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단 코엔 외 감독, 조쉬 브롤린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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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모처럼 아내와 영화를 봤다. 최근 읽고 있는 [로드]의 저자 코맥 매카시 또다른 작품을 영화화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쉬 브롤린의 연기는 훌륭했고 코엔 형제는 언제나 처럼 실망시키지 않았지만, 절제와 은유로 가득한 화면과 대사는 어렵게 느껴졌다.

 

 

"완전한 출구는 없다"는 포스터 홍보 문구처럼 우연한 기회에 마약 거래 현장에 버려진 거금을 손에 쥔 르롤린(조쉬 브롤린 분)은 갑작스런 행운을 움켜쥐기 위해 사상 최악의 사이코 킬러(하비에르 바르뎀)에 맞서지만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까지도 목숨을 잃는다.

 

반드시 돈이 목적인 것은 아닌 것 같은 사이코 안톤 쉬거에게 살인은 길거리에 침뱉는 것처럼 쉬워 보인다. 우스꽝스런 헤어스타일에 큼직한 이목구비가 무표정하니 더 소름돋는다. 가스통을 들고 서서히 목표물을 압박한다.

 

늙은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 분)는 안톤 쉬거의 엽기적 살인 행각을 쫒지만, 급하지 않다. 르롤린이 죽은 걸 알게 되자 그의 추적도 끝이 나고 영화도 끝이 난다. 살인마가 죽은 것도 잡힌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지점에서 헷갈릴 수 밖에 없다. 영화는 흡입력을 발휘하며 에너지를 집중하게 만들지만 익숙치 않은 경험을 선사한다. 생각하게 한다.

 

[로드]에서 경험했던 짧은 대화들, 쫒는 자와 쫒기는 자의 구도는 익숙한데 마무리되는 방식은 그렇지 않다. 왜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지? 영화에 등장하는 노인이라고는 보안관 에드 밖에 없는데. 노인 복지를 다룬 이야기도 아니고... 보안관이 신문을 읽는 장면에서 노인들 얘기가 나온 것 같긴 한데, 충분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현대 미국 소설의 지성파 작가이자, 이단아로 불리는 코맥 매카시. 서부의 세익스피어 라는 그의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 겠다. 이 소설이 코엔 형제를 단번에 매료 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소설과 영화는 독립된 예술이고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해서 영화가 거기에 종속될 필요는 없지만 아무래도 활자화된 문학의 설명이 좀 더 친절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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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 그렇지만 나와 분명히 다른 존재. 그림자다. 나와 빛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검은 자아다. 그림자는 칠흙같은 어둠에서는 잠시 나를 떠난다. 내가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한 변함없이 나와 꼭 붙어있다.

 

박경현 시인의 <그림자 절제 수술>이라는 시가 있다. '그림자를 잘라내자 / 내 머리보다 앞서가고 / 내 키보다 길어지는 / 오만의 그림자.' 시의 첫 연은 오만의 그림자를 잘라내자고 한다. 도려내고 싶은 그림자는 둘째 연에서 노래한다. '내 마음 검어지면 더욱 짙어지고 / 내 가슴 깨끗하면 좀더 옅어지는 / 변덕의 그림자.'라고.

 

빛을 등지고 서면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칼을 꺼내 몸을 구부린 채 내 발에 붙어있는 그림자를 도려낸다고 가정해 보자. 땅에 깊숙히 상처가 입혀질 것이다. 나는 내 그림자를 떼어낸 것인가? 조심스럽게 일어서서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한 발자국 옮겨 보자. 맙소사. 그림자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다시 내 발에 딱 달라붙는다. 애꿎은 땅만 패였다. '가이아'만 화났다.

 

'그림자'는 그렇게 나의 일부다. 감추는 것이 있을때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는데도 깜짝 놀라 주변을 본다. 아무도 없다. 내 그림자만 있다. 그림자는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안다. '그림자 스타일(shadow style)'의 영화 포스터는 이런 점을 착안한 경우가 많다. '과거의 나' 또는 '다가올 나'에 대한 암시도 있고, 감춰진 나를 드러내기도 한다.

