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이 낀 이번 해에는 겨울이 한 달 더 지나간다고 하더니 아니게 아니라 해가 쨍쨍하던 날에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 weight training을 쉬는 오늘, 주차장이라도 열심히 걸어다닐 생각이었으나 바람 많은 추운 날씨에 비까지 와버리니 그저 사무실에 처박혀 일을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작년 연말의 지독했던 burnout이 어느 정도 가셨는지 2023년 새해라고 1월부터는 pace가 상당히 좋아진 덕분에 매일 바쁘게 하나씩 케이스를 끝내고 어느 정도는 계획하는 대로 일을 밀어내고 있다. 일단 1월과 2월의 회사실적도 나쁘지 않아서 필요한 지출이 차례로 나가도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고 심지어 충동적인 책 구매를 이어갈 수 있으니 계속 이렇게 이어지면 최소한 재정적인 면에서나마 마음을 좀 편히 가지련만. 늘 adventure 게임이나 RPG에 가까운 것이 자영업이라서 좋을 땐 좋아서, 나쁠 땐 나빠서 조마조마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우연찮은 득템. 근 10년 전엔가 LA의 알라딘중고서점에서 보고 구매를 망설인 것을 후회하면서 지낸 시간을 견디고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올 예정. 이로써 한국어로 번역된 다치바나 다카시선생의 책은 모두 구했다고 볼 수 있게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선생의 책을 한국어로 나온 것이나마 모두 갖게 되어 기쁘다. 무라키미 하루키의 꾸준함과 성실함, 다치바나 다카시선생의 지에 대한 꾸준하고 끈기있는 추구, 이 두 가지를 삶의 지표로 삼아 살아가는 semi-다독가이자 장서가인 나에게 이번의 득템은 큰 의미가 있다. 2021년에 타계한 뒤로 몇 권인가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지만 아마 다시 새로운 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않은 작가라서 더더욱. 요즘도 가끔 지치면 선생의 서재그림이나 사진을 뒤적거리면서 힘을 받곤 한다. 역시 지칠 때 가끔씩 펼쳐보면 힘이 되는 하루키와 함께 내 지적 생활의 양대지주라고 할 수 있다. 중고로 구해서 상태를 알 수 없지만 그저 읽을 수 있는 수준이면 큰 불만은 없을 것이다.


셜록 홈즈의 이야기는 코너 도일의 원전 외에도 정말 많은 작품이 있다. 늘 같은 패턴이지만 작품의 시대 그 자체를 사랑하는 semi-셜로키언임을 자부하는 나는 기회가 되면 내 눈에 들어온 팬픽스러운 작품들을 구해 읽곤 한다. Val Andrews의 작품들보다는 캐릭터구상이나 홈즈의 어투가 authentic하지는 못하지만 홈즈와 왓슨, 이들 단짝의 221B Baker Street 생활을 다른 버전으로 새롭게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읽기에 딱 좋은 단편소설 네 편 정도로 구성된 한 권으로 천천히 즐겁게 음미하며 읽어냈다. Vol. Two가 있길래 마침 줄이 닳아서 끊어질 지경인 줄넘기를 새로 주문하면서 얼른 주문했다. Val Andrews의 경우 작품이 무척 많지만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기에 당분간은 Denis O Smith의 단편집으로 만족해야 한다.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그 어려운 두 가지를 심지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던지고 이뤄낸, 그리고 이어가고 있는 기인과도 같은 윤성근작가의 최신작. 헌책에 새겨진 글과 낙서, 이에 얽힌 사람의 이야기.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면 영락없는 김루트로 변하는 탓에 요즘 종종 김루트씨냐고 사람들이 물어본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니 진짜 비슷하긴 하다. 


동경하기는 하지만 갈 수는 없는 삶이라서 이 작가의 책은 나오면 바로 읽는다. 요즘은 좀 덜 한 것 같지만 예전에는 책 선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줄 땐 글을 적어서 마음을 함께 전달하곤 했던 기억이 이 책에서 소개된 '낙서'를 통해 다시 떠오른다. 옛날엔 다들 나이를 빨리 먹었던지 2-30대의 글이라고 보기엔 너무 mature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반대로 요즘은 다들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 어른의 말투나 어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헌책과 책방에서의 이야기를 이렇게 주기적으로 엮어내니 그저 즐겁고 고마울 뿐이다.


끼적거리기 시작한 건 오후 네 시가 조금 못 미친 시간이었는데 이제 여섯 시가 다 되어 간다. 날이 궂어서 그런지 인터넷도 뭔가 꾸물거리는 듯, sync가 자꾸만 끊어지는 것이 영 맘에 안 든다. 


나도 빌딩 하나 짓고 거대한 진돗개 그림을 그려서 외부를 장식하고 책과 미디어에 둘러싸인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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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6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드디어 모두 갖게 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절판된 책이 있으면 해외에서 이렇게 한글로 된 책을 다 모으는거 진짜 쉽지 않으셨을텐데 말이죠. ^^
윤성근작가의 책은 저도 헌책방 기담 수집가 읽었는데 재미있고 좋더라구요. ^^

transient-guest 2023-02-16 02:50   좋아요 1 | URL
알라딘의 database에 근거한 것이지만 다 모은 것 같습니다. 한국출판시장에서는 책이 너무 빨리 절판되거나 품절이 되기 때문에 출간 후 3-4년만 지나도 구하기 어려워지는 책이 많습니다. 심지어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의 책이 사라지기도 하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참 기쁩니다. 윤성근작가의 책도 처음부터 꾸준히 모아서 읽곤 합니다. 늘 흥미진진합니다.ㅎ

고양이라디오 2023-02-23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와 무라카미 하루키 제 최애 작가들인데 겹쳐서 너무 반갑습니다^^b

transient-guest 2023-02-23 11:13   좋아요 1 | URL
제가 지의 추구를
넘어 삶을 살아감에 있어 닮고 싶은 분들입니다 ㅎㅎ 반가워요

고양이라디오 2023-02-23 15:56   좋아요 1 | URL
저도 다치바나 다카시씨 책은 거의 다 구입해서 읽은 거 같아요ㅎ

반갑습니다^^

yamoo 2023-02-2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의 번역서를 모두 모았다는 거에 경의를 표해드립니다!! 다작의 작가인데...이 번역본들을 모두 컬렉션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계속 책을 내는 작가라 계속 컬렉션해야될 듯합니다..ㅎ

저는 박이문 선생의 책을 모두 모았는데, 나중에 전집이 출간됐더라구요. 근데 단행본들중에서 전집에 빠진책들이 있어 여러 출판사 단행본을 모은 보람이 있습니다..ㅎㅎ

다작의 작가는 정말 컬렉션하기 곤란합니다. 그래서 저는 밀도가 높지만 많지 않은 저작을 남긴 저자들의 책을 컬렉션하길 즐깁니다. 대표적인 예가 베르그손과 스피노자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이죠..ㅎ이 사람들 번역본은 모두 컬렉션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