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2005

 


(영화의 전체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이자, 복수 연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친절한 금자씨>는 중간에 한 번 영화가 탈바꿈을 한다. 엄밀한 용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나는 그것을 톤(tone)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중간의 기점은 금자(이영애)가 백선생(최민식)이 가지고 있던 다른 아이들의 상징물들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 때부터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뭔가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던 이 영화는 급속하게 지상으로 내려와 관객들에게 달라붙는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 영화의 중간까지의 분위기의 형성에 큰 몫을 담당하던 나레이션(내용상으로 볼 때 이 나레이션은 금자의 딸 제니가 후일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목소리는 라디오 '밤의 플랫폼' 등으로 익히 알려진 성우 김세원 씨가 맡고 있다)이 이 중간을 기점으로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이 중간 이후로 등장하지 않던 나레이션은 마지막에 단 한 번 등장한다). 물론 내용상으로 볼 때도 이 중간부터 이야기는 다른 양상을 띤다. 전반부까지는 금자가 복수를 위해서 세력을 규합하는 과정이다. 무엇인가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공간(물론 이는 여성교도소라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공간이 주무대인 점에도 이유가 있다)에서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비현실적인 톤으로(예를 들어 기도하는 금자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장면 같은 것) 이루어진다. 그런데 금자가 거의 복수에 성공하고 그것을 완결지으려 할 즈음에 금자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은 아이가 원모 한 명이 아니었던 것. 그리고 이 때부터 이른바 '집단의 복수'가 등장하고, 문제의 학교에서의 씬이 이어진다. 그리고 박찬욱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그가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 후반부의 학교에서의 일들이었던 것 같다.

