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중고구매로 김영하와 하루키의 책 몇 권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들의 책에 조금 굶주려 있었기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수행의 큰 결과물은 김영하의 초기작품들이다.
서점에서 직접 보고 구매했다면 좀더 나은 녀석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중고로서, 상태는 최상으로 구했지만, 커버가 없이 왔다. 일단, 이 책은 내 기억에는 다섯 권으로 다시 엮어 새로 나온, 그러나 대부분 예전에 다른 이름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었던 글을 모아 뽑아낸 하루키의 에세이집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글은 낯이 익고, 한 두 개 정도만 내가 읽지 못한 그의 글인 듯 하다. 하루키의 글은 이제는 매우 친숙하여, 꼭 옛날 친구를 간만에 만나 한잔의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기분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언제 읽어도, 아무리 재탕이어도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신선하다. Haruki-ism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글을, 아니 그의 삶의 자세, 그리고 결과물인 현재의 그가 좋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맥주-위스키, 그리고 재즈를 섞어내는 풍류를 가진 글쟁이는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이지만, 이렇게 엿보는 것만해도 고맙지 않은가. 이것으로 내가 본, 그리고 가지고 있는 하루키의 책은 모두 51권 40작품이 되겠다. 하루키의 전작을 결심한 것은 작년 이맘때부터 약 일년 정도이니, 나쁘지 않은 셈이다. 사실 눈이 띄면 예전의 판본들도 모두 구해볼 생각이다. 정말이지 난 하루키의 그리 철학적이지 않는 담론과 술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유행은 확실히 지난 작가인 듯 하지만, 그래서 더욱 좋다. 90년대인가 하루키의 책이 한국 서점가를 휩쓸때만 해도 나는 그를 몰랐기 때문에 그 당시의 선풍적인 인기를 끈 요인이나 다른 이야기들은 하나도 모른다. 그저 읽으면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어느새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저씨'의 나이를 달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일체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이건 2009년에 나왔으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 라고 하다가 생각해보니까, 벌써 2013년이니, 나오고나서 은근히 시간이 좀 지난 작품인 셈이다.
무엇인가 묵직하지만, 이것은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확실하게 결론짓게 되었는데, 여행기는 가급적 좋은 작가의 것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에 고플때에는 여행기를 읽어왔는데, 읽은 대다수의 책들은 블로그를 그대로 책으로 옮긴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가벼운 글, 심지는 2-3페지당 그림 페이지가 하나씩, 그리고 사진 페이지가 하나씩 섞여 찍힌 책들도 은근히 많았다고 생각된다. 재미있게, 가볍게 읽고 여행에 대한 주림을 달래기는 했지만, 사실 다시 펴보게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 하루키, 괴테, 카잔차키스, 그리고 김영하까지 - 볼 때, 작가들의 여행기는 그보다 훨씬 더 멋진, 작가의 내면에 가라앉은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괴테나 카잔차키스는 여행기 자체가 하나의 고전문학이 되고, 하루키나 김영하는 아직 그 정도의 무게를 - 세월의 검증이 어느 정도 필요한 -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깊이와 재미가 있다. 그러고보면, 단순한 관광이 아닌, 여행, 그것도 자유롭게 매우 보헤미안적인 여행을 하기에는 사실 재벌보다도 더 나은 것이 성공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성공'이라는, 아니 사실 '성공'에 함께 오는 '돈'과 '시간'이 중요한 포인트인데, 재벌도 - 그러니까 이건희 같은 사람도 - 김영하나 하루키처럼 다 털고 외국에 나가서 1-2년씩 살거나, 여행을 빙자한 자유로운 떠남을 실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능력이 있어도 시간적인, 아니 심적인 여유가 없다면, 그리고 9-to-6의 직장인들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된다.
