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권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가 이제 5권밖에 남지 않았다.  첫 몇 권을 읽을때만 해도 이름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었는데, 이제는 작가와 캐릭터에 익숙해진 - 혹은 길들여진 - 탓인지, 아쉽기가 그지 없다.  확실히 도둑은 도둑이라서, 빼앗고 훔치는 것이 뤼팽의 주업무이지만, 그 이상, 뤼팽은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모험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뤼팽의 활동 초기에는 도둑으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의 모습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 수사관, 탐정, 귀족, 모험가, etc - 기인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양산해낸다.  긴 스토리의 장편 에피소드도 좋지만, 16권에서처럼 특정시기, 특정인으로 활동했던 뤼팽의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 더 흥미있게 읽힌다. 

 

이제 뤼팽을 다 읽고나면 캐드팰과 엘러리 퀸, 그리고 동서추리문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하나씩 모인 추리소설이나 모험소설이 책장 하나 정도는 가볍게 채우게 될 것인데, 그렇게 모아놓고 추운 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jazz를 틀고, 된장질을 해보게 될 것 같다.  아니, 낮이라면 '모르그가의 살인'의 오귀스트 뒤팽과 화자처럼 두꺼운 커튼을 내려 빛을 모두 차단하고, 촛불 가득한 서재에서의 reading도 좋겠다.  무엇인가,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듯한 나라는 사람의 모습은 이런 마음이 들 때, 그 성향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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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중고구매로 김영하와 하루키의 책 몇 권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들의 책에 조금 굶주려 있었기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수행의 큰 결과물은 김영하의 초기작품들이다.

 

서점에서 직접 보고 구매했다면 좀더 나은 녀석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중고로서, 상태는 최상으로 구했지만, 커버가 없이 왔다. 일단, 이 책은 내 기억에는 다섯 권으로 다시 엮어 새로 나온, 그러나 대부분 예전에 다른 이름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었던 글을 모아 뽑아낸 하루키의 에세이집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글은 낯이 익고, 한 두 개 정도만 내가 읽지 못한 그의 글인 듯 하다. 하루키의 글은 이제는 매우 친숙하여, 꼭 옛날 친구를 간만에 만나 한잔의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기분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언제 읽어도, 아무리 재탕이어도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신선하다. Haruki-ism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글을, 아니 그의 삶의 자세, 그리고 결과물인 현재의 그가 좋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맥주-위스키, 그리고 재즈를 섞어내는 풍류를 가진 글쟁이는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이지만, 이렇게 엿보는 것만해도 고맙지 않은가. 이것으로 내가 본, 그리고 가지고 있는 하루키의 책은 모두 51권 40작품이 되겠다. 하루키의 전작을 결심한 것은 작년 이맘때부터 약 일년 정도이니, 나쁘지 않은 셈이다. 사실 눈이 띄면 예전의 판본들도 모두 구해볼 생각이다.  정말이지 난 하루키의 그리 철학적이지 않는 담론과 술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유행은 확실히 지난 작가인 듯 하지만, 그래서 더욱 좋다.  90년대인가 하루키의 책이 한국 서점가를 휩쓸때만 해도 나는 그를 몰랐기 때문에 그 당시의 선풍적인 인기를 끈 요인이나 다른 이야기들은 하나도 모른다.  그저 읽으면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어느새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저씨'의 나이를 달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일체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이건 2009년에 나왔으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 라고 하다가 생각해보니까, 벌써 2013년이니, 나오고나서 은근히 시간이 좀 지난 작품인 셈이다.  

