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소년 - The Kid with A Bike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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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다르덴 형제의 인물들은 늘 그랬다. <로제타>의 로제타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었던 사람을 고발했다. <약속>의 이고르는 아프리카 불법이민자를 죽인 일에 동참하였던 것도 모자라, 이제 그의 아내를 팔아넘기는 일에도 연루될 참이다. <아들>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소년범을 만나 그를 죽이게 될지도 모르는 충동에 휩싸인다. <로나의 침묵>의 로나는 자신과 위장결혼한 마약중독자를 죽이는 음모에 동참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르덴 형제의 새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에서는 소년 시릴(토마 도레)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의 꾐에 빠져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돈을 빼앗는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거의 과오를 저지른다. 과오를 저지른다는 것은, 그들이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큰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였고, 때로는 길을 잃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깨닫고 길을 거슬러 올라 다시 돌아오려고 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그들은 때로 운놓게 아주 좁은 돌아오는 길을 발견하기도 하였고, 애타게 돌아올 것을 소망했으나, 너무 많이 나가 도저히 돌아올 길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갈림길 사이에서 주인공들을 내버려둔 채, 아니 그것을 보는 우리들을 내버려둔 채 영화들은 극장 밖으로 우리를 밀어냈다.

 

이 영화 <자전거 탄 소년>에 대한 이야기에서 다르덴 형제의 새로운 변화를 말하는 목소리는 많았다. 형식상으로 보았을 때 롱숏은 확실히 줄어들었고, 밝은 이미지의 컷들도 꽤 빈번하게 등장하고, 음악이 본격적으로 삽입되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확실한 변화는, 위에서 말한 전작들과 비교한 결말의 변화, 즉 다르덴 형제가 우리를 선택의 갈림길에 내버려둔 채로 영화를 끝내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를 놀래킨 것은 단지 그 결말의 변화가 아니다. 놀라게 한 것은 전작들보다 결말은 명확해졌지만, 다르덴 형제의 문제의식은 이 안정적인 결말 속에서도 그대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다. 자전거를 가지고 가는 도둑을 끝까지 물고늘어지며 놓지 않았던, 그래서 '핏불'로 불렸던 소년이 병원에 같이 가자는 남자에게 괜찮다며 태연히 떠나는 이 마지막은 이상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 감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있는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의 새로운 변화를 내비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의 익숙한 인장들도 드러내보이고 있다. 영화의 첫장면은 왠지 익숙하다. 소년이 달리고, 카메라가 흔들거리며 그의 뒤를 쫓아간다. 흔들리는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주인공의 어떤 불안한 심리를 그것을 보는 우리들에게 그대로 전이시키지만, 이 효과는 그들의 정면샷을 결코 잘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배가된다. 정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을 몰래 관찰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몰래 관찰하는 자, 즉 우리들은 당연히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장면이 다르덴의 장면이기도 한 것은 이 장면은 아무런 설명이 없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년이 왜 뛰고 있는지,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려고 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소년이 자전거를 찾으려, 그리고 보육원에서 아버지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의 어떠한 이야기들이 생략된 채 관객을 영화의 한가운데에 던져두면서 펼쳐지곤 했다. 그리고 곧 이야기의 또다른 주인공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가 등장한다.

 

