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라피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2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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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라피아 Pornografia]


2월의 마지막 책. 아마 살면서 처음 읽은 폴란드 소설이겠다. 음. 우선 재밌게 읽었고 추천할만 하고 읽길 잘했다 생각하지만 리뷰를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구나. 읽으면서 떠오른 작품은 롤리타와 도리언그레이의 초상이었어. 그럼 어느 정도 느낌이 오지 않나요? 젊음, 선과 악, 질투, 양심, 도덕 등 가치에 대한 고민과 유혹을 겪고 고민하고 가차 없이 풀어 낸 소설이야. 꽤 논란도 있었겠어. 제목 포르노그라피아에서의 `포르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포르노가 맞고 그에 맞게 약간의 에로티즘은 들어가 있지만 `포르노`에 꽂혀서 읽으면 어리둥절하다 실망감에 욕하며 책을 덮으실테니 19금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 걸로.

일거리를 쫓아 타지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지내게 된 사내 비톨트의 시선과 감정으로 진행돼. 등장인물은 함께 일을 하게 된 어려운 사이 `프레데릭`, 일거리를 준 집주인 히폴리트 부부, 그 부부의 하나 뿐인 미성년 딸 헤니아, 헤니아의 오랜 친구 카롤, 헤니아의 약혼자 알베르트, 집에 잠시 묵게 되는 나치의 침략에 맞서던 용사 시에미안 정도인가. 꼭 연극처럼 각자의 역할과 캐릭터가 분명하고 모두가 주인공 비톨트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돼.

헤니아와 카롤, 모르기에 더 자극적이고 고민하지 않기에 더 과감한 십대 청춘 남녀의 조합에 동시에 주목한 비톨트와 프레데릭. 본인들은 가질 수 없는 그 젊음의 이야기에 참여라도 하고 싶은 관음병자 두 아저씨는 결국 연출로서 극에 뛰어들게 돼. 미끼를 던지고 자극을 하고 그 극을 성공시키기 위해 몇을 희생시켜.

음 굉장히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진짜 변태 아니면 쓰기 힘들 것 같은데. 지식인 가면 속 음흉한 변태. 그 와중에 체면을 대외적으로 깨고 싶지는 않아서 머리 굴리는 모습이 흥미로웠어. 그렇게까지, 마치 그것(커플 성사)이 서른 넘은 남자의 인생 목표인 듯.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이 일심동체로 눈치 샤샥 봐가며 극을 끝내 완성시키는 걸 보고 아 이걸 변태라 하는구나 싶었어. 그렇게 그 외의 재밋거리가 없나 한심하기도 했고.

그렇지만 그 목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본다면, 비톨트 프레데릭 콤비의 집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특히 나는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짓을 꽤 자주 꽤 심각하게 하기 때문에 저 변태적인 심리와 집착 희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로들면 전 남자친구의 불행 염원,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의 행방 쫓기 등. 아 왜 나의 모든 행복과 근심거리는 남자란 말인가. 하찮아라.

1인칭 비톨트 시점(주인공과 작가가 동명인 것도 흥미로움)에다 자잘한 심적 고민, 타인에 대한 분석과 감정을 없어보일만큼 디테일하게 옮겨놔서 비톨트의 시선에서 떠나 내 자의적인 캐릭터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한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랄까. ˝쟨 왜저러지?˝ 의문을 가질 쯤 ˝쟨 무심한 표정으로 아무 관심 없다는 제스처를 해보임으로써 사실 엄청나게 주변을 의식한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란 식의 분석으로 바로 이어져서 독자의 캐릭터 감정 읽어내기 기회를 뺐어버린다.

연애와 범죄 정치 등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읽으면서 어디로 가니 이야기야 ...?했는데 다 읽고나니 결국은 청춘에 대한 질투와 집착이 불러낸 연출극이었어.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끝내려고? 했던 이야기의 마무리는 정말 연극처럼 극적으로 끝났다. 이건 마치 `코끼리에게 물을`에 버금가는(아니다 이게 버금가는 결말은 아마 만나기 어려울테지) 자극적인 결말. 마음에 들었어.

