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2
강미강 지음 / 청어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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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손이 왕으로 등극했다. 이제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나 싶을 정도로 남은 이야기가 한참인데 드라마는 고작 5회분이 남은 상황. 사극 시즌제를 들어본 적도 없고 이 드라마의 경우도 원래 16부작에서 1부가 추가되어 총 17부작이라고만 이야기를 들은 터라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궁금하기 짝이없다. 한편으론 홍덕로의 여동생이 후궁으로 입궁했다가 금새 죽어버리면서 덕로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새 후궁 이야기며 덕임이 후궁이 되는 이야기, 왕과 덕임 사이의 아기들이 태어났다가 죽는 이야기들까지..... 길이로보면 한참 남은 이야기가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정리될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끝나는 날이 다가오는 것이 아쉬운 드라마 이야기는 살짝 접어두고 본방사수중인 드라마만큼 재미난 원작 소설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2부 왕과 궁녀

"날 연모하지 않는다 해도, 너는 내 것이다" p194

1권 끝에 덕임은 궁에서 내쳐졌다. 그래도 왕은 사랑하는 여인을 멀리 내치진 못했다. 자신의 이복형제인 현록대부(은언군)의 집으로 보내 여전히 궁녀인채로 살게 한다. 이곳에서 덕임은 몸도 마음도 가장 여유롭게 지내게 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곧 입궁통보를 받게 된다. 역사적으로보면 은언군과 완풍군 또한 훗날 정치적으로 휘말리게 되므로 왕족의 삶이란 왕의 목숨만큼이나 위태로와 그 삶이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 잠깐의 궁 밖 생활로 얻은 또다른 이익은 왕의 할미인 의열궁을 모셨던 늙은 궁녀 연애에게서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 슬프게도 다정했던 노상궁의 결말은 편하지 못했지만.

드라마에서는 츤데레의 매력이 넘치던 세손도 왕이 되면 원작 소설 속 왕처럼 못된 남자로 변해버릴까. 덕임이 다시 입궁하면서 배치된 곳은 대전인 아닌 새 후궁전이었다. 화빈으로 봉해진 경수궁 윤씨와 그녀가 사가에서 데려온 본방나인들은 하나같이 옹졸하고 경박스러워 딱 봐도 곧 사달이 날 판이었다. 방중술에, 무논리에 툭하면 궁궐규범을 어기기 일쑤였고 덕임이를 괴롭히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마냥 모사를 꾸미느라 바빴다. 2권의 책 내용 중 개인적으로는 가장 고구마 구간이라 생각되는 시절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날이 왔다. 계속 덕임이가 당하기만 하는 꼴을 보다가 이 대목에서 큰 웃음이 터져버렸다.

"싹 다 벗겨서 들여보내야 된다는군!"

"애를 알몸으로 들이라고요?"

"법도가 그렇다대." (p188)

클레오파트라도 아니고 상궁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는 장면이 그려져 그만 웃고 말았다.


3부 왕과 후궁

"진실로 신첩을 아끼신다면, 다음 생에선 알아보시더라도 모른 척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소서" p403

달콤하면서도 그 끝을 알기에 애달픈 구간인 3부에서 덕임이는 후궁이된다. 하지만 앞선 두 후궁과 달리 '빈'이 아닌 정5품 궁녀인 '상의'의 첩지를 받게 된다. 물론 나중에는 '의빈'으로 봉해지지만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대우가 참 박하다 싶다. "복을 아낀다"는 그 말 아래 숨겨진 뜻도 잘 알겠으나 가난한 덕임의 가족들이 입에 풀칠할 방도조차 끊어버린 건 참 야박하다 왕이 슬쩍 미워졌다. 사랑한다면 좀 더 믿어줘도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장꼬장하고 도덕적인 왕에게 그 일은 참 어려운 일이겠구나 또 이해가 되고 만다. 역사적 인물이지만 내뱉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는 작가의 머릿 속에서 나온 창작의 산물인데도 마치 눈 앞에 살아 숨쉬는 것처럼 주인공들의 마음이 잘 이해된다. 덕임의 죽음도 슬펐으나 그만큼이나 슬프고 놀라웠던 건 영희의 죽음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아닌 궁녀로 입궁하여 마지막 선택만큼은 목숨과 바꾸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한 영희를 대단하다고 여겨야할지 미련하다고 여겨야할지 몰라 해당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등장인물간의 케미가 너무 좋아 한 명, 한 명에게 애정을 쏟게 만드는 소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역사적 인물, 역사적 사실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큰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야기다. 의빈의 죽음은 바꿀 수 없지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왕에게 내뱉은 유언은 심장에 꽂힌 칼날처럼 절절하다. 의빈은 알았던 걸까. 그녀와 자식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고 사주한 자들을 처단할 기회가 온다고 해도 왕이 나서지 않을 것을. 너무 의외였다.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여인과 자식은 어쩔 수 없다니. 어차피 살아 돌아오지 않으므로 실속을 차리는 편이 낫다니. 게다가 삼년 상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죽은 의빈이 아직 궐 안에 있음에도 후궁 간택령이 떨어진 것은 또 어찌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궁녀의 삶도 후궁의 삶도 읽는 입장에선 하나같이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이 소설은 정조와 의빈 성씨가 주인공인 둘의 역사 로맨스 픽션이다. 그점을 잊고 또 속상해하고 말았다. 그만큼 이야기속 주인들에게 애정을 쏟고 만 것이다.


