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보면 영화에 미친 주인공이 극장에서 나누어 주는 '프로그램'을 모은다. 나도 소설 속의 주인공만큼은 아니어도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극장에서 나누어 주는 그림엽서, 캘린더, 브로슈어, 브로마이드, 포스터 등 모을 수 있는 것은 죄다 모았었던 '시네마 키드'였다. 그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되었다. 첫번째 수집품은 실베스타 스탤론이 출연한  영화 [록키]의 한장면이 멋지게 표현된 낱장 캘린더. 그 후로 제대하고 대학 3학년 때까지 수집품은 라면박스로 3박스에 두루마리로는 10개가 넘었었다. 전체 숫자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아마도 3천점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졸업이 가까와지자 그것들이 짐이 되기 시작했다. 졸업 후가 여전히 불안했지만, 문득 문득 영화라는 환상 속으로 들어가면(수집품을 감상하기 시작하면) 반나절은 쉽게 지나가고 마는 것이었다. 접어 버린 꿈에 대한 댓가는 막연한 시간의 손실로 이어졌고 스스로를 조급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몽땅 처분했다. 친구에게 전부 넘겼다. 15년 동안이나 내 손을 탄 소중한 자료와 각각이 간직한 추억을 10분 만의 고민으로 작별했다.

 

그 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틈틈히 영화도 보면서 내 친구의 소유가 된 그 자료들이 어떻게 또는 얼마나 유효하게 활용되고 있을까 가끔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온라인도 활용되었다. 그것도 벌써 10년이 넘어서 나름 희귀자료가 꽤 많다. 오늘부터 그간 온라인 상으로 수집한 다양한 영화 포스터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렇다, '영화'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포스터'이야기다. 이 중에는 본 영화도 있겠지만 보지 못한 영화가 태반이므로 주제넘게 작품성이 어쩌니 저쩌니 건방떨지는 않겠다. 그저 취미로 영화포스터를 모으던 아마추어로서 가볍게 시작하느니 만큼 오류도 많고 글도 매끄럽지 않겠지만 일단 한번 시작해 보자.

 

첫번째 포스터 이야기는 '팩트 스타일(facts style)'이다.

 

우선 몇가지 포스터를 먼저 보자.

 

 

 

 

 

 

첫 번째는 유쾌한 코미디 영화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1988], 두 번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 1977] 포스터다. 뭔 이렇게 글자가 많나 하겠지만 이런 타입의 포스터 특징은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한 꽤 심도있는 정보의 제공에 있다. 예컨대 [미지와의 조우]의 경우 UFO에 대한 여러가지 잡다한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카피는 'We are not alone'이라는 알듯 말듯한 문구 하나뿐이다. 특수효과가 어떻고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다는 요란스런 홍보성 표현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만한 홍보가 또 있을까?

 

대부분 이런 포스터는 오리지널 포스터 타입이 따로 있다. 아래는 두 영화의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포스터 타입이다. 위의 팩트 스타일과 비교해 보라.

 

 

 

 

 

 

포스터가 각각 있을 때에도 비교적 잘된 포스터이지만 함께 있게 되면 세트가 되어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된다. 포스터 전체의 절반 이상을 글자로 채우고 있음에도 절대 스포일러를 제공하지 않아 오히려 영화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일게 만들고 있다. 한 때 많은 영화 관객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죠스, 1975] 또한 이런 스타일의 포스터를 활용했고, 영화들은 하나같이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처럼 '포스터'자체도 또 하나의 예술이다. 그리고 그 표현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오늘 소개한 '팩트 스타일'은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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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래 오랜만에 재미있는 경찰영화를 한 편 봤다. 속 시원하고 후련한 한방, 팀웍의 승리, 그러나 한편으론 영화에서 묘사한 재벌가의 모습에 씁쓸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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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주홍글씨
나다니엘 호손 지음, 조승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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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 동안 적어도 두 사람의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부터 [주홍글씨]를 추천받았다. 어렸을 때 문고판으로 읽은 기억이 있는 고전이다. 