리뷰는 여기까지이고, 이 책은 yes24에서 중고로 샀거든? 난 손 탄 책을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정가구매의 가치를 가진 책이 세상에 많지 않아서 흙서점에서 완전 새 것같은 중고를 사거나 yes24에서 `최상`으로 상태 분류가 된 중고를 사곤해. 근데 이번 책은 `상`급으로 처음 사봤거든. 겉 모습은 완전 깨끗하던데 몇 장 읽다보니 뭔가 먹다 흘린 흔적과 밑줄, 채점할 때 하듯 몇 부분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거야. 불쾌했지만 동그라미는 대체 어느 부분인가 하고 봤는데 아무리 봐도 문장으로서도 내용으로서도 의미가 없는 부분인거지. 원래 주인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을 만큼. 뭐였을까? 플레이트가 서머싯몸의 달과 6펜스를 읽던 때 어느 한 부분을 찍어서 `대화가 별같다`라는 감상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이 있었어. 그 때는 내가 달6을 읽어보기 전이어서 허허 이 감상적인 분...했는데 읽고나서 다시 그 캡처 부분을 봤더니 도무지 이해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인거야. 대화가 별 같기는..... 찢어져서 못 읽어도 전혀 의미 없을 부분이던데. `대화에서 모텔 냄새난다` 였으면 인정.

짜장이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소환해서 오늘 처음 바깥 공기 쐬었다. 좋다 밤공기.

발췌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인간의 행위 가운데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들이 있고, 이런 의미없는 행위들이야말로 한 사람을 정의한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것은 내가 문학을 통해 구현하고 있던 인간 이해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였다.)을 나는 알고 있다.

마술이 멈춰버린 듯 실망감이 밀려왔다. 매번 무언가 이루어지긴 하지만 사실 그 성과란 늘 당혹스럽고 모호하며, 애초의 계획이 지녔던 원대함과 순수는 바래고 마는 법이다.

˝시에미안이 우리를 배신했어.˝라고 프레데릭이 간단히 설명했다. ˝증거도 있어.˝
˝아하!˝ 카롤이 짧게 대답했다.
- 카롤의 매력이 단번에 느껴지는 부분. 좋다. 저 단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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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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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전 흙서점에서 익숙한 표지이길래 샀어. 아마도 서점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에 꾸준히 오랫동안 아니면 지금까지도 진열되어있는 책인가봐. 제목도 몰랐는데 되게 익숙해. 4일간 내리 잡고 있었고, 아마 포기하겠거니 했지만 읽어냈다. 용하다. 기록에 대한 집착의 힘인가. 이걸 읽다니. 난해하다고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어렵다고들 하는 차라투스트라도 재밌게 읽어냈고, 헛소리하다 끝난다 평을 듣는 고도를 기다리며도 되게 재밌게 읽었고, 한 편의 두꺼운 시집 같던 꿈 속에서 허우적대는 지상의 양식도 읽었잖아. 근데 진짜 이건 읽는 내내 맞게 읽는 건지 얼빠진다. 근데 신기한건 평점도 높고 꾸준히 팔리나봐. 대체 이걸 누가 왜 읽는거지? 그리고 이걸 의미있게 읽을만큼 잘 읽어내는 사람이 한국에 이렇게 많다고? 대단하네 다들.

장르는 무어라고 해야할까. 에세이, 소설, 시 세 가지의 짬뽕? 주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사랑. 줄거리는 없고 역사 속 철학자들의 사상과 신화 속의 이야기와 고전 소설 속의 연인 이야기 등이 자주 등장해. 화자는 아마 작가 파스칼 키냐르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고 화자 자신의 연애 이야기도 간간히 등장해. 그리고 욕정, 연애와 사랑은 엄연히 다르다며 그 `사랑`의 모습과 사랑할 때 갖춰야할 자세와 감정들과 태도와 뭐뭐뭐뭐 뭐 말이 이렇게 많아!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한 주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하고 있는데 내가 정리해볼게.

침묵이 중요하다.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힘이나 노력이 가해질 필요도 가해질 수도 없다.

