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 최후의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의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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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나쓰메소세키의 인생관이 담겨있을거라 생각하니 너무 궁금하면서도 늙음과 죽음을 필요 이상으로 일찍 이해하게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미뤄뒀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일본작가 글이 읽고 싶은데 안 읽은게 이거 하나라 찜찜하게 꺼내들었다

흠. 허무할만큼 그냥 노인의 과거 회상이네. 삶이 뭐네 죽음이 뭐네가 아니고 머리 쇤 노인이 특별히 할 것 없이 요양을 하며 창 밖을 멍하니 보다 떠오른 어린날 젊은날의 모든 기억을 옮겨낸 수필이야.

조금 신기했던 건 얼마전부터 특이할 사건도 아닌데 문득 떠오르는 어릴적 기억들(언니랑 골목에서 귀신장난, 유치원 버스 기다리다가 동네 연탄가게 아들 둘한테 맞은 일,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동화작가)을 기록하고 싶단 생각을 했었거든. 지금까진 어케저케 기억 속에 살아있지만 삶 속에 흐려질 수 있는 이야기라서. 근데 소세키 유리문 안에서가 그렇더라고. 그래서 그 기분은 알 것 같기도. 근데 이게 또 누가 읽어줄 필요는 없는 글이거든.

초반에 수필을 시작하기 전에(사실은 어느 잡지에 꾸준히 연재한 글을 모아 출간된 것이니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가 더 맞는 말) 일상이 바빠 신문의 굵은 글자만 겨우 읽을 시간만 있는 독자들에게 너무 시시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것 같아 송구하다는 작가의 말을 읽었는데 읽으면서 아 송구한 기분 들 법도 하다 싶었어.

그렇다고 재미가 없었거나 읽은 시간이 후회되는 건 아니고 죽음! 늙음!이 거칠고 잔인할거란 생각을 했던 내가 아직 어리구나 느꼈어. 지금 나와 같이 어제일 작년일 학창시절의 일을 다시 곱씹고 추억하는 시간이 더 긴 노인의 이야기였어. 좀 알 것 같다. 난 아마 80살이 되어서도 누가 읽든 안 읽든 끄적대며 예전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겠지. 그리고 그 무탈하고 무난했던 시간이 참 좋았었다. 하고 있겠지.

소세키를 사랑하는 독자에겐 그의 마지막 작품이니 이런저런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의 옛추억을 내가 왜 읽어야하는가 싶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소세키 소설 좋아하니까 그리고 할아버지 살짝 아는 독자니까 그 단정함과 차분함이 어느 정도 좋았다. 약해진 몸을 회복하려 몇날며칠 몸을 뉘이고 있는 방 유리문을 바다보다 TV처럼 지나가는 그때 그 기억들을 바라보는 소세키가 그려져 조만간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다 생각했다.

발췌

다음 길모퉁이에서 여자는 또 ˝선생님께 배웅을 받다니 영광입니다.˝하고 말했다. 나는 진지하게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여자가 간단히, 그러나 또렸하게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렇다면 죽지 말고 살아 주십시오.˝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 밤 나는 오히려 오래간만에 인간다운 흐뭇한 마음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향기 높은 문학 작품을 읽고 났을 때 느끼는 기분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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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열정 2017-11-04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소세키의 ‘마음‘이란 책을 보면서 오랜만에 마음 졸이는 소설을 본 것 같았는데, 이 책도 읽어봐야 겠네요

Cindy.K 2017-11-10 14:27   좋아요 0 | URL
오 마음 안 읽어봤어요. 소세키가 마음을 졸이는 소설을 쓰는 작가의 인상은 아니었는데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