다른 이야기에 앞서서 먼저 몇 가지의 자잘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박찬욱의 미장센 구성 능력과 형식적인 시도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는 박찬욱이 특히 <스토커>에서 쉴새없이 보여줬던 평행편집의 원형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대화를 섞어서 새로운 제3의 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대비되는 두 사건을 교묘하게 엮어서 독자의 이해의 쾌락을 증폭시키는 것 등이 그런 것이다. 이는 예를 들어 금자와 백선생이 다른 인물(목사(김병옥)와 박이정(이승신))들을 이용하여 서로를 추적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중간 금자 사건의 담당 형사가 빵집에서 금자를 대면하는 장면 등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이 빵집에서의 씬에서 금자와 같이 일하는 근식과 금자의 대화, 그리고 형사와 형사 아내의 대화를 동일 선상에 놓음으로써 간단하게 금자와 형사를 동일 선상에 위치시킨다. 즉 금자의 사건에서 금자가 가지게 되는 죄의식의 어떤 부분을 형사도 공유하고 있음을(왜냐하면 그도 결국 당시에는 진범을 잡아내지 못했고 금자를 범인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나중에 학교에서 금자를 돕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이 장면에서 도리어 주목하여야 할 것은 대화보다도 어둡고 축축해보이는 긴 지하도를 통과하는 형사와 그의 아내의 모습이다)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다른 미묘한 것들도 살짝 암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형사의 아내는 금자가 만든 케이크를 내던지며 "이걸 어떻게 먹어!"라고 형사에게 소리치는데, 이 대사가 (근식에게) 예전에 아이를 살해했다고 말하면서, "걱정 마. 먹지는 않았으니까."라고 덧붙이는 금자의 대사 뒤에 붙음으로서 '먹는다'라는 표현이 말하는 미묘한 뉘앙스가 관객에게 전달되도록 하고 있다(그리고 이 장면 뒤에 금자와 근식이 관계를 맺는 장면이 붙는데, 이는 '먹는다'라는 대사와 맞물려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예를 들어 금자와 근식의 관계, 혹은 형사와 금자의 관계, 백선생과 금자의 관계 같은 것들을 말이다. 이것은 또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이후 금자의 딸 제니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금자의 죄'라고 할만한 것이 나온다. 그런데 사실 영화를 보다보면 이 금자의 죄라는 것이 명확하지가 않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금자는 아마 아이를 꾀어냈을 뿐, 범죄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서 복수의 구조는 성립한다. 금자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백선생의 죄를 대신 뒤집어썼고, 그 결과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는 세상의 죄일 뿐, 사실 어떤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속죄'와 같은 것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녀가 결코 죄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녀도 어떤 의미에서 보면 피해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전반부까지 금자가 준비하는 복수는 철저히 그녀만의 것이고, 형식상으로는 원모의 원한을 갚는다는 식의 형태를 띠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복수(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은)에 가깝다. 즉 원모의 부모에게 속죄하고, 죽은 아이를 대신하여 백선생을 처단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녀의 일종의 퍼포먼스이고, 이는 한편으로 이 복수를 어떤 가벼운 놀이극처럼 보이게 한다. 다시 말해서 그녀는 '친절하다'. 그녀가 친절한 것은 자신들의 복수를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그녀가 교도소에서 '친절한 금자씨'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말 그대로 친절하기도 했지만, 공공의 적 마녀를 쓰러뜨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녀는 그럼으로써 타인의 신뢰를 얻지만, 동시에 마녀의 지위를 물려받기도 했다. 즉 그녀는 친절하지만, 이 친절함은 왠지 가면과 같은 인상을 준다. 그리고 그녀는 감옥에서 나와 그 가면을 벗어던지고,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변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 '변했다'는 것은 일종의 복선이다. 왜냐하면 금자는 실제로 변했으니까 말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다른 사람의 복수를 대신해서 처리했던 금자가, 그래서 심지어는 자신의 복수마저도 일종의 놀이극처럼 보이게 만들었던(영화의 전반부까지) 금자가, 정작 그 자신의 복수는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겨버린다는 사실이다. 즉 이 마지막의 학교에서 금자는 이 복수에서 살짝 '비껴서' 있다(그녀는 결국 죽은 백선생의 시체에 총알을 날렸을 뿐이다). 이를 이렇게 이야기해보자. <복수는 나의 것>에서 이야기한 것은 하나의 복수가 아니라 돌고도는 복수의 연쇄이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고, 복수를 행한 당사자는 다음 번의 다른 복수에 의해 쓰러진다. <올드보이>에서 이야기한 것은 복수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살고자 하는 노력, 혹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즉 복수는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해하는 것이며, 복수의 촘촘한 그물망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의 노력 뿐임을 말한다. 이것은 <친절한 금자씨>에 이르러 하나로 합쳐진다. 복수, 즉 처벌은 결국 자신을 해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처벌을 그만둘 수도 없다. 왜냐하면 백선생과 같은 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백선생은 일종의 맥락을 알 수 없는 악이다. 이것에는 어떤 윤리적인 의미나 개인적인 원한 같은 것이 없다. 백선생은 안이 텅 비어있는 입출력기계, 어떤 신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예를 들어 그가 밥을 먹다가 박이정과 거의 강간에 가까운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보면, 그의 입력(먹는 것)과 배출(로서의 성행위)은 거의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최민식은 흥미롭게도 <악마를 보았다>에서 이런 캐릭터를 한 번 더 연기하기는 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인 욕망과 연관되어 있으며(그는 요트를 사기 위해 아이들을 죽였다고 했다), 또한 예전에 말한 '좋은 유괴와 나쁜 유괴의 논리'와 연결되어 있음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백선생과 같이 (현대 자본주의의 병리적인 현상으로서의) 맥락을 알 수 없는 악에 맞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 영화에서와 같은 대리 처벌이다. 스스로를 구원하면서도 필요한 복수를 행하는 것, 그것이 대리 처벌이며, 그것은 한편으로 이 사회가 구현하는 방식이다. 결국 생각해 보면, 이 영화에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적인 처벌은 사회적인,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처벌이다. 물론 그것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것의 실행과 집행은 공권력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의 손을 떠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맥락과 실행으로 볼 때 <친절한 금자씨>에서 '돌아가면서 칼로 찌르기'나 우리 사회에서 '재판을 통해서 사람을 목을 매다는 것'이 거의 동일한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도 그렇게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복도의 긴 의자에 우비를 입고, 비닐장갑을 끼고, 손에 단도를 들고 어떻게 하면 손이 다치지 않고 잘 찌를 수 있는지에 대해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떠올린 낱말은 '신산스러움'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내재된 그 '신산스러움' 말이다. 우리 사회의 재판과 형의 집행은 그것을 조금 더 간편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즉 복도의 긴 의자에 앉아있는 이들에게는 이 '신산스러움'과 '다가올 복수의 쾌감'이 공존한다. 우리 사회의 대리 처벌은 이 중 '신산스러움'을 상당부분 제거했고, 그 결과 복수의 쾌감이 더 크게 남았다(물론 이 과정에서 복수의 쾌감도 줄어들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간단하게 남겨져 현재 비교적 간단하게 실행되는 이 과정에서 은연중에 잊게 되는 중요한 것이 있다. (즉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죄를 처벌하는 것이 우리의 손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사실 그에 대한 많은 함의를 잊어버렸다.) 그 밑바탕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