강약중강약 식으로 엇! 이제 재미 붙었다! 했다가 /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했다가 / 어머 동감이요! 했다가 /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 조금만 더 읽으면 감이 잡힐까 했다가 / 어머 감 잡혔다!했다가 / 아니다 감 놓쳤다 를 500페이지 동안 반복했더니 너덜너덜 지친쳐가던 차에 거의 끝 부분에 나온 파스칼의 고백에 나는 욕을 할 수 밖에 없었지.

나는, 내가 읽으면서 몽상할 수있는 그런 책을 쓰려고 했다. 사유, 삶, 허구, 지식 마치 그것들이 하나의 몸인 듯 뒤섞였다.
​-지가 몽상하려 쓴 글을 내가 어찌 완벽히 읽어낼 수 있겠노.... 일기는 일기장에.

뭐 순수한 관계에 의식이 더해지면 더이상 진실될 수 없다는 주장엔 공감해. 작가가 인위적인 것을 경계하는 것, 자연스러운 사랑을 외치는 것은 요즘 내가 ˝감정이 섞이면 연애는 망해!˝ ˝모든 행동은 계산 되어야해!˝ ˝좋아한다 표현하면 망한다˝따위로 계산적으로 게임하 듯 하는 연애(혹은 사랑)에 적절한 조언이 되었고 상당히 낭만적으로 느껴졌어. 흐늘흐늘 그럼 난 그냥 좋음 좋다하면 되는거야? 하면서 근데 문제는 이사람 문장들이 너무너무 시적이고 극단적이야. 사랑은 죽음이고 이별은 탄생이라는 이런 뭔 말이냐 방귀냐 하는 식의 뜬구름 허우적 허우적 문장들. 알다가도 모르겠어.

그래도 그 와중에 느낀점- 친구나 가족이나 나중에 생긴 연인에게나 말 좀 줄이자 / 사랑이 찾아오면 너덜너덜 차일지언정 모든 걸 내던지고 집중하고 진실하자 / 관계에 노력하지 말자 / 스탕달 작품을 멀리하자(여기 자주 등장하는데 헬 기운이 스멀스멀)

지쳤으니, 다음은 쉽고 명확하고 유쾌한 책 읽읍시다.


발췌( 음? 발췌 많음_어리둥절 @_@)

아직은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여인의 팔에 우연히 팔꿈치가 스칠 때, 영혼은 왜 떨리는 것일까?

사랑의 발생은 어떤 목소리에 대한 복종일 수있다. 어떤 목소리의 억양에 대한 복종.

환영의 습격을 받는 것, 여행을 하는 것만이 예술의 본질은 아니다. 되돌아와서 악보를 기록하는 작은 용기가 추가로 필요하다.

여명(태고 시대) 이래로 최고령자는 이전 시기를 더 좋아하는데, 그 때는 그의 나이가 적었으므로 그렇다.

전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함은 굉장한 전달 수단이다.

성실하려고 애쓴 무수한 말들이 도리어 우리를 허위로 변질시켰다.

욕망하다desirer는 이해할 수 없는 동사다. 그것은 보지 않기다. 탐색하기다. 부재를 아쉬워하기, 희망하기, 꿈꾸기, 기다리기다. 욕망desir이라는 라틴어 단어와, 2천 년 후에 재앙desastre이라는 프랑스어 단어가 정확히 같은 어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기이하다.

인간들의 삶이 복잡한 까닭은, 이중성이 그들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적으로 그리고 언어학적으로.반만 동물적이고, 반은 언어적인 삶.

독서는 자신에 대한 망각이다. 피를 흘리면서 책을 읽기란 불편하지만 죽어가면서도 책을 읽는 것은 가능하다. 책읽기는 이 세상과 어긋나고 알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좋은 다른 세계에 두뇌를 집중함으로써 또 하나의 세계에 접속되는 일이다. 그 세계가 나의 구석진 장소였다. 나는 온 세계에서 휴식을 찾았으나, 한 권의 책과 더불어 구석진 곳이 아닌 어디에서도 휴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바라보여지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않다.