 

무엇인가 묵직하지만, 이것은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확실하게 결론짓게 되었는데, 여행기는 가급적 좋은 작가의 것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에 고플때에는 여행기를 읽어왔는데, 읽은 대다수의 책들은 블로그를 그대로 책으로 옮긴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가벼운 글, 심지는 2-3페지당 그림 페이지가 하나씩, 그리고 사진 페이지가 하나씩 섞여 찍힌 책들도 은근히 많았다고 생각된다.  재미있게, 가볍게 읽고 여행에 대한 주림을 달래기는 했지만, 사실 다시 펴보게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 하루키, 괴테, 카잔차키스, 그리고 김영하까지 - 볼 때, 작가들의 여행기는 그보다 훨씬 더 멋진, 작가의 내면에 가라앉은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괴테나 카잔차키스는 여행기 자체가 하나의 고전문학이 되고, 하루키나 김영하는 아직 그 정도의 무게를 - 세월의 검증이 어느 정도 필요한 -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깊이와 재미가 있다.  그러고보면, 단순한 관광이 아닌, 여행, 그것도 자유롭게 매우 보헤미안적인 여행을 하기에는 사실 재벌보다도 더 나은 것이 성공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성공'이라는, 아니 사실 '성공'에 함께 오는 '돈'과 '시간'이 중요한 포인트인데, 재벌도 - 그러니까 이건희 같은 사람도 - 김영하나 하루키처럼 다 털고 외국에 나가서 1-2년씩 살거나, 여행을 빙자한 자유로운 떠남을 실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능력이 있어도 시간적인, 아니 심적인 여유가 없다면, 그리고 9-to-6의 직장인들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된다.  

 

김영하의 이 책은 하루키의 그리스 여행과 일견 오버랩 되는 것 같이 느낄 수 있지만, 엄연히 김영하라는 사람의 세계 - 하루키와는 매우 다른, 다소 어둡기까지 한 - 가 여행기의 형식을 빌어 구현되고 있느니만큼,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군데군데 보이는 그의 위트나 성찰에 따른 이야기들은 이 책의 또다른 재미라고 하겠다.  예를들어: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많은 지식인들이 할 수 없이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정치 철학은 발전하지만 그때 발전한 사상들은 그 당대에는 별 쓰임이 없는 경우가 많다...라던가...나는 미란 하나의 거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미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음란한 매혹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다다를 수 없는 천상의 특질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정복함으로써만 소유 가능한 일종의 재산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끝내 이해 불가능한 난해한 개념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즉각 제가해야 할 불길한 미혹인 것이다.

 

라는 말을 보고 밑줄을 그었는데, 마치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그대로 읽어내려가는 것 같이 느꼈다면 좀 과장일까?  이들 외에도 몇 군데, 엎드려 책을 보느라 움직이기 싫은 게으름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밑줄을 긋게 한 구절들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른 멋과 맛을, 그의 사진과 함께 느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김영하의 산문집을 읽었는데, 이는 나온지 벌써 10년이 넘은 작품이니, 책이 처음 나오고나서 강산이 한번 바뀐 셈이다.

김영하의 가벼운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하루키만큼 가볍거나 밝고 명랑하지는 못하다.  그것은 80년대에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온, 그리고 김영하라는 이름안에 모두 담아낼 수는 없는, 그의 background, 살아온 환경 등 모든 것들이 한데 버무려져 나온 내용물이 하루키와는 도저히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세대를 넘어서 하루키가 속한 일본의 전공투세대와 6-10항쟁세대와는 좀 닮았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매우 짧은, 그러나 김영하에 의한, 김영하의 이야기들로 잘 엮어진 이 책을 구한 것도 중고서점을 이용한 덕분이라고 하겠다.  역시 엎드려서 읽느라 밑줄을 거의 치지는 못했지만, 좋은 글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시간이 흐른 만큼, 삐삐에 대한 이야기는 옛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내가 고등하교를 다니던 무렵의 한국에서는 또래들이 삐삐를 장만하기 위해 계를 만들기까지 했었는데, 정작 나는 대학교때 잠깐 쓰다가 말았다.  이곳에서의 그리 넓지 못했던 인간관계상 삐삐가 올 곳도 별로 없었기에 대부분 있으나마나 할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고, 이는 cellphone을 가진지도 오래인 지금도 그리 달라지지 않은 나의 일상이다.  사라진 공중전화박스만큼이나 옛스러운 삐삐 이야기, 2002년, 작가는 '요즘 아이들'은 아마 삐삐가 뭔지도 모를거야라고 했는데, 2013년의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pager가 뭔지,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알려나? 