 

 

<친절한 금자씨>는 위에서 이야기했듯 백선생의 죄가 원모의 죽음 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금자가 알게 되는 것이 기점이다. 즉 이야기는 이를 기점으로 그 전까지의 금자의 개인적인 복수에서 후반부의 사회적인 복수로 넘어간다. 사회적인 복수로 넘어가는 까닭은 금자가 이 아이들의 부모의 심정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비디오를 보고 나서야, 혹은 그 비디오를 보고 부모들이 보이는 엄청난 강도의 '애끓음'을 보고 나서야 금자는 백선생이 자기가 간단히 처리해야 할 장난감이 아님을 깨닫는다. 간단히 말해서 백선생은 자기 혼자 간단히 먹을 작은 케익이 아니라 커다란 케익의 한 조각인 것이다. 물론 그녀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에는 그녀의 딸 제니의 존재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 왜 <친절한 금자씨>에 딸 제니가 중간에 등장하고, 그녀를 딸처럼 사랑하는 양부모가 등장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그것을 보아야만 금자가 공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그래서 그녀는 이 복수에서 '비껴선다'. 그러므로 사회적 복수, 혹은 사회적 처벌의 근원에 있는 것은 공감하는 마음, 혹은 동정하는 마음이다(물론 이는 단순히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즉 복수의 선행 이전에 존재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사회적인 처벌, 일종의 대리 처벌이 이루어질 때 악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것을 이루어내서는 안된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이 악은 맥락이 없는 악이다. 그것을 우리가 나쁜 놈이니까, 혹은 죽어야 할 놈이니까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그 맥락없음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그 근원에 놓인 맥락을 찾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악과 우리가 다른 점이다.

박찬욱의 복수 연작은 이렇게 조금씩 진화한다. 뭐 간단하게 말하자.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마지막 모든 인물들이 죽었고, <올드보이>에서는 가까스로 죽음은 면했으나 정신분열을 피하지 못하였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죽지도 않고 미치지도 않았으나, 그렇다고 영혼의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였다(마지막 나레이션이 이를 이야기해 준다). 그것은 <복수는 나의 것>의 인물들은 공감이나 동정에 이르지 못하였고, <올드보이>의 인물은 여전히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였으나(오대수, 아니 최민식은 전편에서 혀를 자르는 징벌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그는 이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자신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를 입에 재갈이 물려진 채로 큰 스피커로 들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이 말에 대한 불신은 계속 이어지는데, 금자씨가 백선생을 잡아 가장 먼저 한 일 중에 하나는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었으며, 어른인 채로 금자씨 앞에 나타난 원모(유지태)는 금자가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하자 재빨리 재갈을 물려버린다), 금자씨는 어렵게나마 약한 공감, 혹은 동정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얘기가 조금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영화의 배우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쓰이고 있다. 위에 든 최민식이나 유지태도 그러하려니와 금자와 제니에게 나타난 두 명의 킬러, 송강호와 신하균은 어떤가. 그렇다. 사실 이들은 동일한 한패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간에 금자씨 역시도 영혼의 구원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니 그 영혼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박찬욱에게 구원은 그렇게 쉽게 오는 문제가 아니다. 정성일도 지적했지만 마지막 빵집에서 샹들리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를 나홍진의 <추격자>와 비교할 수 있는데, <추격자>에서 가장 의아하게 만든 것은 마지막 교회를 둘러싼 설정들이다.) 예를 들어 미친 자이거나 남의 피를 빨아야만 살 수 있는 자들에게는 영혼의 구원이란 없을 것인가. 그것의 양상들을 우리는 박찬욱의 다음 영화들에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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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5-27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반부를 백선생의 처단하는 모습에서 "생생한" 오리엔탈 특급 살인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필 제가 맥거핀님의 이 글을 보기 바로 직전 "검단산 여대생 살인청부 사건"의 전말을 봤답니다. 복수..혹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게 불필요하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맥거핀 2013-05-27 20:12   좋아요 0 | URL
네..그 장면들이 그 소설의 그 부분과 통하는 부분들이 있죠. 이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 따라했느니 하면서 여러 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근데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그 사건은 뭐죠? 관련내용을 찾아보겠습니다. 글쎄요..근데 인류 역사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죠. 그것을 되돌리면, 우리는 야만으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아님 무엇인가(예를 들어 정의)를 '회복'하는 것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확인해보니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나온 사건이군요.)

