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과를 대략 정리하고 나서 잠깐 짬을 내 서재에 글을 써본다.  그간 미루던 행정업무도 많이 밀어냈고, 원래 계획했던 bulk의 일은 고객의 자료부족 및 효율성 때문에 조금만 건드리고 다음 주중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루의 일을 조금씩 하는 건 지금의 나에게는 꽤 좋은 방법이다. 처음 혼자 일을 시작했을때는 계획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적은 업무량이라서 금방 마무리하던 것이 이젠 전년도에서 넘어오는 케이스관리, 신규업무, 그리고 on-going한 일 등, 조금만 손을 놓으면 금방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리고, 땜질 위주로 일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어쨌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재나 블로그를 보면 자신에 대해 매우 솔직한 글을 쓰는 분들도 꽤 많다.  나는 아직은 그럴 자신이 없지만, 가끔은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페이퍼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서 조금씩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영업이라고까지 하면 그렇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지식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인데, 물론 그런 경로로 일하고 연결되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그냥 내 자신은 조금 더 서재의 뒤에 숨어있고 싶은 거다.  어떻게 할까 늘 고민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생각해본다.  그냥 그렇다고요.


사람이 죽는 순간에, 그러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치한 그 순간에는 삶의 모든 것이 한번 눈앞으로 스쳐지나간다고 한다.  증명할 방법도 없고, 어디서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듯 영화나 책에서 많이 이런 모습이 차용되곤 한다.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어쩌고 한 것도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죽어서 무덤에 묻힌 이의 고백도 무엇도 아닌 제 3자의 시선으로 한 남자의 삶을 judging하지 않고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내는 이 짧은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나도 죽을 것이고, 그때 내 장례식장엔 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올까, 진정으로 내 죽음을 슬퍼해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주인공 모씨의 삶은 모순 투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공과 affair가 늘 함께 했고, 자신에게 정말 잘 맞는 짝을 두고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애정행각에 빠져 결국은 딸 하나, 자신의 형 이렇게 두 사람 빼고는 모두을 잃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런 모순을 한 두개씩은 갖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것은 이미 손에 들어왔으니 안중에도 없고, 갖지 못할 것, 또는 가지면 안될 것을 바라보면서 유혹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말이 막 살라는 것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야말로 심각한 오독이 아닌가 한다.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은 그렇게 잘못 회자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을 남용하고 있지 않을까?  마음은 낮추고 눈은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하루의 삶에 충실하고 싶다.  


이 책에는 mixed feeling이 있다.  일단 좋은 책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천천히 좋은 것을 권하고 명상이나 행공을 안내하여 좀처럼 풀리지 않는 과거의 트라우마, 여기서 발생하는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지향까지, 많은 것들의 근본으로 파고들어간다.  잊거나 버리고 타파할 과거가 아닌 온전히 마주하여 받아낸 후에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다만, 내 맘이 이 책에서 말한 것을 하나씩 실천할 여유가 없었을 뿐, 이 책에서 김도인이 대상으로 삼은 독자의 유형에는 나도 포함된다.  

김도인은 지대넓얇의 유일한 여성멤버로 명상, 선도 같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약간은 어눌한 말투지만, 할 말은 다 하고, 그쪽 방면의 공부와 수행도 꽤 깊은 것 같다.  단순히 책이나 이론으로만 배운 것이 아니라서 나이는 어리지만 수행에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도 가짜 스승이 많은 시대이고, 실제로 조금만 세력을 얻으면 바로 '교주'가 되어버리는 건 도판의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유명하다는 목사나 승려들의 내면을 보면, 특히 이권이 관련되는 경우, 그러니까 돈이 모여드는 순간 이들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그런 세상에는 그저 많이 읽고 경험하고 직접 찾아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아야 '수행'에 다가갈 수 있다.  말씀을 강조들 하시는데, 말씀이 없어서 지금 세상이 이따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기회가 되면 천천히 다시 읽어보면서 하나씩 따라가볼 것이다. 마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책을 제대로 보려면 다뤄지는 음악을 하나씩 들어봐야 하는 것처럼, 수행이나 행공에 관한 책도 그렇게 하나씩 따라서 해봐야 알 수 있다.  


오후에 조금 일찍 퇴근하고 낮잠을 잔 후, 밤운동을 다녀왔더니 각성이 되어 잠이 오질 않는다. 아마도 오늘은 새벽 두 시는 넘겨야 잠들 수 있으리라.  이번 주는 그렇게 밤운동으로 기초운동량을 맞춰야 한다.  날이 추워지면서 새벽에 일어나서 뛰어나가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기에.  


사무실과 부모님 댁, 그리고 지금 사는 아파트까지 책으로 넘쳐나고 있는데, 읽지 못한 책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책은 계속 사들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이번 달엔 책주문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쓰메 소세키를 읽다 잠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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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05 1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에서 만큼은 솔찍하고 싶습니다^^. 책 영업사원처럼 뻥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이 선택한 책인데 비판만 할수도 없고요. 비판될만한 책은 일단 구매부터 안하니.구매한 책은 대부분 좋은 평가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죠..물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더라도 뭔가 끌려서 빌리지 흥미 유발되지 않는 책이면 대출도 하지 않거든요..일상의 이야기야 뭐 속속들이 다 할 수도 없으니 ㅎㅎㅎ

오거서 2016-10-05 20:44   좋아요 2 | URL
솔찍하게 말하면 사놓고도 맘에 들지 않는 책들이 있어요. 선택이 항상 옳고 맘에 드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그걸 어찌 일일이 말하면서 살 수 있나요. 그저 웃지요… ^^;;

yureka01 2016-10-05 20:43   좋아요 2 | URL
그럴땐 까야죠..ㅎㅎㅎ낚시에 걸렸음을 알려야죠.^^.

오거서 2016-10-05 20:46   좋아요 1 | URL
그렇죠. 그래야 하는데… ㅎㅎㅎ

transient-guest 2016-10-06 02:31   좋아요 1 | URL
책은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개인의 신변잡기도 큰 무리가 없고요. 다만, 그 이상으로 가보고 싶은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이건 좀 어렵더라구요. 아주 내면적인 이야기는 친구하고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고민도 있고, 또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많이 조심스럽죠. 책에 대한 이야기는 제 느낌 그대로 하는 편입니다. 제 서재글을 보면 극단적으로 낚시에 걸린 이야기도 가끔 나와요.ㅎ

cyrus 2016-10-05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의 사생활에 관해서 솔직하게 쓰는 것을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요. 이 글이 `전체 공개`가 되기 때문에 타인 앞에 자신의 모습을 잘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약간의 과장이 곁들여집니다.

오거서 2016-10-05 19:53   좋아요 2 | URL
약간의 과장도 없으면 사는 재미가 있나요. 그리고 과장된 걸 이루어내면 더 이상 과장도 아니게 되지요.

transient-guest 2016-10-06 02:49   좋아요 1 | URL
그런 점이 없지는 않겠죠. 제가 고민하는 건 나쁜 모습(?) 또는 나쁜 생각(?)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내면의 고민이나 이야기를 하는 건데 아무래도 쉽지 않겠어요. 책블로그라는 원래의 취지도 그렇고. 다만 제가 하는 일에 대한 건 조금 더 생각해 보려구요.

오거서님: 약간은 몰라도, 보여주기 위주의 서재가 될 risk도 무시할 수 없죠. 이미 네이놈 블로그에서 많이들 하고있는...ㅎ

2016-10-05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6 0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