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 공귀현, 2011.

 

한 여고생이 산에서 실종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UFO 출몰지'로 잘 알려진 그 산에 UFO를 보러 갔던 한 무리의 남고생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은 UFO에 납치되었다가 풀려났으며, 그 여고생의 실종 역시 외계인들의 소행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증거로 자신들의 가슴에 새겨진 이상한 표식을 내미는데...정도면 이야기로서는 흥미로운 시작이고, 뒷이야기가 상당히 궁금해지는 설정이다. 그런데 공귀현의 영화 <U.F.O.>는 이 흥미로운 설정을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고 평들을 찾아보니 대체로 호의적인 평들이 많은데, 글쎄...내 생각에는 고민이 조금 덜한 듯한, 왠지 만들다 만듯한 영화로 느껴진다.

호의적인 평들을 보면, 독특한 상상력, 장르의 다변화, (나름) 반전의 제시...등등이 그 이유로 제시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일단 반전부터 생각해보면, 이 반전의 설득력은 상당히 약하다는 인상이다. 기본적으로 영화에서 반전을 다루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고, 감독의 치밀한 계산들이 필수적이다. 반전은 보통 다른 기본적인 이야기보다 훨씬 더한 강도의 설득력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반전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야기적 믿음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 반전은 그저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망쳐놓은 '뻘짓'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전이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영화 중간에 계산된 치밀한 복선들을 깔아놓고, 그간 관객의 머리속에 쌓아놓은 이 치밀한 복선들 스스로가 마지막 후반부에 이르러 관객의 머리통을 알아서 때려내기를 기대해야만 한다(물론 이 복선들을 역이용할 수도 있다). 즉 반전영화에서 관객을 감탄하게 만드는 것은 반전된 내용 자체의 묵직함과 쾌감이 아니라, 그 반전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관객 몰래 쌓아두었던 복선의 구조와 치밀함의 정도이다. 그러나 이 반전은 복선들이 앞에서 거의 제시되지 않은데다가, 그 자체로서의 설득력도 약하다. 즉 복선들이 충분치 않았다면, 반전 그 자체로서의 행동들에 대한 심리적 설득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행동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이 사건에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동기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수가 있을까. 그것이 이유라고 했을때, 바로 '그것'이 우리를 맥이 풀리게 만들지 않는가.

