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지겨울 틈이 없다. 어릴 땐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다 읽지 않으면 다른 책을 잡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이런 저런 책을 한꺼번에 읽게 되었는데, 대략 10년 전부터 그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동안 책읽기를 거의 멈추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은 2007년 초입이고, 이때 바로 힘든 타지의 남의 집살이(?)를 시작했기에 자계서를 중심으로 self-motivation에 치중했고, 이와 함께 다시 에세이나 소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책읽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보통 3-4권의 책을 동시에 읽으면서, 논픽션, 소설, 고전문학, 실용서적 등을 한국어와 영어로 뒤적거리고 나서 시간이 꽤 지난 시점에 책읽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는데, 마구잡이로 읽는 것 외에 이걸 어떻게 하면 취미를 넘어 가져갈 수 있을지, 그리고 책읽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오는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주로 고민을 했다. 다독에 관한 책은 이때를 즈음해서 만난 것 같고, 결론적으로 맘으로 느낀 것을 타인에 의해 활자화된 형태로 읽었다는 느낌을 받고, 좀더 자신의 독서론에 대한 확신을 같게 되었던 것이다.
책읽기라는 것은, 여타의 다른 취미와 마찬가지로 지겨움과 즐거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바, 이걸 효과적으로 넘기는 방법은 다독술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금년 들어서 미친듯이 책을 사들였고, 열심히 읽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 쌓아두는 책이 더 많고, 이 때문인지 간혹 많은 책을 앞에 두고 정작 다른 책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들인 책을 읽고 다시 새로 책을 사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을 잘 알지만, 한국출판계의 현실은 2-3년이면 책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고 여기서 오는 불안감 때문에 주기적으로 회사의 자금사정에 맞춰 미리 점찍어둔 책을 구하게 된다. 여기서 오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책읽기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보면 이런 구매는 필연적인 부담감과 피로를 동반한다. 나에겐 이때가 꽤 위험한 순간인데, 다독은 내가 이걸 넘어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된다.
지난 주, 그리고 이번 주에는 평균 3-4권의 책을 읽었다. 순수문학보다는 소설이나 논픽션에 치우친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꾸준한 단련이 언젠가는 고전을 깊이 파고드는 원천진기로 바뀔 것이라 믿기에 괜찮다. 다만 학창시절보다는 확실히 책임도 늘고 자신의 시간을 따로 찾기가 어려워지는 형편이라서 고전문학이나 그리스/로마의 고전 한 권으로 깊숙히 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지금의 독서는 어쩌면 훗날 이런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면서 잠시 맘을 가라앉히게 해준다.
어린 시절부터 서책을 가까이 했고, 중간 중간 살면서 위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꾸준한 독서생활을 해왔다. 덕분에 이 나이가 되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는 귀중한 경구(?)도 접할 수 있었는데, 이 또한 독서를 통해 얻은 진리가 아닌가 싶다. 혹시 책읽기를 시작하는 분들, 가끔은 너무 지겨워진 책읽기에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다독을 권하고 싶다. 어떤 기준이나 제한도 없이 그야말로 종횡무진 활자와 그림의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시공을, 현실의 제약을 초월한 미팅과 여행을 즐기다보면 또 한 동안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힘을 얻고, 이것이 반복되면 일종의 지적 연마가 될 것이고, 독서라는 큰 세계를 함께 일구어 가는 지적연합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나 자신은 보잘건 없지만, 이미 이런 저런 우연이 겹쳐 일면식도 없지만, 책읽기를 견주고 배울 수 있는 많은 인연을 맺게 되었음에 감사하며, 언제나 함께 이 귀중한 지적단련과 계승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PS 다독술에 대한 책이 여러 권 있는데, 몇 권은 급조된 자계서에 가깝다는 느낌이지만, 사람에 따라 얻는 바가 다를 것이니까, 굳이 좋은 책 나쁜 책을 구분해서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관심이 가는 사람은 '다독', '다독술'등을 키워드로 해서 찾아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