드라마의 후반 내용이 책과 내용면에서, 길이면에서 같을 지 알 수 없다. 다르면 다른대로, 같으면 같은대로 그 재미는 톡톡할 것이다. 2021년 읽은 그 어떤 소설보다 재미났던 옷소매 붉은 끝동은 드라마도 원작소설도 둘 다 10점 만점에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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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그와 다시 마주하다 - 우리가 몰랐던 제갈량의 본모습을 마주해보는 시간
류종민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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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심지어는 만화 속에서도 본 적 있는 유비, 장비, 관우 그리고 제갈공명.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이야기는 중국의 24 사 중 하나인 <삼국지>가 아닌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속 인물들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삼국지>는 동진의 역사학자 '진수'가 쓴 역사서로 <삼국지연의>와는 그 내용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중 매력적인 캐릭터인 '제갈량'에 관한 부분을 이 책을 통해 꼼꼼히 살펴보았다.



유비로 하여금 '삼고초려'를 하게 만든 은둔 고수 '제갈량'. 이제껏 그에 대한 이미지는 키가 크고 조용하며 명석한 지혜로 주군을 보필한 킹메이커의 이미지가 강했다. 영화 '적벽대전'에서도 제갈량은 미남 배우가 맡았던 것처럼 잘생김까지 덧붙여져 훈남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를 통해 본 제갈량의 모습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100% 일치하는 인물은 아닌듯하다.



<삼국지/제갈량전>에서는 8척 키에 용모가 훌륭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어 지금으로 따지면 184cm 내지는 189.6cm 정도로 생각할 수 있기에 꽤 장신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키 재는 기구가 없었던 시절이라 정확한 수치보다는 그냥 키가 큰 남자였던 것만 짐작할 수 있다. 특이한 건 부인에 대한 기록이었는데 <배송지 주석본 삼국지>에 따르면 황승언의 딸과 결혼했다는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노란 머리에 얼굴이 까만 부인이라는 대목과 부인의 외모로 인해 당시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오르내렸다는 내용이 실려 있던 것. 흔해빠진 정보보다는 사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정보가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법이다. 이렇듯 딱딱할 것만 같은 내용은 생각지도 못한 귀가 솔깃해지는 정보와 함께 탄력적으로 술술 읽혔다. 책의 두께가 제법 두꺼운데도 단박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 [적벽대전] 속 제갈량은 뛰어났다. 하지만 저자는 '제갈량이 적벽대전의 전투에 참여하기는 했을까?'(p88)라는 의문을 품는다. 놀랍게도 전투 참여나 기여했다는 언급은 없다고 한다. 정말 재미나게 본 영화지만 기억을 뒤집고 다시 책이 이끄는 대로 정사삼국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우선 제갈량은 '방통','법정'과 함께 대업의 초석을 닦아나가면서도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주군에게 더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 사람으로서 질투가 날법도 하지만 라이벌이 아닌 동지로 본 까닭이다. 또 가족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었던 '공정의 가치'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요즘 한참 뉴스 타임을 달구고 있는 대권주자들과 저절로 비교가 되어버렸다. 특히 사면에 인색하다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세상을 다스릴 때는 큰 덕으로 해야지 작은 은혜로 해서는 안 되오"(p158)라는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았던 제갈량. 그는 빠르게 승진하여 결국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54살의 나이에 사마의와 대치 중 사망하기 전까지 제갈량은 굴곡진 삶을 살았다. 평화롭게 책이나 읽다가 유비에게 이끌려 세상으로 나온 신선같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어린시절엔 조조로 인해 '서주대학살'을 겪어야했고 형제인 제갈균과는 서로 다른 군주를 모셔야했으며 여러 인재들과 더불어 '촉'을 세우기 전까지 전쟁을 치르며 살아남았다.


