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병이라는 것이 있단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몰고 가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을 두고 사고병 혹은 생각병이라고 정의 내린 사람이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이다. 이 생각병때문에 오히려 무지해진다고 생각한 그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훈련 즉 마음 관리를 해야한다고 설법하고 있다. 불교의 팔정도를 예로 들어 스스로 규칙을 정해 중심을 잡고 집중력을 기른 다음 깨닫는 과정을 거친다면 누구나 생각병에 얽매이지 않고 바르게 생각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가장 좋은 일은 서로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하는 것이라는데 바로 얼마전에 내가 어느 상황에서 가져야했던 마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판단을 하여 좋게 일을 마무리한 일이 있는데 스님이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이 마음을 갖고 일을 진행했었다. 좋은 마음의 습관이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검증받고나니 뿌듯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남다른 스님의 충고는 "생각병"외 "감사병"에 대해서도 다른 시선을 갖게 한다. 감사병. 매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살아왔는데 뒤집어 바라보니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화를 내야 하는 순간에도 화를 내지 못하는 "yes"맨은 타인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마음을 도리어 삐뚤어지게 만든다고 한다. 특히 감사의 연발은 별로 감사하지도 않으면서 감사하다고 늘 말한다는 오해도 살 수 있어 주의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사람이 생각하기 때문에 멍청해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다만 생각을 멈추고 오감을 사용하라는 충고까지 들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그의 충고가 어느 방향을 향해 있는지 알게 된다. 말하기 듣기 보기 쓰기 먹기 버리기 접촉하기 기르기 에 대한 실천방법까지 콕콕 집어놓았기 때문에 일본 사람 특유의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나진 못했으나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옥수수에 알박힌 것 처럼 알알이 모두 양질의 충고들이었다. 사실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자칫 시간만 허락되면 쓸데없는 생각들은 머릿속을 파고든다. 하지만 좀 더 건설적인 일을 도모하고 긍정의 방향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생각하기에도 좋은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닫는다. 그러고보면 신체 중 입보다 수다스러운 기관은 뇌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수다를 떨고 있는 뇌에게 침묵의 소중함을 가르쳐볼까 싶어 스님의 말씀을 다시금 꺼내들고 있다. 정보의 소음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눈 앞의 것보다 그 멀리 있는 것을 보기 위해 나의 뇌가 현명함을 갖추는 그날까지 현자들의 충고를 거르지 않을 생각이다.
블레이크 넬슨의 [파라노이드 파크]는 미국 현대 문학의 고전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굿 윌 헌팅]의 명감독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영화할만큼 매력적인 요소가 내용 어디에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사실 청춘의 기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혼란스럽고 거칠기 마련인데 파라노이트 파크는 거기에 다가 죄와 구원에 관한 명제까지 덧붙어져 있어 읽기에 상당히 까다롭지 않을까 우려심을 가지고 대하게 만든 책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소설은 명고전[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죄와 벌]에 비교되어 있었으니 작품을 대하기전 그 무게감부터 두 눈에 실리기 만들었던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껴안고 가겠다는 야심찬 마음가짐으로 글을 집필하진 않았겠지만 미국 내에서 명문장가로 통한다는 저자 블레이크 넬슨의 작품이기에 자연스럽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낸 것으로 보여진다. 생소한 지명인 파라노이트 파크는 포틀랜드 도심지의 스케이트 파크 이름이었다. 낡은 창고들이 죽 늘어선 무허가의 "길거리 "스케이트 파크라서 요금도 필요없어 최고의 보드 마니아들을 탄생시킨 아는 사람들만 아는 유명한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친구인 자레드 피치를 통해 파라노이드 파크를 알게 되었지만 문제의 그 주에 자레드 피치는 대학생 누나와 데이트를 위해 그녀의 대학으로 떠나고 "나"는 홀로 파라노이드 파크를 향했다. 그날 처음 만난 스크래치가 부추기는 바람에 함께 기차를 탔다가 경비원에게 적발되었고 실수로 그가 기차에 끼여 죽는 일이 발생했다. 사람을 죽이게 된 상황에 처하기 전까진, 올바른 삶을 살아왔던 평범한 고등학생인 "나"는 그때부터 좌불안석이 되었고 이후 펼쳐지는 모든 상황은 "구속"과 연결되어 상상되어지는 바람에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 되어버렸다. 실수 혹은 사고사로 규정되어 질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일로 큰 일을 만들어버린 청소년의 방황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으므로 이 소설은 청소년의 방황기에 대한 소설로 읽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멀리 보자면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사람이 죽은 일에 대한 뺑소니식 현장 이탈을 일삼은 일이 그가 어른이 되고서도 마음 깊숙이 원죄로 남아 삶을 좌지우지 할 것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이미 알고도 남는다. 누구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도망친 그가 현실적인 단면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나 청소년이라는 나이를 벗어나 더 넓게 인간의 마음으로 보았을 때도 이 책은 [죄와 벌]과 많이 닮아 있다. 인간의 마음. [인간의 증명]이라는 책에서처럼 인간은 살면서 그 마음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얼마나 많이 크게 찾아오게 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인간의 증명]이나 [파라노이드 파크]같은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졌으면 좋겠다 싶어진다. 그들의 마음 속 인간의 증표를 찾아 오늘도 인간으로 살게 해준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 좀 더 나와 타인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을 갖을 수 있도록 말이다.