 

 

 

<[스타워즈 : 에피소드 1, 1999]의 포스터>

 

 

[스타워즈] 팬이라면 다스 베이다(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루크 스카이워커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 불멸의 시리즈는 에피소드 4부터 6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서야 에피소드 1부터 3까지 만들어졌기 때문에 에피소드 1에 등장하는 어린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나중에 다스 베이다가 될 것이라는 것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터에서부터 엄청난 스포일러를 노출하고 있어도 누구하나 토다는 사람이 없다. 이 시리즈가 순서대로 제작되었다면 이 포스터는 거의 '자폭'수준인 것이다.

 

순수한 소년의 뒤 쪽으로 길게 뻗은 그림자는 '비장미'까지 풍기면서 이 우주 대서사시로 관객을 초대하고 있다. 왜 소년은 우주 최고의 악당이 되었을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포스터는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어도 우리가 극장으로 가는 이유이다. 

 

 

 

<[오멘, 1976]의 포스터>

 

 

'데미안'을 기억하시는지. 헤르멘 헤세의 그 '데미안' 말고, 바로 포스터 속 꼬마 말이다. 오컬트 영화의 고전, [오멘] 속 '데미안' 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어렸을 적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오싹함이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악마의 숫자 '666'과 창백하고 무표정한 데미안의 시선들...

 

포스터는 데미안의 그림자를 악마의 짐승으로 나타낸다. "경고는 이미 있어 왔다. 오늘 뭔가 섬찍함을 느꼈다면, 그게 바로 '징조'가 아닐지 생각해 보라"는 카피가 검은색을 배경으로 섬뜩하게 다가온다. 과연 데미안은 정말 적그리스도 '악마의 씨앗'이었을까? 초현실적 장면 하나 없이 최상의 공포를 이끌어낸 리처드 도너 감독의 솜씨에 경의를 표한다.

 


 

<[스콜피오, 1973]의 포스터>

 

 

 

버트 랭카스터, 알랑 드롱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한 첩보영화지만 낯설다. 우선 '다음 영화'에서 제공하는 줄거리를 참고해야 겠다.

크로스(버트 랭카스터 분)는 미국 CIA의 아랍 지역 첩보전 일선에서 뛰고 있는 베테랑 전략가이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강대국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한 그는 더 이상 그 게임의 소모품으로 남기를 거부하고 탈출을 계획한다. 그는 표면상으로는 적이지만, 이상과 신념이 같은 벗인 소련측 아랍 지역 첩보원 자코프(폴 스코필드 분)를 통해 미국 측의 정보를 소련에 넘기고, 탈출 자금을 챙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실은 미국 CIA에 의해 감지되고 첩보부장은 그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한편, CIA와 계약을 맺고 크로스의 지휘 하에 요인 암살 등의 일을 하던 프랑스인 로리에르(알랑 드롱 분)는 크로스와 함께 일해오면서 그에게 인간적인 정과 강한 신뢰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CIA 상부로부터 크로스를 제거하라는 요청을 받자 로리에르는 혼란에 빠지는데...

                                                                                                   Daum 영화

 

'스콜피오'는 첩보원의 암호명일 것 같다. 아무래도 주인공 크로스의 암호명일 가능성이 크다. 근데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알랑 드롱이 연기한 로리에르의 암호명으로 나온다. 그는 조직을 배반한 크로스를 잡아야 하는데, 웬지 CIA 뜻대로 될 것 같지 않다. 어쨌든 총을 들고 달려오는 저 사나이는 드리워진 그림자를 볼 때 로리에르임에 분명해 졌다.

 

 

그림자는 사람만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다. 사물도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긴다. 그런데 무생물의 그림자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까?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코튼 클럽]의 포스터에 단서가 있다.