이 영화 <U.F.O.>는 한국의 많은 장르영화가 그렇듯, 사회적인 메시지를 그 안에 담아내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왜 한국의 장르영화들은 장르 그 자체에 철저히 충실하지 못하는가. 나쁘다는 힐난이 아니라, 순수한 궁금증이다). 예를 들어 외계인과 UFO라는 불확실한 것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과 매스컴들을 보여주는 연이은 컷들(이 영화의 시작은 방송에서 UFO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소년의 씬이다), 그리고 단적으로 영화의 시작과 함께 제시되는 비트겐슈타인의 메시지,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해야만 한다." 영화가 이러한 것을 제시한다는 것은 관련하여 무엇인가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즉 메시지를 제시하고자 하면 그것을 영화의 전체 장르적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혼합하여 전개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러한 것은 단지 배경으로 그칠 뿐 풍자나 비판, 고찰에까지 가닿지 못한다. 즉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이 영화가 조금 더 나아지려면,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해야만 한다."는 선언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단지 그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검은 배경에 흰 자막으로 그 메시지를 보여주는 자체가 더 효과적이다. 즉 이 메시지 이후의 영화는 선언 이상의 것, 예를 들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뭐지, 라는 데에까지는 적어도 나아가야 한다. 이 영화에서라면 그것은 UFO라는 불확실한 것을 믿고, 말했던 이(그리고 우리)들이 결국 무엇을 파괴시켰나라는 질문에 이 영화는 무엇이라고 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그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또한 영화의 한 축에서 또 하나의 사회적 메시지로서 등장하는 것은 이 UFO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들의 배경이다. 자칭 '사대천왕'이라는 이들은 주인공의 형이 명쾌하게 이야기하였듯 네 명의 왕따일 뿐이다. 이 넷은 왜 왕따가 되었을까. 그와 관련하여 영화에서 강조하여 제시하는 것은 이 넷의 배경이다. 어렸을 때 UFO에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며, 모든 것을 UFO와 관련하여 사고하는 아이, 그리고 목사의 아들로,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하나님과 기독교로만 해석하려 드는 아이(기독교와 UFO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이 재미있다. 그와 관련하여 또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제대로 사고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주인공의 형이 합리적, 과학적 사고를 하려는 인물이라는 점.), 그들보다 한살이 많은, 뭔가 사고를 쳐서 이 학교로 오게 된 아이, 그리고 혼자 떡볶이를 사먹는 모범생 소년(이 소년이 그나마 정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물론 이 배경들을 서술하는 화자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영화에서 보여주는 방식은 이들 행동의 특이성만을 강조하여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왕따가 된 이유는 어떤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을 단지 그들 개개인의 특이성으로만 소구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온당한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영화에서 또하나 주목할 것은 이 영화에는 (스쳐지나가는 인물 외에) 변변한 어른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 모범생 소년만 미약한 보호자, 즉 그다지 어른으로 볼 수 없는 형이 등장할 뿐, 이 영화에는 그들의 행동을 컨트롤할 어른, 부모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오로지 그들의 대화 속에서만 등장할 뿐, 그들 곁에는 당연히 있어야할 때 - 예를 들어 병원 - 마저 그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 즉 이 영화는 또다른 <15소년 표류기>이다. 아들을 찾아다니는 아버지라는 액자를 영화에 굳이 덧씌웠던 <파수꾼>과도 연관지어볼 부분이 있다.) 그런 그들 넷은 뭉쳐서 한 팀이 되고, 이들은 산에서 또다른 왕따 소녀를 만난다. .... 그러므로 이 결말을 우리는 이러한 배경들과 관련하여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이 영화에 마음을 붙일 수 없게 만들어주는 것은 이 영화가 성장담의 형식을 가지고 있되, 성장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물론 가슴이 따듯해지는 이야기만이 성장담이 될 자격을 갖춘 것은 아니다. 성장은 헤세가 이야기한대로, 수레바퀴 밑에서 견뎌내는 것이고, 알이든 다른 무엇이든, 무엇인가를 깨뜨리면서, 부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이야기한 영화 <파수꾼>도 마저도 그것을 성장담으로 볼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아이들은 결코 성장하지 못한다. 아니 성장이 아니라 다시 퇴화하여 버린다. 그들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그들 주위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단단한 벽을 만들어버리고 기꺼이 자신들의 모습을 가리는 가면을 뒤집어 썼다. 어쩌면 그것이 영화 속에서 어른들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즉 이 사회는 수많은 퇴화한 자들이 만들어낸 사회이며, 그 어느 곳에도 어른은 없다는 것. 그러한 사회에서 아이들은 성장의 방식보다도 늘 퇴화의 방식을 먼저 습득하게 된다. 퇴화한 자들이 가득찬 사회에서 모두의 우위에 서는 방법은 누구보다도 빨리 퇴화하는 것이니까. (그들이 UFO에 잡혀갔다온 증거가 무엇인가라는 점이 이와 관련된다. 즉 이 퇴화된 사회에서는 무엇이 증거가 되는가.) 그런 것을 젊은 감독이 만든 이 아이들만이 나오는 영화에서 봐야할까. 잘 모르겠다. (물론 이 마저도 그저 우리 사회의 충실한 반영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만 하니까.)


덧.
하기는 방송사마다 세상에 이런 일이니, 진실 혹은 거짓이니, 그것이 알고 싶다니 하면서 괴담들을 양산하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에서 괴담들을 만들어내는 자들은 누구인가. 물론 당연히 그것이 만연되어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사이에, 이득을 보는 자들일 것이다. 아이들은 단지 그 효과적인 방식을 보고 배울 뿐이다.