 

간만에 편하게 여러 권의 책을 힘들이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다.  역시 나에게는 고전문학은 아직도 즐거움에 비례한 고통스러움을 줄 때가 있는 때로는 엄격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행실이 바르고 깊이가 있는 친구들, 그리고 같이 어울려 시시껍적하고, 때로는 다소 야한 농담을 욕과 버무려 주고 받으며 한잔 꺾을 수 있는 친구들, 모두 소중한 나의 친구들인 것처럼, 책도 그렇게 여러 녀석들을 읽으며, 또 한 주말을 보냈다. 

 

그 외에도, 잠깐 짬을 내서 logos에 가서 '아름다운 그림자: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생애'라는 전기와 앨라 피츠제럴드, 존 콜트레인, 스탄 갯츠, 마일스 데이비스, 그리고 영화 sideways의 CD를 샀다.  물론 모두 중고로...하나씩 까먹을 것들이 널려있어 항상 즐겁다, 아무리 일상이 지루하거나 stressful해도 말이다.  아마도 게임이나 영화를 내게서 모두 빼앗아간다해도 책들만 남겨준다면 사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PS 까먹고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키다리 아저씨 그 후 이야기도 읽었다  지난 주에...

주디의 이야기가 아닌, 대학친구, 주디가 살던 고아원의 경영을 맡게 된 친구의 이야기.  작가가 여자였다는 것을 여기에서야 알게 되었다.

진 웹스터가 Gene Webster (남자이름)인줄 알았더니 Jean Webster (주로 여자이름)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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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3-02-05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와 김영하, 저도 좋아해요. 다만 하루키는 산문만 좋아합니다.^^; 김영하의 시칠리아 기행도 포스트잇도 가볍게 정말 엎드려 읽기 좋았던 그 느낌이 기억납니다. 꼭 고전이 아니어도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transient-guest 2013-02-06 02:29   좋아요 1 | URL
가장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방편으로써의 독서보다 더 근간에 있는 책읽기 그 자체로써의 즐거움이란 말이죠.ㅎ 그런데, 왜 하루키의 산문만 좋아하는지요? 혹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궁금해서요.ㅎㅎ

blanca 2013-02-06 16:20   좋아요 1 | URL
저는 하루키의 그 무언가 엽기적인--;; 본인도 자기의 생활이나 성격과는 너무 다르다고 얘기한 그 요소가 안 맞아요. <상실의 시대>도 몇 번이나 제대로 읽어보려 했지만 실패했답니다. 그 이후로는 사실 진지하게 하루키의 소설을 접해 본 적이 없어 성급하게 그의 소설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산문은 너무 좋아합니다.

transient-guest 2013-02-06 23:41   좋아요 1 | URL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듯 하네요. 좀 나쁘게 말하면 변태적일때가 있다고 봐요, 저는.ㅎㅎ 그게 하루키탓인지, 아니면 일본인 특유의 묘사나 의식구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3-02-07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가 소련이 해체되고 80년대 무용담을 지겨워하기 시작한 청년들이 생기기 시작한 때죠.그래서 우리나라 후일담 소설과 하루키 소설이 공통점이 있다고 평론가들이 말하는 겁니다.

transient-guest 2013-02-07 23:5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사실, 하루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90년대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13-02-09 17:51   좋아요 1 | URL
그때 유행하기 시작해서 지금도 죽 계속되고 있죠.몇 년 전 <아이큐84> 번역 놓고 출판사간 경쟁이 치열했으니까요.<상실의 시대>는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번역본 중 최고 판매부수를 기록했을 겁니다.

transient-guest 2013-02-09 23:55   좋아요 1 | URL
그랬군요. 하기사, 상실의 시대는 최근에 소위 완역판이라고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죠.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러고보니 하루키라는 작가의 저력이 새삼 느껴지네요. 어떤 보편성도요.

노이에자이트 2013-02-11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있어요.센카쿠 갈등으로 일중 관계가 안 좋았던 지난 여름 하루키가 우려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여전히 양국은 갈등 중이네요.

transient-guest 2013-02-12 09: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일본의 팽창정책하고 미국의 대중노선/대북노선하고 맞물려서 앞으로의 동북아시아 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듯 합니다. 한일관계도 한중/한러관계와의 역학관계까지 생각하면 정말 다각적이라고 보는데요. 정말 복잡하기만 하네요.
 

