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단지 그 책이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거나 어려워서가 아닌 전혀 다른 이유로 읽고 나서 그 내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름은 늘상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으로 구한 그녀의 책에 기대가 컸는데, 하필 이 책은 줄기세포주사를 맞은 후 그 당일과 다음날에 걸쳐 읽은 덕분에, 약기운에 몽롱한 상태라서 그랬는지 지금와서는 내용이 전혀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뒤적거려 보니까, 읽은 기억은 분명히 나고, 에피소드도 그럭저럭 낯이 익은데, 그 flow랄까, 이런 것들에 대한 느낌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평가는 어렵겠고, 다음에 우연히 다시 읽으면, 꼭 예전부터 알던 사람을 간만에 만나서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확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줄지도 모르겠다.  아플땐 그저 쉬는 것이 답인가보다.



이 책도 뉴욕에 있는 동안에 읽었는데, 도착해서 공항 터미널에 앉아 rush hour가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금방 읽었다.  남은 부분은 clinic에서 예약시간을 기다리면서 다 보았는데, 이런 스타일의 서사는 매우 쉽게 읽힌다.  쉽게 읽어지는 것이 꼭 그 책이나 작가를 낮춰봐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번역된 많은 일본작가들이 단지 쉽게 읽히고, 무엇인가 깊은 내용을 담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쩌면 이해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소위 '쓰레기'라는 평가를 받는 것을 종종 본다.  그게 fair한지는 잘 모르겠다만, 나도 종종 어떤 책을 읽고나서 뭐 이딴게 다 있어 하는 생각을 하는걸 보면 사람마다 그 기준은 다를것이다.  


형제가 둘이 계속 살면서 열심히 일하고 자신들의 취미를 즐기는 것이 뭐가 나쁜가?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오타쿠라고도 부르고, 그 밖에도 labeling을 통해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꼬집을 것이지만, 생활 자체만 놓고 보면, 그러니까 연애가 안되는 부분을 제외하면, 이들의 생활은 정상적이다 못해 건전하기까지 하다.  


결혼이나 기타 관습, 그러니까 사회가 공동체로써 존재하기 위해 개인에게 부여되는, 자주는 강요되는 어떤 practice, 모두가 하는 그런 것들이 과연 진리인가에 대한 회의는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늘어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형제가 아니더라도 친한 친구들과 이렇게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것도 참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다.  그런데 아마도 나이든 남자들이 모여살면 주변에서는 또 이걸 무슨 게이공동체나 컬트집단으로 볼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까, 이래저래 사회안에서 사는건 결국 다른 사람들의 스탠다드에 맞춰가는 것이다.  may be 좀더 늙어서 그런 것들에서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김탁환 작가의 소설은 늘 재미있게 읽는데, 이 책은 나온지 5년 정도 된 그의 비교적 신간소설이라고 하겠다.  아무래도 도입부에서 조금 늘어진 듯한 스토리의 전개때문에 몰입에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여느때처럼 금방 그 curve를 넘자 산과 흰머리의 대결, 그리고 조선땅에서 온갖 이유로 야생동물을 멸종시키는데 주력한 일제, 거기에 끼어들어 결정적인 순간마다 방해하는 그미까지 재미있는 서사를 엮어냈다.  


다만, 어떤 캐릭터의 경우 뭐랄까 좀 설득력이 부족했다거나 역시 행동의 개연성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오랜 창작활동을 하다보면 종종 볼 수 있는 작가의 피로감 같은 것은 김탁환 작가가 앞으로 소설을 쓰는데 있어 해결해야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다음 번에는 이런 부분을 잘 해결한, 그의 한창 때처럼 멋진 소설로 돌아오시길...


그러고 보니, 2월 첫 주는 무척 저조한 독서량을 보였는데, 몸도 아프고 계속 누워있으면서 낮 시간에 일만 겨우 해내다보니 그렇게 집중하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도 오늘부터는 다시 운동을 했고, 땀을 흠뻑 흘릴 수 있을만큼 나아졌으니 이제 감기도 몰아내고, 빨리 회복하는 일만 남았다.  


아플때마다 느끼지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게 아닌가 한다.  병약한 몸에 올곶은 정신이 깃드는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그러니까 몸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다고 그의 정신이나 마음까지 장애가 있다는 전제는 아니지만, 쉬운일은 아닌 것 같다.  흔히 무술이나 도판에서 정신과 영혼의 힘을 너무 중요시한 나머지 육체의 능력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분명히 정신은, 마음은, 영혼은 육체보다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체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그릇이 깨지면, 영혼을 온전히 담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을 때까지 단련을 게을리하지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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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15-02-0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은 요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꼭 같네요. `몸이 튼튼해야 마음도 튼튼해진다`. 전엔 마음만 잘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애요. 그래도 요즘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서 인터넷 뒤적거리며 홍삼 제품 같은 것을 알아보고 있습니다...-_-;; 전에 사람들이 알리샤가 아니라 약리샤라고 했어요, 약 좋아한다고요ㅎㅎ 진짜 운동을 해야겠어요 후배가 스쿼시 한 판 하자고 하는데 정말 스쿼시 같은 걸 해볼까 봐요. ^-^

transient-guest 2015-02-07 11:47   좋아요 0 | URL
무엇이든 재미를 느끼는 운동 한 가지 정도는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근데 근육운동은 특히 여성들의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고 하니까, 전 주변에 권하고 다닙니다.ㅎ 아 글구 기왕 공부를 하게 되면 LSAT을 보고 정식으로 3년짜리 JD를 마칠것을 권해요. 어렵게 공부하는건데 보다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cyrus 2015-02-07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군 복무 중에 발을 다쳐서 철심을 박은 수술이 처음이었습니다. 벽제군병원에 입원했는데 마취가 풀렸을 때 침대에 누운 상태로 미리 들고 온 책을 읽었어요. 수술한 부위의 진통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군병원에 입원했을 때가 원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 군인 환자들만 책을 빌려주는 작은 도서실이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도서실의 내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

transient-guest 2015-02-07 11:48   좋아요 0 | URL
그곳에서의 시간이 힘든 군생활에서 잠깐이나마 푹 쉬게 해준 시간이었나봐요. ㅎㅎ 아픈것도 싫고, 사실 일을 안 하면 이상한 나이겠지만, 가끔은 한 2주 정도, 푹 쉬면서 책 읽고 놀고싶네요.

몬스터 2015-02-0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 잘 챙기세요 transient-guest님. 몸도 마음도 건강하셔야 좋아하는 책 많이 읽으시죠.

transient-guest 2015-02-08 04:26   좋아요 0 | URL
더욱 노력해야죠..ㅎ 이번 주는 정말 힘들었네요. 감사합니다.

몬스터 2015-02-0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면 , 정말 아무도 대신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또 고통 받는 당사자 아니면 온전히 이해하기도 어려운 거고. 저도 잘 못하는 것이여서 말하기 좀 찔리는 데 , 잘 쉬고 , 잘 드세요.

즐겨찾기 해놓고 , 자주 와서 글 읽고 있습니다. 자극 받아요 , 자주. :)


transient-guest 2015-02-09 05:07   좋아요 0 | URL
정말요. 무리하는 건 피하고 잘 쉬고 있습니다. 더욱 열심히 읽고 살면서 글 남겨야겠습니다.ㅎㅎ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