어린시절 뮤지컬 파랑새를 보며 "행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라는 대사를 가슴에 담았는데 철없던 시절이라 그저 멋진 대사로 기억되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자라면서 헤르만 헤세의 행복에 관한 명언을 눈으로 읽으면서도 깨닫기 보다는 그저 그런가보다 싶었다. 이제서야 그 의미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체험의 힘도 힘이지만 책이 주는 교훈도 꽤 컸다. 당신에게 눈부신 오늘을 선물합니다 라는 기분 좋은 문장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당신에게 눈부신 오늘을 선물합니다]는 일본의 한 카피라이터에 의해 쓰여졌다. 천재 카피라이터가 말하는 행복테라피는 일 테라피/연애 테라피/마음테라피/행복테라피 등으로 나뉘는데, 그 어떤 페이지를 읽어도 신이 준비한 최고의 선물은 바로 지금 이 순간임을 알게 만든다. 신이 준비한 최고의 선물. 이는 아인슈타인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 말이라고 하지만 내겐 누가 한 말인가가 아니라 어떤 말인가가 중요했다. 많은 명언 중 "돌 위에서도 3년"이라는 말이 참 좋다. 차가운 돌이라도 3년동안 앉아 있으면 따뜻해진다는 말인데 인내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또한 인간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도 위안이 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결국 제일 힘든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참 많이 지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제 이 말들을 떠올려볼까 싶다. 3초 테라피는 결국 위안과 평안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일어난 일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를 알게 만드는 힘! 그것을 여기서 얻어나갔다. 삶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라는 표현보단 인생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용기가 되는 것처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기회가 달라지는 것처럼, 어떤 책을 고르느냐에 따라 인생의 변화하는 폭도 다르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3초 행복 테라피는 분명 내게 내일을 밝혀줄 오늘을 선물해주고 있다. 애벌로 읽었으니 내일부턴 한쪽씩 읽어나가며 좋은 문장들을 발췌해 친구들에게 아침문자 선물을 돌려야겠다. 참 오랜만에 해보는 행동인데 벌써부터 마음이 하늘끝까지 닿을만큼 즐겁다.