내가 이곳에서 한국책을 구하는 방법, 아니 정확하게는 '이곳'과 '저곳'의 구별없이, 내가 한국책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언제고 한국에 갈때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남가주에 살때만해도 근처에 알라딘US 서점이 있어서 간혹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이용하곤 했었지만, 북가주인 이곳에는, 한국책을 파는 서점이라고는 '서점'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 내 사무실에 가져다 놓은 천여권에도 못 미치는 책이 전부인 - 종교서관이 하나 있을 뿐이라서, 직접 가서 고르는, 눈과 냄새의 즐거움은 오직 미국 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사오는 방법은 가장 저렴하게 책을 구하는 경로가 되겠지만, 자주 가지 않으니 신간이나 화제작을 늦게 읽게되어 김이 빠지고, 그때 그때 읽고 싶은 책을 바로 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물론 귀로가 무겁고, 짐을 부칠때까지 절대로 안심할 수 없다는 단점 또한 크지만, 그 정도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역시 큰 단점은 자주 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결국은 좀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인터넷 서점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데, 제작년 중반까지 이곳의 독보적인 존재는 알라딘US였었다.  그런데, 이곳의 문제는 값을 거의 2-2.5배로 튀긴 후 다시 3-40%를 DC하기에 결과적으로는 약 1.5-1.6배 이상을 주고 책을 사야한다는 점과 그 이상, 알라딘 본사에서 적용하는 DC나 special의 혜택을 하나도 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책을 살때마다 억울한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러나 어쩔 수 없었던 그런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인터파크가 진출하면서 양상이 조금 바뀌게 된 것이, 일단 알라딘US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DC나 특가를 적용받지는 못하지만, 월등히 저렴해진 책값을 적용하는 큰 장점을 업고 알라딘US와 경쟁을 시작했던 것.  그 덕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나도 한 동안은 인터파크 글로벌을 통해 책을 주문해 보곤 했으니까.  그런데, 사람맘이란게 또, 인터파크의 가격에도 불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알라딘 본사 웹을 들락거리면서 찍어두는 책들의 가격을 비교하면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인터파크 이용도 좀 시들해질 무렴.

 

2012-13으로 넘어오면서 그간 현지법인과 제휴해서 운영되는 알라딘US가 본사직영으로 바뀌고, 현지법인은 반디스와 제휴하여 독자적인 체제로 넘어가게 된,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이곳의 한국책 seller는 크게 (1) 알라딘US, (2) 인터파크 글로벌, 그리고 (3) 반디스US이 된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반가울 일이다.  시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가격을 비교하고 혜택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삼아 알라딘US를 통해 한국책을 주문해 보았다.  한국의 현지가격과 혜택, 중고샵까지 모두 dollar로 환산된 시세를 적용하여 가격을 산정받고, 배송비는 DHS기준으로 지불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사실 인터파크 글로벌이나 반디스US에서 적용하는 미국 현지의 가격에 비해 큰 혜택을 보기는 어려운 감이 없지는 않다.  물론 특가나 중고가, 그리고 한국 현지의 DC를 적용받는 것은 큰 이점이지만, 결과적으로 신간을 많이 구입하게 되면 만만치 않은 DHS배송료 때문에 체감비용이 그리 많이 줄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꼼수를 부려 보았다.

 