이 사만다야 말로, 다르덴 형제의 생략의 드러나는 인물이다. 아무런 전사(前事) 없이 불쑥 등장하는 사만다는 시릴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한다. 시릴과의 관계 외에 어떤 그럴듯한 이야기가 붙지 않는 사만다는 그럼으로써 영화상으로 볼 때 미스테리해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에서 그럴듯한 이야기가 없으면서도 비중있게 나오는 인물은 두 가지 중의 하나다. 아주 악인이거나, 아니면 성인(聖人)이다. 오직 보통의 인간만이, 그 인간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이야기가 붙는다. 그러므로 이 <자전거 탄 소년>에서의 새로운 결말에서의 변화는 이 사만다의 등장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다르덴 형제의 전작들에서 인물들은 대체로 어떠한 조력자도 없이 혼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시릴에게는 사만다라는 강력한 조력자가 있다. (물론 나는 이 부분에서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사만다와 같은 인물들은 어쩌면 '보통의 인간'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만다를 일종의 성녀로 규정하는 나의 말은 비참한 사회에 길들여져 버린, 회로가 망가진 비참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가장 상층의 인간이 사만다라면, 가장 하층의 인간들은 시릴의 아버지(제레미 르니에) 또는 시릴을 꾀는 불량청소년이다. (물론 이것은 도식적인 나눔이고, 시릴의 아버지의 경우와 불량청소년은 또한 같지 않다. 이 영화에서 다르덴 형제의 전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은 시릴이라기 보다는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하는 그의 아버지이다. 이 아버지는 왜 이런 선택을 하는가,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다르덴 형제가 늘 묻고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하층과 상층 중간 어딘가에 우리들, 예를 들어 영화의 마지막에서 쓰러진 소년을 놓고 중간의 애매한 선택을 하는 피해자 아버지 같은 인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각각의 지점, 즉 사만다의 미용실, 시릴 아버지의 식당, 풀숲가의 트레일러에 고정되어 있고, 자전거를 탄 소년은 이 고정점들을 자전거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약속>과 마찬가지로 소년이 달리는 순간은 그가 변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된다(착한 고정점에서 나쁜 고정점으로의 이동, 혹은 그 반대의 이동). 즉 자전거로 달리는 소년은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고정점에서 하나의 고정점으로 이동하는 변화 과정을 겪고 있지만,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시릴의 내면의 가장 극적인 변화가 영화의 후반부 그가 두 번의 버림(불량청소년과 아버지에게)을 연달아 받고, 사만다의 미용실로 자전거를 탄 채 달릴 때 일어나는 것은 상징적이다. 이 컷은 짧게 생략되어 있지만,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기에 가장 심리적으로는 길고 큰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제목이 '자전거 탄 소년'임은 상징적이다.)

 