 

 

<[코튼 클럽, 1984]의 포스터>

 

 

공황시대 갱들이 사용하던 기관총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는 엉뚱하게도 나팔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2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코튼 클럽' 무대에 서는 일명 '딴따라', 딕시(리처드 기어 분). 무법천지였던 당시 나팔만 불어서는 생존할 수 없었을 터. 그는 총을 잡지만 그 모습은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포스터다. 사물의 그림자를 통해 주인공의 정체성을 부각한 한 발 더간 썩 괜찮은 작품이다.

 

 

지금부턴 좀 다른 그림자가 등장한다. 지금까지의 그림자는 정체성에 대한 암시였다면 이제부터 보게 될 '그림자'는 들키고 싶지 않은 주인의 속마음을 표현한다.

 

 

 

 

<[검슈, 1971]의 포스터>

 

 

 

'탐정인데 탐정아닌 것 같은' 탐정 영화, [검슈]의 포스터다. 'gumshoe'는 '고무창 구두', '고무 덧신'을 뜻한다. '검'과 '구두'의 함성어인 이 단어는 미국에서는 '형사' 또는 '탐정'이라는 속어로 쓰인다. 복장이나 외모 등 겉모습은 그럴듯한데 그림자는 뭐에 놀란 듯 총까지 떨어뜨리려고 한다. 속으로는 엄청 쫄아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죽은 자는 체크무늬를 입지 않는다,1982]의 포스터>

 

 

 

채크무늬의 그림자가 화들짝 놀라고 있다. 사실 이게 그림잔지, 놀라는 건지 놀리는 건지 단정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못한 스티브 마틴의 코미디 중 하난데 주인공 뒤에 체크무늬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서라도 영화, 찾아 봐야겠다. 일단 그림자로 치고 본다면, [검슈]의 포스터와 같은 부류로 볼 수 있겠다.

 

 

 

내 그림자는 어떤 그림자가 되어야 할 지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던 박경현 시인의 시 <그림자 절제 수술> 전문을 싣는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길 바라면서...

 

 

그림자 절제 수술

                                    박경현


그림자를 잘라내자.
내 머리보다 앞서가고
내 키보다 길어지는
오만의 그림자.

그림자를 도려내자.
내 마음 검어지면 더욱 짙어지고
내 가슴 깨끗하면 좀더 옅어지는
변덕의 그림자.

그림자를 줄여보자.
내 모습보다 품위 있고
내 몸집보다 풍만한
거품의 그림자.

그림자를 지워보자.
햇빛 피하면 엉큼하고
달빛 아래선 음흉스런
불손의 그림자.

숨기고 감추는 게 많을수록 늘어지고
밝히고 드러낸 게 적을수록 넓어지는
선명한 낙인(烙印)의
그림자를 떼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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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9-04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소드 1> 처음 나왔을 때 저 아나킨 스카이워커 그림자 포스터 보고 <오멘> 생각했었습니다. 햐~~ 정말 잘 만들었구나....하는 생각도 하구요 ^^

호서기 2015-09-04 16:13   좋아요 0 | URL
붉은돼지님 반갑습니다. ^^
 

지도 스타일(map style)은 모험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포스터 유형이다. 1883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험 소설 [보물섬] 단행본이 출간된 이래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스토리는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했다. 이때 꼭 지참해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 바로 보물 지도. 여러가지 암호와 수수께끼로 표현된 이 지도를 확보하는 자가 보물이라는 일확천금에 한 발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으니 보물을 찾으려는 자, 지도부터 찾으려고 할 것이다.

 

자, 미지의 세상 저편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모험을 떠나 보자. 돛은 이미 올려졌고 바람도 적당하다.

 

 

<[구니스, 1985]의 포스터>

 

 

은행 저당으로 곧 철거될 변두리 동네 아이들이 보물지도 한 장을 찾아낸다. 이 지도는 17세기 중엽 영국 해군에 패하여 해저동굴에 숨어들어갔다는 '애꾸눈 윌리'가 보물을 숨겨둔 장소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이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스티븐 스필버그는 [레이더스]의 성공 이후 아이들만의 전형적인 모험영화를 만들길 원했고 [수퍼맨]으로 상한가를 치고 있었던 리처드 도너의 합류로 그의 의도는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국내에서는 1986년에 개봉했다.