이번에 책을 구입하면서 모두 중고샵을 이용한 것이다.  dollar로 $3-5 사이면 한 권을 살 수 있는데, 당연히 신간이나 화제작 또는 steady seller는 구하지 못했고, 한국의 현대소설로 20여권을 추려 그간 접하고 싶었던 김영하의 다른 작품들, 김연수, 은희경, 신경숙, 이청준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주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의외로 한국의 현대소설은 많이 구할 수 있었는데, 왜 그런지 몰라도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중고샵에 나와있었다.  물론 레어템에 속하는 작품들 - 고 이윤기 선생이나 그 밖의 - 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관심이 가던 다양한 내 시대의 한국 소설들을 구할 수 있어 무척 뿌듯했다.  더구나 다른 경로들의 경우 1-2주까지도 걸릴 수 있는 출고-배송이 알라딘US를 통하는 경우 한국의 빠른 서비스가 적용되어 주문 후 바로 출고되어 미국으로 보내졌기에 약 2-3일만에 책을 받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 살짝 감동(!)을 받았다 - 면 좀 과장이지만, 그래도 따끈따끈(?)한 한국 현지의 매연냄새가 그대로 남아있을 정도로 빠른 배송이었기에 매우 좋은 impression을 남겼다.  냄새로 추억하는 한국의 겨울도 물론 좋았고 말이다.  (정말로 박스에 코를 대로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았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아무튼. 당분간은 이렇게 알라딘US를 통한 중고헌팅에 재미를 붙이고, 간혹 사정이 좋을때, 그리고 너무 읽고 싶을때엔 신간이나 새책을 몇 권 끼워넣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다.  미국책도 중간에 한 권씩 읽어나가고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서, 좀더 풍요로운 독서생활과 장서수집벽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 

 

- 혹시 미국에서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면 나의 꼼수를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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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2-03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도 요즘은 알라딘 중고매장을 주로 이용합니다. 가끔 레어템을 건지기도 하지요.

transient-guest 2013-02-03 21:59   좋아요 0 | URL
중고매장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까지 할 수 있지요. 가끔씩 전혀 생각하지 못한 레어템을 건지는 재미는요.ㅎㅎ

Cargold 2013-03-11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에서 읽는 한국책은 느낌이 색다르겠네요, 우왕.

transient-guest 2013-03-11 08:00   좋아요 0 | URL
매우 귀하게 느껴지는건 분명합니다...ㅎ
 

사면발이같은 놈들이 수 십명씩 사면되었다.  바로 그 자들과 같이 국립호텔에서 지내야 마땅할 쥐새끼에 의해서 말이다.  쥐새끼를 이을 닭의 진영에서는 이를 욕하는 모양이다.  그래봐야, 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을.  내가 순수하지 못해서일까.  나는 닭이 쥐를 비난하는 것에 영 적응하기가 힘들다.  불과 두어달전에 그들은 뜻을 함께 하는 동지로서 뭉치지 않았는가?  지난 5년간 쥐의 만사에 닭이 한번이라도 울었던 적이 있던가.  그런 주제에, 이제는 쥐가 사면발이들을 풀어주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한번 꼬꼬댁이란다. 

 

내가 보는 것은 오직, 닭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자기 사면발이들을 챙겨주는 쥐의 모습과, 이를 실질적으로는 방조하면서, 그저 구색맞추기로 한번 꼬꼬댁하는 닭의 훈훈한 모습뿐이다.  어린이 동화의 새로운 버전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쥐와 닭의 끈끈한 우정을 주제로하여, 어떻게 이들이 십년간 호랑이의 강토와 백성의 간을 파먹었는지에 대해 말이다. 

 

꼬였다고 마라.  나는 꼬인 것이 아니다.  그저 행간을 짚어 현실을 직시하고자 함이다.  명색이 책을 읽는다는 사람이,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부끄럽다.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이렇게 가끔씩 떠들기라도 해야겠다.  

 

그나저나 닭은 좋겠다.  사람들이 닭을 잡자고, '닥쳐라!'하고 달려들때마다 '꼬꼬댁'하면서 시선을 돌리기에 좋은 구명절초가 여러 개 남아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가 그랬더랬다.  BBK는 닭이 떨어져도, 올라가도 파헤쳐질 것이라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미 닭은 떠오르는 태양인데, 쥐와의 약속이 사실 무에 그리 중요할까?  닭이 살기위해서라도 쥐부터 잡고 볼 일이다.  그러니 쥐와 닭의 밀월도 얼마 남지 않았을게다.  그런거지 뭐.

