가 영국 내에서 자리를 잡고 있고, 폭발적인기를 얻고 있어서 영국 출판사 Harvill Secker(Random House in UK)는 올해(2012년) 10월과 내년에 첫번째와 두번째 시리즈를 출간하기로 결정했다고한다. 다만 노르웨이어 원제목 [배트맨]과 [바퀴벌레]는 다른 이름으로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한다.
이렇게 남의 나라 번역에 대해 구구절절 길게 쓰게 된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에겐 이 출간소식이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차이만큼이나 어찌되건 상관없는 관심밖의 이야기겠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다. 이미 홀레 형사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로서는 벌써부터 다른 작품이 번역되기를 고대하게 되었기때문이다. 뛰어난 작품이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나에게는 미미한 위성요소에 불과했던 이 노르웨이 작가의 [홀레 시리즈]를 읽고 싶어서 안달이 나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첫번째로 영국에 소개된 The Devil's Star도 읽고 싶고,작가가 개인적으로 아낀다는 The Redbreast도 하루빨리 읽고 싶은 국내 독자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노르웨이말을 모국어로 쓰는 관계로, 일단 영어번역이 되어야 국내번역이 좀더 용이해 질거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지 않은가.)
영상같은 소설 그리고 영화화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을 처음 만났던 것은 작년에 우연히 보게 된 책 홍보를 위한 북 트레일러 영상에서였고, 그땐 작가 이름보다는 인상적인 영상이 우선 파란 감자처럼 내 머릿속에 박혔었다.
[한 어린 소년이 한밤중에서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곧 자신의 엄마가 집에서 사라졌다 것을 알게된다. 엄마를 찾으러 내려가면서 그는 계단에 젖은 발자국을 발견한다. 두려운 마음을 갖고, 아이는 창밖을 바라본다. 소복히 눈이 쌓여있는 창밖에서 달빛을 받고 있는 눈사람을 본다. 눈사람의 검은 눈으로 침실 쪽을 쳐다보고 있다. 눈사람의 목에는 핑크색 스카프가 둘러져있다. 그 스카프는 자신이 선물했던 엄마것이다...]
이런 분위기로 시작하는 영상은 짧지만, 거역할 수 없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영화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분위기라면, 영화화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영화화 결정이 났다고 한다.
책을 읽은 독자는 느끼겠지만, 네스뵈의 이 소설은 영화같은 장면전환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더더욱 영화로 만들면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독자를 굉장히 궁금하게 만드는 장면에서 챕터가 끝나버리고, 과감한 생략 후 다음장면으로 연결된다. 가령, 희생자를 죽이려고 하는 연쇄살인마가 "자,이제 시작할까?"라고 말한후 그 다음에 해리 홀레가 희생자의 목을 눈사람과 함께 발견하는 장면이 나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이런 스타일이 영화에서의 편집처럼 빠른 속도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만 여겼는데, 잔인한 장면묘사를 과감하게 생략하는 방식은 네스뵈의 의도이다. 잔인한 나머지 장면은, 독자 자신의 공포로 채워 넣길 저자는 기대한다. "상상력이 내달리도록 하면, 공포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은 후에도 공포와 불안의 잔향이 저항하기 힘든 거대한 졸음처럼 독자를 엄습한다. 불가항력이다.
소설과 비교해서 영화가 너무 강한 매체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해리 홀레시리즈를 영화화하는 것에 주저했던 요 네스뵈는 마침내, 홀레 시리즈의 영화화를 허락하게 되었다. 책으로 상상하는 해리 홀레는 수백만명 이상의 모습이 될 수 있는데, 한사람으로 제한되고 고정되어 버리는 게 싫었던 것이다. 여러 영화사에서 판권을 사기위해 그에게 타진해왔었지만, 그때마다 마틴 스콜세지가 아니면 그걸 만들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식의 농담을 하면서 거절했다고 하는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결국 마틴 스콜세지가 그의 작품에 감독을 맡게 되었다.