주인공 모범생 소년 역할로 나온 이주승이라는 배우는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싶었는데, CINDI에서 본 <간증>에 나왔던 배우. 그 영화에서는 도리어 광신적인 기독교 신자로 나왔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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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2-03-2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말씀 하신 주인공들이 모두 '미확인 비행 물체'처럼 보이네요.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으니까 이름을 만들고 주민번호를 만들고..면허증을 만들고... 왕따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이거 너무 부정적인가요?

맥거핀 2012-03-26 21:04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읽다보니까, 제가 영화에 제시된 UFO의 비유를 너무 간과했던 듯도 싶어요. 흔히 외계인이라고 하는 alien이라는 말이 '다른, 이질적인'이라는 어원에서 온 말이 아니겠습니까. 다름, 이질성이 강조된 영화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또다른 의미의 alien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는 alien들이 alien을 찾아 헤매는 그런 영화가 되겠군요. 그런 의미에서 결말을 생각해보면 더욱 씁쓸해지는 영화가 될 수도 있겠네요. (결말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군요.^^)

마녀고양이 2012-03-26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들어보지 못 한 영화가 참으로 많구나, 잠시 감탄하고...

좋은 영화 페이퍼라서,
제가 보지 못 한 관계로 무어라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안타까와집니다.
확실한 것은 보고싶게, 궁금하게 만드시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맥거핀님~ ^^

맥거핀 2012-03-26 21:09   좋아요 0 | URL
제 글의 목적은 거의 항상 '그 영화를 보게 만드는 것'이니 그런 말씀을 들으니 반갑네요.

사실 이 영화는 정식개봉도 안한 영화니까요.(이번에 씨네큐브에서 한국영화 신작을 미리보는 기획전을 하길래 보고 온 영화입니다.) 제 글들이 주로 영화를, 그리고 종종 덜 알려진 영화들이 대상이니 제가 생각해도 글을 읽다가 쉽게 공감들이 잘 안될 것 같아요(그러니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로서는 보시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3-2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리뷰는요, 언제나 항상, 영화와는 따로 존재하는 거예요, 맥거핀님!!

이 영화는 정말로 처음 들어보는데, 하나님, 기독교, UFO, 아.. 뭔가 신기하네요. 영화가. 요 앞 영화는 궁금하지만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데 이건 보고 싶어지네요. 뭐 나중에..꼭........!!

맥거핀 2012-03-28 18:28   좋아요 0 | URL
네..저는 깠(?)지만 한번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무래도 장편으로서는 첫 영화니까요. 발전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신선하다는 측면에서는 꽤 점수를 줄 수 있어요.

근데 영화리뷰가 영화와 따로 존재한다는 게 무슨 얘기에요? 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아리송..

아이리시스 2012-03-29 18:05   좋아요 0 | URL
그..뭐..그뜻 맞을걸요!!! 영상론 전공에 영화평론과정 있더라고요. 책리뷰나 시리뷰는 그런 거 없잖아요. 그래서 영화는 보여주는 예술이고, 영화를 글로 옮기는 건 글로 하는 예술인데, 둘은 완전 따로다, 이렇게 생각해버렸죠..

여기까지는 제 생각이고,
어느 평론가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저는 듣고 돌아서면 누군가의 말인지 까먹기 땜에 그건 기억이 안나요. 미안해요. 헛소리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맥거핀 2012-03-29 22:39   좋아요 0 | URL
아니, 저도 잘 알 수가 없어서요. 일단 영화리뷰(평론)라는 게 다른 것보다 좀 특수한 양상을 가지고, 나름의 특유의 형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시나 책이나 하는 것은 글을 글로서 이야기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영화비평은 영상을 글로 풀어내야하니, 반드시 그 와중에 어떤 괴리가 생겨날 수밖에 없으니..(그래서 컷이니, 숏이니 하는 특유의 용어들이 필요한 것이겠구요.) 또한 뭐 이건 사운드나 이야기도 통합되어 있는 복잡한 거지요. 그러니 또 나름 전문적인 과정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그렇듯이 '배움'으로만 갖출 수 없는 게 이 영화비평의 세계에도 있기는 한 거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