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스럽게도 비는 완전히 그친 것 같다.  저녁의 초입이지만 써머타임의 실행으로 아직은 해가 밝아서 음악을 좀 크게 듣고 있다.  점심을 먹고 딩굴거리다가 뛰고 왔다.  어제 개인통산 처음으로 시속 6.6마일을 유지한 채 3.75마일을 계속 뛰었고, 걷다 뛰면서 6.1마일을 걷다 뛰었던 여세를 몰아서 오늘도 기계위를 달렸다. 비슷한 기록이지만 오늘은 개인통산 처음으로 시속 6.6마일의 속도로 4마일을 쉬지 않고 뛰었다.  65분당 총 거리는 6.1마일로 어제와 같지만, 한번에 쉬지 않고 달린 거리가 늘어난 것이다.  날이 풀리면 밖에서 뛸 것이라서 어떤 기록이 나올지 모르겠다. 기계 위를 달리는 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바깥을 달리는 것보다 어려운 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바깥을 뛰는 것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늘 밤의 음주는 상대적으로 guilty-free...


땀을 워낙 많이 흘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샤워를 하고 근처의 한국마트에 가서 소주 네 병과 오뎅탕을 만들 찬거리를 사왔다.  오뎅이야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없지만, 오뎅스프는 쓰지 않기로 하고 다이콘 무우, 다시마, 국멸치, 대파, 할라페뇨, 붉은 고추, 당근, 양파를 넉넉히 넣어서 다시국물을 내고 있다.  3시간 정도를 푹 끓여주면 좋다고 하는데, 스토브를 켜놓고 외출할 수는 없으니 막상 음식을 만든 나는 맛을 즐길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오뎅은 꼬치로 된 냉동제품을 사서 물로 깨끗히 씻고 뜨거운 물을 가득 담은 그릇에 넣어 기름을 빼고 있다. 오뎅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름이 많이 들어가고 믹스 자체에도 MSG가 많이 들어가는 것 같고, 결정적으로 오뎅스프는 그냥 라면스프 같다. 먹고 나면 늘 목이 마르고 피곤해 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마침 주말이고, 내가 땡기고 해서 이런 이유로 국물이라도 아날로그하게 만드는 것이다.  쑥갓도 사서 잘 씻어 놓았다.  어쩌면 조금 더 끓이다가 불을 끄고 잠깐이라도 외출을 해야 이걸 제대로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핀볼은 내가 본격적으로 오락을 즐기기 훨씬 전에 이미 유행에서 멀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핀볼머신을 본 건 예전에 인천 한 귀퉁이에 있었던 맥아더 기념관이라는, 퇴역미군출신 백인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경양식집이었던 것 같다.  인생을 통털어 3-4번 정도만 가봤던 것 같은데, 일단 멀었기도 했고 값도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그곳을 가는 건 꽤 special한 일이었고, 가서 스파게티를 먹은 기억이 있다. 이미 전자오락의 시대가 시작된 것도 오래였고, 이후로 한국에서는 핀볼머신을 본 기억은 없다.  