그러나 생략은 여기에서만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시 사만다에게로 돌아온 시릴과 마지막 쓰러졌다 일어나서 태연히 걸어나가는 시릴과는 큰 차이가 있다. 마지막 시릴의 모습은 마치 사만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별다른 저항없이 돌아서는 시릴의 대응 방식은 그 전의 사만다의 대응방식들과 비슷하다. 즉 이 마지막에서 시릴은 거의 사만다化되어 있다. 두 번의 버림 후 사만다에게로 돌아왔던 시릴과 미 마지막 시릴과의 차이는 무엇으로 가능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돌아옴 후 그 마지막 장면들이 있기까지 다르덴 형제가 생략시킨 시간들, 즉 사만다와 함께 했던 좋았던 시간들로 가능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짧은 시간에도 엄청나게 변하는 법이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의 미학 중 어쩌면 핵심적인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생략의 지점에서 존재하는 리얼리즘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소위 다르덴 형제의 고유한 형식이라고 믿어지는 것들이 있다. 흔들리는 카메라, 정면샷의 배제, 롱숏의 활용 등 흔히 말하는 '날것의 카메라'라 하는 것들. 그러나 이것으로 다르덴 형제의 특유의 리얼리즘이 만들어진다고 오인한 어떤 다르덴류 영화들은 이 형식만을 그대로 따와 인물들 뒤에 카메라를 위치시키고, 인물들이 뛸 때, 그들을 따라서 카메라를 들고 뛰면서 모든 것을 천천히 모두 보여주는 것으로 리얼리즘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현실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말 그대로 리얼리즘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화면을 보는 인간들은 아무 것도 상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화면을 그대로 볼 뿐이다. 리얼리즘은 그의 눈만 스치고 지나갈 뿐, 그들의 머리 속은 눈앞에서 보여준 (가짜로 만들어진) 화면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극단의 '리얼리즘'이라고 해서 그것이 현실인가? 물론 아니다. 모든 영화는 현실을 모사한- 설혹 다큐멘터리일지라도 -가짜일 뿐이다. 오직 현실과 가깝거나 멀거나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리얼리즘의 핵심은 어쩌면, 리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자에게 리얼을 생각(상상)하여 채워넣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다르덴 형제의 이야기에서 그 이야기의 빈공간에 존재하는 상상을 가능케 하는 것은 생략의 앞과 뒤에 존재하는 윤리의 질문이 담긴 장면들이다. 하나의 윤리에서 다음의 윤리로 진화한 인간을 보여주는 것은 그 생략된 장면들에 가득 담긴 것들을 그 순간 우리의 머리 속으로 슬그머니 밀어넣는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는 아마도 사만다의 무한한 사랑이다.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물론 그것의 정답은 없다. 다만, 다르덴 형제의 다음의 말들에서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씨네21>837호 다르덴 형제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이 마지막 장면은 신적인 것의 개입과는 무관하다. 다만 우린 처음부터, 아버지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 끔찍한 사실을 시릴이 받아들이기를 바랐고 또한 그만큼이나 그가 사만다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바랐으며 동시에 우리 모두가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바랐을 뿐이다") 사랑은 신이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랑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이 마지막에서 다시 그들의 처음을 돌이켜 보게 된다. 영화의 시작, 보육원 관계자들을 피해 병원에서 시릴은 우연히 사만다의 품으로 뛰어든다. 사만다와 시릴의 첫만남. 이 넓은 황량한 세상에서 시릴이 만날 수 있는 가장 소중하고도 따뜻하고 유일한 품. 이 기막힌 우연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는 그런 기막힌 우연들에 때로 다른 이름을 붙인다. 우리는 그 다른 이름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모든 사랑은 기적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기적은 오로지 인간들의 세계에서만 큰 의미가 있다. 우리 세계에서 기적이란 신의 세계에서는 그저 아이들 장난같은 시시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기적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으며,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 기적 중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손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랑이다. 리얼리스트 다르덴 형제가 말할 수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최선의 긍정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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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별 다섯개일 줄 알았어요! . 그러므로 안 읽을 거예요! (주말에 보려고요.ㅎㅎ)

맥거핀 2012-01-26 00:13   좋아요 0 | URL
아니 언제 또 바람같이 댓글을 달고 가셨나요..다르덴 형제 영화는 별 5개 줘야지요..안주면 배신! 배반이야..!

꽃도둑 2012-01-2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의 전당에서 매년 여름 즈음에 영화비평 교실이 열려요.
별 일이 없다면 이번 해에 도전해볼까 해요,
접근법에 따라 달라지는 오묘한 영화의 세계로 빠져볼까 하는데
그러면 맥거핀님처럼 영화평을 쓸 수 있겠죠?,,아주 분석적이고 명석한!
가능하다면 특이하게도 쓰고 싶어요.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해서리,..ㅎㅎ

잘 읽고 갑니다~

맥거핀 2012-01-27 00:44   좋아요 0 | URL
잘 배우시면 저처럼 쓰시면 안되죠~! 저는 야매라. 야매보단 정통의 방법을 배우셔용. 나중에 좋은 영화비평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비평은 그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 영화의 가치를 전달해줄수 있는 비평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영화비평은 영화와 별개로 그 자체로서도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와 별개로 존재할 수 있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나 본 사람이나 어떻게든 그 영화를 다시 찾아서 보게끔 만드는 비평, 그런 글들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매우 멉니다.

아이리시스 2012-01-2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이제 저는 <로나의 침묵>이랑 <약속> 봐야지!

고마워요, 맥거핀님. 그렇잖아도 뭘 하나 더 볼까 하다가 한 줄짜리 줄거리보니 두 개가 맘에 드네요ㅋㅋㅋ 맨날 훔쳐가는 거 맞죠, 저?

저는요, 결말이 미심쩍어요. 이렇게 끝나버리면 안되는 거잖아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잖아요. 뭔가 달라지면 좋겠다고 계속 바랐었나 봐요.

