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권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가 이제 5권밖에 남지 않았다. 첫 몇 권을 읽을때만 해도 이름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었는데, 이제는 작가와 캐릭터에 익숙해진 - 혹은 길들여진 - 탓인지, 아쉽기가 그지 없다. 확실히 도둑은 도둑이라서, 빼앗고 훔치는 것이 뤼팽의 주업무이지만, 그 이상, 뤼팽은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모험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뤼팽의 활동 초기에는 도둑으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의 모습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 수사관, 탐정, 귀족, 모험가, etc - 기인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양산해낸다. 긴 스토리의 장편 에피소드도 좋지만, 16권에서처럼 특정시기, 특정인으로 활동했던 뤼팽의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 더 흥미있게 읽힌다.
이제 뤼팽을 다 읽고나면 캐드팰과 엘러리 퀸, 그리고 동서추리문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하나씩 모인 추리소설이나 모험소설이 책장 하나 정도는 가볍게 채우게 될 것인데, 그렇게 모아놓고 추운 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jazz를 틀고, 된장질을 해보게 될 것 같다. 아니, 낮이라면 '모르그가의 살인'의 오귀스트 뒤팽과 화자처럼 두꺼운 커튼을 내려 빛을 모두 차단하고, 촛불 가득한 서재에서의 reading도 좋겠다. 무엇인가,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듯한 나라는 사람의 모습은 이런 마음이 들 때, 그 성향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