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라피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2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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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라피아 Pornografia]


2월의 마지막 책. 아마 살면서 처음 읽은 폴란드 소설이겠다. 음. 우선 재밌게 읽었고 추천할만 하고 읽길 잘했다 생각하지만 리뷰를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구나. 읽으면서 떠오른 작품은 롤리타와 도리언그레이의 초상이었어. 그럼 어느 정도 느낌이 오지 않나요? 젊음, 선과 악, 질투, 양심, 도덕 등 가치에 대한 고민과 유혹을 겪고 고민하고 가차 없이 풀어 낸 소설이야. 꽤 논란도 있었겠어. 제목 포르노그라피아에서의 `포르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포르노가 맞고 그에 맞게 약간의 에로티즘은 들어가 있지만 `포르노`에 꽂혀서 읽으면 어리둥절하다 실망감에 욕하며 책을 덮으실테니 19금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 걸로.

일거리를 쫓아 타지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지내게 된 사내 비톨트의 시선과 감정으로 진행돼. 등장인물은 함께 일을 하게 된 어려운 사이 `프레데릭`, 일거리를 준 집주인 히폴리트 부부, 그 부부의 하나 뿐인 미성년 딸 헤니아, 헤니아의 오랜 친구 카롤, 헤니아의 약혼자 알베르트, 집에 잠시 묵게 되는 나치의 침략에 맞서던 용사 시에미안 정도인가. 꼭 연극처럼 각자의 역할과 캐릭터가 분명하고 모두가 주인공 비톨트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돼.

헤니아와 카롤, 모르기에 더 자극적이고 고민하지 않기에 더 과감한 십대 청춘 남녀의 조합에 동시에 주목한 비톨트와 프레데릭. 본인들은 가질 수 없는 그 젊음의 이야기에 참여라도 하고 싶은 관음병자 두 아저씨는 결국 연출로서 극에 뛰어들게 돼. 미끼를 던지고 자극을 하고 그 극을 성공시키기 위해 몇을 희생시켜.

음 굉장히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진짜 변태 아니면 쓰기 힘들 것 같은데. 지식인 가면 속 음흉한 변태. 그 와중에 체면을 대외적으로 깨고 싶지는 않아서 머리 굴리는 모습이 흥미로웠어. 그렇게까지, 마치 그것(커플 성사)이 서른 넘은 남자의 인생 목표인 듯.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이 일심동체로 눈치 샤샥 봐가며 극을 끝내 완성시키는 걸 보고 아 이걸 변태라 하는구나 싶었어. 그렇게 그 외의 재밋거리가 없나 한심하기도 했고.

그렇지만 그 목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본다면, 비톨트 프레데릭 콤비의 집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특히 나는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짓을 꽤 자주 꽤 심각하게 하기 때문에 저 변태적인 심리와 집착 희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로들면 전 남자친구의 불행 염원,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의 행방 쫓기 등. 아 왜 나의 모든 행복과 근심거리는 남자란 말인가. 하찮아라.

1인칭 비톨트 시점(주인공과 작가가 동명인 것도 흥미로움)에다 자잘한 심적 고민, 타인에 대한 분석과 감정을 없어보일만큼 디테일하게 옮겨놔서 비톨트의 시선에서 떠나 내 자의적인 캐릭터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한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랄까. ˝쟨 왜저러지?˝ 의문을 가질 쯤 ˝쟨 무심한 표정으로 아무 관심 없다는 제스처를 해보임으로써 사실 엄청나게 주변을 의식한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란 식의 분석으로 바로 이어져서 독자의 캐릭터 감정 읽어내기 기회를 뺐어버린다.

연애와 범죄 정치 등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읽으면서 어디로 가니 이야기야 ...?했는데 다 읽고나니 결국은 청춘에 대한 질투와 집착이 불러낸 연출극이었어.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끝내려고? 했던 이야기의 마무리는 정말 연극처럼 극적으로 끝났다. 이건 마치 `코끼리에게 물을`에 버금가는(아니다 이게 버금가는 결말은 아마 만나기 어려울테지) 자극적인 결말. 마음에 들었어.

리뷰는 여기까지이고, 이 책은 yes24에서 중고로 샀거든? 난 손 탄 책을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정가구매의 가치를 가진 책이 세상에 많지 않아서 흙서점에서 완전 새 것같은 중고를 사거나 yes24에서 `최상`으로 상태 분류가 된 중고를 사곤해. 근데 이번 책은 `상`급으로 처음 사봤거든. 겉 모습은 완전 깨끗하던데 몇 장 읽다보니 뭔가 먹다 흘린 흔적과 밑줄, 채점할 때 하듯 몇 부분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거야. 불쾌했지만 동그라미는 대체 어느 부분인가 하고 봤는데 아무리 봐도 문장으로서도 내용으로서도 의미가 없는 부분인거지. 원래 주인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을 만큼. 뭐였을까? 플레이트가 서머싯몸의 달과 6펜스를 읽던 때 어느 한 부분을 찍어서 `대화가 별같다`라는 감상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이 있었어. 그 때는 내가 달6을 읽어보기 전이어서 허허 이 감상적인 분...했는데 읽고나서 다시 그 캡처 부분을 봤더니 도무지 이해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인거야. 대화가 별 같기는..... 찢어져서 못 읽어도 전혀 의미 없을 부분이던데. `대화에서 모텔 냄새난다` 였으면 인정.

짜장이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소환해서 오늘 처음 바깥 공기 쐬었다. 좋다 밤공기.

발췌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인간의 행위 가운데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들이 있고, 이런 의미없는 행위들이야말로 한 사람을 정의한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것은 내가 문학을 통해 구현하고 있던 인간 이해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였다.)을 나는 알고 있다.

마술이 멈춰버린 듯 실망감이 밀려왔다. 매번 무언가 이루어지긴 하지만 사실 그 성과란 늘 당혹스럽고 모호하며, 애초의 계획이 지녔던 원대함과 순수는 바래고 마는 법이다.

˝시에미안이 우리를 배신했어.˝라고 프레데릭이 간단히 설명했다. ˝증거도 있어.˝
˝아하!˝ 카롤이 짧게 대답했다.
- 카롤의 매력이 단번에 느껴지는 부분. 좋다. 저 단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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