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8월1주



 

픽사(Pixar)가 선택하는 주인공들은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무언가에서 밀려난, 혹은 도태되어 가는, 혹은 어떤 결정적인 핸디캡을 가진 캐릭터들이라는 점이다. 오래되어 아이들의 사랑에서 밀려나고 있는 장난감들(<토이 스토리>), 모두 다 떠나버린 지구에서 쓰레기를 청소하며 남아 있는 로봇(<월-E>), 매번 실수만 저지르는 낙오자 개미(<벅스 라이프>), 세계 최강의 슈퍼히어로였으나 이제는 은퇴하여 배만 나온 전직 슈퍼 히어로(<인크레더블>).  

그리고 이제는 괴팍한 70대 늙은이와 아시아계 소년이다. 애니메이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이 70대 노인 캐릭터로 어떤 활극과 꿈을 가져오는 이야기를 보여줄 것인가. 그러나 픽사가 실망시킨 적이 있던가. 픽사는 이번에도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평생 모험을 꿈꿔 왔던 ‘칼’ 할아버지는 수천 개의 풍선을 매달아 집을 통째로 남아메리카로 날려 버리는데, ‘칼’ 할아버지의 이 위대한 모험에 초대 받지 않은 불청객이 있었으니, 바로 황야의 탐험가 ‘러셀’! 지구상에 둘도 없을 이 어색한 커플이 함께 하는 대모험. 그들은 과연 남미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사라져 버린 꿈과 희망,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네이버 펌) 

 

- 예습이 필요해 -  

대부분의 애니메이션들이 그렇지만, 애니메이션에서 음악의 활용은 절대적이다. 그건 픽사의 이 이야기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각해 보라. 캐릭터들의 얼키고 설킨 추격전에 빠른 리듬감의 음악이 없다면, 창공을 가르는 하늘을 나는 집에 아름다운 선율이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꿈은 부풀어 오르기도 전에 피식 바람 소리를 내며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런만큼 이 영화 <업>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마이클 지아치노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하겠다. 자료를 찾아보니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스타트렉: 더 비기닝> 등에서 음악을 맡은 것으로 나오는데, 그 중 개인적으로 <라따뚜이>의 음악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주인공 '레미'가 음식을 하는 공간들을 하나의 뮤지컬로 만들어버리던 그 활기찬 음악들이 말이다. 그런만큼 이 영화를 미리 보고 <업>을 보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절대미각, 빠른 손놀림, 끓어 넘치는 열정의 소유자 ‘레미’.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그에게 단 한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주방 퇴치대상 1호인 ‘생쥐’라는 것! 그러던 어느 날, 하수구에서 길을 잃은 레미는 운명처럼 파리의 별 다섯개짜리 최고급 레스토랑에 떨어진다. 그러나 생쥐의 신분으로 주방이란 그저 그림의 떡. 보글거리는 수프, 둑닥둑닥 도마소리, 향긋한 허브 내음에 식욕이 아닌 ‘요리욕’이 북받친 레미의 작은 심장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는데!

 쥐면 쥐답게 쓰레기나 먹고 살라는 가족들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주방으로 들어가는 레미. 깜깜한 어둠 속에서 요리에 열중하다 재능 없는 견습생 ‘링귀니’에게 ‘딱’ 걸리고 만다. 하지만 해고위기에 처해있던 링귀니는 레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의기투합을 제안하는데. 과연 궁지에 몰린 둘은 환상적인 요리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레니와 링귀니의 좌충우돌 공생공사 프로젝트가 아름다운 파리를 배경으로 이제 곧 펼쳐진다! (네이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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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시티 - Plastic Cit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유릭와이의 불교 수행을 따라가는 것은 강렬하나, 꽤나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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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시티 - Plastic Cit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미리니름 있습니다만...)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영화구나. 아니, 꼭 리뷰를 쓰기가 어렵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가 이 영화에 대해 물어도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영화라는 의미다. 영화를 보고 와서 찾아본 몇 개의 리뷰는 대체로 비슷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영화 특유의 전체적인 분위기, 즉 이국적이면서 무거운, 그러면서도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어떤 것. 강렬한 색의 대비와 독특한 화면구성. 매우 불친절하고 난해한 내러티브. 오다기리 죠와 황추생의 인상적인 연기, 그 뭐 그런 것들. 그러니까, 다시 정확히 말하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러티브가 생략된, 이미지와 상징으로 점철된 영화를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겠는가. 이러한 영화는 아무리 줄거리를 적어내려간다고 한들, 아무 것도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부터 줄거리는 별로 기억나지 않고, 파편화된 몇몇의 이미지만 머리 속에서 맴돈다.
 



