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얘기를 몇 번인가 했었던 것 같다.  책이 잘 읽히지 않거나 그냥 뭘 해도 시진할 때, 그럴 때에는 쉽고 재미있게, 그러니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단조롭게 치우칠 수 있는 독서에 활력을 불어넣곤 한다.  여러 번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은 결국 최근 6개월 이내에만도 여러 번 책읽기가 그냥 그렇다고 느낀 때가 많았다는 것이지만, 그때마다 지금처럼 가벼운 책을 읽어 나가는 것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추리소설과 판타지를 읽는 것이 주된 독서 패턴이었는데, 그간 구해놓고도 애써 찾아 읽지 않았던 녀석들을 한번 쭉 읽어나가는 의미로 시작한 것이지만, 지난 2주간의 우울함 속에서 오히려 더욱 많은 책을 읽을 힘을 주었고, 자칫하면 무력감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시간에 간간한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정말이지 독서를 방법론으로 잡아 설파하는 것은 정말 나와는 맞지 않는다.  독서에 대한 많은 고민 때문에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고, 수 많은 책을 읽어보고, 때로는 독서를 표방한 자계서까지 유명한 것은 거진 다 보았다.  때로는 이들에 동화되어 실험을 했고, 때로는 이들이 주장하는 독서경영을 통해 나의 독서생활에 또다른 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한 때도 있다.  아무렴 그런 고민의 시간들이 모두 무의미했을까 싶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독서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무엇을 배우거나, 삶에 실질적으로 대입하기 위한 독서는 내가 보기에는 '독서'가 아닌 '공부', 그러니까 사서삼경의 의미를 성찰하거나 고전에 깊이 빠져드는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 '공부'인 것이다.  이는 마치 시험에 대비하여 문제집을 푸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는 때가 종종 있는데, 이는 내가 추구하는 독서의 이상은 아니다. 

 

얘기가 좀 어려워 질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실체가 모호한, 그러니까 metaphysical한 소리가 될 수도 있겠다.  흔히들 돈은 일에 있어 일종의 부산물로 보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독서에서 얻어지는 지식이 내게는 그러하다.  독서를 즐거움의 대상으로만 여길 수는 없겠지만, 성공이나 경영을 위한 tool로 여기는 세태는 슬프다.  그런 경로를 통해 성공한 사람도 많고 아예 강연을 다니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도 하나의 길일게다.  나 역시 그런 방식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공이나 자기계발, 경영의 방편으로만 독서를 추구한다면 이는 아이들이 논술고사를 위해 억지로 책을 읽는 것과 다를 것이 뭐가 있을까 싶다. 

 

유독 사문난적을 규정하던 전통이 강한 우리는 책도 좋은 책과 나쁜 책을 애써 구분지으려 한다.  하지만 기억이 닿는 삶의 순간부터 책과 함께한 나는 그렇게 구분짓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쁜 내용만을 담은 책은 분명 지양되어야 하고, 거짓으로 가득찬 자서전 역시 읽어볼 필요는 굳이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로, 책은 그렇게 함부로 구분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책이 잘 잡히지 않거나, 고전은 어려워서 접근하지 꺼려진다면, 흥미가 가지 않는다면, 하지만 책은 읽고 싶다면, 보다 쉬운 책, 본인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책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그게 무협지든, 라이트 노벨이든, 추리소설이든, 상관이 없다.  하다못해 마중물이라도 될 수 있는 책이라면 족하다. 

 

분명히 나는 이 글을 쓴 것을 까맣게 잊고 언젠가는 또 비슷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늙어가는 중이다.  죽기 전에 만 권 정도는 어떻게 해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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