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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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주 라는 제목만으로는 자연재해 내지는 지구 종말의 내용을 떠올리기 쉽다. 구약성서 창세기 6장 구절까지 덧붙여져 더더욱 신의 판결이 예상되었지만 작가 유키 하루오의 세 번째 작품인 방주는 김전일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밀실살인에 가깝다.

누구가 한 명을 희생하지 않으면 이 <방주>에서 탈출할 수 없다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가?

그야 물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어야 한다 P87

대학 등산 동아리 모임의 여섯과 화자인 고시노 슈이치의 사촌 형 시노다 쇼타로를 포함한 총 7명이 니시무라 유야가 본 건축물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방주라고 해서 산 꼭대기에 큰 배가 건조되어 있을 것으로 상상했으나 건축물은 휴대폰 기지국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험준한 산에 둘러싸인 땅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입구는 맨홀 뚜껑처럼 생긴 덮개와 반대편의 비상구 둘 뿐이고, 넓은 면적의 지하 3층 구조물이었다.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방주로 그들이 들어가고 뒤이어 야자키 가족 셋이 추가된 후 입구는 봉쇄된다. 이제 유일한 탈출구는 물에 잠긴 지하 3층을 지나야하는 비상구 한 곳 뿐. 이마저도 닻감개를 돌려 바위를 떨어뜨려야 내려갈 수 있는데 이 행위를 위해 한 사람이 반드시 방주 속에 남겨지게 된다. 누가 남아야할까.


방주는 무엇을 하던 공간일까.

왜 방주가 필요했던 것일까. 초반의 궁금증을 잊을 정도로 방주의 구조는 이상했다. 물이 차오를 것을 예상한 것인지 스쿠버다이빙 장비들이 있고 뜬금없는 고문실도 등장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도 있어 허기를 면할 수 있게 만드는데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정기적으로 누군가가 오가는 곳이라면 조만간 구조될 희망도 품어보겠지만 갇힌 사람들은 구조의 희망보다는 탈출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방주 속에서 사람들이 살해되기 시작한다. 그들 중 살인자가 있다. 밀실에서 또 살해위협 속에서 어서 탈출해야만 한다.


살인이라는 행위를 제쳐놓는다면,

범인은 기묘한 짓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현장을 밀실로 만든 것도 아니고,

피해자의 옷을 가지고 가거나 가구와 물건을 전부 위아래 반대로 뒤집어놓지도 않았다

보통은 하지 않을 뭔가를 한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게 단서가 되겠지만,

수수께끼가 없으면 풀어낼 방도가 없다 p106

우리는 그 사람이 살인범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품은 채 강제로 바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떠맡겨야 한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후 살아남은 사람 중에 진범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무고한 사람을 지하에서 끔찍하게 죽게 했다면,

그때는 우리야말로 살인범이다 p90



이야기의 반전은 밀실탈출의 트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진실이 제일 마지막에 밝혀지며 다소 널널하게 느껴졌던 소설의 중간부분을 잊게 만든다. 한 명을 남긴 여섯 명의 운명이 뒤바뀌는 순간! 결과를 알게 된 한 사람과 다섯의 비명이 교차되면서 그 장면은 잊혀지지 않게 된다. 글로 읽은 장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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