맥거핀 2012-01-27 00:47   좋아요 0 | URL
결말이 미심쩍나요. 저는 그 영화의 그 이후를 계속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년은 다시 돌아가서 사만다와 계속 살테니까 점점 달라지겠죠. 그리고 아마도 언젠가 사만다와 같은(아마도 그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그 이후를 생각하게 하는 뭔가 남겨진 잔향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로나의 침묵>보다는 <약속>으로 시작하시는 것이 다르덴 형제를 느끼기에는 더 좋을 듯..아무래도 <로나의 침묵>은 다르덴 형제의 범작이라는 평판들이 있으니까요.

아이리시스 2012-01-27 02:09   좋아요 0 | URL
결말이 이해가 안된다거나 안좋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엄청 좋더라고요) 소년이 달라지는 걸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나 봐요. 잔향이 엄청나고 감독이 계속 고민했다는 것도 알겠고요. 영화는 기대보다 훨씬 좋았어요. 저 예전에 형제들 싫다고 했었잖아요. 근데 맥거핀님이 저 포스터 <약속> 맞죠? 계속 고수하신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알았어요, <약속> 먼저 볼게요^^

맥거핀 2012-01-29 00:38   좋아요 0 | URL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마음에 드셨다면, <약속>은 필히 봐야할 영화죠. 영화관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그 먹먹하던(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마땅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네요) 감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2012-01-2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우와 영화 잘 만들었다." 이랬는데, 맥거핀 님은 어떻게 잘 만들었는지 조목조목 설명해 놓으셨군요. 그리고 다르덴 영화의 특징도 잘 설명해 주셨고요.
리얼리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맥거핀 2012-01-29 00:41   좋아요 0 | URL
뭐 그냥 제 나름의 이해(혹은 오해)를 쓴 것 뿐입니다만, 조금이라도 글이 영화의 감상을 더 풍성하게 해줄 수 있다면 좋겠네요. 주말에 영화보신다더니 빨리 보셨네요. 다르덴 영화는 사실 특유의 스타일이 있어서 영화를 보다보면 보고 싶지 않아도 스타일 같은 부분을 보게 되요. 근데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강점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2012-01-29 13:04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은 강점이면서 위험한 부분도 있는 것이네요. 근데 이건 조금 다른 얘기지만, 모든 사람들의 모든 창조물이 결국 다 한 가지 스타일을 가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평생 한 작품만 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제가 예전에 페이퍼에 쓴 적 있는 건데, 진짜 "Tne man is the style."(문체는(스타일은) 사람이다.)이지요. 그런 게 정말 재밌어요. 그런 걸 관찰하는 것, 그런 사실 자체, 둘 다요.

맥거핀 2012-01-29 12:34   좋아요 0 | URL
그렇죠. '글'이라고 불릴 수 있으려면 특유의 문체가 있어야죠. 뭐 꼭 소설같은 것만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알라딘 리뷰들에도 보면 각자 나름의 스타일들이 있는 글들이 있구요. 비평에도 각자의 스타일이 있고, 몇 문장을 읽어보면 아..이거 누가 썼구나 하고 알게 되죠. 근데, 그 문체와 스타일이라는 것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까..식상함을 동반하는 법이고, 어떻게 보면 발전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되니까, 그 스타일을 어느정도 유지하면서, 새로운 부분들을 담아낼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해지겠지요.

그런 면에서, 다르덴 형제의 이번 영화는 인상적이었어요. 그 전의 <로나의 침묵>이나 <더 차일드> 등이 너무 스타일에 매몰된 범작이라는 인상을 준 반면에 이번 영화는 몇 가지 새로운 요소의 도입으로 영화가 꽤 흥미로워졌습니다.

