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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주홍글씨
나다니엘 호손 지음, 조승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최근 2년 동안 적어도 두 사람의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부터 [주홍글씨]를 추천받았다. 어렸을 때 문고판으로 읽은 기억이 있는 고전이다.
헤스터 프린은 영국에서의 청교도 박해를 피해 (아마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보스톤으로 건너온 여성이다. 남편보다 먼저 미국에 온 그녀는 3살 난 갓난아이를 안고 죄를 고백하는 교수대 앞에 섰다. 가슴에는 간통을 상징하는 문자 'A(Adultery)'가 선명하게 수놓아져 있다. 그녀는 간통의 상대방을 고백하라는 지방 장관과 목사(심지어 여기 목사 중에 간통의 상대방이 있다), 그리고 민중의 압력에도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 현장에는 뒤늦게 미국으로 건너온 헤스터의 늙은 남편 로저 칠링워즈도 냉정한 눈빛으로 치욕의 광경을 보고 있었다.
헤스터 프린을 중심으로 이성을 대표하는 남편 로저 칠링워즈와, 순결한 감성을 상징하는 젊은 딤즈데일 목사, 그리고 부정의 상징이면서 화해와 희망의 상징일 수도 있는 사생아 펄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호손의 문장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수려하다. 소설은 헤스터 프린이 저질렀다는 죄 '간통'을 진행형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그녀가 딤즈데일 목사와 살을 섞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중심은 '간통'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겪게되는 헤스터 모녀의 고행과 구원, 딤즈데일 목사의 죄의식, 그리고 복수의 화신이 된 칠링워즈가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처음에 헤스터와 펄 모녀만이 섰던 고백의 교수대에 딤즈데일 목사가 함께 올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간통'을 한 죄와 그것을 숨김으로써 치렀던 모든 고통을 드러내고 죽음으로써 더 철저하게 복수하고자 했던 칠링워즈의 기대를 산산히 부수어 버리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어떤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가? 고전은 왜 시대를 거듭할수록 강한 생명력으로 재생산되고 자기분열을 계속하는 것일까? 17세기 보스톤의 엄격하고 경직된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 종교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를 나약하지만 순수한 인간들을 통해 보여주는 [주홍글씨]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충분한 답을 해준다.
유교적 전통이 지배하던 대한민국 사회에서조차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아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 '간통죄'다. 중요한 것은 간통죄가 죄가 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여전히 간통죄를 처벌하는 국가가 있을 뿐 아니라 대다수의 많은 국가들이 간통죄를 처벌대상으로 삼았던 적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가치판단의 문제일 것이다. 심각한 것은 [주홍글씨]에서 간통죄를 범한 죄인들을 처벌하는 방식이다. 마녀사냥 식으로 대중들 앞에서 공개 재판을 함으로써 망신과 치욕을 안겨주는 것도 모자라 평생 자기가 지은 죄를 짊어지도록 가슴에 간음을 상징하는 문자 A를 달고 다니게 하는 형벌은 제도가 가할 수 있는 최상위의 폭행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나라 조선시대나 중국 고대에도 비슷한 형벌이 있긴 했다. 경형 또는 묵형(墨刑)이라고 불리는 자자형(刺字刑)이 그것인데 대개 도둑질한 자들에게 가했던 형벌로, 얼굴이나 팔뚝에 죄명을 새겨넣는 벌이었다. “경을 칠
놈”이라고 욕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죄를 지어 평생 얼굴에 문신을 새긴 채 살아갈 놈이라는 저주를 퍼붓는 말이라고 한다. 초한지를 보면 초나라 장수였다가 나중에 한나라 유방에게로 몸을 의탁한 '경포'라는 장수가 나오는데 경포 역시 묵형을 받아 얼굴이 흉하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런 형벌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렇지만 완전히 사라졌는가? 과거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소위 '신원증명서'에 기재된 빨간줄을 심심치 않게 봐왔었고, 여전히 전과자라는 '낙인'은 사회에서 지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비록 형법상 범죄는 아닐지라도 '평판'이라는 이름으로 따라다니는 꼬리표 역시 '주홍글씨'의 또다른 모습이 아니던가. '주홍글씨'는 상징이다. 그것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지금도 존재한다.
'주홍글씨'든 안좋은 평판이든,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그것이 영원히 한 개인을, 또는 어떤 집단을 옭가매는 족쇄가 되도록 내버려 두느냐 그것을 뛰어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헤스터 프린이 '간음(Adultery)'을 상징하는 문자 A를 재주많은(able)의 A, 천사(angel)의 A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고전은 비록 몇세기 전, 많게는 수백 수천년 전에 쓰여졌지만 인류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원형적인 문제의 해답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의 미래와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탐구의 항해는 결코 끝날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할 것이다. '죄'와 '벌', 그리고 '구원'에 대한 아주 진지하고 성숙한 성찰을 느낄 수 있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다시 한 번 고전의 힘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