 

포스터는 다 헤진 보물지도가 등장한다. 포스터 아티스트 '존 앨빈'의 작품으로 모험 앞에 닥친 장애를, 헤진 지도로 표현한 듯 하다. 제목 '구니스'는 속어로 '바보들'이라는 뜻.

 

<[후크, 1991]의 포스터>

 

 

어른이 된 피터팬이 네버랜드로 돌아가 후크와 재대결을 벌인다는 설정의 [후크]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이다. '드류 스트러잔'의 솜씨로 완성된 이 포스터는 네버랜드의 지도를 배경으로 캐릭터들이 표현되어 있다. 네버랜드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까?

 

 

 

<[다크 크리스탈, 1982]의 포스터>

 

 

1982년에 미국, 영국 합작으로 만들어진 판타지 모험 영화 [다크 크리스탈]의 메인 포스터도 지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짐 헨슨과 프랭크 오즈 공동 연출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가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어둡고 우울하게 그려져서 국내에서 큰 흥행을 거두진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포스터 아티스트 '리처드 에임젤'의 작품이다.

 

 

 

<[컷스로트 아일랜드, 1995]의 포스터>

 

 

해적선 모닝스타호의 갈색 머리 모건(지나 데이비스 분)은 선장인 아버지로부터 그의 목숨과 맞바꾼 보물 지도 한 장을 물려 받는다. 세 장의 지도가 모여야 비로소 완전한 보물 지도를 완성할 수 있는 상황에서 모건은 아버지를 몰아낸 악명높은 해적선장 덕에게 살해당할 위기를 맞게 되는데...

 

[다이하드 2], [클리프행어]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레니 할린 감독의 이 해양 영화는 한 마디로 '망했다'. 이로써 해양 모험 영화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속설을 이어갔는데 그 전통은 거의 [캐리비언의 해적] 시리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이 포스터 역시 '드류 스트러잔' 작품.

 

 

 

<[욕심쟁이 오리 아저씨 : 잃어버린 램프의 보물, 1990]의 포스터>

 

 

'드류 스트러잔'의 작품 하나 더 보자. 스크루지와 그의 조카 휴이, 듀이, 루이는 고대의 도적왕 콜리바바의 보물이 숨겨진 피라미드를 발견한다. 그들은 침입자를 막기 위한 무서운 함정들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지만, 안내인이 그들을 배반하고 변태 마법사가 나타나 보물을 모두 차지하게 된다. 더군다나 일행들은 수백년간을 굶고 있던 전갈의 먹이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보이스카웃의 지식과 지하에 흐르는 강물 위를 빠르게 질주하여 간신히 그곳에서 탈출하고, 그때 낡은 램프를 발견하게 되는데...

 

'보물섬'과 '알라딘과 요술램프'를 섞어 놓은 듯한 이 애니메이션은 TV로 친숙해진 스쿠루지 맥덕과 그의 세 조카들의 모험담이다. 지금까지 본 포스터와는 달리 지도가 포스터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어디있는지 발견했는가? 그렇다. 조카 휴이의 손에 들려 있다.

 

 

지도 스타일이 모험 영화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전쟁 영화 포스터에도 지도는 곧잘 활용된다.

 

 

 

<[인천, 1981]의 포스터>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헐리우드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사상 최악. 이 영화가 이룬 성취를 살펴보면, 1981년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 3개 부문 수상(최악의 남우주연상-로렌스 올리비에, 최악의 감독상-테렌스 영, 최악의 각본상-로빈 무어), 제작비 4600만 달러 투입에 흥행수익은 190만 달러로 최악의 흥행실패, 제클린 비셋, 벤 가자라 등 출연 배우들은 자신의 프로필에 이 영화가 등장하는 것을 꺼렸을 정도다.