분명한 사실은 소설 삼국지건 정사삼국지건 간에 제갈량은 뛰어난 인재였다는 점이다. 농업,염업, 비단산업, 교량과 도로건설에 이르기까지 외교술 외에도 여러 면에서 두루두루 뛰어난 사람이었다. 경영, 조직, 리더쉽 어느 것 하나 빠짐이 없어 보인다. 다만 너무 꼼꼼해서 아랫 사람들은 참 힘들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렴하면서 솔선수범한 윗사람을 존경한 부하도 있지 않았을까.


백성들을 비롯한 후대 황제들에 이르기까지 이미 죽고 없는 제갈량을 그리워했으며 타국의 장수 이순신이나 재상인 율곡이이까지 언급했을 정도였으니 그가 당대에만 반짝하고 사라진 인재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통해 제갈량과 다시 마주하기 전까지 그는 내게 그저 이야기 속의 한 캐릭터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제갈량, 그와 다시 마주하다>를 읽으면서 아주 예전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치열하게 살다간 한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띄엄띄엄 등장하는 연도별행적 도표와 그림을 참고하면 더 이해하기 쉽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 역사속 실제 인물을 뒤쫓는 이런 책들이 더 다양하게 출판되어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인인 내게도 이렇게 재미나게 읽히는 책인데 한참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 혹은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 유익하게 읽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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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선택하는 기술, 블럭식스 - 내 일상의 황금비율을 찾는 하루 6블럭 시간 관리 시스템
정지하(룩말)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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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때마다 시간표를 짜서 책상 앞에 붙이기를 반복했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단 하루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간에 쫓기고 적어놓은 일과를 놓치고.... 그러면서 의지는 상실되고...... 더 이상 타임블럭을 그려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선택한 것이 "to do list"였다. 제법 잘 지켜지는 것 같았지만 밀리는 날도 있고 다른 일정이 생겨 변경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주 단위/월 단위로 적어놓고 실천하다가 퇴사 후엔 일 단위로 시간관리를 해왔다. 하지만 100%가 아니어서 언제나 부족함을 느껴왔던 내게 <시간을 선택하는 기술 블럭식스>는 시원한 해답을 던져준다.

 

매달 서너 권씩 읽던 '자기계발','자기셀러' 도서를 구매 목록에서 빼 버린 이유는 지금 나의 일상에 도움이 되는 책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블럭식스 는 달랐다. '실천 가능성'을 기준으로 둔다면 그동안 내가 찾아 헤매던 해답을 가지고 있는 책이었으므로.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저자의 <블럭식스 플래너>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오픈한 지 5분 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고 1,224%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모르고 지나간 일이라 플래너 펀딩엔 참여하지 못했지만 대신 책을 꼼꼼하게 살피며 메모하는 대신 바로바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하루 단위로 적던 리스트를 '블럭식스 데일리'로 변경했고 일주일간 실천한 내용을 보며 불필요하게 중복된 블럭을 빼거나 다른 일로 교체하며 수정해나갔다.

 

 

출퇴근해서 하는 업무들이 아니다보니 나의 경우엔 계획해 놓은 일을 방해 받는 경우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고작 컨디션의 난조나 고양이들의 방해로 인한 정도랄까. 그래서 상대적으로 범퍼 블럭을 많이 둘 필요는 없었지만 한 주의 중간날 격인 수요일과 일요일에 한 블럭씩 배치해서 밀린 일을 다음주가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하는 것으로 변수대처를 해나가고 있다.

 

연년생 형제를 키우면서 고양이 넷까지 반려중인 육아 육묘에 바쁜 엄마부터 출산 후 무기력증에서 벗어난 워킹맘, 일과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는 프리랜서, 효율적으로 7개월째 인생 관리를 해나가는 주우인 타임블럭크루까지... 이미 '실천의 단맛'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각자 라이프 사이클이 달라 블럭식스의 내용은 다르겠지만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블럭식스>의 실천능력은 검증된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한 번 어그러졌다고 무너지는 계획이 아니라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더 좋은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블럭식스는 상당히 매력적인 관리법이다.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좋은 시스템 안에서라면 가능하다

p59

 

룩말이 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리스트를 적고 밀린 일들에 치이면서 살았을 거다. 좀 더 좋은 방안을 찾기 보다는 야근하듯 리스트를 업데이트하고 지우는 일을 반복하면서. 하지만 이젠 좀 다르게 산다. 충분한 여유를 두고 하루에 할 일 6가지를 큼직한 덩어리로 정해두고 거의 다 해나가고 있다. 일은 좀 더 여유로워졌고 대신 게으름을 피우던 시간들을 치워낼 수 있었다. 일주일 168시간 동안 채워진 42블럭의 성과는 결코 작은 것들이 아니다.

