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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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서 완전 깨끗한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가 있길래 그냥 집었어. 그리고 침대 밑에 두고 자다가 아침에 발로 물 엎어서 책이 흠뻑 젖었고 새 책 같던 중고책이 누가봐도 중고책스러운 중고책으로 리폼됐어. 책이 울고있어.

음. 이 책은 진짜 리뷰 쓰기 어렵다.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려워. 해보자. 음. 시발. 음. 어. 뭐.

해보자 진짜.

프랑스 배경. 서른살의 아담 폴로가 주인공이야. 스스가 탈영을 한 군인인지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는지 언제부터 혼자 살았는지 그 계기는 어떠했는지 기억의 단편이 사라졌달까 뭉개졌달까 그냥 하루하루 쥐새끼처럼 어둡고 외롭고 조용한 삶을 보내는 한 남자야. 그 남자를 지켜보는 그러니까 3인칭 관찰자 시점과 아담이 좋아하는 여자 미셸에게 일기처럼 매일같이 쓰는 편지 내용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나와. 3인칭일 때는 미친 사람 하루를 쫓는 기분이고 1인칭은 미친 사람의 사고를 들여다보는 기분인데 사건이랄 것도 없고 미친 행위랄 것도 없어. 굳이 보통과 다른 행동이라고 한다면 쓰레기통을 뒤진다거나, 매일같이 한 마리의 개를 쫓아다닌다든가 죄없는 쥐를 당구공으로 맞춰 죽이는 건데 그게 뭐 그리 이상한가. 이상한 건 행동이 아니고 그런 일상 속에서 몽유병환자처럼 느슨한 시선과 멈춘듯한 사고를 하는, 아담이 본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야. 그 의욕없는 사내가 갑자기 파리 광장에서 연설을 시작하고 사람들이 모였을 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옷을 벗어(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뭘 어떻게 벗었는지 왜 벗었는지도 이해 못하고 있다.확실한 건 벗었다는 것.) 풍기문란으로 잡혔다가 정신이상자로 판단되어 정신병원에 갇힌 채로 이야기가 끝나.

쓰다보니 왜 이 책이 나한테 어려웠는지 알겠다. 내가 정상인인데 미친사람의 언어를 어찌 알겠어. 근데 왜 미친 사람의 말을 읽고 있어야하며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현대인의 존재론적 고뇌`를 읽어낸거지? 해설 없이 진짜 그걸 읽어냈다고? 해설도 보니까 억지롭던데. 옮긴이의 말에 아담 폴로를 이방인의 뫼르소와 닮아있다고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아닌데요 어디가요. 뫼르소는 전혀 안 미쳤잖아. 모든 판단과 행동이 상식적이잖아. 아예 근본 자체가 다른데 외롭기를 자처한다는 이미지 하나로 닮았다고 하는건가?

포기하지 않고 읽은건 기특한데 전혀 뿌듯하지 않다. 뭘 읽은지 모르겠어.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려워. 그리고 작가 르 클레지오가 미친 사람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미친 주인공의 말이 어렵다고 순순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보통 작가가 가상의 미친 사람을 만들어내서 보통의 독자에게 혼돈을 주는건 왠지 비겁해. 그걸 이해하려 애써서 다 이해한들 허무해. 가짜 미친 사람의 말을 이해한 거잖아. 내 말을 이해가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보통 정신으로 보통의 사람들에게 이해가게 좀 풀어내주지. 나같이 성의 없는 독자들은 읽기를 포기하고만다고요. 그만하자. 나한테만 어려웠을지 몰라.

아 하나만 더 덧붙이면 중간에 신문도 나오고 부호도 나오고 글에 줄이 쳐저 있다거나 시도는 꽤 신선하고 과감했어. 근데 재미가 음슴.

-발췌

˝네게 편지를 썼어.˝하고 아담이 말했다. ˝네게 편지를 썼고 널 강간했어. 그런데 넌 왜 아무것도 안했어?˝

너무도 많이 세상을 보다보니 세상이 그의 눈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버렸다.

그는 빵 부스러기 하나를 개에게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 짐승이 자기에게 친금감을 가질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위험한 짓이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개가 자신을 쫓아올 것인데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를 이끌고 다녀야 하는 책임을 지기도 싫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야. 그 이후는 다시 흐릿해져.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 난 모르겠어.

미셸은 67퍼센트 정도 속물이다.
-아 이건 좋아. 진짜 좋아 ㅋㅋㅋ

이제 세 권만 더 채우면 출판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나는 벌써 딱 맞는 제목을 찾아냈다.<멋진 더러운 놈들>이라는.

가까이서 보면 피부를 대리석처럼 보이게 하는 태양과 편평한 바닷물로 인해 아담의 몸은 원색의 노란색에서 푸른색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얼룩들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듯했다. 그렇게 위장된 그는 밤색, 초록색, 검정색, 거무스름한 회색, 흰색, 황강색, 지저분한 주홍색의 무수한 온갖 다른 얼룩들의 한가운데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부분 보면서 입이 떡. 나도 이렇게 색을 표현할 수 있는 글재간이 있으면 좋겠다. 가슴 속에만 윙윙돌던 그 느낌을 머리로 풀어 글로 옮기는 그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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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 2020-11-15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쓰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