2011년 세상은 큰 변화를 겪게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2012년과 2013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가혹한 시대로 기억될 것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계적인 이상기후와 천재지변이 더 심하게 일어날 예정이란다. 이 정화작업을 거치면 2015년 비로소 지구가 재탄생되며 2020년이 되어야 지구가 안정권에 들어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마침내 2025년이 되면 본격 우주시대가 열리며 창조와 예술이 일상이 되는 그런 세상과 만나지게 된다고 했다. 2025년 나는 몇살이나 되어 있을까? 셈에 게으른 나는 쉽게 나오는 그 해답을 뒤로한 채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가 먼저 염려되었다. 몇날 며칠을 두고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책을 읽고서도 마음 한구석엔 걱정거리들이 남아있었나보다. 이래서 인간의 마음이란 어쩔 수 없다라고들 하는 것일까. 이런 미래라면 꼭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인류의 미래는 남아공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건너온 노랑머리 수련군과 예비 한의사인 힐링군이 주도하여 쓴 [2025 지구별 신인류 세상]에 등장하는 내용들이다. 미국 드라마 x파일을 재미나게 보긴 했지만 우주인의 존재나 UFO의 존재를 맹신하는 쪽이 아니기에 황당할 것으로만 여겨졌던 이 책은 읽다보니 고고학 서적을 읽는 것만큼이나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는데, 예언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재미로 접근해서 그랬던 것 같다. 2011년 대변혁 이후, 서술된 것처럼 노화현상이라는 것이 없어진다면 이 땅에 성형외과는 다 문닫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4고 중 하나인 "로"가 사라지는 세상. 여성들에겐 만세를 부를 일이 아닐 수 없겠다. 89세에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노인들하며,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회춘하는 사람들. 그들을 이렇게 살도록 만든 "에테르화"는 구인류에서 건너온 "슈퍼피플"들에게 더 유리한 조건이라고 했다. 수선재의 책 몇몇 권을 읽어보면서,모두 우주와 우주인이 주대상이 되어 한반도 역사를 말하고 인류 미래를 말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들 역시 다른 출판사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 취지는 더 좋은 세상만들기가 아니었나 싶다. 거기에 조금 특별한 재미가 가미되어 진 것 같았다. 아직 2011년이 얼마 더 남아 있으니 그들이 말하는 미래 세상이 도래할지 아닐지는 지켜봐야하는 입장이며 희망메시지라는 부재가 붙었던 책 제목인만큼 지구별에 희망빛이 이렇게 긍정적인 요소로 도착되었으면 좋겠다 싶어진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때 인간이 살기 가장 최적화 된 환경임을 깨닫는 사람들이 지구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도 함께 가져본다.
1974년 HUGE가 매케인 재단으로 설립되었다. 매케인 엔터프라이즈가 인간 유전자 연구 재단을 설립했고 "인간 유전자에 대한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설립 취지 아래 1980년대 초 인간 복제가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헤르마프로디테가 탄생되었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형태로. 하지만 유전자 실험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긍정에서 부정적의 분위기로 변했고 그들의 실험이 무로 돌려져야하자 변형으로 태어나게 된 아이들은 각각의 양부모에게 맡겨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들 중 테오와 알렉스가 신체적 비밀 외 탄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경솔한 수면자] 아래 숨어 있던 탄생의 아버지의 정체가 밝혀진다. 이 재미난 소설을 두고 저자 랄프 이자우는 판타곤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판타곤. 작가 스스로가 만들어낸 개념인 이 단어는 환상, 상상을 의미하는 판타지와 다각형이라는 뜻의 타곤이 합쳐진 말로 여러 장르가 녹여진 형태의 문학을 쓰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 했다. 여전히 경솔한 수면자 라는 그림을 보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그 그림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어지고 있다. 사실 이 소설은 그림을 탈취하는 탐정과 도둑형식의 추리/스릴러 물은 아니다.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일어난 연쇄 도난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그 뒤에 숨은 거대 음모가 풀려지는 과정이 책이 추구하고자 했던 재미의 요소였던 것이다. 누군가는 만들어내고 누군가는 파괴해가는 과정 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잃어가는 순간 인류에 닥친 위기에 대한 경고가 실린 소설이라 결코 가볍게 읽혀지지 않았으며 읽는 내내 두께와 상관없이 쉴새없이 넘어가던 책장의 양 만큼이나 재미는 속도감이 붙여지기도 했다. 인간복제.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뉴스 속에서 가끔 등장하며 바로 눈 앞에 와 있구나 싶어졌지만 그 긍정의 효과보다 부정의 효과가 더 크게 느껴지는 까닭도 이런 작품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진다. 문제적 메시지를 던져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해결법이나 최소한 함께 고민해봐야할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 역시 작품이 세상을 향해 하고 있는 책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가볍지 않았고 심심하지 않았고 시시하지 않았으며 재미가 떨어지지 않았던 2권에 담긴 소설 [거짓의 미술관]이 영화화 된다면 과연 다윈의 역할은 어느 배우에게 맡겨져야 그 무게감의 중심을 맞출 수 있을까. 매력적인 알렉스의 역할보다 다윈의 역할이 더 궁금해지는 가운데 이 좋은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