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그때 장자를 만났다 - 내 인생의 전환점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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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을 썼던 강상구가 또다른 고전 [장자]를 가지고 다양한 양념을 버무려 펴낸 책이다. 첨가한 양념으로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해  그리스 철학, 로마 철학,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몽테뉴의 [수상록] 등 다양하다.

 

총 6만 5천자로 이뤄진 [장자]는 크게 내편, 외편, 잡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만이 장자의 직접 저술이라고 한다. 내편은 다시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 등 일곱편으로 구성된다고 하는데 [그때 장자를 만났다]는 저자가 [장자]의 주요 대목을 뽑아서 그리스 로마의 고대 철학과 비교하면서 해설을 하고 있다.

 

저자는 '장자'는 한낮 신선놀음에 빠져 황당한 주장을 했다는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주요 초점을 맞춘다. 즉 '자연으로 돌아가서 속세와 인연을 끊는' 철학이 아니라 '세상으로 들어가서 치열하게 삶과 마주서라'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다만 인위적으로 틀을 만들어 본성을 억누르지 말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안의 나 찾기, 마음 비우기,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등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차이 존중하기, 말 아닌 것으로 말하기, 거울 되기, 마음 주기 등으로 관계의 변화를 이끌며, 인정하고 공존하기, 버림으로써 되찾기, 세상에서 노닐기 등을 통해서 사회의 변화까지 이루어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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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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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게도 처음에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제목을 보고 낭만적인 느낌을 받았다. '수레바퀴'를 '물레방아'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시 변두리, 고즈넉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바로 옆에 까페가 붙어 있었는데 통유리 밖으로 커다란 물레방아가 돌아갔다. 수력으로 도는 것처럼 위장을 했지만 모터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수력이든 모터든 물레방아는 돌아가는 자체로 여유로움을 줬던 것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물레방아 아래서'로 단어 바꾸기를 하고 보면 확실히 느낌이 확 바뀌긴 한다. 물소리가 들리는 속에 동력이 만들어져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 같다. 예부터 물레방아간에서 역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돌아가는 모습 자체로 근사한 풍경이 되기도 한다. 수레바퀴는 그렇지 않다.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한 대목을 보자.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 지도 모르니까." 

p.146

 

'당신'이라는 존칭을 해야 하는 젊은 아가씨들과 사귄다는 것이 그에게는 어쩐지 끔찍하게 여겨졌다. 더군다나 이 아가씨는 지나치게 활달한 수다쟁이였다. 더욱이 그녀는 한스가 옆에 있거나, 그가 수줍어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스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당황한 나머지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처럼 촉수를 움츠리고 껍질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p.207

 

달팽이 한 마리가 수레바퀴 아래 위태롭게 있다. 다행히도 수레는 멈추어 있다. 그러나 농부는 곧 떠나기 위해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수레바퀴에 깔려 큰 곤경에 처할 위기가 닥쳤다. 그러나 위험을 인지한 달팽이,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도 쉽지 않다. 숨이 턱턱 막히는 공포심, 두려움, 좌절감. 최고조의 스트레스 환경 때문에 수레바퀴에 깔리기도 전에 심장마비에 걸릴지도 모른다. 달팽이에게 심장이라는게 있다면 말이다. 아니면 심한 심리적 압박을 버티지 못해 먼저 삶을 포기하려 할 수도 있다.

 

이건 달팽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 이야기였고 우리 후배, 나아가서 우리 아들딸 이야기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한 지방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순수하고 내성적인 한 소년의 슬픈 이야기가 남의 나라 먼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은 잘 짜여져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엉터리가 많다.

 

'수레바퀴'가 처음 발명된 이래 인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알게 되었고 이동시간이 짧아져 삶은 더 풍부하게 변화되었다. '수레바퀴'는 문명과 제도 따위의 사람이 만들어낸 도구의 총체로 읽힌다. 이러한 도구 중에는 가족제도와 학교, 종교 등이 삶과 밀접하게 작동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도구들이 형식에만 같혀 있을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과정을 생략한 채 오히려 사람을 '도구'로 바라볼 때 생긴다. 

