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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엔터테이너 - 천대와 멸시를 비틀고, 웃기고, 울리다
정명섭 지음 / 이데아 / 2015년 11월
평점 :
드라마<대장금>에 열렬히 환호했던 이유 중 하나는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한 여성의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허구가 몇 % 섞여 있건
간에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냈다는 점. 기존에 알고 있던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 남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질투를 앞세운 궁중암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대장금은 실로 환영받을만한 드라마였다. 역사드라마는 어느 특정 시대의 한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이 그 축이 된다.
조선시대, 고려시대, 삼국시대를 짬뽕하여 오갈 일도 없을 뿐더러 한 인물을 축으로 그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 순으로 사람들의 심리/행동 변화가
갈등을 잘 살리는 양념요인이다보니 같은 인물이 자주 등장하면 이야기는 뻔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하면 두 눈이 번쩍 떠진다. 대장금이나 미실처럼.
이렇게 새로운 인물을 찾아주면 좋으련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시청자의 입장, 독자의 입장에서는 좀 더 참신하고 새로운 ...그래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 궁금하기 짝이 없는 상태가 되길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조선의 엔터테이너>에는 32명 정도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나는 딱 네 명을 알고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 백광현, 신재효, 장승업, 최북 외의 인물들은 죄다 그 이름이 생소했다.
역사의 기록이나 현대의 역사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양반이상의 권력자들이 태반이지만 적어도 <조선의 엔터테이너> 속에서는 광대,
몰락한 양반, 관기, 마의, 노비, 환쟁이들이 주인공이었다. 7월 개봉작으로 <봉이 김선달>이라는 영화 제목을 얼핏 보긴 했는데,
아,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익숙한 이름이라 다음부터는 이 책 속 등장인물들이 스토리화된 이야기들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라게 된다.
너무너무 흥미롭고 재미 그 자체였으므로.
조선시대 셀럽(홍봉상)이 존재할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해 봤던가. 지지리 궁상이었던 홍봉상이 산꼭대기에 오를때마다 술과 음식을 보낸
양반들....여인들의 외출이 금기시되다시피했던 조선에서 열네 살의 소녀가 떠났던 전국일주(김금원)의 사연, 귀신도 씹어먹었다는 엄도인, 그
학문적 지식에 일본을 들썩이게 만들었다는 이언진, 손가락으로 기가막힌 그림을 그려낸 화가 최북에 이르기까지....에피소드 길이만큼 짧막짧막하게
쓰여진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호흡은 참 짧다. 그래서 더 감질맛이 난다. 읽으면서.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인물은 정학수와 장오복이었는데, <어쩌다 어른>의 강의를 통해 그 강의력이 전국적으로 빛을 발했던
최진기, 설민석 강사처럼 조선시대에도 스타 강사가 존재했다고 한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 양반이 과거 입시를 위해 그 배움을 빌었던 조선의
스타 강사는 놀랍게도 성균관 노비 출신의 정학수였다. 노비가 세운 서당에 입교한 양반이라....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신분을 뛰어넘어 가르칠만큼
강의력이 뛰어났을 그에 대해 이전에는 들은 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하급 관원이었던 장오복은 조선시대 민원
해결사였다고 하는데, 엉뚱하게도 <38사기동대>를 조선시대 버전으로 옮겨와 세태를 풍자하는 이야기를 드라마화 한다면 딱이겠다 싶을만큼
매력적인 인물이 바로 장오복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인물의 삶. 물론 역사적으로 그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왕이나 정승반열의 인물이 아니었기에. 하지만 이런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찾아내고 발견해내는 재미는 사금을 캐는 그 흥분과 맞먹지 않을까.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꼴딱 새면서 읽은 <조선의 엔터테이너>는 시리즈로 2탄, 3탄이 나와도 사 보고 싶을만큼 매력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