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처음에는 특정한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삶 자체에 대한 것이든, 하다못해 내년에 어디를 가겠다는 정도의 단기적인 것이든. 하지만, 살면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변수들, 일정부분 예측이 가능했을, 하지만, 상당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또는 통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들이 생기고, 이에 따라 계속 그 목표의 모서리가 깎여나가서, 나중에는 전혀 다른 물건이 나오게 된다.  후회도 하고, 작은 성취에서 오는 기쁨도 느끼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원래 가고자 했던 곳만 여행의 종착지로, 한 가기의 절대목표로 삼는 삶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것 같다. 그 극소수의 사람들 마저도 아마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곳을 향해서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절대선, 극단의 도를 추구하는 수행자들은 수도원에, 산중 깊숙히 자리한 암자로 들어가는 것일까?  다른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오로지 추구하는 한 가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극단적인 희생이 따르는 것일까? 연인도, 형제도, 심지어는 부모도 끊어버린다는 불교의 수행자들, 도판의 사람들, 봉쇄수도원으로 들어가버리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간 놓친 곰스크행 기차를 탈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편을 모아놓은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내 생각으로는 한결같이 그런 의문을 떠올리게 했다.  가는 것, 아니면 가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할까, 아니면 그렇게 변해가는 삶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일까?  


나의 십대와 이십대, 그리고 지금에서 다음을 생각하면서, 치기어린 시절의 꿈, 일상에서 이 꿈을 remind하기 위한 행동과 말을 떠올리면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지나서는 일정부분 인정할 수 없는 한계와, 거기에서 오는 절망, 그리고 주어진 것에서 최선을 찾기위한 몸부림까지 다 생각하면서,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고민한다. 


이 책에 포함된 다른 우화에서처럼, 힘든 시기를 버티면 가끔씩은 좋은 날을 맞이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지는것을 경험하는데, 여정에서, 아니면 잠깐 머무는 곳에서 생기는 기쁨들과 함께 그런 것들 때문에 한 시기를 버텨내곤 한다. 


이제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라면 어떻게든 곰스크행 기차를 타보고 싶긴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나를 속박하는 일상의 보람과 의무가 사슬처럼 내 몸에 감겨있는 것을 풀 도리는 나나 주인공이나 없을것이다.  


기차덕후는 아니지만, 기차를 타고 여행하고픈 맘은 늘 갖고 있다.  문제는 비행기보다도 훨씬 더 비씬 요금과 소요되는 시간이다.  AMTRAK이라는 것을 타고 워싱턴 DC에서 뉴욕의 팬스테이션까지 두어번 밤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다.  벌써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 생각해도 나를 설레이게 한다.  AMTRAK은 전국구 기차라서 이곳에서 출발해서 서부를 종단할 수도 있고, 미대륙을 횡단할 수도 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침대차 티켓을 끊어서 중간에 갈아타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는 모양인데, 기차여행의 최대장점은 비행기로 또는 자동차여행을 하면서 볼 수 없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길이 다르니까, 그리고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창문밖으로 스쳐가는 미국대륙의 내밀한 아름다움을 하나씩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여행이든, 단기가 아니면 지금은 불가능하다.  내가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우고 일을 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행정업무가 돌아갈 정도의 인프라가 구축되는 시점까지는 그저 꿈일 뿐이다.


PS 만약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탔더라면,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점심을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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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5-01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하이드님이 열렬히 추천하셔서 얼마전에 사놓았는데
아직 읽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기차여행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있는 것 같아요,,,,
기차 타 본지도 한 참 된 것 같습니다.
대구에 새로 개통한 모노레일이나 한번 타 봐야겠습니다. ㅎ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5-02 04:03   좋아요 0 | URL
좋은 이야기가 쉽게 읽혀서 더욱 괜챃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떠남에 대한 로망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데, 자동차보다도 기차, 특히 밤기차는 더욱 그런 로망을 주네요.

2015-05-28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9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5-06-3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미뤄둔 책인데 담아갑니다.^^

transient-guest 2015-06-30 02: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