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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현실에서는 소설이나 영화였다면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비판을 받았을 법한 일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고, 반면 허구들은 어떻게든 현실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현실은 '실물보다 점점 커져서' 점점 본래의 형태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구호들이 되어가고 있고, 반면 허구는 그 구호들에 가려진 실상들을 보여주려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 실상은 한편으로 다른 구호를 가진 허상으로 작동할지도 모를 위험을 안고 있다.
물론 그 적당한 타협점들도 있다. 예를 들어 허구(소설)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보여주기, 이름하여 '논픽션'이라 불리는 것들이 그것이다. 논픽션(non-fiction)이란 1912년 <퍼블리셔즈 위클리>가 베스트셀러를 발표할 때 '픽션과 논픽션'으로 구분한 데에서 유래한 말로, '픽션'의 반대개념으로서의 서사, 즉 소설 이외의 서사물로 르포, 역사서, 자서전, 전기 등을 포괄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을 국내에 꾸준히 소개하여 잘 알려진 조영일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논픽션 <미스터리의 계보>의 해설에서 논픽션은 일종의 다큐멘터리라고 말하며 그것의 본질은 형식으로는 '영상화'이고, 내용으로는 '추적 혹은 추리'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추적 혹은 추리'라는 것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과 같은 시사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추리소설의 서사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이것이 기존의 사회소설(노동문학/민중민족문학)의 상당부분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즉 이 서사구조의 유사성이 논픽션과 (TV) 다큐멘터리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 근거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이 서사구조의 유사한 부분에 관한 것보다도, 이 (TV) 다큐멘터리가 기존의 사회소설을 대체했다는 부분인데, 한 때 대체하는 것처럼 보였던 TV의 시사 다큐멘터리들은 요즘 들어서 이상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추악한 뒷모습을 세밀하게 추적하여 보여주었던 몇몇 진지한 프로그램들은 운명을 다한지 오래고, 그나마 살아남은 몇몇 프로그램들도 점점 김전일 소년의 기괴한 사건기록부가 되어가거나, 소비자 고발류의 프로그램들이 되어 착한 무엇인가를 추적하거나, 휴먼 다큐라는 이름을 가진 말랑말랑한 무엇인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사회소설을 진정 대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독립(인디) 다큐들과 인터넷 매체들, 그리고 <현시창>,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과 같은 르포 혹은 기록 노동들 뿐이지만, 지난 공지영과 기록 노동자 이선옥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에서 볼 수 있듯, 사회(노동)를 영상으로 혹은 글로써 기록하는 일 역시 또한 그 가치를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산체스네 아이들 / 오스카 루이스 / 이매진
안나와디의 아이들 / 캐서린 부 / 반비
이런 때에 최근에 출간된 몇몇 책들이 조금 흥미롭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논픽션, 르포들이 연이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오스카 루이스의 <산체스네 아이들>은 1961년 처음 출간된 책으로, 멕시코의 어느 빈민가의 생애사를 세밀하게 추적하여 기록하였다. 각 가족들이 번갈아 화자로 등장하는 1인칭 서사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35년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간되었으며, 이번에 나온 것은 50주년 기념판으로 또한 이들 가족의 후기를 새롭게 담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또한 조은의 한 도시빈민 가족을 추적한 훌륭한 연구이자 책, 그리고 영화인 <사당동 더하기 25>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캐서린 부의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인도 뭄바이 안나와디의 빈민가를 4년 동안 추적한 기록으로 인도라는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서 내버려진 도시 슬럼가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편으로 르포르타주라는 형식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작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전지적 시점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소설처럼 이 이야기가 읽히는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노동 계급은 없다 / 레그 테리오 / 실천문학사
1942 대기근 / 멍레이 외 엮음 / 글항아리
레그 테리오의 <노동계급은 없다>는 미국의 어느 부두노동자의 르포르타주로 책 소개만으로는 오웰의 영국 북부의 탄광지대 노동자들을 다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나 프랑스 노동계급의 현실을 다룬 플로랑스 오브나의 <위스트르앙 부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최근 미국 노동자의 생산성은 25%가량 높아졌지만, 도리어 노동 인구 60%의 실질소득은 13년 전보다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지난 월스트리트 시위에서도 보았듯 세계의 중심지라는 그곳이나 여기나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노동 현장은 온갖 부조리와 횡포가 만연한 것 같다. <1942 대기근>은 역사서와 르포의 경계선에 위치한 책이다. 1942년 삼백만 명이 굶어 죽은 중국 허난성의 대기근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면서 또한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감춰 버린 사라진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얘기한 네 권의 책들은 빈곤 혹은 가혹한 노동이라는 거대한 것에 맞선 생존의 기록이면서, 그 생존의 메커니즘을 세밀하게 추적한 기록 논픽션들이다. 또한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가혹하게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추는 작은 등불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빈곤에 맞서는 대응방안을 생각해 보게 하는 것으로서, 또한 하나의 기록문학으로서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말하다 / 리즈 스텁스 / 커뮤니케이션북스
마지막 책은 조금 다른 범주의 내용으로 리즈 스텁스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말하다>라는 책이다.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 프로듀서인 저자가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13인의 인터뷰를 정리해 책으로 엮은 것으로 다큐멘터리의 감상이 일천한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수많은 경험을 쌓은 저자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것 같다. (그래도 다이렉트 시네마의 아버지라는 앨버트 메이슬리스나 지난 EIDF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로스 맥켈위 등의 이름은 들어보신 분도 꽤 있지 않은지..?) 책 소개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한편으로 이 논픽션으로서의 다큐를 시청하게 될 대부분의 독자들 입장에서도 그 다큐멘터리를 보는 자신의 의자가 결국 어떻게 만들어져 그 스크린 앞에 놓여있게 되었는지, 또는 그 의자가 혹 부러진 의자가 아닌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일 듯 싶다.
아무튼 논픽션에서 결국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리고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기록한 자의 선의 혹은 다짐을 믿는 수밖에는 없다. 위대한 르포의 하나인<세계를 뒤흔든 열흘>의 존 리드는 서문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투쟁의 과정에서 내 감정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중요한 날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나는 꼼꼼한 취재기자의 눈으로 사건들을 보려 했고, 또한 진실만을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이 다짐과 그를 믿은 사람들의 진지한 독서는 결국 이 책을 오늘날까지 중요한 기록 문학의 하나로 남아있게 했다. 위의 책들에서도 저자들의 선의 혹은 다짐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