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이와 헤어진 그날 술에 취해 술김에 흙서점에서 샀어. 민음사에 헤르만헤세라 안 살 이유가 없었네. 3000원에 득! 200페이지 조금 넘는 얇은 책을 오래도 잡고 있었다. 읽은 모든 책의 리뷰를 남기기로 한 후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한 번 펼친 책은 어떻게든 다 읽어낸다는 것? 장담하는데 2년 전에 읽었으면 이거 다 못읽었을 듯. 우선 내용도 엄하고 말투도 엄해. 본인을 3인칭화 시키는 것도 그렇고 ˝나 싯다르타는 뭐뭐하다네.˝이런거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 고빔다, 함께 무화과나무 밑으로 가서 침잠 수련을 하세˝ 뭐 이런 엄한 대화가 나오니까... 뭐지 이 놈들은. 싶은 제목의 싯다르타가 주인공이고 평생 진리를 찾으려 애쓴 그 사람의 인생이야기야. 존경받는 계층 바라문의 아들에서 - 죽지 않을만큼만 빌어 먹으며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문으로 - 맘껏 마시고 먹고 취하며 사랑도 나누는 무절제한 상인으로 - 강의 말에 귀 기울이며 말하기보다는 듣는 뱃사공으로. 청년으로 시작해 노인으로 끝이 났네.나는 사상이나 진리는 배울 수 없는 거라 생각하거든. 그래서 그걸 배우겠다고 부모를 떠나고 생고생을 하고 쾌락을 멀리하는 싯다르타가 한심해보였어. 근데 마무리로 갈수록 마음에 들더라. 진리를 쫓아 평생을 바치고 싯다르타가 배운 것은 진리는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는 거였거든. 너무 치열하게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하는 삶이 안쓰럽고 미련해보였지만 참 순수하게 배우고 순수하게 느끼는 자세를 간접 경험을 할 만했어. 매 순간 도를 다 터득한 듯 욕심이 없는 듯 도인처럼 행동하다가 마지막에 아들에게 욕심을 부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후련하더라. 얼마나 인간적이야. 아끼는 것을 잃을까 고민하는 것. 아끼는 것을 원하는 대로 소유하고자 욕심을 부리는 것. 결국은 사랑이 가장 미련하면서도 강력한 것.발췌그대의 영혼이 온 세상이니라-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시구인데 결국 답은 내 영혼이 전부라는 것. 저걸 찾으려 한 생을 바쳤다.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서만, 오로지 나에 대해서만, 저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인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생각이라고 여겨졌으며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느낌이 인식으로 바뀌어져서 사라지는 일이 없이 본질적인 것이 되고 그 인식 속에 있는 것이 빛을 발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내가 내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어.아무것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본질과 현재를 지니고 있습니다.진실로 도를 구하고자 하는 자라면, 진실로 도를 얻고자 하는 자라면, 어떠한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