Shining 2013-05-2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좋아요. 약속을 지키는 맥거핀님이 공정사회를 만드실겁니다요-_-b(...뭐지;;)

저는 이 영화를 생각하면, 희미하게 드는 어떤 예감같은 것,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균질하지 못한 감각, 같은 게 느껴지는데 어쩌면 그게 맥거핀님이 말씀하신 톤,일지도 모르겠어요. 이상할만큼 불쾌해지는 영화예요. 잔인함이나 주제나 방식과는 별개로. 어떤 묘한 불쾌감.

불쾌감, 하면 말씀하신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도 떠오르네요. 비오는 날 풍기는 어슴프레한 비린내나 수초 표면에 낀 이끼자국, 지하실의 습기 같은게 떠오르는 영화. 컷이나 연출보다는 뚜렷한 후각,으로 기억되는 영화거든요 저한테는.

덧) 윗 댓글에, 그것이 알고 싶다, 지난주 우연히 틀었다 광분과 혐오의 도가니에...하아.

맥거핀 2013-05-30 01:02   좋아요 0 | URL
저는 불쾌해진다는 느낌보다는 이상한 공포감을 많이 느꼈던 영화예요. 이 영화, 조금 무서운 구석이 있어요. 전반부는 영화가 이상하게 장난스러운 부분들이 있잖아요. 여러가지 테크닉적인 장난들, 혹은 내용상의 어떤 장난스러운 부분들 - 예를 들어 교도소에서 금자는 못하는 일이 없는 사람으로 보여지죠. 마치 거의 로봇을 보는 것 같은데, 이것을 로봇을 볼 때의 어떤 이질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 이 있고, 금자의 복수는 어떤 게임과 같이 혹은 장난과 같이 이어지죠. 금자가 원모의 부모님에게 사죄하는 방식 같은 것을 보아도 말이죠.

그런데 그런 영화가 후반부에 갑자기 확 틀어버려요. 장난을 하던 영화가, 이제 갑자기 "그래도 이게 장난같아보여?"하고 관객에게 묻는 거죠. 아이들이 울부짖는 비디오를, 그리고 그것을 보는 부모들이 울부짖는 것을 억지로 보게 하면서 말이죠. 그런 다음 영화는 부모들이 계좌번호를 주섬주섬 적고, 금자가 케익에 머리를 묻으면서 이상하게 다시 장난으로 돌아옵니다. 장난을 치던 아이가,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그 장난에 숨은 무서운 걸 보여주다가, 아니 사실은 그것도 장난이었어 하고 말하는 격이랄까요. 저는 그게 조금 무서웠어요. 아니 사실은 많이 무서웠어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들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뭐 그냥 제가 그렇다는 겁니다.^^

