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여행의 prestige랄까 이런 것들이 거의 사라진 지금도 서비스는 여전히 좋지만, 질의 저하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인지, 옛날보다 훨씬 더 좋아진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저런 이유로 탑승이나 이착륙이 늦어진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라서 11시로 예정된 보딩이 30분 지연됐고, 그 김에 물이나 더 마시고 윗층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유유'의 문고판과 함께 작고 예쁜 시리즈로 애장하는 '쏜살문고'. 좋은 책도 있고 그저 그런 책도 있지만 디자인도 맘에 들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거나 짧아서 단행본으로 나오기 어려운 책이 잘 선별되어 나온다.  여행에 함께 하기 좋은 크기와 길이, 가끔은 딱딱한 글을 만나기도 하고,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그만큼 어쩌면 덜 익숙한 글을 읽는 것을 통해 독서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프라하로 가는 모차르트의 하룻밤을 그린 이야기. 그리고 요정스러운 이야기, 이렇게 두 개의 짧은 이야기가 짧은 책에 구현되어 있다.


98년 4월, 비오던 밤, 재즈를 접한 덕분에 재즈의 팬이 되어버린 나는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종종 재즈를 듣는다. 맑은 피아노독주의 클래식과 함께 비오는 날의 단골이 되어버린 재즈는 이론으로 접근하려면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는데, 천성의 게으름 덕분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 귀에 즐거운 것을 찾아서 즐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잘 듣고 싶은 욕심은 어쩔 수 없는데, 이때 길라잡이로 아주 좋은 책이다. 아마 이 책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나의 재즈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인데, 지금은 정신이 너무 없어서 책을 읽으면서 언급되는 음악을 제대로 찾아서 듣지 못했다. 보통은 YouTube이나 아마존을 뒤져가면서 읽었을 것을 말이다. Arguable하지만 블루스의 적자로도 볼 수 있는 재즈의 발전과정과 명반과 아티스트들을 잘 소개해주는 책이다. 


'칼의 노래'가 김훈일까, 김훈이 '칼의 노래'일까. 그의 다른 에세이집도 소설도 여럿 읽었는데 갈수록 그는 '칼의 노래'를 닮아가는 듯 글이 절절하고 먹먹한 것이 마치 속에서 토해낸 핏덩이를 뭉개어 글을 그리는 것 같다.  극우가 아닌 보수의 모습이 이럴 것이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그의 세상들여다보기가 나쁘지 않다. 어차피 사람은 늙고, 젊은이들과 생각이 매한가지로 이어지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지킬 걸 지킬 수 있는 것이 보수일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이런 저런 늙음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힘, 살피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힘이 빠진 노인들은 아마도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경쟁 속에서 길러진 지금의 20대의 미래가 아닌가, 아니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그저 꾸준히 읽고, 쓰고 생각하고, 듣고, 듣고 또 들을 일이다.  정 열고 싶으면 지갑이나 열어야 욕을 덜 먹지 않을까.


그냥 잔잔한 이야기. 심야식당을 좀더 활기찬 공간에 두고 여주인으로 바뀐 것 같다만, 이런 곳이 일본의 동네 구석구석에는 제법 남아있다고 하니 무척이나 부럽다.  동네의 사랑방처럼 늘 보는 얼굴들이 모여서 하루를 풀어내는 걸 함께 나누며,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곳은 이제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렇게 소소하게 즐겁게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만큼 웅심은 줄어들고 점점 더 closing을 준비하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55살까지만 일하고 은퇴할 수 있었으면, 아니 대략 half retire정도만 할 수 있어도 좋겠는데. 그땐 이런 공간이 남아있으려나?


여성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신적인 자각으로 가는, 그러면서 부족한 많은 걸 보완해가는 예수의 모습. 유다의 역할이 성서의 미스테리인데, 유다가 없으면 예수의 수난도 없었을 것이니 유다는 자의에 의한 배신자인가, 완성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맡은 내제자인가. 점점 주제 사라마구의 글체에 익숙해져간다. 한꺼번에 구한 덕분에 쌓인 그의 작품을 하나씩 읽는 것도 2019년의 재미가 될 것이다만, 적절히 섞어서 잘 읽어야 지겨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도 작가도 계속 파들어가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이나 유다의 역할에 대한 책의 서술은 그리 낯설지 않지만, 주류에서 받아들이기엔 예수의 신격에 상당한 무리를 줄 수 밖에 없지만,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멀리 있는 신 대신 이런 인격신도 좋다. 과거 신들이 근처 산에 모여 살던 시절의 가까움이랄까.


이제 보딩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다시 팩하고 내려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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