 

학교 선생은 자기가 맡은 반에 한 명의 천재보다는 차라리 여러 명의 멍청이들이 들어오기를 바라게 마련이다. ~ 누가 더 상대방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게 되는가! 선생이 학생 때문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학생이 선생 때문인가! 그리고 누가 더 상대방을 억누르고, 괴롭히는가! 또한 누가 상대방의 인생과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더럽히는가!

p.142

 

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몇몇 선생들의 야비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이처럼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버리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왜 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거닐어보는 것조차 금지했는가?

p.172

 

도대체 무슨 영광을 위해 아이들로부터 뛰어 놀 수 있는 권리와 순수한 동심을 앗아가고 있는가. 이렇게 말한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모든 어머니가 이런 마음으로 자녀들을 가둔다. 그리고 실제로 성공사례도 볼 수 있다. 가까이에는 한석봉의 어머니와 이율곡의 어머니가 있고 이웃에는 맹자의 어머니도 있다. 멀리 로마에서는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 코르넬리아도 있다. 그 밖에도 더 찾아보면 많은 성공사례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 있는 훨씬 더 많은 실패사례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답을 내 놓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면서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한스'가  생각난다. 세계적으로 유별난 교육열때문에 이제는 그에 대한 성과 보다는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는 현실 아닌가. 2012년 조사에 의하면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조사대상 청소년의 11.2%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변하는 나라, 자살하고 싶은 이유의 첫번째가 진학 및 성적고민(28%)인 나라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성적이 떨어져서 투신했다던 어떤 여학생의 성적이 전교 10등 안쪽이었다니...에휴~~~.

 

'자식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이라면 이렇게 하면 안될 것이다. '교육열이란, 어쩌면 비뚤어진 자기과시의 수단'일 지 모른다고 지적한 강상구 씨의 말처럼, 자식이 잘 되길 바란다면 교육열이 아니라 우리 아이를 삶의 주체로 인정하는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줄로 믿는다. 주입과 강요와 억압이 아니라 꿈과 이상을 자유롭게 펼 수 있는 공간과 자유를 주어야 한다.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가 떠오른다.

나 하나 꽃 피어 / 풀밭이 달라 지겠느냐고 /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 결국 풀밭이 온통 / 꽃밭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 산이 달라 지겠느냐고도 /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 결국 온 산이 활활 / 타 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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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에겐 이런 영화는 맞지 않나 보다. 남들 재미있게 봤다던 영화가 왜 이리도 지루한지... 나이가 들었나 보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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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2 (양장) - 네 사람의 서명 셜록 홈즈 시리즈 2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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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당직을 앞두고 미리 고향에 다녀오면서 알라딘 대전점에 들렀다. 여러 지점 중 내가 관심이 있는 책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지점이어서 방문을 벼르고 있던 차였다. 총 18권을 구매했다. 그 중에서 홈즈를 다룬 책이 3권. 코난 도일의 [네 개의 서명] 이외에도 코난 도일이 쓰지 않은 셜록 홈즈 시리즈, 이른 바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인 [셜록 홈즈 : 이탈리아인 비서관]과 [셜록 홈즈 : 최후의 해결책]이다. 우선 [네 개의 서명]부터 서둘러 읽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전집]은 4개의 장편과 여러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홈즈와 왓슨의 첫만남이 인상적인 [주홍색 연구]를 시작으로 왓슨의 활약이 두드러진 [배스커빌가의 사냥개], 모리아티와의 숙명적인 대결을 예고한 [공포의 계곡]을 읽었는데, 이번 [네 개의 서명]이 장편으로는 막차를 탄 셈이다.

 

최고의 탐정, 셜록 홈즈가 약물 의존증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이번 편에서는 시작과 끝을 적나라한 코카인 주사로 장식한다. 무료한 일상에 정신적 고양을 이유로 마약을 한다는 홈즈의 어처구니 없는(?) 변명에 왓슨이 걱정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홈즈는 그의 두뇌를 활발히 작동할 만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미모의 여성(왓슨은 이 여성에게 첫눈에 반한다)이 사건 의뢰 차 찾아오면서 보물을 둘러싼 기묘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래 전 분명히 읽었던 시리즈인데 캐릭터들만 친숙할 뿐 이야기 자체는 낯설었다. 망각을 주신 신께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네 개의 서명]은 그닥 큰 인상을 주지 못한다.  이야기는 진부하고 캐릭터는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호기심의 대상에서 해제된지 오래다. 심지어 단편들을 계속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마저 든다. 난 진정한 셜로키언이 되기는 애시당초 글렀던 걸까?

 