2012-01-29 13:0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누구나 타고난 유전자에서 나온 (듯한) 고유한 스타일은 있지만, 그것을 나름대로 새롭게 바꾸는 것. 그건 할 수 있겠고, 다들 하고 있겠고, 또 하려고 하겠군요. 그리고 다르덴 형제가 이번에 그렇게 했군요.
그래서 '재미'가 중요한가 봐요. '재미있다'는 것은 그런 게 있는 것, 창작자 입장에서도, 감상자 입장에서도. (예전에 저 알던 후배가 '내가 추구하는 美는 '재미'야~' 이랬던 생각이 나고...ㅎ)
좀 더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맥거핀 2012-01-30 17:21   좋아요 0 | URL
섬님 말씀대로 일단 본인부터 계속 하던대로만 하면 재미가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도 좀 새로운 형태의 리뷰를 써봐야 하는데, 매번 그냥 그렇게만 쓰고 있으니 슬슬 재미가 없어져요. 좋은 글들을 봐야 좀 자극이 되는데, 요새 시간이 없어서 영 글들을 못 읽고 있어요.ㅠㅠ

네오 2012-01-3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르덴의 영화를 엄청나게 좋죠???? (긍정의 대답을 원합니다^^V) 저도 그의 열혈빠휴먼이지만 매번 칸에서 놓치지 않는 상복에 대해선 조금은 아쉬워요~ 그러니깐 출품만 하면 오토매틱으로 황금종려 혹은 감독은 수상하져 다른 감독들은 불만일꺼 같은데요 헤헤 물론 좋은 작품에게 줘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거의 심사위원들이 그의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이 안되서요~ 저에게요~ 이글에서 나타내듯이 인간이 펼칠수 있는 그 무언인가에 대한 대답이겠지요^^

맥거핀 2012-01-30 17:24   좋아요 0 | URL
그래도 그런게 있지 않습니까? 그 먼 벨기에에서 온 어떤 나이든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고, 전세계의 사람들(우리를 포함해서)이 삶의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는 게 참 경이롭지 않습니까?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아마도 그 심사위원들도 보셨을 것 같고, 전세계적으로 다르덴 감독의 영화가 칭송받는 것을 보면 결국 인간들의 시각이란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참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한 것 같고...

좋죠..좋지요.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은 늘 좋지요.

네오 2012-01-30 17:53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네오 2012-02-01 21:49   좋아요 0 | URL
아무리 생각해도 "소년이 병원에 같이 가자는 남자에게 괜찮다며 태연히 떠나는 이 마지막은 이상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 감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있는가." 라는 대목이 정말로 정말로 제가 가지고 의문하고 백퍼씽크로 일치했습니다!! 다르덴의 영화가 뭘랄까 더 좋은 방향으로 가는것 같다는 확신이 드네요!! 아무런 사전정보없이 보고나서 마지막 그 마지막 소년이 살가? 죽을까?를 가지고 영화안에서 흐르는 짧은 시간안에서 한참을 고민했답니다. 설마! 설마! 하면서요~ 다행히 소년은 살아서 제가 원하는 이미지로 중심이동하던데요! 간만에 조금은 이 영화가 흥분하게 만드네요 ㅋㅋㅋㅋ 그런데 정말 맥거핀님 말씀대로 바꼈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의 작품들중에서 거의 음악이 없었는데 베토벤의 교향곡5번 황제 2악장이 나오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거의 <블루>의 효과처럼 씌여졌다는 막연한 생각만요 ㅋㅋㅋㅋ 다르덴이 참 흥미로워졌어요^^

맥거핀 2012-02-01 23:03   좋아요 0 | URL
다르덴 형제라면 이제 거장으로 불러도 좋겠죠? 그 짧은 마지막에서 보는 사람을 애타게 만들고, 결기있게 나가는 그 뒷모습은 다르덴의 새로운 변화, 아마도 좋은 쪽으로의 변화를 믿고 싶게 만들어요. 그 뒷 이야기를 또 상상하게 만들구요. 음악도 대체로 그렇지만, 기존의 스타일에서 새롭게 변화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기존의 스타일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우려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많은 뮤지션들이 그래서 수많은 팬을 잃기도 하구요. 저도 이 영화 보기 전에는 그 변화들을 우려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변화를 긍정하기로 했고, 또 다음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미 다 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거장의 새로운 발전을 볼 때에 그것만큼 즐거운 것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