아이리시스 2013-05-30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읽었는데 이제 댓글 달아요. 공정사회는 저 같이 약속안지키는 사람도 있어서 만들어질 수가 없어요. 그냥 맥거핀님의 바른 자세가 이 세상을 영차영차 하면서 끌고 올라와 저를 희석시키는 거;; 영화는 '너나 잘하세요'나 기억날 뿐이지만, 이 영화는 유독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닌 게, 저는 이영애가 너무 별로;; 근데 이영애만 기억이 나고 다른 배우들은 거의 기억이 안나지만 내용(감독의 철학)은 확실히 처음보다 점점 발전하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리뷰 보니까 더더욱.

그런데 나홍진 감독에게는 왜 동의안해요? 이건 Shining님 대신에 제가 궁금해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도 보실 건가요?ㅋㅋㅋ

맥거핀 2013-06-03 14:34   좋아요 0 | URL
공정사회는 뭐..일단 제가 공정하지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을 거예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이번에 순서대로 다시 보니까,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흐름이랄까, 어떤 내용의 단계적인 발전이랄까 같은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이후에 아마 기회가 기회가 있으면 쓰게 되겠지만, 이 흐름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박쥐>, <스토커>까지 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들은 뭐랄까, 인물들이 너무 가혹하게 버려진다는 느낌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미학적인 아름다움, 혹은 일시적인 감정을 주기 위해서 인물들이 가혹하게 다루어질 때, 아니 감독이 창조한 인물을 스스로 갑자기 구겨버릴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아..그리고 저번에 제가 질문했는데 왜 질문에 답 안달아줌? ㅋㅋ

아이리시스 2013-06-04 16:00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요, 그거 제 댓글 아래 댓글 그거 맥거핀님이 맥거핀님 글에다가 비밀댓글로 단 거 아니예요? 이상하게 비밀댓글인데 그게 제 답글같단 말이죠.. 제가 좋은 정보도 알려주고 간만에 일본어도 사용했는데 왜 답글 안달아줌? 이게..전부터..좀 의심스러웠음..ㅋㅋ

그게 아니라면 무슨 질문?


2013-06-04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4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6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7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5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5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오 2013-06-3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토커> 별로였는데요-.,- 그래서 다음부터 박찬욱 아니올시다 라고 결정지으려다가 음,,님 글때문에 갈등때리네요 하~ 어쭙잖은 갈대의 방황 ㅋㅋ 박찬욱의 세계다음에 이제는 누구차례인가요? 조금은 저는 맥거핀님의 박찬욱을 다루고자 하는 글들을 봤으면 하는 소망도 있지만요,,이렇게 작품 따로 따로 떼어내지 말고 전체적인 작가론은 볼수 없나요? ㅋㅋ 왠 요구사항이 이렇게 많을까요^^ 아 그런데 올해 상반기 베스트로 어떤 영화를 선정했나요? 저는 음 한국영화제외하고 베스트원은 <제로다크서티>, 그다음은 <코스모폴리스>, 음 그리고 그리고 <링컨>, <장고>, <문라이즈 킹덤> 요렇게요,,

맥거핀 2013-07-02 00:33   좋아요 0 | URL
하하..네오님 오랜만. 근데 아직 박찬욱이 안 끝나서요. 싸이보그..도 써야하고, 박쥐나 스토커도 다시(특히 <박쥐>는 예전에 쓴 리뷰가 지금 읽어보니 엄청 이상하더군요.) 써야하는데..사실 필요가 있어서 작가론을 하나 쓰기는 했는데, 그거를 쓰다가 남는 부분들을 이렇게 리뷰들로 재활용(?)을 하고 있어요.ㅋ

근데 상반기 베스트는 일단 최소한 어느정도 챙겨본 사람들이 뽑는 거라서, 제가 뽑으면 그냥 본 거 다 써야할 것 같은데요.ㅋ 저는 위에 뽑으신 거 사실 하나도 안 봤어요. <링컨>은 꼭 보고자 마음먹었건만...<제로다크서티> 리뷰 쓰셨던가요?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