김영하의 이 책은 하루키의 그리스 여행과 일견 오버랩 되는 것 같이 느낄 수 있지만, 엄연히 김영하라는 사람의 세계 - 하루키와는 매우 다른, 다소 어둡기까지 한 - 가 여행기의 형식을 빌어 구현되고 있느니만큼,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군데군데 보이는 그의 위트나 성찰에 따른 이야기들은 이 책의 또다른 재미라고 하겠다. 예를들어: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많은 지식인들이 할 수 없이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정치 철학은 발전하지만 그때 발전한 사상들은 그 당대에는 별 쓰임이 없는 경우가 많다...라던가...나는 미란 하나의 거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미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음란한 매혹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다다를 수 없는 천상의 특질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정복함으로써만 소유 가능한 일종의 재산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끝내 이해 불가능한 난해한 개념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즉각 제가해야 할 불길한 미혹인 것이다.
라는 말을 보고 밑줄을 그었는데, 마치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그대로 읽어내려가는 것 같이 느꼈다면 좀 과장일까? 이들 외에도 몇 군데, 엎드려 책을 보느라 움직이기 싫은 게으름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밑줄을 긋게 한 구절들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른 멋과 맛을, 그의 사진과 함께 느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김영하의 산문집을 읽었는데, 이는 나온지 벌써 10년이 넘은 작품이니, 책이 처음 나오고나서 강산이 한번 바뀐 셈이다.
김영하의 가벼운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하루키만큼 가볍거나 밝고 명랑하지는 못하다. 그것은 80년대에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온, 그리고 김영하라는 이름안에 모두 담아낼 수는 없는, 그의 background, 살아온 환경 등 모든 것들이 한데 버무려져 나온 내용물이 하루키와는 도저히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세대를 넘어서 하루키가 속한 일본의 전공투세대와 6-10항쟁세대와는 좀 닮았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매우 짧은, 그러나 김영하에 의한, 김영하의 이야기들로 잘 엮어진 이 책을 구한 것도 중고서점을 이용한 덕분이라고 하겠다. 역시 엎드려서 읽느라 밑줄을 거의 치지는 못했지만, 좋은 글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시간이 흐른 만큼, 삐삐에 대한 이야기는 옛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내가 고등하교를 다니던 무렵의 한국에서는 또래들이 삐삐를 장만하기 위해 계를 만들기까지 했었는데, 정작 나는 대학교때 잠깐 쓰다가 말았다. 이곳에서의 그리 넓지 못했던 인간관계상 삐삐가 올 곳도 별로 없었기에 대부분 있으나마나 할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고, 이는 cellphone을 가진지도 오래인 지금도 그리 달라지지 않은 나의 일상이다. 사라진 공중전화박스만큼이나 옛스러운 삐삐 이야기, 2002년, 작가는 '요즘 아이들'은 아마 삐삐가 뭔지도 모를거야라고 했는데, 2013년의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pager가 뭔지,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알려나?
간만에 편하게 여러 권의 책을 힘들이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다. 역시 나에게는 고전문학은 아직도 즐거움에 비례한 고통스러움을 줄 때가 있는 때로는 엄격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행실이 바르고 깊이가 있는 친구들, 그리고 같이 어울려 시시껍적하고, 때로는 다소 야한 농담을 욕과 버무려 주고 받으며 한잔 꺾을 수 있는 친구들, 모두 소중한 나의 친구들인 것처럼, 책도 그렇게 여러 녀석들을 읽으며, 또 한 주말을 보냈다.
그 외에도, 잠깐 짬을 내서 logos에 가서 '아름다운 그림자: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생애'라는 전기와 앨라 피츠제럴드, 존 콜트레인, 스탄 갯츠, 마일스 데이비스, 그리고 영화 sideways의 CD를 샀다. 물론 모두 중고로...하나씩 까먹을 것들이 널려있어 항상 즐겁다, 아무리 일상이 지루하거나 stressful해도 말이다. 아마도 게임이나 영화를 내게서 모두 빼앗아간다해도 책들만 남겨준다면 사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PS 까먹고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키다리 아저씨 그 후 이야기도 읽었다 지난 주에...
주디의 이야기가 아닌, 대학친구, 주디가 살던 고아원의 경영을 맡게 된 친구의 이야기. 작가가 여자였다는 것을 여기에서야 알게 되었다.
진 웹스터가 Gene Webster (남자이름)인줄 알았더니 Jean Webster (주로 여자이름)이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