 

 

블럭식스의 장점

1. 블럭 6개만 살려보면 하루의 굵직한 흐름이 읽힌다

2. 일의 목적성이 분명해진다

3.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4. 지금하는 일에 여유를 가지고 집중하게 만든다

5. 하나가 밀리면 도미노처럼 일이 밀리는 것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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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을 지우고 하루 더 그리는 그대
이안정 지음 / 좋은땅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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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 따뜻하게 마음을 데워줄 책선물 하기 좋은 계절.

시처럼 짧게 쓰여진 짧은에세이 한 권을 펼치며 일상의소중함을 되짚어보는 중이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을 마중하기 위한 시간인 12월에.

 

 

그림과 사진이 제법 많이 수록되어 있어 글자를 읽는 잠시 잠깐 눈을 쉬게하기 적당하다. 하지만 쉼에 머물지 못하고 이내 글자 속으로 또 빠져든다. 평범한 단어 사이사이에 위로와 공감이 스며들어 에세이라는 사실을 잊고 또 대화하듯 읽고 있다.

 

제목은 시의 그것(?)이지만 내용들은 쉽게 쓰여져 있어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그 사막에서'(p186)와 '여름과 겨울 그 중간에서'(p214)처럼 제목부터 마지막 한 단어까지 다 마음에 와닿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그 말 앞에서'처럼 끝 문장이 가슴을 후벼파는 글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그 말 뒤에

수많은 해석이 있다는 것을

p202/ 그 말 앞에서

 

 

각자가 살아온 시간, 추억의 깊이가 달라 같은 글을 읽어도 채워지는 감성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내겐 의미가 짙은 문장도 누군가에겐 별 감흥없이 읽일 수도 있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절에 읽을 감성에세이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7일을지우고하루더그리는그대>부터 에세이추천해야지. 같은 느낌을 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느낌도 좋으니 하루 중 잠깐 튼 여유를 좋은 글로 채웠으면 하는 바램이 들어서다.

 

사흘 전에 읽은 책은 감정소모가 너무 심해 하루 종일 진이 빠져 내 할 일을 놓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제 읽은 책은 너무 밍숭밍숭했다. 기다렸던 작가의 소설이었는데 다 읽고나서 몇 줄 남길 수도 없을 정도로 '내가 뭘 읽었지?'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읽기를 끝낸 이 책은 무척 쉽게 읽혔다.

 

짧은 길이감이, 순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잘 정리된 글의 내용이 술술 읽히게 만든 주범(?)이지 싶다. 최근 들어 설렌적이 있었던가? 감정기복 없이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크게 설렌 적도 크게 절망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고작 재미난 드라마의 시작시간을 기다리는 몇 초의 설레임 외엔. 그래서 책의 제목 중 "그.만. 설레고 말았다"를 펼쳐들면서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만 읽고 '설레다'라는 단어에 붙잡혀버렸다.

 

 

 

하루에 한 가지씩 설레임을 찾는다면 너무 시간에 쫓기게 될까? 행복하다는 느낌과 달리 설렌다는 느낌은 또 색다른 의미이므로. 책에서 찾아낸 단어 하나에 꽂혀 막 시작된 12월의 지난 간 며칠 간을 되짚어본다. 가끔 책은 이래서 좋다. 읽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내게 부여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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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큰 개 파이
백미영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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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텍스트칼로리에서 출간한 동물에세이 책은 표지가 너무나 예쁜 민트 컬러다. 몸집만 커다랗지 순둥순둥한 대형견 리트리버 '파이'가 등장하며 만화로 그려져 있다. 드문드문 실제 사진도 실려있지만 둘 다 귀여워서 어느 쪽이 더 좋다~는 판가름하기 힘들다. 화자인 '백작가'는 결혼하면서 하루아침에 대형견 래브라도 리트리버의 견주가 되었다. 남편인 '익박사'가 키우던 35kg의 여섯 살배기 개큰개파이가 신혼집으로 함께 들어와 살게 된 것. 이들 부부는 결혼 후 6개월 뒤, 터키 이스탄불로 떠나야 했기에 백작가가 결혼 전까지 살던 작은 오피스텔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파이도 함께.