 

* 테렌스 영은 007을 여러편 연출했다. 로빈 무어는 [프렌치 커넥션]의 각본가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포스터에는 낯익은 이름 '문선명'이 등장한다. 특별자문(special advisor)으로 표기 되어 있다. 이 영화는 통일교에서 제작비를 지원했던 것이다. 나머지는 여러분의 상상력으로도 충분할 것이므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접겠다. 영화야 어찌되었건 이 포스터에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대한민국'의 지도가 보인다. 38선이 빨갛게 선명한 것이 안타깝다. 영화의 성취가 뒤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도는 하늘에도 있다. 하늘의 이정표, 별자리를 활용한 포스터도 있다.

 

 

 

<[마루니드, 1969]의 포스터>

 

 

[대탈주, 1963], [황야의 7인, 1960]의 명감독 존 스터지스의 공상과학 영화다. 영화 제목은 '고립된'이라는 의미다. 최근 영화 [그래비티, 2013]가 생각난다. 우주에서 고립된다면 별자리가 길안내를 해 줄 수 있을까? 기회가 되면 꼭 봐야지.

 

 

지도는 목표지향적이다. 지도를 보는 이유는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다. 보물을 얻기 위함일 수도 있고 생존을 위해서일 경우도 있다. 우리 삶의 지향점을 위한 지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낙하지점, 지진 다발 지역, 위험동물 출현 구역 등 다가올 위험에 대해서도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 미리 대비하고 좋을 텐데.

 

없다면 만들면 되지 않나? 꼭 이런 지도가 아니라도 말이다. 누구든지 '내 인생의 로드맵'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내가 만들고 내가 간다. 계획대로 노력한다면, 그러면 길 잃어 방황할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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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8 - 오이디푸스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강경화 옮김 / 열림원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심리학 용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더 유명해진 오이디푸스 왕을 읽었다. '비극, 그 엄청난 말조차도 시대를 초월하는 오이디푸스 왕의 인간적인 이야기 앞에서는 모든 빛을 잃는다.'  책 표지에 써 있는 말이다.

 

비록 소포클레스의 원전은 아니지만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온전히 읽기는 처음이다. 그에게 닥친 비극의 시작과 끝을 때로는 흥미롭게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따라갔다. 이 책의 저자는 소포클레스의 불멸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을 기초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연극을 보듯이 대화체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한 때는 스핑크스를 죽이고 테베를 구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가 위대한 왕이었던 오이디푸스는 가혹한 운명의 결정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억울하게도 그가 저지른 죄악을 죄악인 줄 몰랐다. 오히려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죄 뿐이었다. 그러나 한낱 인간이 운명에 대항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아버지인 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인 줄 모르고 어머니와 결혼을 해 자식을 나았다. 자신의 나라 테베가 전염병, 기근 따위로 큰 위험에 처하자 예전에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를 구한 것처럼 테베를 구하기 위해 그 불행의 근원을 파헤쳤다. 진실에 다가갈 수록 자신에게는 파멸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회피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대로 자신의 눈을 찔러 맹인이 된 후 죄를 씻는 고행을 자처했다. 그러나 그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머니이자 아내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 둔 자식들이 있었다.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그들이었다. 오이디푸스가 왕좌에서 물러나자 두 아들들은 가족은 돌보지 않고 서로 왕이 되겠다며 아귀다툼을 벌였다. 불행하게도 신탁은 두 형제가 서로의 창에 찔려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신들이 오이디푸스에게 내린 마지막 호의는 두 아들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보지 않고 하데스의 나라로 갈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오이디푸스를 도운 테세우스는 홀로 비극적인 왕을 저승길까지 바래다 주고 나서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에게 이렇게 읊조린다.

