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더라? '혼자 책 읽는 시간'의 니나 상코비치였나? 그랬던 것 같다. 여름에는 섬이나 강변의 한적한 휴양지로 온 가족이 떠나서 한 바탕 모두를 모래사장에 풀어놓고서 놀다가 지치면 자거나 맥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책을 좋아했던 니나의 가족은 특히 여름에는 추리소설을 즐겼다고 하는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각기 좋아하는 작가를 골라들고 여름 밤 어디엔가 널부러져 있었을 풍경이 고즈넉한 휴양지 방갈로의 거실과 어우러진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확실히 난 여름이면 추리소설을 많이 읽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금서처럼 취급되었던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끽하면서 느끼는 해방감이라니! 키덜트라고들 하는데, 확실한 것은 어린 시절의 보상심리와도 맞물려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지금도 게임 소프트나 영화를 모으는 것을 보면 장난감을 사들이는 정도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게 느껴진다. 왕좌의 게임이나 스타워즈, 또는 마블/DC 슈퍼히어로 피규어를 집었다 놨다하고 있다능...
'흑소소설'과 '독소소설' 사이에는 '괴소소설'이란게 있는데 지금 구해서 본 책은 이 두 편이다. '독소소설'은 마지막 한방에 모든 상황을 뒤엎는 형식으로, '흑소소설'은 그야말로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으로 웃음을 유도하는데, 가볍게 읽기에는 그만이다. '괴소소설'은 말 그대로 기괴한 방법으로 웃음을 유발해낼 듯하다.
크리스티 전집의 53번째 책은 아쉽게도 내용에 흥미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건성으로 읽어버렸다. 데임 애거터께는 황송할 노릇이다. 그저 2차 대전도 끝나고 모든 것이 현대화 되어가는 시기의 늙은 미스마플 - 원래도 늙었었는데, 이젠 할머니가 된 듯한 - 과 그녀의 동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야기라는 정도만 기억하고 다음 작품인 '백주의 악마'로 넘어갔다. 다행스럽게도 '백주의 악마'는 처음부터 흥미를 끄는 내용이라서 무리없이 읽어가고 있다.
크리스티 전집은 25권, 이후 읽으려고 모셔둔 캐드파엘 20권 가량 (맞나?), 여기에 이런 저런 동서추리문고의 판본들과 틈틈히 사들이는 일본추리소설, 그리고 영문판의 서스펜스까지 이번 여름은 엘니뇨와 함께 그야말로 서늘하게 보내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휴가로 계획한 여행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러니만큼 일상에서의 휴식을 찾는 것이 절실한 때이다. 그런데 왜 서로 알지도 못하는 내 클라이언트들은 사전에 모의라도 한 것처럼 한꺼번에 일을 보내오는건지. 한가할 때에 하나씩 정리하면 젤 좋은데, 시간이 나면 마구 한가하다가도 바빠지면 모든 일은 한꺼번에 벌어진다.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법칙 같은게 존재하기는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