 

큰 개를 키워본 적이 없던 그녀는 파이와 살면서 대형견과 함께 산책을 나가고 실외 배변을 치우고 진드기를 득템(?) 하는 일을 경험했다. 분명 낯선 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싫은 소리를 듣게 되는 날도 있었고 남편 없이 혼자 나간 산책길에서 파이의 힘에 밀려 통제가 어려운 날도 있었다. 털갈이 시즌엔 눈처럼 공중에서 털이 날려댔고 파이에게 자신은 밥 셔틀 내지는 밥 자판기 정도로 여겨지는 것 같아 심란해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귀를 터는 파이의 모습에서 귀엽고 짠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꼬리의 흔들림으로 개의 마음을 알아채기에 이르렀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 따뜻함을 그녀는 파이를 통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알아가듯이.

 

몸집만 컸지 작은 개를 보고도 겁내는 파이는 너무나 귀여웠다. 특히 동물병원에서 다른 견주들이 작은 강아지를 안아주는 걸 보면서 제 몸집이 큰 것은 잊어버린채 저자에게 안아달라고 조르는 눈빛을 보내는 파이의 얼굴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인스타툰 속 그려진 강아지지만.

 

꾸중을 듣고선 엘리베이터 구석에 머리를 박고 억울해하는 파이,수영을 좋아하지 않는 파이, 가슴 부위를 긁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파이....분명 남의 개인데 이렇게 귀여울수가 없다. 글이 아닌 그림으로 접해서인지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파이의 기분이 더 잘 전달되는듯 했다. 그리고 드디어 세 가족은 낯선 나라 터키로 날아갔다. 약 15시간을 견디면서.

 

이전에 제주도로 건너가 살아볼까? 생각했던 마음을 바로 접었던 이유가 고양이들을 짐칸에 실어 가야한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터키로 간 파이네는 온도와 기압이 유지되는 생물칸에 태웠다는 걸 보면 항공기마다 다르거나 예전과 달리 태워가는 공간환경이 좀 더 좋아졌나보다. 그래도 15시간은 참 길다.

 

비록 파이로 인해 학교 전용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었지만 부부는 감내했다. 파이는 그들에게 이미 가족이므로.

 

그 외엔 파이가 살고 있는 터키는 현재의 한국보다 더 좋은 환경처럼 보여 부러움이 앞선다. 길 위에서 사는 개들을 위한 사료와 물이 도처에 놓여져 있고 길고양이들에게도 관대한 나라다. 파이는 한국에서 kg으로 책정되어 목욕비가 23만원이었지만 터키에서는 단돈 2만 5천원이란다. 대형견이 아닌 그냥 개이기 때문에. 하루 호텔링 비용도 2만원. 터키에서 꼬리표처럼 달고 살았던 '큰,대형'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는 대목에서 좀 먹먹해진다. 음식점에 함께 가도 점원이 개가 마실 물을 내어주는 나라. 개와 함께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이 있는 나라, 터키.

 

앞으로 '개와 함께 터키'로 가야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말리는 대신 얼른 다녀오라고 등떠밀어줘야겠다 싶어진다. 물론 타국에서 세 가족이 겪는 소소한 일상 속엔 고난의 순간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터키로 온 날, 소분된 터키의 값싼 사료를 먹고 파이는 설사에 혈변까지 봤다.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갑자기 달려든 길고양이에게 물리는 일도 있었으며 파이에게 배타적인 동네 길개들로 인해 근처 산책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에 사는 개, 김파이'는 행복해 보인다. 귀여운 만화로도 중간중간 글로 적힌 짧은 에세이를 통해서도 더이상 파이는 '남의 개가 아닌 우리 개' 로 살고 있었다. 마음껏 뛰어놀면서. 결혼한 남편과 적응해나가는 일보다 파이와 교감하며 서서히 익숙해져나가는 과정이 더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 살짝 미소짓게 하는 책 <개큰개파이>를 읽으면서 가장 크게 웃었던 대목은 남편이 주문했다는 파이개껌의 실제 사진을 보면서다. 에버랜드 사자우리에 납품된다는 개껌은 길이가 1m가 넘고 저자가 등에 걸쳐도 가로지를만큼 큼지막했다. 세상에 이런 사이즈의 개껌이 있을 줄이야~

 

반려동물 서적을 읽다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슬픈 내용이 나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는데, 이 책은 유쾌하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잔혹한 내용도 없고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아 읽는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일상을 눈으로 쫓아가기 바빴다. 다음 장엔 또 어떤 귀여운 모습의 파이가 있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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