새로운 작가의 셜록 홈즈는 다를까? 전략을 바꿨다. 잠시 코난 도일에서 벗어나 우회해야 겠다. 그리고 단편으로 돌아와야 겠다. 지금 컴퓨터 옆엔 칼렙 카의 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놓여 있다. 현대의 작가들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콤비인 홈즈와 왓슨을 어떻게 변주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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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1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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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면서 조르바가 춤추고 떠벌리는 대목을 접할 때마다 자간 사이로 '안소니 퀸'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혼났다. 어렸을 적에 내게 '안소니 퀸'이라는 배우는 매우 특별했다. 그 시절 '주말의 명화'나 '명화 극장'은 거의 100% 더빙으로 방송되었는데 어떤 배우는 꼭 담당 성우가 목소리 연기를 했었다. 이를 테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목소리는 송두석이 제격이었고 더스틴 호프만은 배한성만한 성우가 없었다. 안소니 퀸은 TV에서도 친숙한 노배우 이치우의 목소리가 딱이었다.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처음에 TV속 외국배우들이 우리말을 왜 이렇게 잘할까하고 궁금한 적도 있었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25시], [라 스트라다]에서 안소니 퀸의 연기는 이치우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찰떡 궁합을 이루었는데 언제부터인가 TV에서 더빙이 사라진 후 이것도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책을 읽는데 안소니 퀸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그만큼 소설 속 조르바를 잘 연기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실 오로지 독서에 집중할 수 없는 단점도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 크레타 섬 태생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로서의 [그리스인 조르바(원제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시간')]는 적어도 내게 있어, 순수성을 잃었다. 그럼에도 작가의 시적인 문체와 영화에서 표현되지 않았던 많은 부분들은 독서의 즐거움을 충분히 제공해 주었다.

 

책벌레 주인공(작가 카잔차키스)에게 조르바는 니체가 말했던 '초인'의 이미지와 작가가 평생을 찾아 헤맸던 '인간을 속박하지 않는 지상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조르바는 꾸밈 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수호자로서 사랑에도 신에게도 거침이 없다. 동양에서는 나이 마흔이면 '불혹(不惑)'이라고 해서 미혹함이 없이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하는데 조르바는 그 이상의 경지이다. 지천명, 이순으로 이어지는 연대기적 개념이 아닌 늙지 않는 청춘이다. 작가도, 소설 속의 주인공도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도 동경으로만 끝나는 그런 성격의 인물이 바로 조르바인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작가처럼, 주인공처럼 알면서도 선뜻 '조르바'같은 삶을 살기에도 어려운 것이 또 우리네 인생이다. 정신만이라도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으리라. 내 머리를 강하게 때린 조르바의 말과 행동 몇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지 가르쳐 준다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수 있어요. 누구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누구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하느님께 돌린다고도 합디다. 그러니 세 종류의 인간이 있는 셈이지요. 보스, 나는 최악도 최선도 아니고 중간쯤 될 겁니다. 나는 내가 먹은 걸 일과 좋은 유머에 쓰니까요. 그다지 나쁠 것도 없겠지요?

p. 90

 

난 혹시 먹음 음식으로 비계와 똥만 만들어 왔던건 아니었는지 고민에 빠졌다.

 

잠시 후 춤에 완전히 빠진 그는 손뼉을 치는가 하면 공중으로 뛰어 오르고, 발끝으로 돌다가 무릎을 꿇었다. 다리를 구부리고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마치 고무로 만든 사람처럼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를 보고 있으면 늙은 몸속에 그의 몸을 들어서 어둠 속에 유성처럼 날리고 싶어 안달하는 영혼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공중에 오래 머물 수 없으니 땅에 떨어질 때마다 몸이 몹시 흔들리면서도 다시 더 높이 뛰어올랐다가 또 쉴 새 없이 떨어지곤 했다.

p. 95

 

"...언젠가 기술자 한명이 가르쳐 줬는데 말입니다. 확대경으로 음료수를 들여다보면 눈으로 볼 수 없는 벌레가 우글거린다고 합디다. 보고는 못 마시지, 근데 또 안 마시면 목마르니. 보스, 확대경을 부숴 버려요. 그럼 벌레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다오. 정신도 번쩍 들 수 있고 말이오."

p. 155

 

얼마나 명쾌한 해결책이던가. 쓸데없는 속박은 벗어던지는 것이 상책이다. 이 밖에도 무수히 많은 대목에서 조르바의 시원시원한 언행을 목격할 수 있다. 어떤 성인의 말보다도 더 선명한 전류를 내보내는 그의 모습이 명배우 안소니 퀸의 형체를 빌어 자꾸 머리속을 맴돈다. 좋은 원작을 만난 훌륭한 배우가 대중들에게 남긴 훌륭한 유산이다.

 

마지막으로 책 표지에도 있는 문구를 언급하며 마치겠다.

 

"인간의 영혼은 날씨나 침묵, 고독, 누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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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기 2015-10-0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잔차키스는 한때 `성자의 질병(중세 수도자들이 육체적 욕망에 못이겨 유곽을 찾아 발길을 옮기면 몸에 종기와 부스럼이 났다는 희귀한 증상)`까지 앓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유명한 수도원 계곡까지 가서 고행을 거듭하는 수도자들을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조르바처럼 `현재를 살자`였다. `자유롭게 살자`였다. ... 장자가 꿈꾼 `眞人`의 삶을 소설로 그련낸다면 [그리스인 조르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강상구의 [그때 장자를 만났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