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이상우, 2012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결말이 들어 있습니다.)


싸늘하게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히는 것은 아귀의 말이나 화투장 뿐만은 아니다. 가끔 어떤 영화들은 눈과 귀와 머리를 통과하여 그대로 가슴으로 날아오기도 한다. 나는 물론 영화의 우열에 대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들이 어디에 머물러있는가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가 눈이나 귀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그렇게 나쁠 것도 없고, 가슴에 머무른다고 해서 그렇게 인상적일 것도 없다. 다만, 어떤 영화들은 이상하게 밀고 들어오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밀고 들어오는 영화들은 눈이나 귀에서 특정의 장면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나, 가슴을 가지고 심장을 가지고 숨쉬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예를 들어 <바비>와 같은 영화. 마지막 순자(김아론)가 공항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 때, 그것은 그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순자는 누구에게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가. 그것의 어떤 상징적인 것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 장면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의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국 무력한 우리를 자각하도록 이 영화는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부, 우리는 한 작은 중소도시 공항에 도착하는 미국인 부녀를 본다. 그리고 곧 그들이 이곳에 한 소녀의 입양을 위해 왔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좀 이상하다. 입양을 위해 이 초라해보이는 도시에 잘 알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왔다는 설정도 이상하거니와 조금은 사려깊어 보이는 딸 바비와 달리 아버지 스티브는 입양하려는 순영(김새론)의 가족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언행을 서슴치 않는다. 더구나 입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순영의 작은아버지(이천희)와 달리 순영과 순영의 아픈 동생 순자, 그리고 장애를 가져서 어린아이와 같은 그들의 친아버지는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원하지도 않는 듯이 보인다.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비밀은 이들 미국인 부녀가 데려오지 않았던 또다른 딸에게 있다. 그 딸은 심장에 문제가 있었던 것.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순영이 혹은 순자가 필요했다. 새로운 딸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심장으로서 말이다. 

이 사실을 애초에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미국인 아버지 스티브와 작은아버지 뿐이다(딸 바비는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물론 순영과 순자와 그들의 아버지는 모른다. 아니 이 사실을 중간에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은 한 명 더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라는 존재 말이다. 그러므로 순자를 앞으로 보지 못하게 되어서(원래 미국에 보내려고 했던 것은 순영이었지만, 적극적으로 미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순자가 결국 가게 된다) 슬퍼서 우는 순영과 친아버지에게 순자가 몇 번 반복하여 내뱉는 "내가 미국에 죽으러 가? 울긴 왜 울어!"와 같은 대사들은 그들에게 하는 대사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우리의 위치를 일깨우기 위해 하는 말들처럼 들린다. 그것을 보는 우리들은 망연해지기 때문이며, 아득해지나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영화에서 관객은 실제로 물러나 있으며, 관객이 물리적으로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그러므로 '관객'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영화는 그 물리적인 불가능성과는 별개로 동시에 이야기와 미장센을 구축하며 관객과의 거리설정을 하며 관객은 때로 주인공이 되거나, 주인공의 곁에 머물러 있거나, 혹은 상당히 먼 거리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 <바비>에서 이상우 감독이 택한 것은 관객이 한층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의 중간에 순영이 낯선 남자로 인해 위기에 빠지게 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뒤로 물러나 있으며, 이 물러난 위치에서 카메라와 그 뒤의 관객들은 지켜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영이에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어서 단지 불안한 마음으로 그것을 지켜보는 위치에 처하게 된다(그러므로 조마조마하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 이상우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상우 감독은 <엄마는 창녀다>, <아버지는 개다>와 같은, 제목으로 한 번 놀랐다가, 영화 내용으로 더 놀라게 되는 단지 제목만 도발적이 아닌 영화들을 찍었다. 이 중 내가 본 것은 <아버지는 개다>인데, 이 영화를 보면, 카메라는 이들 형제에게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이들을 관찰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관음의 시선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일종의 사육의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는 어떤 날 것의 어떤 것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초기의 김기덕 영화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으나, 그 영화들과의 차이점을 한편으로 도드라지게 한다. 즉 이미지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는 김기덕의 초기작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인물들의 가까이에서 보는 이를 한껏 불편하게 만들었던 김기덕의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보기에 보다 덜 불편하며, 그것은 사육자나 관찰자의 위치에 관객을 머무르도록 하는 이 영화의 거리설정에 그 하나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 <바비>에서의 가족관계를 전작의 기묘한 가족들과 비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 <바비>에서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뒤바뀌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장애를 가져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친아버지와 돈을 받고 아이를 팔아넘기려는 작은아버지는 어른이라 볼 수 없으며, 꼬박꼬박 극존칭의 존대말을 쓰고, 다른 두 가족을 건사하는 순영과 일반적인 어른보다 훨씬 영악하게 행동하는 순자는 어린아이의 몸을 가진 어른과 같다. 아무도 어른이 되줄 수 없을 때 아이들은 스스로 어른이 된다.) 