 

국민 대다수의 행복지수와는 무관하게 경제대국인데다가 정치선진국이기까지 한 조국이 눈물겹게 자랑스러운 날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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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던 몇 권의 책들을 마무리했다.  바쁜 지난 3주간이었는데, 이번 주말까지의 일로써 모두 끝났다.  이번 주는 조금 숨을 돌리고, 청소도 하면서, 그간 좀 마구 다룬 내 몸을 아껴주어야겠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운동을 정기적으로 해줘도, 먹는 것이 나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마구 부어버린다.  역시, 이제는 운동도 운동이지만, 다른 부분의 생활도 더 신경을 써야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젊게 생각하고 사는 것은 물론 신체적인 젊음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나이를 안 먹는 것은 아닌 것이다. 

 

1차대전이 조금 지난 후, 스페인 명가의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뤼팽은, 그러나 그를 유명하게 해준 괴도행각 대신, 무려 정의를 위해 유산상속에 얽힌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데 주력한다.  

 

영국인답게 냉철한 추리와 신속한 행동, 그리고 기계같은 감정조절로 실수가 거의 없는 홈즈와는 달리, 역시 프랑스인다운 감성과 흥분하기 쉬운 열정으로 뤼팽은 종종 실수를 하고, 심지어는 죽을고비도 수 차례 넘기지만, 결국에는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답게, 사건을 해결하고 사랑을 손에 넣는다.  물론 그 댓가로 2억프랑의 유산상속은 포기하겠지만...

 

한 가지 웃긴 것은, 작가서문인데, 이 시기의 모리스 르블랑에 따르면 뤼팽은 극우에 보수주의자, 다시 말해, 완벽한 자본주의자라고 한다.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그가 살았던 세상은 말이다.  괴도 뤼팽이 극우에 보수주의자라니...

 

 

 

 

 

 

 

 

 

 

 

 

 

 

양귀자라는 작가는 사실 다른 작품 - 아마도 영화화 되었던 그 책 - 을 통해서 이름만 알고 있던 작가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의 유명한 작품 '원미동 사람들'을 읽게 되었다.  군사정권의 막바지인 1986년을 전후해서, 이미 서울의 bed town으로 전락하던 부천의 원미동, 한 구석의 그저 그런 여러 이웃들의 삶을 통해 때론 즐겁고, 때론 행복하지만, 대체로 많이 고단하던 서민들의 삶을 이웃과의 interaction을 통해 조명한 작품같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들 상당부분이 딱 이 정도,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한 그 만큼의 모습이라서, 요즘의 도심을 무대로 하는 소설들보다 훨씬 더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졌다.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바뀐지 오래인 그 동네의 모습에서 작품이 쓰여지던 당시의 모습을 그릴 수는 없다.  지금도 기억하는 부천의 모습은 중동대로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끝없이 펼쳐져있던 20층 아파트들의 공사모습인데, 아피아 가도 양옆으로 매달려 있었다던 스파르타쿠스와 검투사노예들의 처형모습이 떠올랐더랬다.  철골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형틀이 끝없이 서있던 그 모습이, 어쩌면 서울을 둘러싼 대다수의 도시서민들의 삶의 모습일런지도.

 

내가 기억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기본구조는 같으나, 원작과는 많이 달랐다.  예전에 명작만화버전으로 보았던 스토리는 훨씬 더 elaborate해서 스토리를 펼쳐놓았던 것 같은데, 원작은 사실 매우 빨리 움직인다.  주로 주디의 편지를 통해 전개되는 스토리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보는데, 예를 들면,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당시, 그리고 소설의 무대가 유럽이 아닌 미국이라는 것도 나에게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거의 모든 명작동화의 무대는 유럽이었으니까.

 

요즘의 눈으로 보면 조금 웃긴 것이 사실, "키워서 데려가는" 뭐랄까, 미연시나 라이트 노벨류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인데, 시대적인 부분을 감안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작가는 아쉽게도 속편까지만 쓰고 서른이 채 안된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작품들은 이렇게 남아서 많은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의 마음속에 꿈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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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2-0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부천은 소사라고 했는데 복숭아가 유명했지요.요즘은 복숭아 과수원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transient-guest 2013-02-02 00:41   좋아요 0 | URL
송내, 소사, 부천 일대는 다 아파트촌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그 근방에서 산이나 들판을 본 지도 꽤 오래전의 일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