누가 암시해주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느꼈으므로, 느낌을 표현하려는 생각을 버린다면, 그때 사랑이 시작된다. 언어가, 손이, 성기가, 입이 할수 있는 것보다 더 가깝게 타인에게 다가간다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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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2-22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한번 도전해봐야겠네요.
p.s 흙서점이라하면 낙성대 흙서점인가요? 저도 거기서 이 책 샀는데요 ~~

Cindy.K 2016-02-22 20:12   좋아요 0 | URL
아 흙서점 아시는군요! 낙성대주민이라 벌써 10년 넘게 애용하고 있어요

시이소오 2016-02-22 20:18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 이사와서 흙서점에 갈일이 없지만 오랜만에 흙서점 들으니까 반갑네요.
흙서점 애용해주세요 ㅋ~~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열린책들 세계문학 104
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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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책 두 콧구멍 안에 드는 ˝플로베르의 앵무새˝의 저자 줄리언 반스의 소설. 이 책 포함해서 총 세 권의 줄리언 반스 작품을 읽었는데 2등 되셨습니다. 아 재밌었다. 10월에 사놓고 굉장히 읽고 싶었으나 여유 있을 때 집중해서 읽고 싶어서 아껴두고 있다가 드디어 읽었네.

제목은 엄청나게 직관적이야. 총 10 1/2 챕터로 되어있고 세계역사에서 중요하게 기록된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소설(?)을 썼거든. 그래서 총 11가지의 소설이 있는 단편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또 장편 소설이라고 보는 게 맞을 법도 한게 한 권으로 묶이기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블럭들이라. 음 헷갈린다. 어쨌든 아무리 다른 이야기 다른 배경들의 조합이지만 다 읽고 보니 결국은 역사는 누군가에 쓰여졌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고 해석될 수있다는 모두가 알면서도 모두가 속고있는 그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음. 그래서 장편이야? 단편이야? 장편이라 믿고싶지만 따지자면 단편이 맞다. 다 읽고 뒤에 짧게 달려있는 역자 해설을 보니 역사라는 단어를 타이틀에 걸어놓고 `논픽션vs픽션` `소설vs에세이`로 오가는 것에서 영국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나봐. 제목 되게 잘지었네 보면 볼수록.

10과 1/2 챕터 내용이 궁금해지지?

1장 노아의 방주에 직접 탄 벌레가 전해주는 그 때 그 방주 안에서의 시간
2장 아랍인들에게 인질로 잡힌 역사클래스가 진행되는 크루즈 여행객들
3장 교회 곡식을 축낸 죄로 심판을 받게 된 나무좀 재판일지
4장 러시아의 핵폭탄 공포에서 살아남으려 세상을 등지고 바다로 모험을 떠났다고 착각하는 여자
5장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떠난 군함 메두사 호 난파 사건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6장 노아의 방주의 흔적을 찾으러 떠난 탐험단 이야기 속 확고한 신앙심의 딸과 모든 미신은 혼돈, 악의, 우연이라는 아버지
7장 타이타닉호 생존자 / 고래에게 먹힌 뒤 살아나온 요나 / 히틀러 학살 때 쿠바로 탈출하려던 유대인들을 실은 세인트루이스호
8장 예수회 사제들을 연기하기 위해 정글로 떠난 주연배우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
삽입장 줄리언 반스의 사랑론
9장 달에 착륙했던 우주비행사의 그 후
10장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완벽한 꿈 이야기

​이렇게 성의 있게 리뷰를 하지는 않아왔는데 그냥 읽은 게 흩어지는 게 싫어서. 장편인 척 하는 단편이라 더더욱 남겨놔야 한다.

좋았던 챕터는 1 / 3 / 4 / 5 / 7 / 8 / 삽입장 즉 10.5장 중에서 6.5가 좋았구나. 특히 1장은 샤이닝 보고 들른 신사역 커피빈에서 읽었는데 시작부터 막 밖으로 웃음이 터졌어. 줄리언 반스에게 유머감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그것도 상당히 수준 높은. 어쩜 이렇게 고상하고 예리하게 웃기지? 다시 봤어 아저씨. 소설이라 하지만 그 배경이 논란이 많을 수 있는 종교, 정치, 사건 등의 명확히 남겨져 있는 `역사`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잡식거리도 생기고 아주 알차. 또 테오도르 제리코의 작품 `메두사 호의 뗏목` 이미지까지 넣어가며 그림 속 모든 것을 줄리언 반스 식의 해석으로 볼 수 있는데 그림 감상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 이래서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몇 십분이고 떠나지 않고 보는거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쉽고 비전문적으로 감상을 해 놨더라고.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 드는 단편들이 모이고 책을 닫으면서 음 이게 에세이겠다 싶은 것이(뭐야 나 자꾸 말 바껴?) 줄리언 반스의 세계관을 볼 수 있는 한 권의 책이었다. 안의 허구 화자가 어찌 되었건 간에 이 책 한 권을 읽고 느끼는 것은 줄리언 반스라는 인간의 태도나 감정, 스타일에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달까. 잘생기고 깐깐한 학자인 줄 았았는데 위트와 휴머니즘까지 갖고 있었어. 재밌는 발췌가 꽤 되는데 할 일 없는 근무시간에 조금씩 옮겨놨지롱.