영화화가 되어도 이 소설 고유의 매력은 따라갈 수 없을 듯 싶다. 판권을 팔때 꼭 노르웨이 오슬로를 배경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허락했기때문이다. [스노우맨]이란 작품의 묘한 아우라는 7할이상이 북유럽 특유의 분위기에 기인한다고 보는 사람으로서 그것이 휘발되어 버리면,무지방 우유로 만든 카페라떼처럼 위화감있을 듯 싶다.(아,맛이없다) 그러나 셔터 아일랜드 이후로 다시한번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콜라보레이션을 스릴러에서 보고 싶은 영화팬들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뜬금없이 러시아 인형 마트로쉬카를 사진에 넣은 이유는, 일단 이 인형이 눈사람 형태를 닮았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지만, 작품 안에 숨겨진 무엇인가가 계속해서 나온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 반전의 반전이 반복된다는 뜻이기도 하고.흠흠.)
다채로운 이력과 핍진성
저널리스트, 주식 중개인, 축구 선수, 저인망 어선 어부, 택시 운전사(비록 본인은 형편없는 택시기사였다고 밝히고 있지만), 록밴드의 리더이자 작곡가등의 다양한 이력은 그의 소설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핍진성을 획득하게 만들고 있다. 핍진성을 '진짜와 같은 정도'로 보았을 때, 경험에서 비롯된 글쓰기는 상당히 그럴듯한 개연성을 성취할 수 있다. 완벽한 거짓말을 위해서 많은 부분에 상당한 공을 들여 세밀한 사실성을 부여해야하는 것이 소설(fiction)의 기본이라면, 그의 다양한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되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콘서트 장면이라든가, 다양한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갖고 있는 록밴드의 경험에 의해서 상당한 설득력과 권위를 갖게 만든다.(여담인데, '음악이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해준다'고 믿는 네스뵈.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은 다른 해리 홀레 시리즈에서도 두드러진다고 한다. )
정식 작가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다소 뒤늦은 나이(37세)에 데뷔를 한 후에도 식지않는 필력을 왕성하게 보여주는 것도, 그가 갖고 있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이러한 원체험에서 길어올리는 양이 상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요 네스뵈는 소위, '글길 막힘'(writer’s block-작가들이 글을 쓸 내용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애를 먹는 상황)을 한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600페이지가 넘는 이번 작품에서 그의 말이 결코 허세나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두께가 두꺼워질 수록, 서사의 흐름과 무관하게 설정된 디테일을 남발하게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심지어 압축적인 밀도의 매력까지(이건 단편의 특징아닌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책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희생자들 모두 비밀을 품고있고, 그 비밀이 풀려지는 것만을 즐겨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인데, 그것에 더하여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사건전개에 독자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소중한 눈 보호법 리스트 중에 '1시간 독서후에는 10분간 눈에 휴식을 주세요'라는 말이 있다. 이 문구를 무색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눈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그 10분을 쉴수가 없었음을 고백한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주인공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야하는데, (전작을 모두 읽지 못했지만) 시리즈가 계속 인기를 얻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요 네스뵈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해리 홀레를 매우 개성적이고 공감가는 인물로 만들었음을 방증하는 듯 보인다.
밟을 수록 단단해지는 눈처럼, 그 캐릭터는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단단하게 구축되고 진화 되었을 것이다.
몇몇 독자들은, 해리 홀레가 마이클 코넬리가 탄생시킨 '해리 보슈(Harry Bosch)'를 연상시킨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름도 똑같다. 1970년대에 노르웨이에선 옷을 어떻게 입는지 몰라서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입는 시골 촌뜨기를 'Harry'라고 불렀다고 하는데,요 뇌스베가 주인공 이름을 해리라는 진부한 이름으로 지은 이유는 그것이 평범하고 촌스럽기에 주인공에게 어떤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한다. 내생각으론 맡은 사건에 대해 근성을 갖고 맹렬히 추격하는 열정이나, 내적 결핍을 지녔고, 타자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고독한 형사 이미지의 공통점이 홀레와 보슈를 같은 괄호안에 집어 넣으려는 이유일 듯 싶다.