본격적인 십대가 시작될 무렵 미국에 오게 되었는데, 그때도 핀볼머신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살던 곳에는 큰 아케이드가 2-3개 있었는데 운전을 하지 못했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suburban life의 십대는 쉽게 갈 수가 없었던 곳이다.  당시 전 세계를 강타하고 훗날 대전격투기게임의 시조새가 되어버린 Street Fighter 2가 세븐일레븐이나 볼링장 한 구석에도 있었는데, 덕분에 굳이 신세를 지면서 아케이드를 갈 필요는 딱히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더구나 제대로 된 아케이드에서 놀려면 꽤 실력이 좋았어야 했는데, 내 오락실력은 홈아케이드 수준이었기 때문에 막상 아케이드에 가도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핀볼을 제대로 즐겨본 적은 없고, 아마 지금의 5-60대 미국인들이 젊은 시절, 전자오락의 태동기와 십대가 맞아떨어졌던 그 세대가 핀볼머신을 갖고 논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낡은 bar 한 구석엔 있을 법 한데, 이젠 완전히 어른이 되어 가끔씩 bar를 가보지만 핀볼머신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멀리 있는 것들은 가까이에 있는 다른 것들에 대입하는 것으로써 근처로 끌어당기는 버릇이 있다.  1950년에 태어난 하루키, 그 1950년에 태어난 내 어머니, 이런 식으로 말이다.  1973이면 그들이 23살 한창의 나이였을 것이다.  내 아버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서 사느라 어머니는 평생 여자로써의 고생을 했는데, 고작 1-2년이면 다가올 미래를 몰랐으리라. 인물도 곱고 머리도 좋은 내 어미니가 왜 아버지같은 남자와 결혼을 했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1973년은 23살의 남자가 몇 년전까지 갖고 놀았던 핀볼머신을 추억하는 시절이었나보다.  같은 시절 한국은 박정희의 군사독재가 아직도 6년이나 더 남아있었던, 그야말로 발악하던 암울한 시간이었음에 새삼 두 나라, 두 사람이 지나온 시간의 거리를 느낀다.


오뎅국물을 끓인지도 거의 2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난 과연 이걸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그것도 혼자 마시는 소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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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2018-03-25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저도 지금 오뎅탕을 끓이는 중인데 15분 초스피드... 엄청 비교되네요. ㅠㅜ 국물만 2시간이라니! 신중하게 음미하면서 드셔야 겠어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8-03-2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국물맛은 좀 나는데 아마 오뎅을 넣고 끓이면 익숙한 맛이 날지 모르겠네요 ㅎㅎ

이지 2018-03-25 10:51   좋아요 0 | URL
오래끊인만큼 맛없으면......대박이겠죠? 흐흣 (농담입니당)

transient-guest 2018-03-25 10:54   좋아요 0 | URL
그냥 망하는 거죠 그나마 간장과 와사비도 있고 폰즈를 찍어먹으면 될 듯 ㅎㅎㅎㅎ

이지 2018-03-25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은근 내것과 비교되서 망하길 바랬는데, 다양한 아이템이 있었구나. ㅠㅜ 전 벌써 다 먹고 쉬는 중인데. ㅎㅎㅎㅎ맛있게 드세요~ 국물만으로도 맛있는 그런 오뎅탕을 완성 하길 바래요~ ^_____^

transient-guest 2018-04-06 03:04   좋아요 0 | URL
먹고 퍼졌더랬죠..ㅎㅎ

포스트잇 2018-04-05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1949년 1월 12일생으로 나와있는데요.. 50년생이라 하셔서 순간 좀 놀래서요..;;;

하루키를 읽고 계시다니 반갑습니다. 저는 왜 하루키를 계속 읽게 되는지 이유를 좀 알고 싶어서 읽고 있습니다. 엊그저께 오쓰카 에이지의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읽었는데.. 하루키가 발가벗겨지는 느낌을 받는데(아, 그렇다고 오쓰카의 견해에 끝까지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만), 다 읽을 즈음 그래도 하루키를 읽겠다는 마음이 들면 진짜 좋아하는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transient-guest 2018-04-06 03:06   좋아요 0 | URL
제가 막연하게 제 어머니하고 동갑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머릿속에 굳었나봅니다. 저의 오류(?)의 증명으로 수정하지 않고 그냥 둡니다만..ㅎ 늘 하루키=어머니연세=50년생으로 기억했네요.ㅎ

한 작가나 작품세계를 분석하는 건 그 나름대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겠죠?? 그런데 그게 너무 작가 개인의 사적인 면으로 가버리면 소설의 재미가 다소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워낙 유명한 작가라서 이런 저런 ˝론˝이 많고 의견도 다양한데 저는 아직도 하루키를 좋아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