 

헤스터 프린은 영국에서의 청교도 박해를 피해 (아마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보스톤으로 건너온 여성이다. 남편보다 먼저 미국에 온 그녀는 3살 난 갓난아이를 안고 죄를 고백하는 교수대 앞에 섰다. 가슴에는 간통을 상징하는 문자 'A(Adultery)'가 선명하게 수놓아져 있다. 그녀는 간통의 상대방을 고백하라는 지방 장관과 목사(심지어 여기 목사 중에 간통의 상대방이 있다), 그리고 민중의 압력에도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 현장에는 뒤늦게 미국으로 건너온 헤스터의 늙은 남편 로저 칠링워즈도 냉정한 눈빛으로 치욕의 광경을 보고 있었다.

 

헤스터 프린을 중심으로 이성을 대표하는 남편 로저 칠링워즈와, 순결한 감성을 상징하는 젊은 딤즈데일 목사, 그리고 부정의 상징이면서 화해와 희망의 상징일 수도 있는 사생아 펄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호손의 문장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수려하다. 소설은 헤스터 프린이 저질렀다는 죄 '간통'을 진행형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그녀가 딤즈데일 목사와 살을 섞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중심은 '간통'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겪게되는 헤스터 모녀의 고행과 구원, 딤즈데일 목사의 죄의식, 그리고 복수의 화신이 된 칠링워즈가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처음에 헤스터와 펄 모녀만이 섰던 고백의 교수대에 딤즈데일 목사가 함께 올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간통'을 한 죄와 그것을 숨김으로써 치렀던 모든 고통을 드러내고 죽음으로써 더 철저하게 복수하고자 했던 칠링워즈의 기대를 산산히 부수어 버리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어떤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가? 고전은 왜 시대를 거듭할수록 강한 생명력으로 재생산되고 자기분열을 계속하는 것일까? 17세기 보스톤의 엄격하고 경직된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 종교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를 나약하지만 순수한 인간들을 통해 보여주는 [주홍글씨]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충분한 답을 해준다.

 

유교적 전통이 지배하던 대한민국 사회에서조차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아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 '간통죄'다. 중요한 것은 간통죄가 죄가 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여전히 간통죄를 처벌하는 국가가 있을 뿐 아니라 대다수의 많은 국가들이 간통죄를 처벌대상으로 삼았던 적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가치판단의 문제일 것이다. 심각한 것은 [주홍글씨]에서 간통죄를 범한 죄인들을 처벌하는 방식이다. 마녀사냥 식으로 대중들 앞에서 공개 재판을 함으로써 망신과 치욕을 안겨주는 것도 모자라 평생 자기가 지은 죄를 짊어지도록 가슴에 간음을 상징하는 문자 A를 달고 다니게 하는 형벌은 제도가 가할 수 있는 최상위의 폭행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나라 조선시대나 중국 고대에도 비슷한 형벌이 있긴 했다. 경형 또는 묵형(墨刑)이라고 불리는 자자형(刺字刑)이 그것인데 대개 도둑질한 자들에게 가했던 형벌로, 얼굴이나 팔뚝에 죄명을 새겨넣는 벌이었다. “경을 칠 놈”이라고 욕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죄를 지어 평생 얼굴에 문신을 새긴 채 살아갈 놈이라는 저주를 퍼붓는 말이라고 한다. 초한지를 보면 초나라 장수였다가 나중에 한나라 유방에게로 몸을 의탁한 '경포'라는 장수가 나오는데 경포 역시 묵형을 받아 얼굴이 흉하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런 형벌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렇지만 완전히 사라졌는가? 과거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소위 '신원증명서'에 기재된 빨간줄을 심심치 않게 봐왔었고, 여전히 전과자라는 '낙인'은 사회에서 지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비록 형법상 범죄는 아닐지라도 '평판'이라는 이름으로 따라다니는 꼬리표 역시 '주홍글씨'의 또다른 모습이 아니던가. '주홍글씨'는 상징이다. 그것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지금도 존재한다.