발췌

한가하게 룰렛 게임을 하거나, 만찬 때는 모두 정장을 차려입는 지중해의 유람선도 상상하지 마십시오. 방주에서 연미복을 입었던 것은 오직 펭귄뿐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당신들은 노아의 궁전 근처에 지상에 있는 모든 종의 대표적인 표본이 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여봐요, 당치도 않습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광고를 냈고, 그다음 응모한 자들 중에서 최상의 쌍을 골라야 했습니다. 동물계 전체가 온통 겁먹지 않도록 그들은 2인 1조 경연대회를 공고했습니다. 말하자면 미인 콘테스트 겸, 퀴즈 게임 겸, 원앙 부부 겨루기 대회로 참가자들에게 정해진 달까지 노아의 궁전 문 앞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많은 문제가 있었는데, 예컨대 왜 생쥐와 도마뱀을 그리도 꾸짖어서 그들의 자신감을 더욱 잃게 했던 것인지?

모든 사례에서 빠르든지 늦든지 간에 언제나 이기주의가 이타주의를 이겼다.

모든 것은 <정말>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부분들, 특히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부분들이 그렇다.

우리는 물고기가 먹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이들이 돈을 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요사이는 물고기까지도 착취당하고 있구나 하고 그 여자는 생각했다. 착취당하고 그다음엔 독살당하고, 저쪽의 바다는 독이 채워지고 있다. 물고기도 죽게 될 것이고.

그 모든 것의 원인은 마음이었다. 마음은 그저 너무 영리해서 자신의 이익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을 했다. 그렇지 않은가? 동물이 자신의 파멸을 고안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p146-147 누군가를 걸려들게 하려고 웅덩이를 판 총명한 곰의 이야기)

마치 깨끗한 자와 더러운 자가 분리디듯 건강한 사람과 건강치 못한 자로 분리된 것이었다.
-첫 장부터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 이 부분이 다시 등장해서 그제야 깨달았다. 역사는 `맞서는 두 영역의 이야기`였어.

무지한 눈이 승리하니ㅡ박식한 눈이 얼마나 안달하겠는가.
-나 이 기분 알지롱! 내가 무지한 눈의 대표주자거든.

마르크스의 금언, 역사는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笑劇)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구약 성서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신이 모든 카드를 장악하고 있고 모든 판을 다 이긴다. 불확실한 것은 이번에는 신이 어떤 수를 쓸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신화와 현실을 구별할 줄은 안다. 우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니까.
-성경 디스 혹은 기독교인 디스인가.

<편지 14> 사랑하는 피파....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편지 15> 이봐, 썅년, 왜 내 삶을 간성하는 거야. 빨리 꺼져. 꺼져.
-심경변화 p 302-303, 이 부분 엄청 웃김, 돌변했어

사랑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성적 욕망의 문제도 훨씬 더 쉽게 풀릴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에 안달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도래에 그처럼 감격해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떠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결혼도 더 솔직하고ㅡ어쩌면 매우 오래 지속될 것이다.