...................................

영화관을 나오면서 가장 머리에 남은 것은 영화 마지막에 잠깐 스치듯 지나간 짧은 문구이다. 바로 이 문구이다.


一物一數 作一恒河 一恒河沙 一沙一界 一界之內 一塵一劫 一劫之內
일물일수 작일항하 일항하사 일사일계 일계지내 일진일겁 일겁지내

所積塵數 盡充爲劫 
소적진수 진충위겁 


(세상 모든 것들의 수를 세어 그 수만큼의 항하(갠지스강)가 있다고 하고,
이 항하의 모든 모래 수 만큼의 세계가 있으며
그 숱한 세계 안의 한 먼지를 한 겁으로 치고
그 모든 겁 동안에 쌓인 먼지 수를 다시 겁으로 칠지라도...)




영화에 너무 짧게 스치고 지나갔고, 영화 안에 이 말에 대한 별다른 정보도 나오지 않는터라, 그 의미가 궁금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불교 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줄여서 <지장경>) 제1품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에게 물은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에서 나온 말로서, 문수사리보살이 지장보살이 어떻게 그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불가사의한 일을 성취하였는지(혹은 할 수 있는지)를 묻자, 하나의 비유로서 이야기한 것이다. 즉, 위의 시간들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지장보살이 중생을 제도해 왔음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겁으로 칠지라도...지장보살이 중생을 제도해 온 겁에 비교할 수는 없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이 말은 여러가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왠지 이 자막의 말은 영화 속 유다(황추생)에게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필요하다는 것, 즉 어떤 고리를, 어떤 업을 끊어내는 것은 매우 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지장경>에서 담고 있는 가장 큰 주제는, 자업자득(自業自得), 인과법(因果法), 선업(善業), 윤회 등을 이야기하며, 하나의 실천 수행을 강조하는 것이라 한다. 즉, 지금까지 어떠한 생을 살아왔는가에 의해서 다음의 생이 결정되며, 본인이 쌓은 업은 본인이 선업을 행하는 것으로 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가 시작과 끝이 거의 같은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 유다는 브라질 국경근처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 때 한 일본인 가족이 나타났고, 그 가족의 아버지가 총에 맞는 틈을 타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인 소년 키린(오다기리 죠)을 만났다. 그리고 백호(白虎)가 나타났고, 무겁고도, 독특한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며, 영화가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다시 브라질 국경지역으로 이야기는 돌아왔고, 유다와 키린은 다시 백호를 보고, 유다는 키린의 손에 들린 칼을 통해서 자살하고, 다시 그 무겁고도 독특한 분위기의 음악과 함께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유다는 이 질긴 고리를, 질긴 업을 끊으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 곳에서 키린의 아버지가 죽고, 자신이 키린의 아버지가 되어 여러 악행(업)을 저지르고, 키린마저도 그 악행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지만, 결국 키린의 손에 죽는 이 아이러니를 말이다. 이 윤회를 영화는 하나의 형식으로, 그리고 몇 개의 상징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물론 아직까지 머리는 복잡하고, 많은 의문은 섞여 있다. 그것으로 이들의 업은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도 왜 다시 이곳(브라질 국경지역)으로 돌아와야 했는가. 그들이 지금까지 있던 곳은 어디이기에 말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있던 곳은,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대로 '플라스틱 시티'이다. 그러고보면, 이 제목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플라스틱 시티라는 곳. 플라스틱이 상징하는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가소성(可塑性)의 공간.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마법의 공간. 그러나 이 가소성의 공간이라는 것은, 다를 말로 하면, 거짓의 공간, 가짜의 공간이다. 플라스틱이 가지고 있는 가짜라는 본연의 속성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그 플라스틱 시티 안에서 유다와 키린이 벌이는 사업으로도 명백해진다. 유다와 키린이 벌이는 사업이란, 가짜의 물건을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와 아주 비슷한 가짜를 말이다. 더구나 키린은 영화 속에서 다시 그것을 반복하여 확인해 주기도 한다. 자신은 진짜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가짜가 진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그러나 말이다. 과연 그 돈은 진짜일까. 어쩌면 그 돈 마저도 가짜인 것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여기는 플라스틱 시티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가짜로 이루어진 곳. 진짜는 그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곳. 어쩌면 그곳은 지옥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공간으로 살기 위해서 도망쳤다. 그 마법의 정글에서 결국 얽히고, 맺힌 업의 끈을 풀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진짜 백호를 보았고, 업을 풀어내려고 한다. 여기에서 유다는 키린에게 말한다. 너의 삶은 이제 시작이야, 너에게 시간은 많아..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 많고 많은 시간, 겁의 시간, 항하사의 시간, 무량대수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업은, 그 운명은 사라질 수 있을까. 키린의 뒷모습에서,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서, 부서지는 강렬한 파도에서 우리는 다시 엄청난 절망에 사로잡힌다. 그 강물의 흐름을 하나하나 따라간다해도, 파도의 파고를 모두 하나하나 세어 나간다 해도...이 마지막은 꽤나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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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7월4주)