 

"그대들 아버지의 인생은 길고 쓰라린 고문이었노라. 그러나 이제 그분은 영혼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모두 벗으셨느리라. 그분은 그대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겠다는 나의 약속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나셨노라. 이제 눈물을 거두어라. 신들께서 오이디푸스에게 허락한 죽음은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받아본 적이 없는 명예로운 것이었다. 그대들의 아버지는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저승으로 내려가셨다. 무덤도, 슬퍼할 이유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136p.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 오이디푸스 만큼 중요한 인물은 그의 딸 안티고네다. 안티고네는 맹인이 된 아비의 눈이 되어 세상을 함께 다녔다. 오이디푸스 왕이 죽은 후에는 신탁의 예언을 뒤집기 위해 두 오빠 사이에서 신탁보다 더 중요한 신의 뜻을 내세워 그들의 싸움을 말리려고 애썼다. 바로 인륜은 천륜이라는 신의 뜻 말이다. 그녀는 법이나 운명에 순응하기 보다는 그것이 잘못된 법이자 운명이라면 그 뜻을 거스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비록 그 대가가 죽음이라도 그녀의 고결한 정신을 꺾을 순 없었다.

 

테베 쪽에서 보면 배신자이지만 자신의 큰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예를 표한 죄로 외삼촌 크레온에 의해 토굴에 갖히자 자신의 부모형제가 있는 죽은자들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목을 멘 것이다. 이로써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지옥과도 같은 비극은 막을 내린다. 마지막 원로들의 합창은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요약하는 것 같다.

 

 "죄의 대가를 치르며 고통 속에서 인간은 지혜를 배운다네. 그러나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네."

 

지금은 신탁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운명이라는 괴물은 가끔씩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모든게 정해져 버렸다는 가정은 얼마나 삭막한가. 순리는 따라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가지는 고귀한 가치를 져버리지 않는 것, 진리에 대한 탐구,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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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기 2015-09-02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견과 급전을 가진 가장 완전한 비극의 전범이며, 호머의 서사시보다 훨씬 우월하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런 이야기가 2천년도 더 전에 쓰여졌다는 것이 놀랍고, 지금 봐도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처럼 구성도 아주 탄탄하다.”
- 소설가 김영하
 

남자가 여성의 외모를 볼 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은 어디일까? 이에 대해 조사 시기나 조사 기관에 따라 다양한 설문결과가 발견된다. 그 중에서 2013년 서울신문 보도가 재밌다.

  

이성 볼 때 먼저 보는 곳 1다리’,  

첫인상이 결정되는 짧은 시간, 우리는 대부분 이성의 외형적인 부분을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렇다면 미혼남녀가 이성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곳은 어디일까? 19일 결혼 정보회사 '노블레스 수현'이 미혼남녀 871(432, 439)을 대상으로 이성을 볼 때 먼저 보는 곳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성 응답자의 30.8%각선미(다리)’, 여성의 35.5%라고 답했다. 

 

남성들은 각선미에 이어 얼굴 이목 구비’(27.1%), ‘가슴’(26.0%), ‘피부’(16.1%) 등의 순으로 이성을 볼 때 먼저 보는 곳이라고 답했다. 설문에 참여 한 김모씨(35·)여자를 볼 때 전체적인 비율도 중요하지만 특히 다리가 예쁘면 늘씬하고 몸매가 예뻐 보인다짧은 치마가 잘 어울리는 여자도 좋지만 스키니에 하얀 티셔츠 하나만 입어도 돋보이는 늘씬한 다리가 좋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에 이어 전체적인 스타일’(32.9%), ‘얼굴 이목구비’(25.2%), ‘목소리’(6.4%) 라고 답해 남성들과는 대조를 보였다. 양모씨(28·)대부분의 여자 들은 남자를 볼 때 생김새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을 중시한다키가 훤칠하고 체격이 좋은 남자들은 듬직하고 건강한 느낌을 주며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소화해 낼 것 같다고 답했다.

이하 생략

  
서울신문 온라인뉴스부,  2013-08-30

 

영화 마케팅 담당들은 이런 남성의 심리를 포스터 속에서 어떻게 담아냈을까? 눈치 채셨겠지만 오늘 다룰 포스터는 '다리 스타일(leg style)'이다.