즉 우리가 이 영화 <바비>에서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은 딸 바비가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과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태에서 이들을 멀리서 관찰하는 우리들은 유일하게 미국인 부녀의 딸 바비에게 희망을 걸게 된다. 그러나 그 바비가 괴로워하다가 결국 아버지의 뜻을 뒤늦게 추인했을 때, 우리의 기대는 헛되이 무너지게 되며, 영화의 마지막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는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상우 감독은 관객과 이들 자매의 사이에 거리를 만들지만, 전작과 다른 점은 그 거리의 길이를 관객에게 깨닫게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 거리의 길이는 마지막의 에스컬레이터의 길이만큼의 길이이다. 공항의 출국 게이트가 있는 이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의 끝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순자와 그 에스컬레이터의 밑에서 그 인사를 받고 있는 우리와의 거리. 즉 이 마지막에서 우리는 무력해질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바비가 기꺼이 공범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순자를 미국으로 보낸 공범이 된다. 무력한 자신을 자각함으로써, 무력한 우리와 그들 사이의 거리를 느낌으로써 말이다. (물론 이를 정치적인 어떤 것으로 치환하여 말할 수도 있다. 미국이라는 아버지는 그들의 약한 딸, 그러니까 그들의 취약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서 이 작은 땅에서 무엇인가를 도려내간다. 물론 도려내는 지점은 늘 그렇듯이 가장 약한 지점이다- 나는 FTA가 결국 서민에게 피해가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더 나아가면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누군가가 그들을 돈을 받고 팔아넘겼기 때문인가. 그것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때로 영화의 순자와 같이 기꺼이 미국인이 되고싶어 하니까(혹은 미국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지지하니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바비인형이 그려진 가방, 그러니까 맨 처음 딸 바비가 들고왔던 가방에 이제 순자의 이름표가 붙은 것을 본다. 그렇게 순자는 스스로 바비인형이 되었다. 물론 인형에게는 심장이 필요가 없으며, 혹은 심장을 도려내어도 그 바비인형들은 여전히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 가장 어렵고 큰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그렇다면 그 무력한 자신으로 남아 순자의 인사를 받는 것, 그 구원불가, 구조불가의 거리를 느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할 수 있는 답은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말은 때로 영화의 윤리는 가장 비윤리적인 것을 '보는' 순간에 작동한다는 것. 그 영화의 윤리라는 것이 이 현실에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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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 2012-11-05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의 힘이 우리도 공모자며 무기력하다는 걸 깨닫게 하는 거 같아요.
김소영 감독의 <나무 없는 산>(보셨는지?)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데 <바비>보다는 좀 따스하지만 근본적으로 당사자가 아니면 인척도 친척도 다 영화 관객과 같은 처지를 이해시켜요.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를 비난하는 게 쉽지 않고 그렇다고 앞장 서서 칸트식 선행을 베풀기는 더 어려운, 뭐 그런 상황이 벌어지니, 그저 눈 질끈 감는 비겁한 어른이 돼 버려서 기분이 영 찝찔해요.

맥거핀 2012-11-06 14:38   좋아요 0 | URL
<나무 없는 산> 오래전에 보기는 했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 아이들이 밥먹는 장면이었던가..기억에 조금 남아있습니다. 뭐 결국 무기력한 것을 보게 하는 것은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니까요. 자신이 비겁한 어른임을 자각하는 것은 적어도 비겁하지 않을 희망이 남아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천희 씨는 확실히 독한 연기를 해도 그렇게 독해보이지 않더군요.)

Arch 2012-11-0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내용과 상관이 없지만 저는 자꾸 이 구절이 떠오르네요.