알콜 중독자이자 일 중독자인 홀레형사. 중독이란 결국 외로움의 증거이고, 외로움이란 결핍에서 기인한다.강인하고 냉철하지만 다소 자기비하적이고, 분노를 머금은 이런 쓸쓸하고 인간적인 이미지가 독자를 끌어당긴다. 홀레는 특히 모순적인 양면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해리보슈와 차별화 된다. 그것은 디즈니 캐릭터 플루토와 구피의 차이 만큼이나 큰 차이다. (둘다 비슷한 느낌의 강아지 캐릭터이지만, 플루토는 말을 못한다)
모순으로 가득찬 인물인 홀레 형사.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우리는 매료된다.
네스뵈가 자신의 창조물인 해리 홀레에 대해 " 매우 시니컬하면서도 로맨틱한 사람이다. 법체계를 믿고 그것의 옹호자이기에 그는 범죄자를 사냥한다. 한편 그는 반항자이기도 하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그는 점점더 그가 쫓는 사람들과 닮아갔다. 홀레는 어두움쪽으로 표류하는 중이다. 여러측면에서 그 자신도 범죄자이다. "라고 설명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p.135에 등장하는 "안돼 말려들지마.악은 존재가 아니야. 날 차지 할 수 없어. 오히려 그 반대지. 악은 텅빈 공간. 선의 부재야. 지금 내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나 자신이야."라는 홀레의 말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준다. (그래픽 소설인, Sin City에서 Frank Miller가 창조한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세계관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것에 매료된 네스뵈는 이처럼 해리 홀레 내면에서 선과 악의 분투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숨을 쉬던 구멍은 총신이 아니라 숫자 8이었다. 밑에 있는 동그라미는 크고, 위의 동그라미는 작은 8.
밑의 커다란 원과 위의 작은 원.p.270
해리는 담배연기로 된 작은 원이 큰 원을 따라잡아 8모양이 되는 걸 바라보았다.p.315 )
*말할 것도 없이 8은 눈사람의 모양.
왜 눈사람인가?
눈사람이 겨울을 상징해서, 추운 노르웨이의 분위기를 보여주기에 적합하다는 일차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이렇게만 독해하면 좀 진부하다), 요 네스뵈는 좀더 다층적인 이유로 스노우맨을 이용한듯 싶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녹아 무너져버리는 눈사람은 유전병에 의해 시시각각 무너져 내리는 육체 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힐 수 있고, 눈사람 만들기를 겨울철 눈온뒤에 함께하는 '가족행사'로 보았을 때 그 무너짐은 혼외정사로 인해 붕괴되는 평화로운 가정을 상징할 수도 있다. 아니면, 만들어지기만 하고 그냥 방치되어 내버려지는 것이 특징인 눈사람은 외도로 인해 태어난 후, 애정결핍 속에서 크는 아이들을 표상할 수도 있다. 어쩌면, 요 네스뵈는 (그가 이 책 어딘가에서 해리 홀레의 입을 빌어 말하는) "선의 부재로서의 악( an absence of goodness)에 대한 매개물로 눈사람을 조각해냈는지도 모른다. 녹아 없어져 사라지기에 그가 말하는 "악은 존재가 아니며 텅빈 공간과 같은 것(a void)"과도 잘 부합된다.
내가 마지막으로 눈사람을 만들었던 것은 언제였나? 어렸을 적 이후로 만들지 않아, 이제는 아삼아삼하기만 한데,눈사람은 어쨌거나 어린아이들에게 친근하고도 무해한 존재였다. 그러나 여기 동심파괴 수준의 눈사람이 있다. 가위눌림이 걱정 될 정도로 두려운 악의 상징으로서의 스노우맨이다.