 

한국 사회에서 '좌파'라는 말만큼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말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만큼 여러가지 힘의 파장을 가지고 있는 말도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좌파'라는 말은 지금까지 대부분 그 본래의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본래의 의미를 넘어서서 '좌파'라는 말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어떤 낙인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때때로 뒤에 '빨갱이'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그래서 왠지 지금 이 영화 <바더 마인호프>의 개봉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들은 그저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병든 시대를 구원하려 한 진정한 의미의 혁명가들인 것일까. 아마도 문제의 핵심은 이들 자신보다는 이들을 둘러싼 세계에 있을 것이다.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가 이들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67년 6월 2일 서독. 이란의 전제군주 방문 반대집회에서 한 대학생이 경찰의 총격에 죽는 사건을 기점으로 정부의 정책과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혁명 단체들의 움직임이 과격해진다. 열혈청년 ‘바더’는 동료들과 함께 백화점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좌파 언론인 ‘마인호프’가 이들을 옹호하고 활동에 동참하게 되면서 ‘바더 마인호프’ 테러집단이 결성된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정부에 대항하는 게 힘들다고 판단한 이들은 테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한다. 갈수록 대담해져가는 테러활동에 세상은 등을 돌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과 싸우는 연방경찰국장 호르스트는 이들을 이해하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테러리스트로 만든 걸까? (네이버 펌)  

- 예습이 필요해 -

대체로 이 영화를 보는 시각은 다음의 두 가지 지점으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이 영화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선 너무나도 중립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과 다른 하나는 이 영화 자체로는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 즉 마치 이 사건을 하나의 액션 활극으로만 다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의 몇몇 책들을 대강이나마 훑어보고 이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비판하거나, 혹은 그에 동조하거나는 그 다음이다..   

 

 

 

 

 

 

  

 

아니면, 이 영화 <레전드 오브 리타> 또한 이들을 바라보는 하나의 어떤 시각을 던져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70년대 서독. 이상사회 실현을 꿈꾸는 리타는 애인인 앤디와 함께 테러운동에 참여한다. 은행강도, 폭탄테러를 감행하던 리타 일행은 앤디의 탈옥을 돕던 중 변호사를 살해하면서 쫓기는 처지가 된다. 그들은 동독의 비밀요원 에빈의 도움을 받아 파리로 피신한다. 그 가운데, 리타는 세상을 바꾸기엔 테러조차 무력하다는 것을 그리고 앤디의 사랑이 멀어진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리타가 쏜 총에 경찰이 희생된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숨을 곳도 없는 리타에게 동독 측은 다른 이름과 신분으로 살아가는 길을 제안한다. (네이버 펌, 뒤에 줄거리 소개가 더 길었으나 인용자 마음대로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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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 Let It Rai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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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누구에게나 내려요. 맞잡을 손이 있다면, 때로는 우산은 놓아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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