 

우선 스타킹을 신는(신은) 또는 벗는 여성의 다리를 부각한 포스터들이 있다. 이런 포스터들은 섹시한 여성의 다리를 전면에,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은 뒤쪽에 위치시킴으로써 원근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또 대부분 이런 경우 남자들은 모두 출입문 주위에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총각파티, 1984]의 포스터>

 

 

'모든 여자들이 알아야만 하는 남자들의 전통', 젊은 톰 행크스가 열연한 [총각파티]의 포스터를 보고 있다. 총각파티에 초대된 여성은 침대에 걸터 앉아 망사 스타킹을 입은 늘씬한 다리를 들어보이고 있고, 새신랑은 당황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데 그의 친구들은 환희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 오늘밤 저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으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이 친구들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다.ㅋㅋ

 

 

 

<[드레스드 투 킬, 1980]의 포스터>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에 대한 오마쥬, [드레스드 투 킬]. 이 영화는 히치콕의 [사이코]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가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포스터 속 여자는 스타킹을 벗고 있는 걸까, 신고 있는 걸까? 스타킹의 주둥이가 돌돌 말려 있는 것과 무릎을 구부리고 있는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벗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혼자 있을 것 같은 어떤 공간이다. 문 뒤로 스윽 들어오는 낯선 검은 손, 이 여자 무사할 수 있을까? 스릴러 느낌이 물씬 풍기는 포스터다.(다른 포스터들과는 달리 이 포스터 속 여인은 누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졸업, 1967]의 포스터>

 

 

 

[졸업] 포스터 속 여인은 앞서 본 [드레스드 투 킬] 포스터와 달리 스타킹을 신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다리가 들려 있고 힘의 방향이 안쪽으로 쏠려있음이 확인된다. 포스터는 다소 불안한 미래 때문에 혼란스러운 벤(더스틴 호프만 분)에게 다가온 물리칠 수 없는 유혹을 대변한다.

 

 

 

지금까지 본 포스터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다리 스타일'도 있다. 지금까지는 유혹, 섹시함 등으로 어필했다면 지금부터 볼 포스터는 위압적이라고 할까? 일단 한번 보자.

 

 

 

 <[온리 더 론리, 1991]의 포스터>

 

 

유방 밑에서 천하통일의 큰 역할을 한 '한신'이 초나라 저작거리에서 겪었다는 '과하지욕'의 고사가 생각나는 포즈로 여인이 서 있다. 그 가랑이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은 표정은 그렇지 않은데 무척 왜소하게 보이는 구조다. 저 사이로 기어 가기라도 해야하는 것일까?

 

 

 

  <[007 포 유어 아이스 온리, 1981]의 포스터>

 


12번째 007시리즈 [포 유어 아이스 온리]의 포스터도 같은 구조다. 여자가 무기까지 들고 있고 엉거주춤 서있는 제임스 본드 모습이 마치 '갑을' 관계인것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의 다리도 이런식의 구도라면 남자들 마냥 좋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다리가 등장하는 포스터 몇 장 소개하고 마친다.

 

 

 

<[야전병원 매쉬, 1970]의 포스터>

 

 

 

한국전쟁 당시 야전병원을 배경으로 한 시끌벅적 소동극이다. 로버트 알트만 식 유머를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감독을 일약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올려 놓았고, 나중에 TV시리즈까지 제작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원작과는 달리 과도한 성적 코드와 한국에 대한 왜곡된 묘사가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이 영화의 진면목은 당시 미국사회에 대한 조롱이자 풍자에 있으니, 너무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겠다.

 

위의 포스터는 1982년 재개봉 당시 포스터다. 처음 개봉시에도 저 '이상한 다리'는 등장한다. 손과 다리의 결합이라. 포스터만 봐도 이 영화,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엄청 비꼬고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아래 포스터와 비교해 보라. 

 

 

 

<[러닝 위드 시저스, 2006]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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