친근한 것들이 돌연 두려운 존재로 변이를 할때, 인간의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가령 다정한 엄마가 사실은 호랑이었다는 해와 달의 이야기처럼!) 공기처럼 익숙하게 누려온 것을 생소하고 섬뜩한 존재로 탈바꿈시키면서, 눈사람을 전복적으로 재조명한 요 네스뵈의 시도가 참신하다.
책 장정에 대해
영국의 Harvill Secker (Random House in UK)에서 번역 출간된 네스뵈의 소설 커버를 구경한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8권중 5권이 눈덮인 산속을 걷는 남자이거나, 눈이내리는 장면이 들어있을 정도로 천편일률 적이다. 그건 조금 식상하다고나 할까. 출판사측은 눈내리는 노르웨이의 춥고 스산한 겨울 분위기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작품 스노우 맨도 이팝나무 꽃처럼 하얗게 눈이 쏟아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요 네스뵈는 '외계행성의 무적함대처럼' 쏟아진다고 표현했지만) 추운 스칸디나비아반도와 눈은 원심 분리하기 힘든 상징적인 존재인듯. 역시나 이번에 국내 출간된 스노우맨 역시 표지에 눈이 등장한다. 하지만 비채 출판사는 예상과는 달리 미시적인 존재로서의 눈(雪)을 표현해냈다. 그점, 각별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평생을 눈결정체를 찍는 일에 바쳐서 스노우맨이란 별명을 가진 윌슨 벤틀리도 이 장정을 보았다면, 분명 흐믓해 했을테고, 책 장정에 이끌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처음으로 읽어달라고 졸랐던 어린 날의 요 네스뵈도 이 책을 보았다면, 그의 첫번째 리스트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 눈결정체 모형사진과 눈(물)방울 사진은 영등포 타임 스퀘어에서 찍은 것)
총평
이런 부류의 책이 갖는 큰 골격이 비밀과 폭로라면, 그 둘 사이에 내용을 적절하게 채워 넣어 독자를 긴장과 두려움으로 몰고 가는 것은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요 네스뵈. 어린시절부터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귀신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던 아이였다는 작가는 성공적으로 그의 특기를 이 책에서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는 독자를 솜씨좋게 쥐락펴락한다. 몇번의 크고 작은 반전이 책의 곳곳에 눈사람처럼 웅크린채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코카콜라의 제조 비법인양 끝까지 입을 다물어야 하겠지만, 이 책이 빠른 호흡을 갖고 있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게 만드는 미덕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장르문학에 대해 문을 걸어 닫고, 합판을 정면에 못질해 둘 정도로 배타적인 이분법(순수/장르)을 가진 완고한 독자가 아니라면, 당연히 이 책은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심지어 장르소설은 결국 '도피의 문학'이고 '표현의 문학'은 아니라는 편견을(이 논란에 대해 챈들러가 그 옛날에 쓴 [심플 아트 오브 머더]에도 등장하는걸 보고 이것의 뿌리깊음에 놀랐었다) 가지고 있는 독자라 할지라도, 마음을 바꿔 매료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하물며 기실 요즘 문학계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지워지고 있지 않은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서가에 꽂은 이후에도 한동한 자율신경계의 출렁거림을 느끼는 귀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장르소설에 대한 경험치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털세움근이 수축하여 소름이 돋는 독자도 있을것이다), 바로 이 책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초일류 크라임 스릴러를 통해 노르웨이를 방문할 수 있는 여권을 발급해준 요 뇌스베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끝으로, 이젠 Harvill Secker 출판사가 발간할때마다 책표지에 박아넣었던 '제 2의 스티그 라르손'이란 딱지는 더 이상 필요없을 듯 싶다. 요 네스뵈 (Jo Nesbo), 그 이름 자체로도 훌륭한 브랜드가 된 듯 보인다. 그의 책 헤드헌터(Head Hunter)에서 누누이 강조했던 "평판(reputation)"을 이제 그가 세계적으로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