 

'주홍글씨'든 안좋은 평판이든,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그것이 영원히 한 개인을, 또는 어떤 집단을 옭가매는 족쇄가 되도록 내버려 두느냐 그것을 뛰어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헤스터 프린이 '간음(Adultery)'을 상징하는 문자 A를 재주많은(able)의 A, 천사(angel)의 A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고전은 비록 몇세기 전, 많게는 수백 수천년 전에 쓰여졌지만 인류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원형적인 문제의 해답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의 미래와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탐구의 항해는 결코 끝날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할 것이다. '죄'와 '벌', 그리고 '구원'에 대한 아주 진지하고 성숙한 성찰을 느낄 수 있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다시 한 번 고전의 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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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기 2015-09-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사로잡은 것은 호손의 어둠이다. 그의 천재성을 기리는 표시로 내 책을 호손에게 헌정한다”
- 허먼 멜빌

“어떤 책도 이 소설만큼 심오하지도, 이중적이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 D. H. 로렌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1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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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윤기 선생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마지막 책이라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 몇명만 추려서 가볍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 명성을 쌓은 저자는 그만의 문체로 미궁을 헤쳐 나가듯이 영웅들을 소개하고 있다.

 

동양에 사마천의 [사기]가 있다면 서구 유럽에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있다고들 한다. 지록위마, 사면초가, 금의야행, 토사구팽, 역발산기개세, 와신상담 등 무수히 많은 고사성어의 보고가 [사기]인 것처럼 옛날 그리스인 로마인들의 수사학의 원천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껏 두 고전 모두 원전으로 접하지 못하고 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은 두권으로 되어 있다. 미궁의 정복자 테세우스, 세계의 지배자 알렉산드로스 등 총 20명의 영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각 인물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수사학을 중심으로 죽 늘어놓다 보니 경구는 있으되 이야기가 결여된 느낌이다. 많이 아쉽다. 고인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재미있는 신화 이야기는 물론 작가만의 독특한 문학적 솜씨에 감탄하면서 신화를 이해했던 기억에 반한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조선일보와 세계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출간은 작가의 사후에 되었다. 작가의 딸인 이다희씨가 나오는 말을 마무리했다. 이다희씨가 번역했다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사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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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대위의 딸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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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결투로 생을 마감한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의 [대위의 딸, 1836]은 작가의 일생처럼 참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귀족 장교인 표트르 안드레비치와 그의 연인 마리아 이바노브나, 그리고 연적 슈바브린의 삼각관계가 황제를 참칭하고 반란을 일으킨 푸카초프와 연결되면서 역사적 사건과 조우한다. 인물묘사는 아기자기하며 이야기 전개는 꽤 속도감이 있는 편이다. 거기에 표트르 안드레비치의 나이 많은 몸종 사베리치가 펼치는 극의 감초 역할은 썩 괜찮은 재미를 선사한다.

 

우연히 푸가초프에게 작은 호의를 베푼것이 인연이 되어 러시아 키르기스 요새의 호위장교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으로부터 여러차례 목숨을 구하게 되는 표트르. 애매한 위치에 빠진 그는 반란군이나 진압군 양측으로부터 고난을 겪게 되지만 천성이 정직한 덕택으로 연적을 물리치고 사랑을 차지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표트르의 수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18세기 후반 러시아는 차르 체제, 농노제 등으로 지배 계급의 피지배 계급에 대한 착취가 극에 달에 있었다. 푸시킨은 이 소설을 발표하기 전인 1833년 여름에 2개월에 걸쳐 푸가초프 농민 반란의 자료를 수집하여 [푸가초프 반란사]를 썼다고 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푸가초프 반란의 주원인을 진단했는데 민란의 주도세력은 사회 경제적 불만과 억압을 당하던 민중이며, 그 주동자인 푸가초프는 그들의 불만을 하나로 모은 수괴일 뿐이라고 보았다그로부터 2년 후 이 역사 연구서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바로 [대위의 딸]이다. 억압적인 차르 체제하에서도 반란 농민군의 묘사를 꽤 객관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작품은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 받는다. 