'영화에서 그 무엇인가를 볼 때 사실 그것은 거기 없는 것이다... 영화는 우리들의 자발성에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재의 상대방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 상대를 성립시키기 위해 영화 안의 대상과 그 대상의 대상으로서의 영화 대신 그 자리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절차로 발전하였다. 영화는 언제나 그것을 비판하려 할 때마다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비판을 하도록 유도하는 기술을 익힌 예술이다.'
<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중에서>

저는 이 감독의 전작을 휙휙 돌려서 본 터라, 휙휙 돌려본 와중에 뭔가 좀 뻔하다는,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이 가질만한 생각을 했어요. 영화에 대해 말할 때면 자꾸 정성일씨의 말들과 음성이 생각나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한걸까.

댓글을 안 다는게 가장 좋은 방법같은데 맥거핀님의 글을 읽고 있다는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맥거핀 2012-11-06 20:55   좋아요 0 | URL
인용하신 그 부분 아마 김선일 씨 비디오 관련하여 나온 이야기 중에 한 부분이었죠?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노무현 정부의 다른 모든 것, 비정규직이나 FTA 같은 것을 이제는 어느정도 이해한다고 해도 결코 이것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 정부를 지지할 수가 없어요.) 영화는 결국 누군가가 그것을 '본다'고 전제하여 만들어진 것일테니..우리가 무엇을 '본다'고 할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죠. 물론 정성일 씨가 말한대로 영화가 그것을 어떻게 구축해내느냐 같은 거도 중요하구요.

(아마도 이 책에도 쇼트에 대한 부분이 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를 들어 숏을 나누는 것 같은거요. 숏을 나눈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보는 사람을 이 영화에 참여시키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숏과 그것에 대한 반응숏이라고 할 때 그 숏은 반응숏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객의 반응'이라는 것도 불러오니까요. (감독의 전작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그 <아버지는 개다>에서 식탁숏이 생각이나요. 마주 앉은 네 가족을 잡은 초반의 숏-그 옆모습을 그대로 고정해놓고 지속시키는 그 장면의 어떤 무서움.)

정성일 씨의 글은 가끔 무엇인가(예를 들어 자의식)가 과잉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걸 쉽게 비판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영화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그 과잉된 부분만큼 묻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영화는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투로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가(아마도 제가) 이야기한다면 욕을 먹겠죠.

댓글 달 수 있으면 달아주시면 좋죠.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2-11-06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낮 보려고 찜한 영환데 아직입니다. 다음주에 봐야될 거 같아요. 영화의 윤리는 가장 비윤리적인 걸 보는 순간 작동한다ᆢ 자꾸 이 문장이 맴도네요. 영화보고 저도 생각 정리 좀 해봐야겠어요.

맥거핀 2012-11-06 20:53   좋아요 0 | URL
아..그러고보니 영화를 안 본 분들에게는 제가 너무 줄거리를 많이 늘어놓았군요. (경고문을 써놓기는 했지만요.) 근데 사실 그 비밀(?)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니까..영화 전단지에 줄거리 소개글에도 사실 영화의 거의 모든 줄거리가 들어있더군요. 보시고 나서 마지막에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되실지 궁금합니다. (그러니 후에 글을 남겨주세요.^^)

그리고 그 옆에 포스터 반갑네요. 서칭 포 슈가맨! 저도 볼려고 마음만(?) 먹고 있는 영화입니다.

프레이야 2012-11-07 20:13   좋아요 0 | URL
네, 전 줄거리 다 알고 봐도 전혀 제 감동과는 무관하니 상관 없어요.^^
슈가맨,은 한 번 더 볼까 합니다. 참 좋아요.
음악이 너무 좋아 음반 구매했어요. 좀전에 도착해서 지금 플레이중입니다.^^

2012-11-0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대해서나 영화에 대해서나 늘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다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마지막 문단을 읽으며... (글이 흥미롭네요. 늘 그런 글 쓰시지만.^^)

맥거핀 2012-11-11 13:04   좋아요 0 | URL
좋은 영화는 늘 공감과 공감에 따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글을 흥미롭게 읽어주시는 것은 섬님이 그만큼 풍성하게 읽으시기 때문이죠. 기회 되시면 영화도 꼭 한 번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