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사놓고 읽지 못한채 부모님댁에 가져다 놓았던 정운현선생의 책 두 권을 내리 읽었다. 하라는 일은 안하고, 어제 과음한 탓에 잠을 설치다가 새벽에 겨우 운동을 하고 와서 밥을 먹고, 하루종일 자다깨다 하면서 골골대면서 하루를 보냈다. 중간에 간만에 다니던 대학교의 track을 뛰었는데, 몸이 무겁고 지친 탓인지 겨우 2마일을 걷다가 뛰는 정도였다. 그래도 날이 맑고 해가 따뜻한 field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의 풍경은 최고였다. 명문대도 무엇도 이젠 필요하지 않고, 그저 이 학교의 학부에서 처음부터 다시 역사를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하려면 어려울 것 같고, 조금씩 공부를 해서 두뇌근육을 다시 키워야한다. 보통 시간이 많아지면 바쁠때 하리라 맘먹은 것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이유는 준비의 부재가 아닌가 한다. 이번 학기는 어렵겠지만, 2017년 여름이나 가을학기에는 한 과목만이라도 저녁강의를 들었으면 한다. 가장 손쉽게 시작할 수 있고 일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스페인어부터 욕심을 부려볼 생각이다.
2017년은 2016년에 시작된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나아가서 내 회사가, 또 나라는 사람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좋은 기운을 타고 천시를 맞더라도 그러나 내가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금년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꾸준하고 성실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도 꾸준히 읽고, 공부하고, 수행과도 같이 운동을 하고, 이렇게 하면 2017년도 금방 지나갈 것이다. 2017년에는 천병희교수의 원전번역을 다 사들이고 싶다. 용케 절판되고 있지는 않지만 워낙 고가에 내가 갖지 못한 책이 30편 정도 되는데,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조바심에 늘 시달리고 있다. 이미 비슷한 이유로 일부 갖고 싶은 책이 절판되어버렸기 때문에...
Q&A형식으로 아주 쉽게 친일과 친일파에 대한 설명을 해놓은 가이드라고 볼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신사 (젠틀맨)으로 알고 있는 대학생이 있다고 하니 절통할 노릇이다. 3당야합을 통해 되살아난, 그리고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꾸준히 이루어진 국사조작과 탄압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요즘 젊은 친구들하고 얘기해보면 이념도 역사관도 다 별로인 경우를 종종 본다. 어떻게 저렇게 젊은 나이에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들이 중-고-대학교를 다닌 시기는 이명박-박근혜의 치세와 맞물려있다. 그야말로 잃어버린 세월, 잃어버린 세대가 아닐 수 없다.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 중-고-대학생, 특히 이제 대학교에 들어갈 세대에 조금 더 기대를 하고 있는 이유다. 광화문의 촛불과 그 승리를 본 세대, 그리고 망가진 정치가 어떻게 경제와 사회를 망치는지를 본 세대는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 순진한 기대와 믿음이 배신당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위의 책이 개론서 또는 아주 쉬운 확인서라면 '조선의 딸, 총을 들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잘 다뤄지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독립투쟁의 주요인물을 잘 소개해주는 책이다. 임종국선생도 그렇고 그 계보를 잇는 정운현선생같은 분들은 정말이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있어 보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러시아공산당으로서 무장투쟁을 하다 백러시아군에 잡혀 사형당한 김알렉산드라의 최후도 뭉클했고, 독립투쟁의 한 가운데서조차 남성위주의 사고에 눌려 묵묵히 뒷바라지를 했던 수많은 여성독립투쟁지도자들의 이야기도 좋았다. 윤봉길의사와 거사당일 함께 훙코우공원에 갔으며 이봉창의사가 폭탄을 숨길 수 있도록 바지를 수선해준 분의 이야기도 멋졌다. 단순히 지원 뿐이 아니라 직접 무장투쟁의 선봉에 선 분들도 있었고, 친일분자나 일제공직자에게 폭탄의거를 계획했던 분들도 있었다. 말 그대로 우리 독립투쟁사에 '유관순 누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여성동지들의 혁혁한 전공이 있었음이다. 인구의 반은 여성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투쟁의 역사를 보면 아직까지도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여성의 지위, 양성평등, 여혐범죄 같은 것들이 너무 유감스럽다.
한홍구 교수가 독재부역자들에 대한 책을 만들기 위한 전초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추리고 추려도 필경 수백에서 천명 이상이 될 것이 분명한 방대한 작업이 될 것이고, 온갖 방해와 음해가 가해질 것도 분명하다. 문제는 돈이다. 이건 좀더 알아보고 아주 조금이라도 십시일반의 맘으로 지원하고 싶다. 내년엔 시사인도 정기구독하고, 이런 한국에 뿌리를 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좋은 일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