 

푸가초프에 대해 묘사한 몇 장면을 보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푸카초프와 나의 길안내를 했던 자와는 놀라울 만큼 흡사했던 것이다. 푸카초프와 그 사내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비로소 나를 살려 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상스런 인연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떠돌이에게 주었던 어린이용 가죽 외투가 나를 교수형의 밧줄에서 구해 주기도 하고, 하찮은 여인숙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지내고 있던 주정뱅이가 요새를 차례차례로 포위해서 국가를 뒤흔들어 놓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111.p

한 자리의 사람들이 자리를 좁혀 주었다. 나는 잠자코 테이블 끝에 앉았다. 내 옆에 있던 키가 크고 미남인 젊은 카자흐가, 내게 값 싼 포도주를 따라 주었지만 나는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이 일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푸카초프는 상석에 앉아 테이블에 양 팔꿈치를 괴고 큰 주먹으로 검은 수염을 받치고 있었다. 그의 얼굴 생김새는 단정해서 비교적 호감이 갔으며, 잔인하게 보이는 곳은 조금도 없었다.                  114.p

당시 폴란드를 병합하고 남하 정책으로 오늘날 흑해와 크림 반도, 심지어 알래스카까지 세력을 떨쳤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독일 공주로서 러시아의 황후가 되었다가 이후 여제가 되었다)의 기세가 푸카초프의 반란으로 주춤하게 되었다. 곧 반란군은 진압이 되었지만 러시아 황실 입장에서는 한창 좋았던 기세에 찬물을 끼얹은 수괴 푸카초프가 반역죄인임은 물론이거니와 민중에게 야만인이나 배은망덕자, 좀 과장에서 뿔난 짐승으로 각인시키고 중한 처벌을 내림으로써 또다른 반란의 씨앗을 처음부터 제거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이 쓰여진 것은 반란이 있은 후  한 세대가 훌쩍 지난 때였지만 여전히 차르 체제였으며 별반 바뀐 것 없던 당시 러시아 분위기에서 푸카초프에 대한 위와 같은 묘사는 놀라운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푸카초프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우화는 인간의 본성까지 파고든다.

푸카초프가 뭔가 미칠 듯한 감정에 자극을 받은 것처럼 말했다.

"내 자네에게 옛날 얘기를 하나 하겠네. 내가 어릴 때, 칼뮈크인 노파한테서 들은 걸세. 어느 날 독수리가 까마귀에게 물었지. '여보게 까마귀, 자네는 이 세상에서 3백 년이나 살 수 있는데도 나는 모두 합쳐서 33년밖엔 살 수 없으니 이건 어째서 그런가? 까마귀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말입니다, 아저씨. 당신은 생피를 빨아 먹고, 저는 시체를 먹고 살기 때문이지요.' 독수리는 여기서 생각했다네. '그럼 나도 한 번 먹어 보세.' '좋습니다.' 독수리와 까마귀는 날아다니다가 쓰러진 말을 멀리서 발견 쪼아먹기 시작했지만, 독수리는 한두 번 쪼아먹어 보고는 날개를 치더니, 까마귀에게 말했다고 하네. '나는 못먹겠어. 까마귀야, 썩은 고기를 3백년이나 먹느니보다는, 한번만이라도 생피를 배불리 빨아 먹는 편이 좋겠네. 그 다음에는 운명을 하늘에 맡길 뿐이야.'라고 말이야"

이런게 문학의 힘인가. 비록 연애소설(그것도 잘 빠진 연애소설이다)의 겉모습을 했지만은 말년에 차르에 검열과, 적의와 의심에 찬 궁정 세력가들 틈에서도 그의 펜은 정직했다. 결국 음모에 가득찬 결투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고전이 되어 아직까지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p.s. 푸시킨에 이어 러시아 리얼리즘을 확립한 고골은 이 작품 [대위의 딸]을 두고 "가장 뛰어난 러시아 산문 문학"이자,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고, 진실보다 더 진실한"명작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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