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8 - 오이디푸스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강경화 옮김 / 열림원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심리학 용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더 유명해진 오이디푸스 왕을 읽었다. '비극, 그 엄청난 말조차도 시대를 초월하는 오이디푸스 왕의 인간적인 이야기 앞에서는 모든 빛을 잃는다.'  책 표지에 써 있는 말이다.

 

비록 소포클레스의 원전은 아니지만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온전히 읽기는 처음이다. 그에게 닥친 비극의 시작과 끝을 때로는 흥미롭게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따라갔다. 이 책의 저자는 소포클레스의 불멸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을 기초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연극을 보듯이 대화체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한 때는 스핑크스를 죽이고 테베를 구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가 위대한 왕이었던 오이디푸스는 가혹한 운명의 결정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억울하게도 그가 저지른 죄악을 죄악인 줄 몰랐다. 오히려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죄 뿐이었다. 그러나 한낱 인간이 운명에 대항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아버지인 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인 줄 모르고 어머니와 결혼을 해 자식을 나았다. 자신의 나라 테베가 전염병, 기근 따위로 큰 위험에 처하자 예전에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를 구한 것처럼 테베를 구하기 위해 그 불행의 근원을 파헤쳤다. 진실에 다가갈 수록 자신에게는 파멸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회피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대로 자신의 눈을 찔러 맹인이 된 후 죄를 씻는 고행을 자처했다. 그러나 그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머니이자 아내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 둔 자식들이 있었다.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그들이었다. 오이디푸스가 왕좌에서 물러나자 두 아들들은 가족은 돌보지 않고 서로 왕이 되겠다며 아귀다툼을 벌였다. 불행하게도 신탁은 두 형제가 서로의 창에 찔려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신들이 오이디푸스에게 내린 마지막 호의는 두 아들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보지 않고 하데스의 나라로 갈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오이디푸스를 도운 테세우스는 홀로 비극적인 왕을 저승길까지 바래다 주고 나서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에게 이렇게 읊조린다.

 

"그대들 아버지의 인생은 길고 쓰라린 고문이었노라. 그러나 이제 그분은 영혼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모두 벗으셨느리라. 그분은 그대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겠다는 나의 약속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나셨노라. 이제 눈물을 거두어라. 신들께서 오이디푸스에게 허락한 죽음은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받아본 적이 없는 명예로운 것이었다. 그대들의 아버지는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저승으로 내려가셨다. 무덤도, 슬퍼할 이유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136p.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 오이디푸스 만큼 중요한 인물은 그의 딸 안티고네다. 안티고네는 맹인이 된 아비의 눈이 되어 세상을 함께 다녔다. 오이디푸스 왕이 죽은 후에는 신탁의 예언을 뒤집기 위해 두 오빠 사이에서 신탁보다 더 중요한 신의 뜻을 내세워 그들의 싸움을 말리려고 애썼다. 바로 인륜은 천륜이라는 신의 뜻 말이다. 그녀는 법이나 운명에 순응하기 보다는 그것이 잘못된 법이자 운명이라면 그 뜻을 거스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비록 그 대가가 죽음이라도 그녀의 고결한 정신을 꺾을 순 없었다.

 

테베 쪽에서 보면 배신자이지만 자신의 큰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예를 표한 죄로 외삼촌 크레온에 의해 토굴에 갖히자 자신의 부모형제가 있는 죽은자들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목을 멘 것이다. 이로써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지옥과도 같은 비극은 막을 내린다. 마지막 원로들의 합창은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요약하는 것 같다.

 

 "죄의 대가를 치르며 고통 속에서 인간은 지혜를 배운다네. 그러나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네."

 

지금은 신탁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운명이라는 괴물은 가끔씩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모든게 정해져 버렸다는 가정은 얼마나 삭막한가. 순리는 따라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가지는 고귀한 가치를 져버리지 않는 것, 진리에 대한 탐구,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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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기 2015-09-02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견과 급전을 가진 가장 완전한 비극의 전범이며, 호머의 서사시보다 훨씬 우월하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런 이야기가 2천년도 더 전에 쓰여졌다는 것이 놀랍고, 지금 봐도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처럼 구성도 아주 탄탄하다.”
- 소설가 김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