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깨다 먹다 마시다 일도 조금 하고, 다시 이를 반복하고 있다.  그 와중에 책도 조금씩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스토너'는 새벽에 눈이 떠지는 바람에 붙잡았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나서 바로 리뷰를 써보았어야 하는건데, 새벽 6시에 느낀 먹먹함과 감동, 그리고 동질감에 푹 젖어있고 싶어서 굳이 노트북을 켜지 않고 다시 누워 생각에 잠긴 채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그 처연하고, 아름답고, 아프고 쓸쓸했던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볼 자신이 없다.  일단은 추리소설만 정리하고 나머지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건 떠오를 때 써봐야겠다. 


드디어 72권까지 완독했다.  7권이 남았는데, 열심히 읽으면 2015년을 넘기지 않겠지만, 왠지 자신이 없다.  그렇게 의무로 읽어서 이 책과 작가를 모독하기도 싫거니와, 그런 독서 따위는 개도 안먹을 만큼 구릴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비록 운동을 하면서 읽기에 산만한 정신일 때가 많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것과 의무적으로 해치우는건 다르다.  최소한 해치우기 위한 독서는, 자계서식 독서와 함께 내가 지양하는 형태의 책읽기다.  


70권대에 들어서 포와로 아니면 마플이다.  그 둘이 주로 한번씩 등장하면서 추리를 이끌어 가는데, 이번에는 포와로다.  '죽은 자의 어리석음'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미지수이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가끔씩 보여주는 전가의 보도인 사람 바꿔치기는 언제나처럼 묘한 변수로 작용하여, 수법의 익숙함과는 무관하게 전혀 연상추리가 되지 않는다.  꽤 재미있었다고 기억한다만, 본격추리물이 그립기도 하다.  79권까지 모두 읽으면, 캐드팰을 독파하면서 동서미스테리문고의 책들과 일본추리소설을 건드릴 생각이다.  이리 저리 모인 포인트는 한국돈으로는 꽤 좋은 가격에 나오고 있는 동서미스테리문고의 책들을 마저 끌어모을 것 같다.  


드디어 시작했다.  캐드팰 수사의 이름을 듣고, 중간에 품절되는 이 시리즈를 보면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그러다가 2013-2014에 큰 맘을 먹고 한꺼번에 20권 전집을 모두 구했다.  다만, 그때엔 이미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라는 엄청난 세계에 들어가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은 거의 1년 이상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간 물론 다른 추리소설도 읽었지만, 거의 요코미조 세이시, 마쓰모토 세이초 정도였는데, 묘하게도 이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시대와 겹쳐서 이질감은 적었던 것 같다.  하지만, 캐드팰 수사가 활동한 시기는 너무도 다른 시절 - 그러니까 기적과 현상을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있던 중세 이전의 중세 같은 유럽 - 이었기 때문에 내 판단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73권째를 들어가는 마당에 조금은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과는 물론 기대이상!  오늘 오전에 침대에 엎어졌다, 누었다가, 다시 앉아서 이불을 덮는 등 동작을 바꾸어 가면서 다 읽었다.  엄청 신선한 재미였다.  


억지로 꾸민 기적과 부수도원장의 허영이 겹쳐 캐드팰 일행은 수도원으로 모시고 올 성녀의 유골을 찾아 웨일즈의 한 마을로 떠난다.  (지금도 웨일즈 사투리는 지독하다는데, 웨일즈어와 잉글랜드어는 당시 거의 외국어 수준으로 달랐을 것 같다).  캐드팰은 통역차, 그의 수행원은 muscle역할로, 이 수상쩍은 행렬에 동참하여 그간 잘 쉬고 있던 성녀의 유골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의 일원으로 웨일즈에 간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유력자의 살인사건은 19-20세기의 사건을 기준으로 하면 꽤 단순하다.  이미 스토리의 전개상 살해동기가 있는 사람들은 몇 안되기 때문에 그리 어렵게 추리하지는 않았으나, 아직은 이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범인을 유추하지는 못했다.  


기적과 마법, 현상, 마을, 사람, 그러니까 '과학'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살아 숨쉬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추리소설이 어디로 날 데려갈지 궁금하다.  역시 책이란 것은 사다 놓으면 읽게 된다는 나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례.  


이 외에도 마션, 이덕일 선생의 책, 스토너에 대한 말을 남겨야 하는데, 스토너는 오전에 느낀 그 먹먹함과 복잡한 생각을 글로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하다 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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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2-2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대한 모험의 여정 중이신 ..응원 놓고 갑니다!
여러 나라와 인물을 오가느라 벅찰텐데..즐겁게
소화중이신듯하니....나중에 또 리뷰 기대할게요!
잘 읽고갑니다.가스팰 ㅡ참 오랫만에...이름을 ..!^^

transient-guest 2015-12-27 01:1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ㅎㅎ 네 드디어 크리스티는 졸업을 앞두고 있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전혀 새로운 내용과 배경의 책을 읽게 되니 참 좋네요.ㅎ

다락방 2015-12-26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랬어요. 스토너를 글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transient-guest 2015-12-27 01:13   좋아요 1 | URL
그쵸? 저도 읽고 나서 한참 먹먹하게 감동도 아니고, 연민도 아닌 묘한 공감..제 인생을 돌아보게 한 소설 같습니다. 예전에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었는데, 스토너는 훨씬 더하네요.

cyrus 2015-12-26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서문화추리문고는 번역만 개선되면 사서 모으고 싶어요. ^^;;

transient-guest 2015-12-27 01:13   좋아요 1 | URL
저는 추억어린 시리즈라서 그런지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어떤 책은 정말 의미를 알기 어려운 오역이 심한 경우가 있더라구요.ㅎㅎ

Forgettable. 2015-12-26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드디어 캐드펠 시리즈!! 이거 읽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읽으셨다니 무한한 동질감. 게다가 재밌게 읽으셨다니 더더욱 ㅠㅠ 전 엄청 즐겁게 읽었어요. 읽을 수록 캐릭터들에게 정이 엄청 들게 되더군요. 아 갑자기 엄청 읽고 싶어지네요.

아참! 하루 늦었지만 메리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셨길 ㅎㅎ 전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고 있어요. 연말 가족분들과 행복하게 보내시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transient-guest 2015-12-27 01:15   좋아요 1 | URL
드디어 시작합니다.ㅎㅎ 이 책도 은근히 레어템이 될 조짐이 있어요.ㅎㅎ 귀하게 읽어야죠. 님도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인터내셔널하게 보내셨네요.ㅎㅎ 2016년는 더욱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