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열심히 일한 결과, 오늘은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역시 틈새공간 같은 여유인데, 오후까지는 조금 한가할 것 같다. 일이야 늘 있는 것이고, 그저 조금 미뤄둘 정도의 쉬는 시간 같은 거다. 그래도 이젠 낮에 맥주 한 잔 같은 건 먼 과거의 일이고, 잠깐 쉴 수 있을 때엔 그냥 다른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조금 일찍 점심시간을 갖고 운동을 하는 정도이다. 오늘은 여전히 일린 책정리를 하려고 페이퍼를 열었다. 그런데, 방금 책 한 권을 넣으려고 보니 앞서 후기를 적은 책이다. 내 정신이 이렇다. 술 탓인지, 신경을 많이 쓰는 탓인지, 노화속도가 갑자기 빨라진 느낌이다. 앞으로 한 10년에서 20년 정도 몸을 건강히 잘 관리하면 미래의 발달된 생명공학과 생체역학의 덕을 누릴 수 있다고 하니까, 잘 버텨야지 싶다.
이와나미의 상징성, 일본 출판계와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샀다, 약간은. 계속 시리즈로 나올 계획인 듯 한데, 반갑기도 하고, 조금 착잡하기도 하다. 박근혜씨의 대통령 참칭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일본 군관의 딸이 거느린 친일파 씨붙이들이 세력을 떨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나미 신서가 얼마나 좋은 책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전적으로 일본의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구성이고 책 대부분은 일본의 현실에 맞춰 만들어진 것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단순한 출판 혹은 지식의 저변확대보다 문화침략 혹은 동기화의 일환으로 느껴진다. 이와나미 사장의 신서 간행사를 보면 아무리 좋게 희석시켜도 그 사상의 구심점은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론에 맞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중일전쟁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할 때 훨씬 더 진보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천지의 의를 더하여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고 왕도낙토를 건설하는 것이 동양 정신의 진수이며, 동아 민족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일본에게 부여된 세계적 의무"이며 "중일전쟁 목표 역시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말로 시작된 이 망상은 결국 일본이 동양 전국에 가져왔던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희석시키는 유체이탈적인 화법일 뿐이다. 이 문단이 어떻게 저자의 말처럼 "중일전쟁의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신서에 포함된 책들 중 흥미가는 책들이 다수가 있지만, 이 따위 '역사'책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몇 권 더 보면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나친 의심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눈 똑바로 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세상이다.
이 책으로 과연 조루주 심농이나 메그레 경감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반 정도는 메그레 경감과는 상관이 없는 단편이었고, 중편에 해당하는 '제1호 수문'이 메그레 경감이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프랑스어를 한역하면서 발생한 건지, 아니면 원래 프랑스어를 옮기면 영문-한역과는 다른 느낌이 나는 건지, 원체 스토리에 몰입하기 어려운 점이 아쉬웠다. 동서출판사의 책은 좀 다를까? 75권으로 계획된 시리즈는 20여 권에서 멈췄다고 하는데, 이런 느낌이라면 좀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추천해주는 분이 많았기 때문에 일단은 '해문출판사'의 문제 혹은 내 머리가 복잡한 탓으로 한다. 기실, 오구리 무시타로의 책도 동서출판사의 판본과 새로운 판본을 함께 봤는데, 그리 다른 점을 모르겠으니, 어쩌면...
바쁜 스케줄이 다시 올 것이니 오늘은 조금 긴장을 풀고 즐긴다는 생각으로 남은 하루를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