나의 처남이 언젠가 플로리다에서 열흘을 지내고 돌아와서, <내가 죽으면, 나는 천국에는 가고 싶지 않고, 미국으로 쇼핑하러 가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틀째 아침에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공감 1000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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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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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이와 헤어진 그날 술에 취해 술김에 흙서점에서 샀어. 민음사에 헤르만헤세라 안 살 이유가 없었네. 3000원에 득! 200페이지 조금 넘는 얇은 책을 오래도 잡고 있었다. 읽은 모든 책의 리뷰를 남기기로 한 후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한 번 펼친 책은 어떻게든 다 읽어낸다는 것? 장담하는데 2년 전에 읽었으면 이거 다 못읽었을 듯. 우선 내용도 엄하고 말투도 엄해. 본인을 3인칭화 시키는 것도 그렇고 ˝나 싯다르타는 뭐뭐하다네.˝이런거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 고빔다, 함께 무화과나무 밑으로 가서 침잠 수련을 하세˝ 뭐 이런 엄한 대화가 나오니까... 뭐지 이 놈들은. 싶은

제목의 싯다르타가 주인공이고 평생 진리를 찾으려 애쓴 그 사람의 인생이야기야. 존경받는 계층 바라문의 아들에서 - 죽지 않을만큼만 빌어 먹으며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문으로 - 맘껏 마시고 먹고 취하며 사랑도 나누는 무절제한 상인으로 - 강의 말에 귀 기울이며 말하기보다는 듣는 뱃사공으로. 청년으로 시작해 노인으로 끝이 났네.

나는 사상이나 진리는 배울 수 없는 거라 생각하거든. 그래서 그걸 배우겠다고 부모를 떠나고 생고생을 하고 쾌락을 멀리하는 싯다르타가 한심해보였어. 근데 마무리로 갈수록 마음에 들더라. 진리를 쫓아 평생을 바치고 싯다르타가 배운 것은 진리는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는 거였거든.

너무 치열하게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하는 삶이 안쓰럽고 미련해보였지만 참 순수하게 배우고 순수하게 느끼는 자세를 간접 경험을 할 만했어. 매 순간 도를 다 터득한 듯 욕심이 없는 듯 도인처럼 행동하다가 마지막에 아들에게 욕심을 부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후련하더라. 얼마나 인간적이야. 아끼는 것을 잃을까 고민하는 것. 아끼는 것을 원하는 대로 소유하고자 욕심을 부리는 것. 결국은 사랑이 가장 미련하면서도 강력한 것.

발췌

그대의 영혼이 온 세상이니라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시구인데 결국 답은 내 영혼이 전부라는 것. 저걸 찾으려 한 생을 바쳤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서만, 오로지 나에 대해서만, 저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인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생각이라고 여겨졌으며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느낌이 인식으로 바뀌어져서 사라지는 일이 없이 본질적인 것이 되고 그 인식 속에 있는 것이 빛을 발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내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아무것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본질과 현재를 지니고 있습니다.

진실로 도를 구하고자 하는 자라면, 진실로 도를 얻고자 하는 자라면, 어떠한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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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7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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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정보 없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깨끗한 책이 있길래 흙서점에서 4000원에 겟. 소설이 아니고 굳이 말하면 앙드레 지드의 자서전인데 스토리랄게 없어서 두께가 조금 버겁게 느껴졌어. 그렇지만 조금만 집중하고 읽다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는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와서 지치지 않을 정도로 끊어서 읽었어. 다 읽고나서 발췌를 옮기니 그 때의 감동이 다시 스믈스믈 밀려오는게 아 참 좋은 글 읽었다 싶네.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앙드레 지드의 조언으로 강압적이지 않고 참 부드러운데 설득력 있어. 아마 어릴적부터 아팠던 탓에 사소한 것에 대한 관찰과 감사가 큰 사람이라 더욱 가르침이 와 닿는 듯해.

발췌를 보면 알겠지만 이 두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기에 허무할 만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1. 자신의 삶을 살라
2. 만물의 존재를 존중하고 감상하고 감탄하라
3. 쾌락을 쫓아라(이론과 규칙을 과감히 무시하라)
4. 현재 매 순간에 충실하라

어투나 강압성이 전혀 다르지만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느꼈던 따뜻한 현자의 목소리를 느꼈어. 그리고 2부 새로운 양식 도입 부분에서 미래에서 이 책을 읽게될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라고 시작을 하는데 그 진심이 느껴져서 울컥하더라. 따뜻한 사람이고 진심으로 모든 것을 알고 만지고 싶어하는 사람이야. 박웅현이 그렇게 강조하던 자연에 집중하고 사물을 관찰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라는 것과도 일맥상통. 인문학은 참 너그럽고 사소하고 사랑스럽다 크흑.

