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던 몇 권의 책들을 마무리했다.  바쁜 지난 3주간이었는데, 이번 주말까지의 일로써 모두 끝났다.  이번 주는 조금 숨을 돌리고, 청소도 하면서, 그간 좀 마구 다룬 내 몸을 아껴주어야겠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운동을 정기적으로 해줘도, 먹는 것이 나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마구 부어버린다.  역시, 이제는 운동도 운동이지만, 다른 부분의 생활도 더 신경을 써야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젊게 생각하고 사는 것은 물론 신체적인 젊음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나이를 안 먹는 것은 아닌 것이다. 

 

1차대전이 조금 지난 후, 스페인 명가의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뤼팽은, 그러나 그를 유명하게 해준 괴도행각 대신, 무려 정의를 위해 유산상속에 얽힌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데 주력한다.  

 

영국인답게 냉철한 추리와 신속한 행동, 그리고 기계같은 감정조절로 실수가 거의 없는 홈즈와는 달리, 역시 프랑스인다운 감성과 흥분하기 쉬운 열정으로 뤼팽은 종종 실수를 하고, 심지어는 죽을고비도 수 차례 넘기지만, 결국에는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답게, 사건을 해결하고 사랑을 손에 넣는다.  물론 그 댓가로 2억프랑의 유산상속은 포기하겠지만...

 

한 가지 웃긴 것은, 작가서문인데, 이 시기의 모리스 르블랑에 따르면 뤼팽은 극우에 보수주의자, 다시 말해, 완벽한 자본주의자라고 한다.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그가 살았던 세상은 말이다.  괴도 뤼팽이 극우에 보수주의자라니...

 

 

 

 

 

 

 

 

 

 

 

 

 

 

양귀자라는 작가는 사실 다른 작품 - 아마도 영화화 되었던 그 책 - 을 통해서 이름만 알고 있던 작가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의 유명한 작품 '원미동 사람들'을 읽게 되었다.  군사정권의 막바지인 1986년을 전후해서, 이미 서울의 bed town으로 전락하던 부천의 원미동, 한 구석의 그저 그런 여러 이웃들의 삶을 통해 때론 즐겁고, 때론 행복하지만, 대체로 많이 고단하던 서민들의 삶을 이웃과의 interaction을 통해 조명한 작품같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들 상당부분이 딱 이 정도,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한 그 만큼의 모습이라서, 요즘의 도심을 무대로 하는 소설들보다 훨씬 더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졌다.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바뀐지 오래인 그 동네의 모습에서 작품이 쓰여지던 당시의 모습을 그릴 수는 없다.  지금도 기억하는 부천의 모습은 중동대로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끝없이 펼쳐져있던 20층 아파트들의 공사모습인데, 아피아 가도 양옆으로 매달려 있었다던 스파르타쿠스와 검투사노예들의 처형모습이 떠올랐더랬다.  철골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형틀이 끝없이 서있던 그 모습이, 어쩌면 서울을 둘러싼 대다수의 도시서민들의 삶의 모습일런지도.

 

내가 기억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기본구조는 같으나, 원작과는 많이 달랐다.  예전에 명작만화버전으로 보았던 스토리는 훨씬 더 elaborate해서 스토리를 펼쳐놓았던 것 같은데, 원작은 사실 매우 빨리 움직인다.  주로 주디의 편지를 통해 전개되는 스토리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보는데, 예를 들면,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당시, 그리고 소설의 무대가 유럽이 아닌 미국이라는 것도 나에게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거의 모든 명작동화의 무대는 유럽이었으니까.

 

요즘의 눈으로 보면 조금 웃긴 것이 사실, "키워서 데려가는" 뭐랄까, 미연시나 라이트 노벨류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인데, 시대적인 부분을 감안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작가는 아쉽게도 속편까지만 쓰고 서른이 채 안된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작품들은 이렇게 남아서 많은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의 마음속에 꿈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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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2-0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부천은 소사라고 했는데 복숭아가 유명했지요.요즘은 복숭아 과수원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transient-guest 2013-02-02 00:41   좋아요 0 | URL
송내, 소사, 부천 일대는 다 아파트촌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그 근방에서 산이나 들판을 본 지도 꽤 오래전의 일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