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열린책들 세계문학 104
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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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책 두 콧구멍 안에 드는 ˝플로베르의 앵무새˝의 저자 줄리언 반스의 소설. 이 책 포함해서 총 세 권의 줄리언 반스 작품을 읽었는데 2등 되셨습니다. 아 재밌었다. 10월에 사놓고 굉장히 읽고 싶었으나 여유 있을 때 집중해서 읽고 싶어서 아껴두고 있다가 드디어 읽었네.

제목은 엄청나게 직관적이야. 총 10 1/2 챕터로 되어있고 세계역사에서 중요하게 기록된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소설(?)을 썼거든. 그래서 총 11가지의 소설이 있는 단편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또 장편 소설이라고 보는 게 맞을 법도 한게 한 권으로 묶이기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블럭들이라. 음 헷갈린다. 어쨌든 아무리 다른 이야기 다른 배경들의 조합이지만 다 읽고 보니 결국은 역사는 누군가에 쓰여졌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고 해석될 수있다는 모두가 알면서도 모두가 속고있는 그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음. 그래서 장편이야? 단편이야? 장편이라 믿고싶지만 따지자면 단편이 맞다. 다 읽고 뒤에 짧게 달려있는 역자 해설을 보니 역사라는 단어를 타이틀에 걸어놓고 `논픽션vs픽션` `소설vs에세이`로 오가는 것에서 영국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나봐. 제목 되게 잘지었네 보면 볼수록.

10과 1/2 챕터 내용이 궁금해지지?

1장 노아의 방주에 직접 탄 벌레가 전해주는 그 때 그 방주 안에서의 시간
2장 아랍인들에게 인질로 잡힌 역사클래스가 진행되는 크루즈 여행객들
3장 교회 곡식을 축낸 죄로 심판을 받게 된 나무좀 재판일지
4장 러시아의 핵폭탄 공포에서 살아남으려 세상을 등지고 바다로 모험을 떠났다고 착각하는 여자
5장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떠난 군함 메두사 호 난파 사건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6장 노아의 방주의 흔적을 찾으러 떠난 탐험단 이야기 속 확고한 신앙심의 딸과 모든 미신은 혼돈, 악의, 우연이라는 아버지
7장 타이타닉호 생존자 / 고래에게 먹힌 뒤 살아나온 요나 / 히틀러 학살 때 쿠바로 탈출하려던 유대인들을 실은 세인트루이스호
8장 예수회 사제들을 연기하기 위해 정글로 떠난 주연배우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
삽입장 줄리언 반스의 사랑론
9장 달에 착륙했던 우주비행사의 그 후
10장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완벽한 꿈 이야기

​이렇게 성의 있게 리뷰를 하지는 않아왔는데 그냥 읽은 게 흩어지는 게 싫어서. 장편인 척 하는 단편이라 더더욱 남겨놔야 한다.

좋았던 챕터는 1 / 3 / 4 / 5 / 7 / 8 / 삽입장 즉 10.5장 중에서 6.5가 좋았구나. 특히 1장은 샤이닝 보고 들른 신사역 커피빈에서 읽었는데 시작부터 막 밖으로 웃음이 터졌어. 줄리언 반스에게 유머감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그것도 상당히 수준 높은. 어쩜 이렇게 고상하고 예리하게 웃기지? 다시 봤어 아저씨. 소설이라 하지만 그 배경이 논란이 많을 수 있는 종교, 정치, 사건 등의 명확히 남겨져 있는 `역사`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잡식거리도 생기고 아주 알차. 또 테오도르 제리코의 작품 `메두사 호의 뗏목` 이미지까지 넣어가며 그림 속 모든 것을 줄리언 반스 식의 해석으로 볼 수 있는데 그림 감상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 이래서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몇 십분이고 떠나지 않고 보는거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쉽고 비전문적으로 감상을 해 놨더라고.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 드는 단편들이 모이고 책을 닫으면서 음 이게 에세이겠다 싶은 것이(뭐야 나 자꾸 말 바껴?) 줄리언 반스의 세계관을 볼 수 있는 한 권의 책이었다. 안의 허구 화자가 어찌 되었건 간에 이 책 한 권을 읽고 느끼는 것은 줄리언 반스라는 인간의 태도나 감정, 스타일에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달까. 잘생기고 깐깐한 학자인 줄 았았는데 위트와 휴머니즘까지 갖고 있었어. 재밌는 발췌가 꽤 되는데 할 일 없는 근무시간에 조금씩 옮겨놨지롱.

발췌

한가하게 룰렛 게임을 하거나, 만찬 때는 모두 정장을 차려입는 지중해의 유람선도 상상하지 마십시오. 방주에서 연미복을 입었던 것은 오직 펭귄뿐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당신들은 노아의 궁전 근처에 지상에 있는 모든 종의 대표적인 표본이 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여봐요, 당치도 않습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광고를 냈고, 그다음 응모한 자들 중에서 최상의 쌍을 골라야 했습니다. 동물계 전체가 온통 겁먹지 않도록 그들은 2인 1조 경연대회를 공고했습니다. 말하자면 미인 콘테스트 겸, 퀴즈 게임 겸, 원앙 부부 겨루기 대회로 참가자들에게 정해진 달까지 노아의 궁전 문 앞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많은 문제가 있었는데, 예컨대 왜 생쥐와 도마뱀을 그리도 꾸짖어서 그들의 자신감을 더욱 잃게 했던 것인지?

모든 사례에서 빠르든지 늦든지 간에 언제나 이기주의가 이타주의를 이겼다.

모든 것은 <정말>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부분들, 특히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부분들이 그렇다.

우리는 물고기가 먹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이들이 돈을 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요사이는 물고기까지도 착취당하고 있구나 하고 그 여자는 생각했다. 착취당하고 그다음엔 독살당하고, 저쪽의 바다는 독이 채워지고 있다. 물고기도 죽게 될 것이고.

그 모든 것의 원인은 마음이었다. 마음은 그저 너무 영리해서 자신의 이익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을 했다. 그렇지 않은가? 동물이 자신의 파멸을 고안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p146-147 누군가를 걸려들게 하려고 웅덩이를 판 총명한 곰의 이야기)

마치 깨끗한 자와 더러운 자가 분리디듯 건강한 사람과 건강치 못한 자로 분리된 것이었다.
-첫 장부터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 이 부분이 다시 등장해서 그제야 깨달았다. 역사는 `맞서는 두 영역의 이야기`였어.

무지한 눈이 승리하니ㅡ박식한 눈이 얼마나 안달하겠는가.
-나 이 기분 알지롱! 내가 무지한 눈의 대표주자거든.

마르크스의 금언, 역사는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笑劇)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구약 성서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신이 모든 카드를 장악하고 있고 모든 판을 다 이긴다. 불확실한 것은 이번에는 신이 어떤 수를 쓸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신화와 현실을 구별할 줄은 안다. 우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니까.
-성경 디스 혹은 기독교인 디스인가.

<편지 14> 사랑하는 피파....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편지 15> 이봐, 썅년, 왜 내 삶을 간성하는 거야. 빨리 꺼져. 꺼져.
-심경변화 p 302-303, 이 부분 엄청 웃김, 돌변했어

사랑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성적 욕망의 문제도 훨씬 더 쉽게 풀릴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에 안달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도래에 그처럼 감격해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떠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결혼도 더 솔직하고ㅡ어쩌면 매우 오래 지속될 것이다.

나의 처남이 언젠가 플로리다에서 열흘을 지내고 돌아와서, <내가 죽으면, 나는 천국에는 가고 싶지 않고, 미국으로 쇼핑하러 가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틀째 아침에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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