예쁜 문장들이 많아서 읽으면서 몇 번이나 소리내서 끙그렸는지 몰라. 심쿵.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고 정신이고 문장이야. 문장과 코드가 안 맞으면 아마 초반에서 포기할 책이지만 맞는다면 인생책 예약이니 발췌보고 당기면 반드시 읽기를 추천합니다.

발췌

˝나의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 그대 자신에게 그리고 그대 자신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주기를.˝

`중요한 것`은 그대의 시선 속에 있을 뿐 바라보이는 사물 속에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나타나엘이여, 공감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사람은 오직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행할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최대한으로 많은 인간성을 수용할 것,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공식이다.

우리가 일부러 기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신 뿐이다. 신을 기다린다는 것은, 나타나엘이여, 그대가 이미 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함을 뜻한다. 신과 행복을 구별하여 생각하지 말고 그대의 온 행복을 순간 속에서 찾아라.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모든 감동이 그대에게는 도취가 되어야 한다.

행복의 순간들을 신이 내려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다른 순간들은 신이 아닌 누가 주었다는 말인가. 나타나엘이여, 신과 그대의 행복을 구별하지 말라.

사물들 하나하나는 우리에게가 아니라 그 사물 자체에게 중요한 것이다. 그대의 눈은 바라보이는 사물 바로 그것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모든 형태의 생을 부러워하였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 무엇이든 나도 그것이 하고 싶었다. 그것을 했다는 경험이 아니라 그것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예외적이고 채울 길 없는 욕구, 나의 삶을 지배한 것은 바로 이것인 듯하다.

없어도 되는 것들이 그 밖에도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들의 유일하고 진정한 소유인 사랑, 기대, 그리고 희망으로 마침내 가득 찰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헐벗지 못하는 영혼들.

가장 아름다운 추억도 나에게는 행복의 잔해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주 조그만 물방울이라도, 그것이 눈물 한 방울일지라도, 나의 손을 적셔주면 곧 나에게는 더 귀중한 현실이 된다.

내 욕망들은 내가 좀 더 용감하기를 원했다.

쾌락이 나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의 마음속에서 욕망이 그에 응답하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지도 않고 무릎을 꿇고만 있었다.

내 책을 던져버려라. 이것은 인생과 대면하는 데서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자세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라.

모든 것은 존재하기를 좋아하고 모든 존재는 기뻐한다. 그 기쁨이 단맛이 들면 그대는 과일이라 부르고 그 기쁨이 노래가 되면 새라고 부른다.

산이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었듯이 나의 사고도 리듬의 법칙에 따른다. 내 완전한 행복의 이미지로, 나는 재창조하는 화가로서 여기에 가장 떨리고 가장 생동하는 색채를 펼친다.

아! 그 누가 나의 정신을 논리의 무거운 쇠사슬에서 해방시켜 줄 것인가? 나의 가장 솔직한 감동도 그것을 표현하려고만 하면 곧 거짓이 되어버린다.

행복해질 필요가 없다고 굳게 믿을수 있게 된 그날부터 내 마음속에 행복이 깃들기 시작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또한 가장 빨리 시든다는 사실을 알라. 그 꽃의 향기를 어서 빨리 허리 굽혀 맡아보라. 영원불멸인 것에는 향기가 없는 법.

지금 나는 나의 과거로 인하여 온통 구속을 받고 있다. 오늘 어느 행동 하나도 어제의 나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의 돌연하고 덧없고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인 나는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버리고.......

미인이 자기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때 보다 더 내가 아름다움에 감탄해 본 적은 없다. 가장 감동적인 선은 가장 체념한 상태의 선이다.

인간의 정신은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확신을 얻은 이래 나는 전혀 확신이 없이도 잘 살아왔다.

적당히 넘어가지 말라. 저마다의 존재 속에는 놀라운 가능성들이 잠재해 있다. 그대의 힘과 그대의 젊음을 굳게 믿어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다짐할 줄 알아야 한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라고.

동지여, 사람들이 그대에게 제안하는 바 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굳게 믿어라. 그대의 삶도, 다른 사람들의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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